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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58화 (58/121)

58화

쿠웅-!

균열을 찢으며 나타난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헤라클레스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성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훨씬 오염되었군…….”

“저거 괴물인데?”

마른침을 삼키며 온몸에 근육을 이완시키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성배는 누가 보더라도 괴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수백 개의 눈.

수십 개의 팔.

거인인 비다르보다도 커다란 덩치.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검은색 그림자에 뒤덮인 성배를 바라보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야, 쫄았냐?”

“미쳤냐? 쫄기는 누가 쫄았다고 그래?”

“아, 그리고 성배 내가 찾은 거다?”

“웃기고 있네, 먹은 놈이 이기는 거지.”

저릿저릿하게 몸을 덮쳐오는 끔찍한 기운을 상쇄시키기 위해 가볍게 농을 던지고 있을 때.

어딘가 비틀린 미소를 지은 머르딘이 도발하듯 소리를 질렀다.

“키킷! 세 놈이라니! 이번에는 성배가 포식하겠구나! 덤벼라! 어리석은 신……!”

“꼭 처맞기 전에 말하는 놈들이 있더라.”

“……!”

퍽-!

비호처럼 달려나간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머르딘의 안면에 꽂혔다.

데굴데굴 굴러간 머르딘이 정신을 차리기 전.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땅을 박차며 머르딘을 향해 달려나가며 지시를 내렸다.

“이자는 내가 처리하지! 그대들은 성배를 저지하게!”

일단 쌓인 게 많았을 테니 저쪽은 저쪽끼리 알아서 싸우게 내버려 둬야겠군.

기괴한 기운을 내뿜는 성배를 마주 보고 있을 때. 헤라클레스가 허리춤에 달고 온 빛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띠의 검.

갤러해드의 성검이자 엑스칼리버에 비견되는 검이 녀석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

하긴, 검술은 나보다 저 녀석이 훨씬 잘하니 더 도움이 되는 물건이겠지.

요셉이 전해 준 십자가의 방패를 손에 꽉 쥐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온다.”

<크르아‘투스카’이레이… 인.인간! 죽인다!>

입이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기괴한 목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지고 난 뒤.

꾸르릉-!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칼날처럼 변한 구름이 떨어져 내리고,

검붉은 색으로 변한 호수의 물이 송곳으로 변해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덮쳐왔다.

다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끼이익-!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검게 변한 모래가 뭉쳐 발목을 붙잡고 있던 것.

십자가의 방패를 내리쳐 검게 변한 모래에 쑤셔 넣었다.

푸욱-!

마치 살갗을 가른 듯 땅에서는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번져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느새 코앞까지 덮쳐온 구름과 물의 송곳이 눈에 들어왔다.

피할 시간은 없다.

그러면 막아야지.

십자가의 방패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우우웅-!

곧 잘게 떨리던 방패에서 새하얀 오라가 피어오르더니 나와 헤라클레스를 완벽하게 감싸왔다.

때마침 떨어져 내리는 보랏빛 구름의 칼날과 물의 송곳.

쾅-! 콰앙쾅!

팅! 티디딩-!

강철 못을 몸에 찔러대면 이런 느낌이 들까?

완벽하게 상쇄하지 못한 거대한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쿨럭! 웩!”

기혈이 뒤틀렸는지 목을 타고 울컥 넘어오는 검은 피를 토해내고 난 뒤.

팔목으로 피를 닦기 위해 입술을 훔치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날려 보내줄 테니까 멱을 따버려.”

“너 괜찮냐?”

“피 한 바가지는 쏟았는데 괜찮아 보이냐?”

“주둥이 나불대는 거 보니까 괜찮나 보네.”

“뒤질 거 같거든?”

그때 공격이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오라에 가해지는 충격이 한결 줄어든 것.

헤라클레스와 눈빛을 교환한 뒤.

방패를 비스듬히 들으며 오라를 거뒀다.

사선으로 눕혀진 방패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본 헤라클레스가 도움닫기를 하며 달려왔다.

황소처럼 거칠게 뛰어온 헤라클레스가 방패를 발로 밟을 때.

“뛰어!”

방패를 크게 휘둘러 성배에게 내던졌다.

“크아아아왁!”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간 헤라클레스가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성배에 닿는 것을 확인한 순간.

천부령에 남아있는 마력을 모조리 집중했다.

위이잉-!

