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52화 (52/121)

52화

놀랍게도 대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자는 익히 알고 있던 자였다.

아니, 까먹을 수 없는 말을 꺼낸 자라고 해야 맞겠지.

랜슬럿 대신 나타난 자는 바로 얼마 전에 요한의 일 때문에 만났던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였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심판관에게 향했다.

어째서 랜슬럿이 아닌 바싸고가 소환된 것이냐는 무언의 압박에 그들 역시 당황했는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말했다.

“분명 랜슬럿을 소환한 게 맞습니다. 저희도 어째서 바싸고가 소환된 것인지는…….”

“끌끌, 그것이 그리 궁금하오?”

바싸고가 심판관의 말을 끊으며 좌중에 질문을 건넸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하냐?

아니,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냐?

이러한 질문을 건네는 것을 의미하는 당당한 말투에 대회의장에 있는 모든 신이 숨죽여 랜슬럿 대신 소환된 바싸고를 지켜봤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말이…….”

바싸고가 재차 말을 꺼내려 할 때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대군주 사탄이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외쳤다.

“그대가 여긴 왜 온 것인가?”

“끌끌, 내가 오면 안 될 곳이라도 온 것이오?”

“쯧, 그 말이 아니잖소. 업무상 출입이 제한된 천계를 제외하면 오면 안 될 곳은 없지만, 심판관은 랜슬럿을 소환했고 그가 소환되었어야 하는 일이었소. 그대를 부른 것이 아니란 말이오.”

“끌끌, 대군주 사탄이여. 아비가 자식 대신에 올 수도 있는 것 아니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랜슬럿이 바싸고의 아들이라고?

원탁의 기사 중 출신이 가장 모호한 인물이 랜슬럿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출신이 모호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출생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는 뜻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랜슬럿의 주군이자 친우인 아서 팬드래곤조차 입을 쩍 벌리고 바싸고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 역시 전혀 몰랐다는 소리가 되겠지.

입안에 고인 마른침을 목으로 넘기며 바싸고에게 질문을 건넸다.

“랜슬럿이 바싸고 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랜슬럿 대신에 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왜 이곳에 대신 오신 겁니까?”

“끌끌, 저 친구 때문이라오.”

바싸고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갔고 그 끝에는 아서 팬드래곤이 있었다.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말을 마저 이었다.

“예전에 저 친구의 아내와 얽힌 일이 있지 않았소? 아무리 사과를 했다고 해도 불편한 건 불편한 것 아니겠소? 소환 명령이 내려왔을 때 내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더이다.”

그게 가능해?

심판관 역시 당황한 듯 법전을 이리저리 뒤져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78조 21항에 의거해 지명된 증인의 대리자가 심판 회의에 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증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대리자가 모두 알고 있지 않다면 자격의 박탈이 이뤄집니다.”

심판관이 가능하다는 말을 꺼내자 신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가능하다는데 어쩌겠는가?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바싸고가 눈에 들어왔다.

바싸고의 능력은 나와 최악의 상성에 가까웠다.

진짜 과거부터 미래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

게다가 바싸고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인물.

자연스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하필이면 바싸고라니.

마음을 다잡으며 바싸고에게 질문을 건넸다.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 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얘기를 들으셨을 터. 마검 아론다이트의 행방을 알고 계십니까?”

“끌끌, 모르오.”

“네?”

나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친, 아론다이트가 봉인된 위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때 바싸고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한 추가 답변을 해왔다.

“끌끌, 내 말을 오해했나 보구려. 물론, 처음 봉인한 위치는 알고 있소. 하지만 엑스칼리버를 보시오. 처음 봉인한 위치와 발견된 위치가 같았소?”

자연스레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영국에서 봉인하고 러시아에서 발견된 엑스칼리버의 경우를 드니 할 말이 없어졌다.

이거 내가 말리게 생겼는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헤라클레스가 바싸고에게 질문을 건넸다.

“올림포스의 헤라클레스가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 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처음 봉인한 위치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끌끌, 그게 뭐 어렵다고 질문을 건네는 것이오? 아론다이트는 엑스칼리버와 함께 봉인했소. 그건 저기 있는 아서 팬드래곤도 알고 있는 장소 아니오?”

바싸고의 답변에 아서 왕은 침음성을 삼켰다.

하긴, 엑스칼리버와 같은 곳에 봉인했다는데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의 말을 듣고는 승리를 확신했는지 주먹을 힘차게 꽉 쥔 헤라클레스가 심판관들에게 말을 꺼냈다.

“저와 올림포스의 신들은 엑스칼리버를 마검으로 만드는 것을 반대합니다. 다만, 반신 이르카의 공정성에 관한 의견도 일리가 있는 바. 그가 관리하는 회귀자 성진아가 아론다이트를 수색할 수 있는 시간은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체크메이트였다.

성진아가 엑스칼리버에 맞설 수 있는 아론다이트를 찾는다는 핑계로 엑스칼리버를 마검화하는 것까지 막아버린 셈.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성진아의 패배는 기정사실. 엑스칼리버를 얻은 강태식에 마땅히 대항할 수단이 없다.

아론다이트 탐색에 나선다 해도 강태식의 방해를 뚫고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나와 성진아 역시 강태식이 엑스칼리버를 얻기 전 그를 수 없이 방해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성진아를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론다이트의 탐색은커녕 가지고 있는 걸 지키는 데도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녀를 잃으면 절대 안 되는데…….

