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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67화 (67/121)

67화

한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잔뜩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안젤라와 차를 마시고 있던 헤라클레스 녀석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재차 말을 걸었다.

“뭐야? 너 카르나 님이랑 내 얘기 하러 간 거 아니었어?”

“그건 맞는데… 너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 상관없는 거냐?”

“상관있지. 올림포스를 탈퇴한다고 하고 대판 하고 나왔으니까.”

“그거 막 탈퇴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너는…….”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그래.”

사실 워낙 많은 자식이 있기에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그리 희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헤라클레스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솔직히 같은 제우스의 핏줄인 아킬레우스나 포세이돈의 핏줄인 테세우스와 함께 올림포스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녀석이지만 그 둘과는 궤를 달리하는 녀석이었다.

실제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아킬레우스와 혼자서 트로이를 박살 낸 헤라클레스와 비교는 무의미했다.

테세우스가 이름을 떨치게 된 일화인 미노타우로스 퇴치 역시 헤라클레스는 동급 아니, 그 이상의 괴수들을 수없이 처치하지 않았던가?

기간토마키아 당시 올림포스의 최종병기가 제우스가 아닌 헤라클레스라는 것을 생각하면 녀석이 올림포스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 적지 않을 터.

그런 헤라클레스를 제우스가 순순히 놔줬을 리가 없다.

그때 헤라클레스가 단숨에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이마에 내 천(川) 자를 그리며 말을 꺼냈다.

“카르나 님이 제약을 풀자마자 강태식에게 헥토르를 비롯한 영웅들을 보내더라.”

“그건 나도 확인했어.”

“내가 그런 짓에 동의했을 거 같냐?”

“흠… 네 동의 없이 그렇게 보낼 수 있던 거야?”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 그리고 내 관리자 계약서에 장난질 쳐놓은 것도 확인했고.”

“뭐?”

관리자 계약서에 장난질을 쳐놔?

이런 말은 카르나 님도 해주지 않았는데?

의아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 씁쓸한 미소를 지은 헤라클레스가 재차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마. 내가 관리자 일을 시작할 때 관리신은 카르나 님이 아니었어.”

“하긴, 네놈이 좀 오래 하긴 했지…….”

“그래, 그 당시의 관리 신하고 맺은 계약서에 몇 가지 장난질을 쳐놓았더라고. 쯧, 지금 내 카르마 가지고 또 여기저기 장난질하고 있지?”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야?”

“거기 적혀있더라. 봐봐 지금 카르마 가지고 장난질 치는 게 가벼운 문제야? 중대한 문제잖아. 그런데 아스가르드나 다른 커다란 신계는 어때? 조용하지? 분명 난리를 쳐야 하는 상황인데도 아무 말 안 하고 있잖아?”

“……!”

확실히 의아하기는 했다.

특히나 올림포스와 함께 지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화를 가지고 있는 아스가르드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

자신의 눈을 팔아 누구보다 현명한 지혜를 얻었다는 아스가르드의 주신인 오딘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가 그저 비다르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른 쪽에서 따지려고 들려고 해도 따질 수도 없더라. 계약서에 적힌 조건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냐? 게다가 그런 미친 계약을 한 당시 관리신에 책임을 물 수도 없으니까 다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만 있던 거지.”

“제우스가 너를 이용한 거네?”

“그런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

“그렇지.”

자신의 자식임에도 언젠가는 헤라클레스가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이런 안전장치를 걸어둔 것이 분명했다.

치가 떨리는 제우스의 간악함에 혀를 차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허, 어떻게 주신이라는 자가 그렇게 치졸한 방법을 쓸 수가 있냐.”

“올림포스니까.”

“응?”

“올림포스에서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신은 거의 없어. 네가 관리하는 싸이코 성진아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 곳이 거기다. 막말로 헤스티아 고모 빼고 사고 치고 다니지 않은 신이 있냐? 그 착하다는 헤파이스토스 형이 아테나 누나를 덮치려 한 일도 있고, 제우스가 가장 좋아하는 아테나 누나 역시 착한 척해도 실제로는 일부러 전쟁도 일으키고 피를 보면 흥분하는 성격이라는 거 유명하잖아? 예전 야만의 시대에는 그게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너 너무 대놓고 까는 거 아니냐?”

