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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56화 (56/121)

56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퍼시벌 아니, 헤라클레스가 당황해서 입을 열기 전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야, 빙의한 티 내지 마라. 너도 이곳이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겠지? 나도 이곳에 오자마자 기습당했다.]

[헤라클레스: 너도 당했다고? 나는 네가 파놓은 함정인 줄 알았는데?]

[이르카: 미친놈아. 너랑 나랑 같이 들어왔는데 내가 함정을 어떻게 파.]

[헤라클레스: 흠… 그것도 그러네.]

[이르카: 우리 정체가 알려지면 좋은 일은 없을 거 같으니까 일단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이곳에서 소멸한 반신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마. 나도 쉽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쉬운 곳은 아닌 것 같다.]

[헤라클레스: 음, 일단 네 의견에 동의한다.]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녀석이 승부욕에 미친놈이긴 해도 비겁한 놈은 아니니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협력할 터.

벌써부터 날카롭게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서로 아무 표정의 변화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십자가의 방패를 얻기 위해 흰 갑옷의 기사에게 다가갈 때였다.

[헤라클레스: 야, 이건 손대지 마. 내가 먼저 발견했어.]

[이르카: 지랄하네, 주인 없는 물건은 먹은 놈이 주인 아냐? 보아하니 너는 한번 밀린 거 같은데?]

[헤라클레스: 쯧, 시간이 남아돌면 도전해보든가. 나는 너랑 다르게 시간이 아주 많거든? 너는 이제 2개월도 안 남았다?]

녀석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성진아와 강태식의 대결이자 우리의 대결만 가득한 모양이었다.

멍청한 놈.

녀석은 이곳이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함정인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확실하네.

하긴, 나도 머르딘을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니까.

성진아와 강태식이 서로를 목숨을 빼앗을 수 없는 기간이 2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헤라클레스의 도발을 꾹 참아내며 이를 악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알고 있으니까 닥쳐.]

헤라클레스와 메시지를 종료한 뒤.

머르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사형, 저거 어떻게 얻는 거야?”

“응? 아! 키킷, 저 녀석에게 공격을 한 번이라도 성공시키면 되는데 아마 불가능할 거야.”

공격을 한 번이라도 성공시키는 조건이라고?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실패했어?

황당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태산처럼 굳건히 서 있는 흰 갑옷의 기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십자가의 방패가 그 정도로 대단한 성물이었나?

아니면, 무명인 흰 갑옷의 기사가 실은 대단한 인물이었던 걸까?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일단 부딪쳐 보면 알겠지.

“사형 그러면 내가 저걸 어떻게 얻어?”

“키킷, 훔쳐야지.”

“응?”

“키키킷! 나는 바깥에서 시선을 녀석의 시선을 끌 거야. 그때 사제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녀석에게 방패를 훔치는 거야? 어때?”

“그거 괜찮아 보이는데?”

성동격서(聲東擊西)를 말하는 거였구나.

나쁘진 않지만, 너무 조잡한 술수에 가까웠다.

이런 성물을 지키고 있는 자가 고작 그런 방법에 당할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오히려 내가 진짜 바싸고의 제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

어차피 이건 내게 도움이 될 테니까 녀석을 떨어트릴 겸 속아 넘어가 주는 척을 해야겠네.

퍼시벌로 빙의한 헤라클레스를 힐끔 바라본 뒤.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말을 건넸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사형은 천재 같아. 어떻게 그런 신묘한 술수를 생각해낸 거야?”

“흐흐흐! 위대한 사형의 힘을 알아보겠느냐?”

“응. 일단 내가 시선을 끌게 사형도 바깥에서 시선을 끌어줘.”

“키킷! 그래. 기대하마!”

말을 마치고 성 바깥으로 나간 머르딘의 모습을 살핀 뒤 우두커니 서 있는 흰 갑옷의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당신이 수호하고 있는 그 저주받은 방패의 진정한 주인 갤러해드라 합니다. 당신이 받은 예언에 나와 있는 진정한 주인이 이곳에…….”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진정한 주인이 아니다!”