그때 뇌리에 벼락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론다이트가 봉인되기 전으로 간다면?

과거로 돌아가 직접 아론다이트를 봉인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사라진 신물 성배를 탐색하겠다고 나서면 되는 일.

게다가 이 방법은 내게 가장 부족한 일을 채우는 일이기도 했다.

차후에 신이 되는데 가장 부족한 신화를 채우는 데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충분히 도전할 만했다.

물론, 실패의 대가는 매우 크다.

사망할 시 신력을 상실하고 반신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여러 반신이 자신의 격을 상승시키기 위해 도전했다가 모조리 실패한 이후로 금기시되다 싶은 일.

성진아를 포기하고 얌전히 패배선언을 하느냐.

아니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노리느냐.

그렇다면, 내 대답은 하나 아닌가.

“심판 회의를 여기서 종료해주시길 건의합니다.”

“헤라클레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인가?”

“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제가 성배 탐색에 나서는 것을 허락해주시길 바랍니다.”

“……!”

“과거에 성배 탐색에 나갔던 원탁의 기사 갤러해드로 빙의해서 성배 탐색에 나서겠습니다.”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카르나 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난 네가 성배 탐색에 나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카르나 님… 필요한 일인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절대 안 된다! 나는 절대 허락하지 못한다!”

감정이 격해진 듯 계속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카르나 님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신 있습니다. 그러니 믿어주세요.”

“이 미친놈아!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하는 말이니? 성배 탐색에 나섰다가 신격을 잃은 반신만 해도 양손에 세지 못할 정도라는 걸 까먹었어!?”

감정을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카르나 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제 신화는 멸망의 설화잖아요? 제가 카르마를 얻어서 최종시험에 든다고 해도 어차피 창조의 설화를 얻어야 하는데 그때 얻나 지금 얻나 그 시기만 빨라지는 것뿐이에요.”

“이, 이익! 이런 미친놈아! 최종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그냥 카르마만 잃고 떨어지는 거지만! 이건 아니잖아! 신격을 잃는 일이라고!”

“어? 설마 제가 실패할 거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런 미친놈이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실패하지 않아요.”

말을 마친 뒤.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다가가 외쳤다.

“제가 성배 탐색에 나서는 것을 동의하십니까?”

“…….”

예상했던 대로 싸늘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그때 미묘한 표정을 지은 제우스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질문을 건네왔다.

“가장 강력했던 반신들도 포기했던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신이 되는 방법이 바뀐 이후로 가장 중요한 일인 신화를 얻는 일이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조금 전까지 불같이 화를 내던 것과는 정반대의 차분한 반응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이건 그대같이 미천한 행성의 출신 반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가 알려지지 않은 행성 출신이라서 그러는 것이라면…….”

“내가 만든 완벽한 영웅 헤라클레스라면 모를까. 네놈이 나서겠다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를 적으로 간주하겠다면,

나도 확실하게 적으로 생각하고 긁어주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제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아! 제우스 님의 증손녀 알크메네의 남편으로 위장해서 낳은 아들 헤라클레스 말씀입니까?”

“뭐라!”

“어?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까? 이상하네? 야, 헤라클레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거냐?”

당황하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뭐라 대답하기 전.

제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태생이 완벽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제 출신이 미천해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조금 다른데 말입니다?”

분노에 휩싸여 얼굴이 붉게 물든 제우스가 입을 열기 전 재빨리 말을 마저 이었다.

“네, 맞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위대한 주신의 피를 받아서 태어났죠, 하지만 제우스 님 자체가 위대한 신인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군요.”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하는 것이냐!”

“강간, 납치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범죄를 직접 저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 시절 신의 관점에서 인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나요? 그렇다면 저기 계시는 프로메테우스 님은 왜 그렇게 처벌하셨던 것입니까?”

“…….”

“그가 인간에게 위대한 불을 가져다줘서?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 님을 처벌하고 난 뒤에 그의 동생에게 판도라와 항아리를 만들어서 보낸 일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제우스는 입에 꿀이라도 바른 듯 조용해졌다.

“두려우셨습니까?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인 인간을 보니 두려워지신 겁니까? 언젠가 신의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요. 그래서 4번째 주신이 그렇게 궁금하셨던 거겠죠?”

“…….”

할 말을 마친 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게 왜 내 약점도 모르면서 날 건드려?

어차피, 그는 내가 시공의 드래곤이자, 멸망의 드래곤 이르카시우스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내 진짜 정체를 모르는데 내 약점을 쥐고 흔들 수도 없는 일.

그는 창조신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주신이지만,

말 그대로 권한만 가지고 있지 직접 세상을 창조한 신은 아니다.

만약 마고 신과 같은 존재인 우라노스 앞이었다면 입조심을 해야 했을 테지만, 제우스라면 얘기가 다르지.

자신의 아버지가 폭언을 듣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가리키며 말을 마저 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위대한 영웅이 된 것은 그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 아닙니까? 태생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노력이 위대했기 때문에 위대한 영웅이 된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제우스가 흉흉한 안광을 뽐내며 날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때.

“아니, 네 말은 틀리지 않았다.”

뒤쪽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하게 지원사격까지 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인사를 건넬 때.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바싸고의 입이 열렸다.

“끌끌, 제우스여.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헤라클레스 역시 성배 탐색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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