“이제 올림포스라면 신물이 넘어온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곳이라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울 정도야.”

말을 마친 헤라클레스의 얼굴에는 올림포스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느껴졌다.

하긴, 나라도 가족이 저 모양 저 꼴이라면 녀석과 같은 심정이었겠지.

그때 안젤라가 다시금 다과를 가지고 오더니 헤라클레스에게 차를 따라주며 질문을 건넸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중간계에 계속 남아계실 건가요?”

“아니, 사실 그 얘기를 하려고 여기 온 거야.”

“나랑? 무슨 얘기 하려고?”

“무슨 얘기기는 일 얘기지.”

일 얘기라는 얘기에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올림포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던가?

아르카니아 역시 올림포스의 손길이 닿아있는데?

복잡한 기분으로 헤라클레스를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안젤라가 깎아온 사과를 씹으며 말을 건넸다.

“이미 오딘 님하고 얘기 끝냈다.”

“오딘 님? 너 설마?”

“그래.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그럴 거면 비다르를 찾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

“너 바보냐? 비다르도 라그나로크랑 관련되어있잖아.”

“라… 라그나로크? 이런 미친놈이?”

“오딘 님한테 허락은 얻었다. 뭐 까짓거 예전에 12 과업도 처리했었잖아? 라그나로크도 괴수들 때려잡으면 끝나는 거 아니겠냐? 어차피 기간토마키아나 라그나로크나 시기는 비슷해. 나를 오딘 님이 지배하고 있는 13 지구로 회귀시켜줘. 올림포스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잖아.”

12 과업에서 녀석이 때려잡은 괴수들도 대단한 존재들이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라그나로크에서 나오는 괴수들은 그 스케일이 다르다.

가장 유명한 늑대 괴물 펜리르, 세상을 휘감는 뱀 요르문간드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세상의 종말자 수르트는 말도 안 되는 괴물 아니던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은 녀석이 웃으며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안젤라 미안한데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을까? 정말 미안해.”

“아니에요, 중요한 얘기 하려고 하시는 거죠? 저는 바깥에서 망보고 있을게요.”

“역시, 내가 이래서 안젤라를 좋아한다니까?”

“어머? 유부남은 관심 없어요. 헤라클레스 님.”

“에이~ 나도 알지. 안젤라는 일편단심 이르카잖아.”

헤라클레스의 농에 얼굴을 붉힌 안젤라가 헛기침하며 문밖으로 나선 뒤.

능글맞게 웃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얼굴을 굳히며 말을 꺼냈다.

“기간토마키아. 라그나로크 둘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신화의 종말?”

“그래. 나는 기간토마키아를 승리로 이끌었어, 이번에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던 시절의 아스가르드에 제대로 된 승리를 안긴다면 나는 종말의 구원자가 되는 거지. 그것도 반쪽짜리가 아닌 제대로 된 구원자 말이야.”

“그건 이해하겠는데 그걸 얻어서 어떻게 하려고?”

“올림포스를 내가 먹을 거다.”

“뭐?”

황당한 말을 꺼내는 헤라클레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올림포스를 먹는다니?

물론, 녀석이 라그나로크까지 이겨낸다면 제우스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지금보다 더 강했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가능성은 가능성.

제우스보다 강해진다 해도 다른 12신들은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잠시 숨을 고른 녀석이 조심스레 재차 말을 꺼냈다.

“뭘 걱정하는지 아는데 도와주기로 한 신들이 있어. 누군지는 네놈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신이고 제우스에게 악감정을 가진 신이니까.”

“설마, 프로메테우스냐?”

“뭐, 척하면 척 아니겠냐?”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이라.

이거 헤라클레스 녀석이 올림포스의 4대 주신이었구나?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물론, 예언은 예언일 뿐.

예언이 틀리는 일은 부지기수였기에 안심할 단계는 아니긴 했지만.

“관리자를 그만둔 것도 그런 가능성까지 계산한 거냐?”

“뭐, 겸사겸사.”

“집안싸움에 나를 끌어들이다니…….”

