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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60화 (60/121)

60화

중간계에 도착해 안젤라가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헤라클레스와 함께 카르나 님의 집무실에 강제로 끌려왔다.

관리 신의 권능 중 하나인 관리자 강제 소환을 당한 것.

중간계에 한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맡은 관리자를 끌고 올 수 있는 권능에 소환된 직후.

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상시 보여주던 항상 나른한 표정이 아닌 턱을 괴고는 싸늘하고도 불편한 표정을 지은 카르나티우스 님이 날 노려보고 있던 것.

저 잔소리꾼이 말이 없으니 오히려 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헤라클레스와 눈빛을 교환하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나와 헤라클레스를 번갈아 바라보던 카르나 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에휴~그래, 무사히 귀환한 건 축하한단다.”

“카르나 님 표정은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표정이 아니신데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응. 말 안 듣는 반신 하나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서 그렇단다.”

뭐지?

왠지 모를 섬뜩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왔다.

설마 말 안 듣는 놈이 나를 말한 것일까?

둘이면 나랑 헤라클레스인데 하나라고 하면 무조건 나를 칭한 것일 터.

그때 헤라클레스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카르나 님에게 질문을 건넸다.

“말 안 듣는다는 놈은 당연히 이르카겠죠?”

“어머! 헤라클레스야 너 어디서 관심법 배워왔니?”

“동양의 속담 중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리자 중에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이 녀석이 유일하지 않습니까?”

“응?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뭐, 이르카가 내 속을 제일 썩인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란다.”

“저는 그래도 이르카처럼 사기꾼 같은 짓은 안 하잖습니까?”

“그건 그렇단다.”

“……?”

황당한 말을 주고받는 헤라클레스와 카르나 님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내 험담만 할 것이 분명한데?

헤라클레스가 다시 입을 열기 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카르나 님에게 말을 건넸다.

“카르나 님, 지금 저 놀리려고 부르신 거예요?”

“응. 그렇단다.”

“……?”

“농담이란다.”

“넵.”

“죽이려고 부른 거란다.”

“넵?”

표정을 보니 확실히 화가 단단히 난 모양.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때 카르나 님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우리를 껴안으며 축하의 인사말을 건넸다.

“위험한 임무에서 무사히 귀환한 걸 축하한단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이 말을 하려고 불렀어. 내일이 강태식하고 성진아 공격 제한이 풀리는 날인 거 알고 있지?”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수천 년을 살아왔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진 것은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카르나 님이 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

단순히 날짜를 상기시키려는 목적은 아닐 터.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놓고는 이렇게 싱겁게 끝낼 분이 아니다.

내가 질문을 건네기 전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린 헤라클레스가 질문을 건넸다.

“회귀자들의 싸움이니 끼어들지 말라는 뜻인지요?”

“아니, 정반대란다. 내일 하루는 모든 제한을 풀어줄 테니까. 너희들의 역량을 최대한 써보렴.”

“……!”

“……!”

“그래야 이기든 지든 후회가 안 남지 않겠니?”

확실히 지금처럼 제한이 많은 상태에서 하는 싸움은 회귀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았다.

제한을 풀어준다는 것은 진짜 관리자의 실력을 보여주는 싸움을 하라는 말과도 같았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헤라클레스가 그녀의 제안에 화답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요즘 이르카 녀석한테 계속 말려서 기분이 우울했는데 복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그건 이기고 말하렴.”

“커흠! 그럼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오랜만에 왔더니 마누라랑 아이들이 보고 싶네요.”

“응. 어서 가보렴. 이르카, 너는 좀 남고.”

“네? 저도 안젤라가 기다리고 있을…….”

“응, 방금 메시지 보내놨어. 그리고 내일 너희 대결 준비해야 하니까 오늘은 최대한 짧게 할게.”

최대한 짧게?

그렇다면 8시간 정도라는 소리인데…….

