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66화 (66/121)

66화

성진아의 승리를 축하할 시간도 없었다.

카르나 님으로부터 헤라클레스 녀석이 잠적한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기 때문.

카르나 님의 호출을 받고 집무실에 오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새로운 계약서를 바라보고 있던 카르나 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얘, 너는 이 말이 이해가 되니? 헤라클레스 대신에 아킬레우스를 새로운 관리자로 임명하라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네.”

“네? 아킬레우스는 원래 환생부에서 관리자 일을 하고 있었잖아요.”

“내 말이 그 말이잖니.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애를 빼 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헤라클레스가 가지고 있던 모든 카르마를 아킬레우스한테 이전시켜달라니…….”

올림포스 측의 요구는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환생부에서 일하던 관리자 아킬레우스를 회귀부로 옮기는 것도 모자라서 헤라클레스 녀석이 관리하던 회귀자부터 가지고 있던 카르마까지 이전을 요구한 것은 너무한 거 아니던가?

만약에 이게 가능하다면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아킬레우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카르마에 헤라클레스가 보유하고 있던 카르마를 합친다면 100%가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

그렇게 되면 최종시험에 아킬레우스가 선발되고 혹시라도 합격한다면 내 차례는 오지 않게 된다.

그때 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던 카르나 님이 계약서를 탁자에 툭 내던지며 안심시키듯 말을 건넸다.

“100% 이전은 불가능할 거란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반신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거대 집단이 주기별로 창조신을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니?”

“그렇죠… 그 말을 들으니까 조금 안심이 되기는 하네요. 그런데 헤라클레스 녀석은 아직도 강제 소환 안 되나요?”

“응, 강태식하고 계약을 파기했다는 걸 보자마자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녀석을 소환해봤지.”

“당연히, 소환은 불가능했고요?”

“그렇단다.”

그렇다면 올림포스에만 말하고 관리자 자체를 그만뒀다는 소리가 되는데… 생각해둔 여러 가지 가설 중에서 가장 불길한 가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강태식이 말하지 않았던가?

헥토르를 비롯한 사망했다고 알려진 영웅들을 빌려준 것은 헤라클레스가 아닌 제우스였다고.

내가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 녀석의 성격상 저런 걸 지켜보고만 있었을 리가 없다.

대영웅치고 쪼잔해 보일 때도 있는 녀석이지만, 명예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올림포스가 있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마 녀석이 제우스에게…….”

“아니, 그럴 리는 없단다.”

“제우스가 자신의 핏줄을 끔찍하게 아끼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얘는? 헤라클레스가 죽었다면 녀석의 신화가 아직 남아있겠니? 제우스도 내가 있는 이상 그런 방법은 쓰지 못한단다.”

“그게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너는 내 권한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니?”

입술을 샐쭉이 내밀며 뭔가 심통 맞게 말을 내뱉은 카르나 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긴, 잔소리꾼에다 위엄이 없어서 그렇지, 진짜로 화내면 제우스 같은 신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의 신이었지?

그나저나 제우스에게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면 이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녀석에게 잘못했던 일들만 떠올랐다.

카르나 님의 손에 이끌려 관리자로 막 임명되었을 때 가장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온 녀석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주먹을 날렸던 일부터 시작해서 매번 녀석을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사기에 꼼수를 부렸던 일까지.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후회만 가득했던 시절이었고, 안젤라의 용서를 받지도 못했던 시절이다.

당연히, 가장 먼저 관리자 일을 끝내고 신이 될 녀석으로 손꼽히는 녀석이었기에 느꼈던 질투심에 했던 행동들이 미친 듯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거칠게 머리를 긁으며 헤라클레스에 관한 생각을 떨쳐내려 할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공허했던 집무실을 크게 울리며 들려왔다.

설마 또 다른 관리자인 아킬레우스가 온 것일까?

이맛살을 찌푸리며 집무실의 문을 바라봤다.

“들어오렴.”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응? 이건 메르나 녀석의 목소리인데?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던 녀석이 왜 지금 나타난 거지?

헤라클레스가 사라지고 정신없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메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녀석이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품에서 황금색 계약서를 꺼내 들며 외쳤다.

“올림포스에서 새로운 계약서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제우스 님께서 처음 조건은 조금 너무했다고 하셨습니다!”

“응?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오니?”

“네?”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왜 네가 올림포스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냐 이거지.”

“그, 그건… 저한테도 계약을 제안하셔서…….”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메르나가 들고 온 계약서를 녀석의 손에서 빼앗듯 받아들고는 먼저 읽어봤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말들이 적혀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관리하던 회귀자를 메르나와 아킬레우스가 나눠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부터 카르마를 교묘하게 나눠주는 비율까지 모든 게 적혀있었다.

이건,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따라갈 수 없는 카르마 격차를 만들어 둬서 둘 중 한 놈을 신으로 만들겠다. 이거네.

게다가 다른 소속으로 있던 메르나 녀석까지 꼬셔서 나를 견제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끌끌 차며 메르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야, 네가 원래 속해있던 아마르에서 나오겠다는 거냐?”

“그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그동안 아마르 쪽에서 너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아마르의 주신을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려 할 때.

메르나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꼬듯 말했다.

“왜? 그게 왜 잘못된 건데? 내가 쓰레기다 이거야? 너야말로 착각하지 마. 인간들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이직하잖아? 거기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라는데 너라면 저는 원래 있던 곳과의 의리를 생각해 남아있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의리가 넘치는 놈은 아니잖아?”