“진짜 미안하다. 이번에는 네놈이 나를 도와라. 다음번에는 내가 네놈을 도울 테니까.”

“그래,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데 다음번이 언젠데?”

“응?”

“야, 올림포스에서 메르나도 데리고 가면서 아킬레우스랑 메르나의 카르마 비율을 95%까지 맞춰줬다. 그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골치 아픈 줄 아냐?”

“…….”

카르마 비율과 관리하는 회귀자를 넘겨준 일 등을 모두 얘기하자 머리를 벅벅 긁던 헤라클레스가 뭔가 떠오른 듯 주먹을 맞부딪치며 말을 건넸다.

“이럴 때는 미끼를 던지는 게 좋지 않겠냐?”

“미끼? 미끼는 버리는 카드잖아? 지금 나한테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건 네놈이 잘 알 텐데?”

“생각해봐. 네놈이 거의 모든 회귀자의 계약을 종료시킨 다음에 카르마 비율을 높였을 때 올림포스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어?”

“아, 저놈이 마지막 공세를 취하는구나?”

“그렇지, 그 마지막 공세는 그 누구냐? 뱀파이어 사제 있잖아?”

“요한? 야 이 미친놈아 요한을 어떻게 버리는 카드로 쓰냐?”

“버리지 않으면 되잖아?”

“뭐?”

“요한한테만 집중하는 척하고 새로운 회귀자를 한 명 계약하는 거야. 그러면 올림포스는 선택해야겠지, 요한이라는 회귀자를 견제해야 할지 새롭게 계약을 맺은 회귀자를 견제해야 할지 말이야.”

“그렇게 되면 오히려 내가 올림포스에 역공을 취할 수 있다 이거지?”

“그렇지!”

헤라클레스의 얘기는 상당히 흥미를 돋웠지만, 그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올림포스가 견제할 수 있는 곳에 회귀한 회귀자일 것.

헤라클레스 같은 경우 오딘이 지배하는 곳으로 회귀하고 싶다고 했으니 제외.

두 번째는 다른 회귀자들을 모두 계약 종료시키고 남은 카르마 비율인 3%를 채워줄 수 있는 카르마를 가진 회귀자일 것.

그런 존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헤라클레스의 조언을 들었지만, 여전히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

예전에 카르나 님이 했던 말이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 너랑 헤라클레스랑 한판 붙은 4 지구 말인데… 그쪽에서 다른 세계로 갔던 애가 하나… 걔가 사실 보류대상이었던 애거든.’

카르나 님이 직접 뽑아놓은 보류대상.

성진아나 요한 같은 경우를 살펴보았을 때,

보류대상은 확실히 주는 카르마가 다른 평범한 회귀자들과 차원이 다르다.

이거 확실히 가능성 있겠는걸?

그때 헤라클레스 녀석이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그때 다 봤다.”

“뭐?”

“성배 찾으러 갔을 때 다 봤다고.”

“……!”

“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본 거냐?”

“그래. 네놈이 누군지까지 다 알았지.”

미친놈이었다.

내가 반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알아낸 사실을 보고했을 것이 분명했다.

다들 쓰레기라고 욕하겠지만, 룰을 어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정해진 룰을 이용하는 것이니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쓰레기라는 것에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내 성격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어안이 벙벙해져서 헤라클레스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네놈이 나보다 더 좋은 관리자잖아? 힘 좀 써서 날 잘 도와주라고, 다음번에는 내가 널 도와줄 테니까.”

“너 이 미친 새끼…….”

“이크!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오딘 님이랑 할 얘기도 있어서 이만 가본다. 카르나 님한테는 죄송하다고 전해드려라.”

탁자에 놔둔 황금색으로 빛나는 계약서와 녀석의 커다란 등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나서던 녀석이 바깥에 기다리고 있는 안젤라와 작별인사를 나눌 때 등을 돌려 환한 미소를 짓더니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 알고 나니까 하는 말인데, 나는 네놈이 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넌 진짜 웃기는 놈이야.”

“크흣, 그러면 잘 부탁한다. 이르카 관리자님.”

말을 마치고 등을 돌려 길을 떠나는 위대한 영웅의 등판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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