71화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 7 아르카니아에서 뱀파이어를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였다.
라헬과 그의 제자들이 나타나기 전.
7 아르카니아에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세운 나라도 존재했을 정도로 세력이 융성했었다.
불현듯이 나타난 라헬이라는 대영웅과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저주받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에게 고통받던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해방전쟁을 벌이기 전까지는…….
그 당시 해방전쟁에서 패배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은 대부분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진 존재로 변모했고 라헬은 라 헬스 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어 기틀을 잡았다.
라헬의 제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네 번째 제자가 라헬이 모시던 태양신을 모시는 태양 교단을 만들어 교황청 심처에 라헬과 인간의 눈부신 승리를 기록해왔다.
우로스와 프란시스가 처음 이단 심문관으로 뽑혔을 때. 위대한 승리를 기록해 둔 벽화를 보고 나서야 숨겨진 역사를 깨닫고 감동했었다.
물론, 위대한 승리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냐는 일부 이단 심문관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상부에서는 피로 얼룩진 역사는 성직자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공개를 꺼렸다.
그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세력이 강대해지는 것만 막으면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해방전쟁에서 패배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멸족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보아 인간들이 융성한 지역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거처를 만들어 숨어있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도 꽤 존재했다.
물론, 현재 요한처럼 인간들이 사는 지역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지만.
대륙인들 대부분 태양 교도인 아르카니아에서 이단 심문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
간혹가다 등장하는 악마추종자들이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전문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이들은 이단 심문관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한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확인한 우로스는 묘한 기분을 받으며 잔뜩 흥분했다.
‘과연 신탁은 틀리지 않았다! 감히 찬란한 태양 밑을 걸어 다니는 뱀파이어라니! 이단이로다!’
찬란한 태양의 저주를 받아 차가운 달이 떴을 때만 움직일 수 있는 저주받은 존재가 어떻게 태양이 하늘에 떠 있을 때 움직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잡아가서 심문을 해보면 알 일이라고 생각한 우로스가 창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였다.
“선배님 잠시…….”
“프란시스? 무슨 짓이냐?”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네놈이 감히!”
“방금 다친 저 사람을 보십시오.”
“……?”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프란시스의 목소리에 우로스가 짜증을 가라앉히며 방금 무너진 지붕과 기둥에 깔린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요한 성자님이 아니었다면 진짜 황천길 건널 뻔했네요.”
“아닙니다. 이 공사를 할 때 제가 지켜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쇼! 공사 시작을 조금 미뤄달라고 하신 말씀을 어기고 급한 마음에 공사한 제 실수였습니다!”
“허허,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이것도 다 요한 성자님을 만난 제 복이죠. 덕분에 마누라는 과부 신세를 면했네요. 하핫!”
“이 양반이?”
과부 신세라는 말을 들은 아내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사내 프랭크를 바라본 요한이 미소를 지으며 기도를 올렸다.
“신의 축복이 쿨럭…! 항상 프랭크와 부인께 있기를.”
“요한님께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본 프란시스와 우로스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분명 프란시스와 우로스가 봤을 때 프랭크의 상처는 한눈에 봐도 위중했다.
지붕과 기둥에 깔린 팔과 다리는 거의 으깨졌고 부러진 뼈는 조각나서 부러져있었다.
그뿐이랴, 팔과 다리가 워낙 커서 그랬지 몸을 관통한 나뭇조각들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복부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그들이 봤을 때 대번에 죽을 환자라고 결론을 내릴 정도였으니까.
방금 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 크게 다치지 않은 상처라는 소리에 반박하고 싶어도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 있으니 그들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주교급 신성력을 가진 존재가 몇 날 며칠을 신성력과 온갖 영약을 함께 써서 치료해야 할 정도의 상처였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저렇게 한번 깨문 것만으로 치료가 될 리가 없었다.
마치 다치지 않았던 것처럼 멀쩡하게 움직이는 프랭크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요한을 물끄러미 바라본 우로스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두 가지였다.
저것이 신성력인가?
아니면 뱀파이어의 사술인가?
그가 생각한 결론은 후자였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목도한다면 보통 부정하게 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저것이 신성력일 리가 없다. 대주교급 신성력으로도 저렇게 치유는 할 수 없다. 분명히 어떠한 사술을 쓴 것일 것이다.’
생각을 굳힌 우로스는 차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꾹꾹 참은 뒤.
그 어느 때보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뒤쪽에서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파스 백작에게 부탁의 말을 건넸다.
“정말 대단하군요. 과연, 교단의 승인이 없어도 성자라고 불릴 만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 우로스 심문관님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시는구려. 정말 대단하지 않소?”
“저런 분이 나타난 것 자체가 태양신의 축복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뱀파이어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허허, 저 역시 제 영지에 요한 성자님과 아르한 기사님이 처음 나타났을 때 놀랐습니다. 태어나서 뱀파이어는 처음 보는 존재였으니까요.”
할파스 백작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피어오른 것을 확인한 우로스가 눈빛을 빛내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 요한 성자님은 뱀파이어가 맞습니까? 신성력을 쓰는 뱀파이어는 처음 들어봐서 말입니다.”
