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카르나 님의 소환으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복장은 매우 희한했다.
인류가 최초로 의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의 모습이랄까?
아니, 몸에 걸치고 있는 게 거의 없이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리고 있었다.
치마 모양으로 된 자그마한 가죽만 입고 있는 꼴이라니, 부끄러움도 없는 건가?
어쩌면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태초의 자연과 같은 곳에서 온 녀석일 수도 있다.
아닌데, 분명히 예전에 성진아와 같은 4 지구 출신이라고 했는데?
그때,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시선이 느껴졌다.
얘 뭐지?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특이했다.
보통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이 진짜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정상적인 반응.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사내에게 시선을 돌리면 왠지 지는 느낌일 것 같아 은근슬쩍 눈싸움하고 있을 때.
계약서들을 정리하시던 카르나 님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사내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에고, 일이 좀 많아서 인사도 못 했네, 많이 기다렸니?”
“아니, 그런데 누나 얘가 날 회귀시켜줄 관리자야?”
“……?”
누나?
방금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카르나 님에게 누나라고 말한 것이 분명했다.
저 깐깐하고 보수적인 카르나 님이 신도 아닌 인간하고 누나 동생 하는 사이라고?
살짝 불안해진 마음으로 사내와 카르나 님을 슬쩍 번갈아 봤다.
“얘, 이르카야. 눈알 굴리지 말렴. 진짜 친동생은 아니란다.”
“넵.”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카르나 님은 인간에서 신이 된 존재가 아니라 태어났을 때부터 신이었으니까.
당연히, 인간 동생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원시인 같은 사내와 나를 바라본 카르나 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서로 인사도 안 했네, 여기 이 눈알 열심히 굴리면서 눈치 보고 있는 애는 이르카라고 내 부하.”
“…….”
“여기 원시인 같은 애는… 너 지금은 이름 뭐 쓰니?”
이름을 모른다고?
아니지 지금은 뭐 쓰냐고 물어본 거 보면 이름을 여러 번 바꿔오면서 살아왔다는 뜻이 되는 거 같은데?
그때 사내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로니라고 부르면 돼.”
“들었지? 얘는 로니라고 한대. 나는 네 녀석이 던져놓은 일 때문에 바쁘니까 이제 편하게 얘기 나누렴.”
“어차피 처음도 아닌데 내가 알아서 하지 뭐.”
사내의 말에 순간 충격을 받고 붕어처럼 입만 뻥긋댔다.
지금 분명 처음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명의 관리자와 계약을 맺어 여러 번 회귀를 한 인물은 분명 존재한다.
나와 계약했던 광마 이천웅 같은 경우에도 여섯 번의 회귀를 거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자신을 로니라고 소개한 사내의 말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처음도 아니라는 그의 말뜻을 해석하자면,
그는 예전에 회귀를 했었다는 말과 같았고,
지금 새로운 계약을 맺으러 왔다는 뜻과 같았다.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카르나 님을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저, 카르나 님 이분 보류대상이라면서요?”
“응? 아! 그랬지, 그거 쟤를 관리할 관리자가 없으니까 보류대상이었던 거란다?”
“허허…….”
입에서 노인네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는 없다.
카르나 님이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 될 테니까.
그때 로니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야,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저, 로니 님?”
“에이, 그냥 로니라고 불러. 나 격식 차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래서 옷도 격식을…….”
“아? 옷? 이건 나도 일부러 이렇게 입는 거 아냐.”
“그러면 왜 그렇게 입고 있는 겁니… 거야?”
습관적으로 존댓말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겨우 붙잡아 질문을 건넸다.
그는 회귀를 여러 번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수많은 회귀를 하는 동안 문명이 없는 어디 오지에서만 생활한 것이 아니라면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터.
그때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화르륵-!
로니의 몸에서 불꽃의 날개가 돋아난 것.
그와 동시에 뜨거운 불길이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불의 화신처럼 변한 그가 아래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넸다.
“뭐, 같은 남자끼리니까 상관없지?”
“아…….”
“다 좋은데 이게 불편하더라고, 가끔가다 조절이 안 될 때가 있어서 그냥 이렇게 다니던 게 버릇이 돼서 말이야.”
능력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면 확실히 저러고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 부위를 가리던 가죽은 홀랑 다 타버리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때 급한 대로 수건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로니가 자리에 앉더니 천천히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궁금한 게 많을 거야. 카르나티우스를 누나라고 부르는 이유나 이런 이상한 능력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도 궁금하지?”
“솔직히, 궁금하긴 하네.”
“내 능력은 불사야.”
“……?”
회귀자면 죽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자 그는 내 반응도 예상했다는 듯 천천히 자신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언제더라? 내가 불사의 능력을 가진 게. 인간이 글을 쓰기도 전이니까 꽤 오래되기는 했거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는 올림포스나 아스가르드 같은 신들도 없었어.”
“신도 없었다고?”
“신이 없지는 않았지, 그때도 신 같은 존재가 있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빛의 신이나 어둠의 신 같은 존재인 것 같아.”
“…….”
황당함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침착해지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창세신이 가장 먼저 만든 존재가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이다.
그 외의 신들이 나타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에 있던 일이었으니, 로니는 카르나 님에게 누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빠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인간이었다.
사실, 그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카르나 님이 로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했으니까.
그 뒤로 이어진 그의 얘기를 곰곰이 듣고 난 뒤.
그의 능력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불사의 생명력.
불의 날개와 몸에서 나오는 불.
온통 불과 생명에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이건 그리 깊게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불사조(Phoenix)의 상징과 같은 능력들 아니던가?
그때 로니가 내 표정을 읽은 듯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맞아. 불사조의 알을 먹었지.”
“설마, 독심술이라도 익혔어?”