맹렬히 돌아가는 천부령.

마력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금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거칠게 저항하는 성배와 어떻게든 몸에 검을 찔러넣으려는 헤라클레스의 사투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마력을 집중하고 있을 때.

푸욱-!

“크악!”

헤라클레스가 성배의 네 번째 눈에 띠의 검을 찔러넣음과 동시에 주먹에 얻어맞아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명하노니!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 쓰러져라!”

보라색으로 변했던 하늘이 검게 물들고.

뜨거운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꽈르릉-!

모든 힘을 집중시킨 벼락이 떨어진다는 징조를 알리는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크아악! 인.인간! 나를 고통에 떨게 한 인간은 모조리 죽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성배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문쟁이라고 해서 이렇게 쉽게 당해줄 리가 없잖아?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시동어를 외웠다.

“폭풍이여! 몰아쳐라!”

거칠게 불어오는 폭풍이 성배를 덮치자.

뒤로 쭉 밀려나기 시작했다.

<리첸서.베르투아.‘암브락스’발카스락! 이까짓 산들바람은 날 막지 못.한.다!>

그건 알고 있거든?

재차 다가오기 시작하는 녀석을 향해 십자가의 방패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지금!”

“아깐 아팠다고!”

콰앙-!

허공에서 십자가의 방패를 낚아챈 헤라클레스가 녀석의 가슴팍에 방패를 꽂아 넣고는 거대한 얼굴에 주먹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퍽-!퍼억!

확실히 적일 때는 가장 곤란한 녀석이지만,

아군일 때는 가장 든든한 녀석이네.

헤라클레스의 가장 큰 능력은 뛰어난 신체 능력도 강인한 힘도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도 아니다.

바로 사리 분별을 할 줄 안다는 것.

비록 승부욕의 화신이고 나와 대립 관계에 있는 녀석이지만 일의 우선순위를 착각할 정도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성배에 연신 주먹을 날리고 있던 녀석에게 소리쳤다.

“떨어져!”

내 말뜻을 알아차린 헤라클레스가 녀석에게 떨어지자마자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바로 헤라클레스가 찔러넣은 띠의 검을 향해서.

피뢰침의 역할을 확실히 해준 덕분일까?

꽈르르릉-! 파즈즉!

성배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간질환자처럼 바들바들 떨어댔다.

온 세상이 밝아질 정도의 빛이 집중된 장소를 바라보고 있을 때.

쨍-!

손목에 차고 있던 천부령의 수명이 다했다.

아쉽네, 10만 포인트나 주고 산 건데…….

그래도 잘 써먹었으니까 이득인가?

천부령의 복제품이 사라진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머르딘의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은 머리통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쟤 머리통 떨어져 나가도 살 수 있잖아?

머르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그놈 아직 살아있는 거 아닙니까?”

“쯧, 몸을 버리고 도망쳤네, 어차피 인형이었다는 것이지. 진짜 본체를 찾아야 해.”

“성배의 제압은 끝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정화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콰아앙-!

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르카!! 이런 씨발 새끼가! 감히!

-어, 어떻게 저런 상처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헤라클레스와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윙윙 울리는 귓가를 어지럽혔다.

내가 당한 건가?

이거… 눈을 떠야 하는데…….

서서히 암전되어가는 시야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또옥-! 똑-!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비릿한 쇠 맛이 입을 타고 목으로 넘어갔다.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것인가?

힘겹게 눈을 뜨자 눈앞에 비친 것은 놀랍게도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은 헤라클레스가 빙의한 퍼시벌의 얼굴이었다.

입에 들어왔던 것은 녀석이 흘린 피였구나.

고개를 돌리자 팔과 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가냘픈 숨을 겨우겨우 쉬고 있었다.

졌구나.

우리는 패배한 거구나.

패배라는 글자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비틀거리며 무릎을 털썩 꿇은 헤라클레스가 떨리는 손으로 날 붙잡으며 말했다.

“야… 이르카.”

“…꼴이 그게 뭐냐.”

“네놈보다는 괜찮거든?”

녀석에게 포션을 건네주기 전.

헤라클레스가 내 어깨를 강하게 짚으며 다가오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할 건 다 해놨다.”

“뭐?”

“잠깐 눈 좀 붙일 테니까 버텨… 뒤지면 내 손에 뒤진다.”

털썩-!