처량한 눈빛으로 카르나 님에게 애원하고 있을 때. 그녀의 입에서 쏟아질 잔소리를 예상한 헤라클레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속삭였다.

“명복을 빈다.”

“살려줘…….”

내 애원을 무시한 헤라클레스가 문을 닫고 나서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본 카르나 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이르카야.”

“넵.”

“뒤질래?”

“네?”

“누가 금제 풀라디? 그 안에서 금제 푼 거 모를 줄 알았어? 내 마력으로 한 금제란다. 내가 모르면 바보 아니겠니?”

“…그럼 풀지 말고 그냥 죽을까요?”

“반항하니?”

“반항이라뇨! 와! 저 진짜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헤라클레스도 뻗어버리고 아리마태아의 요셉 아저씨도 뻗어버렸는데 어떻게 해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금제를 푼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최대한 어필하기 시작했다.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던 카르나 님이 재차 말을 꺼내기 전.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성배를 타락시킨 건 머르딘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르딘은 바싸고의 노예였고요.”

“뭐? 바싸고?”

“다 바싸고가 파놓은 함정이었어요. 그 빌어먹을 노인네…….”

이맛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척 이를 악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사실 예전에 바싸고를 찾아갔을 때 그가 만든 트랩에 빠진 적이 있거든요?”

“흠, 그래서?”

“놀라지 마세요? 그때 느낀 바싸고의 힘은 거의 대군주급이었어요.”

“뭐!?”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

대군주급이면 힘으로는 카르나 님도 살짝 접어줘야 할 정도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그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 카르나 님이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네가 대군주의 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니? 바싸고가 너보다 세니까 그렇게 느낀 거 아니니? 아무리 그래도 대악마랑 대군주랑 차이가 얼마나 심한데…….”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데?

내가 대군주의 힘을 모를 줄 안다면 그건 착각이다.

“대군주가 어느 정도 힘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예전에 루시퍼 님한테 까불다가 처맞고 몇 달 요양했잖아요.”

“응? 그거 진심으로 팬 거 아닐 텐데?”

“진심 맞을걸요? 그때 루시퍼 님 제자를 죽도록 두들겨 패고 도망치다가 걸려서 맞은 거라…….”

어떻게 보면 흑역사지만 대군주에게 얻어맞고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았으면 흑역사까지는 아니다.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카르나 님에게 품에 넣고 있던 달걀 아니, 성배를 꺼내 들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이 성배를 이용해서 반신들을 소멸시키고 그 힘을 흡수했어요. 지금 저를 조지는 게 아니라 바싸고를 조져야 한다니까요?”

“흠…….”

“이건 천계와 중간계 지옥을 모두 뒤흔드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말을 마치고 입술을 살짝 핥았다.

불쌍한 나를 혼내는 것보다 더 급한 문제를 던져줬으니 골치가 아플 것이다.

한동안 뭔가 생각하듯 가만히 있던 카르나 님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사탄 아저씨한테 말했어. 너랑 관련된 일이라면 끔뻑 죽는 분이잖니?”

“네?”

“아, 네가 아니구나? 성진아를 더 아끼시지? 이런 회귀자보다 못한 관리자 녀석 같으니라고.”

“…….”

“그러니까 이제 그 일은 끝났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 그 뭐야, 도망갈지 모르잖아요.”

“얘, 이르카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기니? 뽑아서 줄넘기해도 되겠다 얘.”

“……!”

섬뜩한 얘기를 빙긋 웃으며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최대한 처량한 표정을 지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그녀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정체가 드러나면 직위 해제될 수도 있는 거 알지?”