“에이~ 그런 거 익혔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겠지, 그냥 보통 여기까지 얘기하면 불사조의 능력을 어떻게 얻었냐고 물어보더라고.”
하긴, 로니는 고인물 중에 고인물.
보통 다회차 회귀자를 우스갯소리로 고인물이라고 부르지만, 이 정도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앞에서 싱글 생글 웃고 있는 로니를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로니는 진짜 회귀자가 맞을까?
회귀라고 해도 그 정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텐데?
이쯤 되면 회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회귀는 가능한 거야? 물론, 내가 관리하는 회귀자 중에 이계 회귀를 한 애들이 있긴 한데… 그것도 너무 특이한 경우라 조금 궁금하네.”
이계 회귀라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
여태 관리했던 회귀자들 중에서 요한과 아르한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이계 회귀를 한 적이 없다.
게다가 로니의 소원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
소원이 있기에 회귀를 하는 것이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은연중 고개를 들었다.
그때 피식 웃은 로니가 질문에 답변했다.
“그 이계 회귀를 처음 한 게 나야. 시간의 축이 무너질 우려가 있어 더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만큼 시간이 오래 지났을 때, 카르나 누나가 처음으로 이계 회귀를 제안했으니까.”
“그런데 이계 회귀는 정상적인 회귀가 아니잖아?”
“그렇지, 그런데 뭐 어쩌겠어? 내 몸 상태를 딱 불사조의 알을 먹었을 그 당시로 돌리려면 시간을 너무 많이 돌려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그 이전으로는 못 돌리는 거야?”
“응, 그게 불사조가 나한테 내린 저주야.”
불사조의 저주?
어지간한 최상위 신은 쌈 싸 먹는 불사조가 내린 저주라는 말에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런데, 내가 로니한테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계속 회귀를 하는 거야?”
혹시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만약, 제대로 된 신화를 얻지 못해서 신화를 얻을 때까지 이계 회귀를 계속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
그때 로니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죽고 싶어서 회귀해.”
“응?”
“아? 나 지금 살아있어. 말하지 않았던가? 나 불사라고.”
“……?”
“내 소원은 죽는 거야.”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는 로니를 바라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죽을 수 없는 남자가 죽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불사의 생명력을 얻었을 그 당시로…….
* * *
이르카가 로니의 소원을 듣고 황당해하며 이 계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뜨겁게 빛나던 태양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할파스 백작령에 찾아온 프란시스와 우로스는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딘가 불편한 듯 좌불안석인 프란시스는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겨우 참아내고 있는 우로스의 미간에는 내 천(川) 자가 깊게 패어 있었다.
대접이 영 시원치 않아서는 아니었다.
태양 교단과 관련된 일이라면 항상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할파스 백작이었기에 그들에게 고생한다고 흔히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요리까지 대접했기 때문.
방긋방긋 웃고 있는 할파스 백작과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우로스를 힐끔 번갈아 본 프란시스가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저, 할파스 백작님 이곳에 온 성…직자님은 언제 오십니까?”
“오! 요한 성자님 말씀입니까? 늦지 않으실 겁니다. 아마…….”
할파스 백작이 백작령 중에서도 오지에 있는 캘커스 마을에 있는 병자들을 치유해주러 간 요한과 아르한이 언제쯤 돌아오나 생각하고 있을 때.
우로스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백작의 말을 끊었다.
“성자라니 말씀이 좀 과하십니다. 백작님.”
“응? 다 죽어가는 사람까지 살리고, 수많은 백성의 아픔을 치유해준 분인데 그런 분을 성자라고 부르지 누구를 성자라고 부르겠습니까?”
“크흠! 교단에서 승인된 성직자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온 것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조금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흠… 말씀이 조금 과하시구려. 뭐, 만나보면 심문관들께서도 인정하실 것이오.”
할파스 백작 역시 살짝 피어오르는 노기를 감추지 않으며 답변했다.
아무리 태양교의 실질적인 권력의 상징인 이단 심문관이라 하더라도 백작위에 있는 고위 귀족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분명 우로스의 태도는 문제가 있었지만, 할파스 백작 역시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져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에 강경하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싸늘한 공기와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바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꺄아악! 프랭크!
-이런! 빨리 꺼내!
바로, 보수공사를 하던 집이 무너진 것.
갑작스레 들려온 굉음에 놀란 할파스 백작과 심문관들이 창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명색이 성직자라면 바로 뛰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할파스 백작이 그저 강 건너편 불구경하듯 가만히 있는 이단 심문관들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있을 때.
백작령에 요한과 아르한이 도착했다.
때마침 벌어진 사고 현장을 본 아르한이 주변에서 용을 쓰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손짓하며 뛰어갔다.
“다 비켜! 내가 꺼낸다!”
“우와! 성혈기사님이다!”
가끔가다 수혈기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지에서 인기가 높은 아르한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너진 지붕과 기둥들을 걷어낸 아르한이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이 짓이겨진 프랭크를 다급하게 꺼내왔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으깨진 처참한 상처를 바라본 이단 심문관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런두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살기 어렵겠죠?”
“흠, 저 정도 상처라면 평범한 성직…….”
평범한 성직자가 아닌 대주교급은 와야 그나마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꺼내려던 우로스는 눈앞에 드러난 기괴한 광경에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다친 사내를 꺼내온 아르한의 팔목을 물어뜯은 요한이 피가 줄줄 흐르는 입을 쓱 닦더니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는 크게 소리쳤다.
“끈질긴 생명력이 그대에게 옮겨가리라!”
콰득-!
말을 마치고 다친 사내의 팔목을 물어뜯은 요한을 본 프란시스와 우로스가 동시에 외쳤다.
“뱀파이어!”
이단과 저주받은 어둠의 상징인 뱀파이어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