“멍청한 놈. 막말로 올림포스에서 너한테 잘해줄 이유가 있겠냐? 너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있으면 뭐 어때?”

“뭐?”

“막말로 너랑 헤라클레스한테 치이면서 산 세월이 얼만데 나는 뭐 신이 되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너희들만 신이 되고 싶은 줄 아냐고! 최종시험을 한 번 치르고 오고도 나보다 카르마를 더 빨리 쌓은 헤라클레스나 나보다 늦게 반신이 된 주제에 나를 훌쩍 뛰어넘은 네놈을 보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냐고!”

이런, 제우스는 메르나가 그동안 느꼈던 열등감을 자극한 거였구나.

게다가 어떠한 꿍꿍이에 이용당하는 처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락할 정도로 몰려있었다니…….

안쓰러운 마음에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얘들아? 여기가 어딘지 까먹었니? 둘 다 평생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면 닥치고 계약서나 가지고 오렴.”

“넵.”

섬뜩한 말을 웃으며 내뱉은 카르나 님에게 계약서를 대령하듯 공손하게 바치고 난 뒤.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화가 끓어오르는 듯 계약서를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아하니 올림포스에서 날 확실히 엿 먹이려고 작정한 분배비율을 확인한 모양.

헤라클레스가 보유하고 있던 카르마를 나와 비다르를 제외한 모든 관리자에게 다른 비율로 분배한다는 통지서나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에 적힌 비율대로 배분했을 때 가질 카르마를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렸다.

1. 아킬레우스: 95.01%

2. 메르나: 95.00%

3. 오르카손: 93.84%

4. 푸카스: 93.84%

.

.

9. 이르카: 91.24%

10. 비다르: 76.42%

올림포스 측에 따지기에는 어려운 비율.

내가 보유한 카르마와 그렇게 커다란 격차를 보이는 것도 아니면서 너무 한쪽만 일방적으로 몰아준 것도 아니다.

나와 데면데면한 푸카스와 오르카손도 공짜로 카르마를 나눠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을 터.

어차피 창조신이 되는 일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으며 나와 친한 비다르를 쏙 빼놓고 진행한 일에 혀를 내둘렀다.

무조건 거절해야 하는 일이지만 거절할 명분이 부족하다.

카르나 님도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을 터.

녀석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계산하고 있을 때.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고 있던 카르나 님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결과는 나중에 따로 알려줄 테니까 일단 가서 일하렴.”

“네.”

슬쩍 입꼬리를 올린 메르나가 자리에서 벗어난 뒤.

왜 안가냐는 듯 나를 멀뚱히 바라보던 카르나 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 이제 회귀자 관리 안 할래요.”

“응? 나한테 살해당하고 싶니? 그게 무슨 강아지풀 뜯어 먹는 개소리니?”

“요한이 저한테 주는 카르마가 얼만지 아시죠?”

“응. 10%”

“이제 요한만 끝내면 끝나는 일이잖아요.”

“걔 목표가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이지?”

“네.”

요한의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는 거 아니던가?

내가 총력을 기울여 도와준다면 달성하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모두 쏟아부어 다른 회귀자들의 소원을 이뤄주고 요한만 집중적으로 관리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그때 카르나 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했는지 수락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안 돼.”

“네?”

왜 안 된다는 거지?

계약을 위반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모조리 쏟아부어 소원을 이뤄주겠다는 건데?

이해할 수 없는 카르나 님의 반응에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있을 때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얘, 이르카야. 요한이 주는 카르마는 10%가 맞아. 그렇지?”

“네.”

“이걸 너랑 나만 알고 있을까? 아니면 올림포스 애들도 알고 있을까?”

“올림포스도 알고 있겠죠…….”

“그치? 게다가 요한이 이루고 싶어 하는 소원이 쉬워 보여도 결코 쉬운 게 아니란다? 걔가 그 누구보다 인간 같아 보여도 인간이 아니잖아? 만약에 그쪽에서 작정하고 요한을 방해하면 어쩌려고?”

카르나 님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르카니아에는 올림포스의 영향력이 없지 않던가?

그녀의 질문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지만, 아르카니아에는 올림포스의 영향력이 없잖아요?”

“얘,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뿐만이란다? 거기서 주신으로 모시는 애가 누군지 아니?”

“그… 누구더라? 라헬이라는 태양신 아니었나요?”

“그렇지? 그런데 넌 걔를 만나본 적이 있니?”

“아뇨.”

“당연히 그렇겠지, 라헬은 아폴론이 제우스한테 신격을 박탈당할 때 쓰던 이름이니까.”

“네?”

라헬이라는 신이 아폴론이었어?

새삼 느껴지는 거대 집단인 올림포스의 영향력에 이맛살이 찌푸려질 때.

카르나 님이 손을 휘휘 저으며 그만 가라는 손짓과 함께 말을 건넸다.

“아무튼, 다른 수단을 떠올려 보렴, 요한만 막으면 된다는 걸 알면 걔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네…….”

대화를 끝마치고 복잡해진 심정으로 집무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저번에 너무 긁어놨나?

작정하고 나를 방해하려 드는 올림포스의 신들.

특히, 제우스를 떠올리며 그를 엿 먹일 방법을 열심히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빅엿을 선사해줘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거 안젤라랑 한번 상의를 해봐야겠는걸?

한참을 고민하며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집무실에 도착했다.

힘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습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안젤라에게 말을 건네려 할 때.

“안젤라 나왔어… 엉?”

“여, 일은 잘 처리하고 왔냐?”

“……?!”

이 녀석이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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