“네, 저도 뱀파이어는 책으로만 읽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뱀파이어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 물론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태양 밑에서도 저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태양신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가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손뼉을 치며 할파스 백작의 말에 동의한 우로스를 지켜보던 프란시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다.
‘우로스 선배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이단이라고 판명이 나면 가장 잔혹하게 죽이는 사람 아니던가?’
프란시스는 예전에 악마 숭배자를 잡으러 갔을 때봤던 우로스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에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 우로스는 사로잡은 악마 숭배자와 그 가족까지 정화의식을 한다고 하고는 악마 숭배자를 말뚝에 꽂아 넣어 온몸에 있는 피를 다 빼버렸다.
죽은 악마 숭배자의 시체 안에 태양의 빛을 넣어야 한다면서 그의 가족을 불태우고 뼈를 빻아서 재와 함께 악마 숭배자의 몸에 집어넣고 바르지 않았던가?
그 당시 신임 이단 심문관이었던 프란시스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는 악몽에 시달렸을 정도였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지금도 말뚝을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정도였으니까.
그때 입술을 핥은 우로스가 할파스 백작에게 질문을 건넸다.
“요한 성자님께 치료를 받은 병자가 많습니까?”
“많습니다. 경비대부터 해서 여러 마을에서 몰려왔어요. 아마 치료를 받지 않은 자들을 찾기 더 힘들 겁니다. 평상시 있던 지병들까지 모두 치료를 받았으니까요.”
할파스 백작의 말에 뱀처럼 눈을 빛낸 우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이 타는지 침을 살짝 바른 뒤 말을 꺼냈다.
“사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요한 성자님 때문입니다.”
“네, 그건 예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요한 사제님은 이단이…….”
우로스의 질문에 마치 항변하듯 요한은 이단이 아니라는 말을 할파스 백작이 내뱉으려고 할 때.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인 우로스가 만류하듯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말을 끊으며 말했다.
“사실, 말이 이단 심문관이지 하는 일은 거의 감사에 가깝습니다. 이번에 할파스 백작님의 영지에 온 것도 이런 오지에 성자가 나타났다는 신탁을 받고 모셔가려고 온 것이지요.”
“요한 성자님을 모셔가요?”
“네, 정식으로 교의 승인을 받고 성자로 임명을 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마침, 저렇게 뛰어난 신성력을 제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우로스는 살짝 능글맞을 정도로 표정을 바꾸며 할파스 백작에게 말을 건넸다.
할파스는 처음 영지에 왔을 때 어딘가 불편한 태도를 보였던 우로스가 태도를 싹 바꾸자 살짝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짜 요한 성자님을 모셔가려고 온 것일까? 하긴, 저런 신성력이라면 당장이라도 모셔가려고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우로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정식으로 교단에서 성자로 인정을 받은 뒤 활동을 하게 된다면 처음 영지에 나타났을 때처럼 오해를 사지는 않을 테니까.
요한은 더욱 크게 성장해야 하는 존재.
할파스 백작이 생각하기에 요한은 이런 자그마한 영지에 묶어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달랑 둘이서 요한 성자님과 아르한 기사님을 어찌할 수는 없겠지, 게다가 이자들은 저 두 분의 진정한 힘을 모르니까…….’
요한과 아르한이 악마까지 물리친 사실을 떠올리며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때.
프랭크를 치료하고 온 요한과 아르한이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탁 한쪽에 앉아있는 우로스와 프란시스를 요한과 아르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생각의 정리를 마친 할파스 백작이 나서서 그들을 소개했다.
“오셨습니까? 이쪽은 태양교에서 나온 우로스 성직자님과 프란시스 성직자님입니다. 이쪽은 아까 보셨던 요한 성자님과 아르한 기사님입니다. 서로 인사하시죠.”
자리에서 일어난 우로스와 프란시스가 먼저 인사를 건넨 뒤.
요한 또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우로스와 프란시스를 유심히 지켜보던 아르한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할파스 백작의 귓가에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흠, 태양교 사제들은 다 저렇소?”
“그게 무슨……?”
“아무리 태양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무슨 머리를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고 다닌다는 말이오.”
“아…….”
“설마 요한 님도 머리를 밀어야 하는 건…….”
할파스 백작이 어색한 미소로 답변을 대신에 하자 아르한이 진짜로 머리를 밀어야 하는 건 아닐 거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요한과 우로스와는 달리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프란시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우로스 선배는 원래 탈모였다고…….’
태양교의 이단 심문관은 모두 머리를 민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오로지 태양신의 뜻을 따르는 심판자가 되기로 약속한 증표와 같은 명예로운 행위였지만, 같은 민머리라고 해도 선천적으로 민머리가 된 것과 선택으로 민머리가 된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프란시스였다.
우로스가 요한을 교황청으로 끌고 갈 음모를 꾸미고 있던 시각.
이르카는 친구 비다르와 함께 아스가르드에서 애꾸눈의 현자를 알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