얼레?

단호박 같은 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크흡! 크하핫!”

그때 등 뒤에서 헤라클레스의 비웃음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어쩔 수 없이 실력행사를 해야겠네.

고개를 좌우로 꺾은 뒤.

천부령에 서서히 마력을 넣으며 흰 갑옷의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다치실지도 모릅니다.”

“그럴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공격하게나!”

일단 실력 좀 볼까?

손목에 가려두었던 천부령이 맹렬히 회전하며 오색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

흠칫 놀란 표정을 지은 흰 갑옷의 기사가 반응하기 전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폭풍이여, 몰아쳐라!”

콰아앙-!

살갗을 찢어발길 것 같은 바람이 흰 갑옷의 기사를 덮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바람이 채 닿기도 전에 흘러가 버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화염이여, 모조리 불태워라!”

땅에서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불길이 합쳐지더니 고성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 듯 맹렬한 기세로 흰 갑옷의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파괴력만 따졌을 때 풍(風)속성과 화(火)속성의 조합은 그 어떤 마법의 조합보다 위력적이다.

과연 이것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용의 숨결과도 같은 거센 불길을 바라본 흰 갑옷의 기사가 처음으로 움직임의 변화를 보였다.

쾅-!

땅에 방패를 쑤셔 넣은 것.

곧 그의 몸에서 하얀 아지랑이와 같은 기(氣)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읍!”

기합을 집어넣듯 숨을 크게 들이켠 그에게 이내 거센 불꽃의 폭풍이 들이닥쳤다.

콰앙! 콰아앙! 콰앙-!

미친 듯이 폭발하는 불꽃이 흩날리며 검은 연기가 고성을 가득 메웠을 때.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그의 갑옷에 아무런 생채기조차 나지 않은 것.

착각인가 싶어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돌이 튀긴 자국조차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데?

물론, 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아는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받쳐줬기 나온 결과겠지만, 방패의 힘이 없었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결과겠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역시, 대단하네요. 제 인사를 이렇게 받아내시다니.”

“인사라고 하기에는 꽤 강력한 공격이더군, 자네도 퍼시벌도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지녔어.”

헤라클레스 녀석도 이 정도까지는 힘을 쓰게 했구나.

역시, 괴물 같은 녀석이다.

신물의 힘 없이 이 정도 위력을 내었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과정을 살핀 헤라클레스가 팔짱을 끼며 느긋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보냈다.

[헤라클레스: 거봐, 그냥 힘만 가지고는 안된다니까? 무식한 놈아.]

[이르카: 네 공격도 저렇게 막았냐?]

[헤라클레스: 뭐, 처음에 가볍게 치는 건 그냥 방패가 다 흘렸는데 나중에 힘줘서 치니까 저렇게 해서 방어막을 만들어 버리더라.]

[이르카: 까다롭네.]

[헤라클레스: 야! 그리고 천부령은 어떻게 가지고 온 거냐? 너 진짜 자꾸 꼼수 쓸래?]

[이르카: 웃기시네, 나는 너랑 다르게 진짜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거 모르냐? 양심도 없는 새끼.]

[헤라클레스: 크흠!]

엉뚱한 메시지를 보내는 헤라클레스와 투덕거리고 있을 때.

흰 갑옷의 기사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게 그대가 가진 실력 전부라면 그대 역시 이 방패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네.”

“설마요. 이제 진짜로 갑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막막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십자가의 방패는 공격이 가해지기 전 무효로 돌리는 능력이 있다.

가장 강한 위력을 지닌 마법 공격까지 모조리 막아낸 것을 보면 그 어떤 공격을 가한다 한들 쉽지 않을 터.

차분히 그의 주변을 돌며 때를 기다렸다.

이제 슬슬 터트려줘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콰앙-!

그어어어어-!

-시, 시체가 일어나고 있어!

-꺄아악! 살려줘!

창문 너머로 붉은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아비규환이 된 외성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음…….”

“퍼시벌 경! 어떤 문제가 일어났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자신을 지목하자 당황한 헤라클레스가 거절하기 전, 흰 갑옷의 기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꺼냈다.

