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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68화 (68/121)

68화

헤라클레스가 떠나고 난 뒤.

녀석이 써놓은 계약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자 안젤라가 쪼르르 달려왔다.

내 얼굴을 유심히 살핀 그녀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응?”

“지금 이르카 님 얼굴에 나 엄청 심각한 고민 하고 있음! 이렇게 쓰여있어요.”

“아, 그래?”

그렇게 티 나게 고민을 하고 있었나?

하긴, 지금 고민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장본인인 헤라클레스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

녀석은 가지고 있던 것 중 많은 것을 내려놓는 커다란 결심을 했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신념과 의리를 택했으니 나도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겠지.

머쓱하게 웃으며 헤라클레스가 주고 간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서가 황금색 빛과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자 헤라클레스 녀석과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난 기나긴 세월 동안 같은 관리자로 있던 녀석을 도와줘야 한다니 지금 녀석과 내가 처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헛웃음이 입가에 살짝 배어 나왔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핀 안젤라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솔직히 의아했거든요? 헤라클레스 님이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이르카 님한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요.”

“왜? 따지고 보면 부탁할 수 있는 관리자가 나밖에 없잖아? 비다르는 직접 관련된 사건이라 도와줄 수 없으니까.”

“헤라클레스 님은 비다르 님 말고도 다른 관리자님들이랑 두루두루 친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르카 님이 관리자님들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오셨잖아요. 사이도 가장 안 좋았고요.”

“응? 사이가 안 좋아? 이건 안젤라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네?”

어리둥절해하는 안젤라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진짜 사이가 안 좋거나 친하지 않으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 내가 오르카손 녀석이나 푸카스 녀석이랑 말하는 거 본 적 있어?”

“어?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 같네요?”

“원래 그런 거야.”

“칫, 또 아리송하게 말하고 끊으신다.”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안젤라에게 대답을 해주려 할 때였다.

[성진아: 관리자님. 바쁘신가요?]

[이르카: 아뇨. 한가합니다.]

[성진아: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물건 중에서 봉인과 관련된 물건이 있나요?]

[이르카: 네? 봉인이요?]

[성진아: 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요.]

[이르카: 음, 몇 가지 있을 텐데…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뭘 봉인하려는 거지?

엑스칼리버나 아론다이트를 다시 봉인하려는 것일까?

아니, 그런 번거롭고 이득도 없는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정확하게 어떤 물건을 봉인하려고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성진아가 재차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진아: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요, 강태식이 이대로 죽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이르카: 일단 재판부로 넘어가겠죠?]

[성진아: 그다음에는요?]

[이르카: 뭐, 죄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은 죄가 크다면 지옥행이고, 별로 없다면 망각 수를 마시고 윤회하게 되겠죠.]

[성진아: 지옥행이라… 제가 지옥에 가면 제가 영원히 괴롭힐 수 있는 건가요?]

[이르카: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성진아: ……?]

화면을 바라보자 의아해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성진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뭐라고 말해준다?

진짜 지옥의 진실 즉, 영혼석에 관해 말을 해줘야 하나?

말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어차피, 그녀가 대군주 사탄과 약속을 한 이상 지옥 차원에 가는 일을 언제까지 차일피일 미룰 수는 없는 법.

그녀가 지옥 차원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물론, 할 일이 남았다면서 조금 미룰 수는 있지만, 강태식이 사망하고 난 뒤 회귀가 종료되지 않는다면 사탄도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사탄에게 그녀의 원래 목적을 설명하면서 변경된 계약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좋을 터.

어차피 지옥행이 확정된 성진아를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기에 그 정도도 못 기다릴 양반이 아니다.

그렇게 친다면 그녀의 회귀도 거의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

원래 그녀의 소원이었던 모든 헌터와 괴물의 말살이 왜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설명도 해줄 겸 말해줘도 괜찮겠지.

[이르카: 성진아 씨가 생각하는 지옥은 진짜 지옥이 아닙니다. 음, 예전에는 진짜 지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성진아: 네? 그게 무슨…….]

[이르카: 성진아 씨의 차원에서 가장 보편적인 에너지원이 뭐죠?]

[성진아: 그거야 괴물들을 잡으면 나오는 영혼석이죠.]

[이르카: 그 영혼석이 진짜 지옥입니다.]

[성진아: 네?]

[이르카: 왜 영혼석이겠습니까? 죄를 지은 영혼이 들어가니까 영혼석이죠.]

[성진아: 그게 무슨…….]

그녀에게서 예상했던 반응이 튀어나왔다.

하긴, 쉽사리 이해하고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나긴 시간 그녀에게 영혼석이 생겨난 이유와 그것이 꼭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성진아: 이해하기 어렵네요.]

[이르카: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성진아: 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거 아니었나요? 왜 괴물을 보내서 인간을 고통받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르카: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사랑하니까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것이겠죠.]

[성진아: 네?]

[이르카: 흠, 성진아 씨는 지옥과 맺은 계약으로 윤회하지 못하니까 특별히 세상의 진실을 알려드리죠. 원래 이 세상에는 수백 수천 개의 차원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고작 해봐야 삼백여 개죠.]

관리자가 된 이후 카르나 님에게 들은 세상의 진실을 성진아에게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과거 수백 수천 개의 차원은 각자의 방법으로 발전했다.

어떠한 곳은 극도의 과학력으로.

어떠한 곳은 극도의 마법력으로.