힘겹게 말을 마친 헤라클레스가 땅에 털썩 쓰러져 내렸다.

깊게 베인 상처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다리 한쪽은 부러져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녀석의 몸에 포션을 뿌려준 뒤.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둘이서 처절하게 저항을 한 모양.

이리저리 흩뿌려진 피와 열 개밖에 남지 않은 성배의 팔과 수백 개의 눈 중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백여 개도 돼 보이지 않았다.

<크툴라‘이레즈’카뮤에르 키킷! 서.성배 어서 움직여라! 저 빌어먹을 신들을 죽여라!>

<크아아악! 나.나.를 이.렇.게 만든 증.오.스.러.운.신!>

머르딘의 영혼이 성배의 안에 들어가 있었구나.

두 개로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힐 때.

몸에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다.

상처의 재생 역시 끝난 모양.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이! 노예 새끼!”

<키킷! 뭐야? 안 뒤졌어? 도망칠 것이지 왜 일어나? 그렇게 뒤지고 싶다면 죽여주지!>

<크라에르.‘비타르’네라토 신.신.신! 너.를.죽.인.다!>

머르딘의 이죽거림과 고통에 찬 성배의 기괴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쓰러진 헤라클레스를 힐끔 돌아보며 룬을 둘러싸고 있는 금제에 담긴 마력을 살폈다.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어서 그런지 카르나 님이 해놓은 금제가 확실히 약해진 모양.

이거 돌아가면 죽도록 혼나겠구나.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어차피, 창조의 설화인 성배 신화를 얻게 된다면 내 정체가 밝혀져도 직위해제까지는 당하지 않을 테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를 허공에 흩뿌리고는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룬에 마력을 집중했다.

붉은색의 피.

푸른색의 마력.

마지막으로 황금색의 룬이 합쳐지며 거대한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몸에 차오르는 거대한 마력의 폭풍에 금제의 사슬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뚜득-뚜드득-!

금제의 사슬이 완전히 풀어지고 난 뒤.

파악-!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양보다 강렬한 빛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머르딘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키킷! 무슨 술수를 부리더라도! 나… 나와…….>

물론,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온몸을 뒤덮은 검붉은 비늘과 폭주하듯 넘실거리는 마력이 심장 주변을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다.

천오백 년.

기나긴 시간 동안 봉인해두었던 내 안의 괴물이 눈을 떴다.

<시공의 드래곤 이르카시우스 루트 드위치노바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말을 잠시 멈춘 뒤.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넌 이제 뒤졌어.>

<……!>

콰앙-!

화려한 마법진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절대 꺼지지 않는 백색의 불꽃이 녀석의 몸에 피어올랐다.

<크아악! 죽.음.이 너를 삼키리라!>

<크레아스!‘드라코니아’릭타스! 드.래.곤! 죽어라!>

치이익-!

녀석에게 뻗어 나온 녹색 마력이 비늘에 닿자 그 어떤 검으로도 뚫을 수 없는 비늘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거칠게 차오르는 분노가 머릿속을 점차 잠식해 나갔다.

<크오오오!>

<그아아악-!>

마치 이성을 잃은 야수처럼 서로 엉겨 붙었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쑤시고.

강인한 이빨로 물고.

두꺼운 발로 짓밟았다.

쾅! 콰직! 콰지직!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를 토하고.

내장을 쏟아냈음에도 굳건히 서 있는 녀석을 보니 혀가 내둘러졌다.

정말 더럽게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네.

쏟아진 내장이 도로 배로 들어가더니 꾸물거리며 몸이 회복되는 장면을 바라보던 중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몸에 박혀있는 띠의 검과 십자가의 방패 주변은 제대로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것.

재빠르게 룬 마법을 발동시켰다.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적의 몸을 꿰뚫어라!>

우우웅-!

말을 마치자마자 검과 방패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녀석이 몸에 박힌 검과 방패를 뽑아내려고 할 때.

퍼억-!

녀석의 심장과 목을 꿰뚫으며 날아갔다.

<크억!>

강한 충격을 받은 머르딘 혹은, 성배가 비틀거릴 때.

쾅-!

거칠게 밀고 들어가 발로 녀석을 짓밟았다.

바닥에 쓰러진 녀석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나를 버린 세상을 멸망…….>

콰직-!

생명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녀석의 몸통을 물어뜯어 영원한 안식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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