“알고 있어요, 원칙대로라면 멸망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자는 관리자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네 소원도 이루지 못하는 거야. 너는 그냥 평범한 신이 되고 끝낼 거니? 아니잖아. 네가 멸망시킨 세상을 다시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네 부탁을 들어줘서 관리자로 만들어 줬잖니? 내가 널 데리고 올 때 창조신의 권한을 얻을 길은 관리자 일을 끝마치고 신격을 얻는 일이라고 몇 번을 말했니?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숨어서 잘하겠다고 약속했던 건 누구니? 그런데 금제를 풀어? 너 미쳤니? 아니, 그냥 내 말은 이제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 거지? 만약에 네 본모습을 헤라클레스가 봤다면 어쩔 뻔했니? 그리고…….”

“바싸고도 제 정체를 아는데요?”

“또 말 자르면 네 모가지 따서 여기다 장식할 거란다? 바싸고? 그래 네 말대로라면 사고 크게 쳤잖아? 이제 걔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어. 어차피 사탄 아저씨가 잡아서 소멸시키거나 영혼석에 처넣겠지.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단다. 너는 진짜 생각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만약에…….”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잔소리는 길어도 너무 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잔소리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다 보니 과거에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고막을 터트리고 도망갔던 일이 떠올라 똑같이 행동으로 옮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이르카가 카르나티우스에게 잔소리 폭격을 당해 영혼이 몸에서 탈출하던 시각.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헌팅턴 인근의 숲.

무언가에 쫓기듯 빽빽이 솟아오른 나무 사이를 쏜살처럼 스쳐 지나가던 검은 인영이 뒤를 힐끔 바라보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추격자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기 위해 복면을 벗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휴식을 취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진한 구름에 가려있던 달빛이 숲과 그의 얼굴을 서서히 비춰갔다.

달빛에 드러난 얼굴은 놀랍게도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성진아였다.

내외부적으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럴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초췌해진 얼굴이었다.

달빛이 흐르는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본 성진아가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며 생각했다.

‘이제 하루. 하루 안에 무조건 찾아야 해.’

공격 제한이 풀리는 시간은 바로 24시간 후.

그전까지 증오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엑스칼리버에 맞설 수단이 필요했다.

수많은 신화 속 무기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번에는 강태식의 행동이 계속 더 빨랐다.

강태식이 처음 한 일은 성진아의 손과 눈이 되어주던 미국의 고위층과 연구원들을 모조리 학살한 것.

그 압도적인 힘에 맞설 수 있는 헌터는 없었다.

겨우겨우 도망친 트리스탄을 제외하면 헌터 협회의 핵심인사들도 모조리 살해당한 상태.

미국은 움직일 수단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의 헌터들 역시 강태식의 협박 때문에 모조리 발이 묶여버렸다.

나중에 부려먹을 장기 말로 쓰기 위해서일까?

한국 헌터들을 학살할 수 없었던 강태식은 차선책으로 성진아를 따른다면 민간인을 학살한다고 천명했다.

강태식에게 민간인은 그리 도움이 되는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반발은 엄청났지만, 그 누구도 강태식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엑스칼리버를 쥐기 전에도 최강은 강태식이었고,

엑스칼리버를 쥔 후에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강태식 아니, 엑스칼리버의 끔찍한 힘을 떠올린 성진아가 짧게 한숨을 내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르카가 거의 3개월 만에 보내온 메시지는 그녀에게 마지막 동아줄과 같은 것이었다.

아서 왕 전설이 시작되고 끝난 곳.

바로 영국과 호수 아닌가?

물론, 자세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모든 호수를 뒤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곳도 아닌가? 무슨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는데, 남은 호수가 어디 있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성진아가 지도를 살펴보고 있을 때.

<내 목소리를 듣는 자들이여! 이곳으로 몰려들어라! 나 아론다이트를 손에 쥐어라!>

갑작스레 그녀의 머릿속에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깐? 아론다이트?’

엑스칼리버의 형제 검이자 성검에서 타락한 마검의 이름.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달콤한 유혹을 쉴 새 없이 퍼붓는 기괴한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성진아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강태식에게 크게 한 방을 먹여줄.

아니, 그의 목숨을 빼앗을 한 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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