또 어떠한 곳은 색다른 힘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방법으로 발전한 인간은 결국 스스로 파멸했다.

외부로부터 위협이 없자 끝없이 늘어나는 인구와 고갈되어가는 자원 그리고 죄를 짓고 죽은 죄인을 수용할 감옥이 부족해지는 사태가 계속 벌어졌다.

지옥은 한 곳이었고 다른 차원은 수백 수천 개였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지옥에 모두 가두지 못한 영혼들이 윤회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고, 그들은 더욱더 커다란 죄를 짓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배신하고 룬에 검을 박아넣어 날 폭주시킨 그 녀석처럼…….

인간들은 서로 전쟁을 벌여 멸망하거나 자원이 고갈되어 서서히 몰락했다.

수천 개에 달했던 차원이 점차 줄어들자 더는 위험하다고 느낀 신들이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 7계 신의 제안으로 탄생한 영혼석은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괴물이라는 외부의 위협은 인간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고,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 이상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었다.

모든 인간이 선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죄를 짓는 인간은 항상 나왔으니까.

영혼석은 무한의 순환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궁금해할 창세신의 대리신이자 차원의 관리신들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이르카: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은 창세신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계되어 태어난 존재들이기에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셈이에요. 어느 한쪽으로 균형의 추가 완전히 무너진다면 그것이 빛과 어둠 그 어느 쪽이라고 해도 세상의 끝이 도래하는 것이랍니다. 그렇기에 괴물과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는 모든 헌터를 없애는 소원은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었어요.]

모든 설명을 마치고 난 뒤.

그녀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봤다.

머리가 비상한 편이니 모두 알아들었겠지?

그때 성진아가 피식 웃더니 말을 꺼냈다.

[성진아: 그렇다면, 그 영혼석을 봉인하면 되겠네요.]

[이르카: 네? 지금까지 뭘 들으신 거예요?]

[성진아: 아, 다른 영혼석을 모두 봉인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딱 하나만! 둘도 아니고 하나 정도는 영원히 봉인해두는 게 가능하죠?]

강태식을 아직까지 살려둔 이유가 저런 거였어?

방법을 알려주지 못할 건 없지만 이건 그녀도 나와 약속을 해야 한다.

[이르카: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헌터와 괴물을 없애고 싶다는 소원은 완전히 포기하셔야 해요.]

[성진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포기하는 게 좋겠죠, 사실 그런 시스템이 있는지 몰랐으니까 했던 말이고요, 저는 현실적이랍니다?]

[이르카: 그리 믿음이…….]

[성진아: 계약 비율이…….]

[이르카: ……!]

치사하게 계약 비율을 언급하다니.

그녀의 완벽한 카운터펀치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영혼석을 영원히 봉인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 *

이르카가 성진아에게 영혼석을 봉인하는 방법을 알려주던 시각.

7 아르카니아.

라 헬스 제국의 수도에 있는 황금빛 찬란한 태양 신전.

각양각색의 유리를 통해 따스한 햇볕이 산산이 부서지듯 들어와 붉은색 카펫이 길게 늘어져 있는 복도를 비췄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보물과 그림 그리고 조각상 등으로 치장된 화려한 복도를 걸어가던 이단 심문관 프란시스는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태양의 신 라헬이 선사한 신성력을 마치 장사하듯 팔고 있는 고위 성직자들의 추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쯧, 고작 돈을 주고 산 종이 쪼가리로 죄를 지울 수 있다고 믿은 멍청한 귀족들 덕분에 이 돼지들만 배불리 처먹는구나.’

물론, 막대한 신성력이 포함된 종이였기에 죄를 지워준다는 막연한 믿음보다는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가령, 제국에서 금지한 마약을 먹고 그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용도로 쓰거나 하는 것 말이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기름진 살이 터질 듯 오른 사제를 따라가던 프란시스는 대주교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이 좋아 이단 심문관이지 실제로는 대주교의 사냥개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신전에서 이단자의 신탁을 받은 뒤.

잡아 오라고 한 자들은 모두 이단자와는 거리가 먼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어차피 명령만 따르면 되는 일, 이번에는 또 어떤 자를 잡아 와야 하는 걸까?’

어떠한 명령이 내려올지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가던 프란시스의 눈앞에 어느새 커다란 대주교의 회의실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차례 심호흡을 한 프란시스가 노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놀라운 인물을 발견했다.

그림으로만 본 인물이지만, 그 인물이 태양 신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위치였기에 부복하듯 재빠르게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라헬 님의 종 이단 심문관 프란시스! 위대한 교황님을 뵙습니다.”

“이단 심문관 프란시스는 고개를 들라.”

“네!”

고개를 들어 교황을 바라본 프란시스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교황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교황이 직접 나설 정도로 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일까?

프란시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황의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이단 심문관 복장을 한 인물이 걸어 나오며 말을 건넸기 때문.

프란시스의 앞에 멈춰선 이단 심문관이 후드를 벗으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 나온 것일까 하고 프란시스가 흠칫 놀랐을 때.

얼굴을 드러낸 이단 심문관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라헬 님의 신탁이 내려왔다.”

“네? 무슨 신탁 말입니까? 우로스 선배님.”

“할파스 백작령에 사람을 현혹하는 이교도가 나타났다는군, 우리는 그놈을 심판하러 간다.”

“우로스 선배님의 능력이라면… 많은 사람이 죽겠군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은 프란시스는 겁 없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교도의 안식을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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