“그대의 힘이라면 바깥에서 벌어진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탁함세.”

“아니, 왜 제가…….”

“부탁함세, 잘 처리해준다면 이 방패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물건을 줄 수도 있다네. 어떤가?”

“흠…알겠습니다. 제가 다녀오죠.”

마지못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서는 헤라클레스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차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함정에 당할 녀석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애초에 머르딘의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동의한 것도 헤라클레스를 떼어놓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시야에서 녀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룬과 손목에 차고 있는 천부령에 동시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콰과과과-!

그와 나 사이에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흘러나오는 마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변했을 때.

진명을 담은 시공의 룬 마법을 발동했다.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흐름이 멎으리라!”

“……!”

화들짝 놀란 흰 갑옷의 기사가 방패를 다시금 땅에 쑤셔 넣으려고 할 때.

“이, 이게 무슨!”

슬로우모션처럼 움직이던 그의 움직임이 천천히 멎어갔다.

방패의 가호 때문에 완벽히 멈추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후속타를 먹일 수 있을 터.

천부령이 터져나갈 것처럼 회전하더니 과열상태에 이르렀다.

빠직-!

살짝 금이 가는 천부령을 힐끔 바라볼 때 여섯 개의 구슬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여섯 가지 속성을 섞은 마법에도 버텨낸다면 그의 승리.

과도한 마력의 소모에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오른손으로는 그의 시간을 묶고 난 뒤.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에게 외쳤다.

“위대한 자연의 힘이여! 몰아쳐라! 마구 몰아쳐라!”

꽈르릉! 화륵!

형형색색의 힘이 왼손에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번갯불이 튀고.

화염이 일어나고.

폭포와 같은 물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때 돌로 이뤄진 손이 그의 밑에서 솟아오르더니 그를 재차 속박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초록색의 나무 넝쿨이 그를 완전히 감쌀 때.

맹렬히 몰아치는 바람의 힘에 모인 다른 속성의 마법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콰앙! 콰아앙-!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발음이 고성을 가득 메웠다.

너무 힘을 과도하게 쓴 건 아닐지 살짝 걱정되었지만, 십자가의 방패가 지닌 힘을 믿었기에 가한 공격이다.

숨이 차올라 거칠게 올라오는 숨을 내쉬며 완전히 탈진하기 전 마력의 속박을 끊었다.

완전히 탈진해버리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런 장소에서 탈진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름없기에 아쉬움을 달랬다.

핏빛보다 붉은 화염과 함께 매캐한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장소를 바라보며 마력 재생 포션의 뚜껑을 까서 들이마셨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거의 바닥이 났던 마력이 돌아오는 느낌을 받을 때.

“아쉽군.”

“……!”

검은 연기를 헤치고 걸어 나오는 흰 갑옷의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이 공격에도 멀쩡하다고?

진명을 담은 룬 마법을 이용한 속박에 아무리 복제품이라고 해도 천부령이 파괴되기 직전까지 힘을 쏟아부은 공격이다.

이건 좀 너무한 거 같은데?

너무 강력한 방어력에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

검은 연기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그의 새하얀 갑옷에 이리저리 깨지고 녹아내린 흔적이 선명히 박혀있었다.

“허허,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막았다니, 참으로 아쉽군. 이 방패는 자네가 가져가게나.”

말을 마친 그는 살짝 그을린 방패를 힐끔 바라보더니 내게 힘차게 던졌다.

휘익-!

턱-!

그가 던져준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알려진 십자가의 방패를 손에 쥐고 감사의 인사를 하려 할 때.

아쉽다는 말을 연발하던 그가 투구 가리개를 들어 올리더니 환한 미소가 선명한 얼굴을 드러내며 말을 건넸다.

“드디어 기나긴 기다림이 끝났군.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예언한 자여.”

“다, 당신은?”

십자가의 방패의 원주인이자 실종된 천계의 신.

아리마태아 요셉의 등장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저 양반이 왜 여기서 등장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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