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성스러운 빛이 요한의 몸을 감쌀 때.
갑자기 요한의 몸 안에서 바오로(?)의 영혼이 담긴 영혼석이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크으윽! 쿨럭! 쿨럭!”
주르륵-!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입가에서 피를 한 바가지는 쏟아낸 요한이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겨우겨우 붙잡고 있을 때.
[후손이여! 어서 내 피와 심장을 먹어라!]
갑작스레 머리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요한은 떨리는 손을 겨우겨우 움직였다.
부들부들-!
하지만, 오랜 시간 앓아왔기 때문일까?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이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 놓아둔 피와 심장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몸을 하얗게 태워버릴 것 같은 강력한 신성력이 계속해서 들어와 손끝조차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요한의 흐릿해져 가는 시야가 점차 암전하려 할 때였다.
쾅-!
요한의 눈에 흩날리는 부서진 문의 파편이 비쳤다.
굉음과 함께 등장한 우직한 강철의 전사는 섬전과 같은 속도로 요한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요한 님!”
“아, 아르…….”
요한을 지켜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그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아르한이 잘게 떨고 있는 요한의 몸을 붙잡고는 바닥에 널브려져 있는 선조의 피와 심장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아르한: 이걸 요한 님께 먹이면 되는 겁니까? 빨리 대답해주십시오!]
[이르카: 어, 어. 맞아. 나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르한: 아닙니다. 관리자님께서도 처음 겪어본 일일 테니까요.]
진심으로 미안한 듯 사과를 하는 이르카와 나눈 메시지를 종료한 아르한이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요한의 입에 피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피를 마시자 요한의 얼굴은 곧 혈색을 되찾아 갔다. 이제는 심장을 먹일 차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부들부들 떨어대던 요한이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게 주거라.”
“……?”
“이 아이를 위한 일이니, 어서 내놓거라.”
“뉘, 뉘세요?”
“나는 이 아이의 선조인… 유… 바오로라고 한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요한 아니, 자신을 바오로라고 소개한 유다를 유심히 쳐다본 아르한이 이르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심장을 건네줬다.
곧 깊은 한숨을 내쉰 그가 하늘을 잠시 쳐다보더니 심장을 입술에 살짝 가져다 대자 마치 먼지처럼 스르르 흩어져갔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요한의 잿빛 머리가 깊은 어둠보다 더 어두운 마치 흑단과도 같은 색으로 차츰 물들어간 것.
씁쓸한 미소를 지은 바오로가 아르한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아이야. 부탁이 있단다. 요한이 깨어나면 이런 저주받은 몸뚱이를 남겨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줄 수 있겠느냐? 내, 급하게 나오느라 깊은 잠을 자야 할 것 같구나.”
“또 나올 수도 있는 거요?”
“아직은 아니란다.”
“흠, 그러면 나중에 나올 때 말씀하시면 될 것 같소이다. 원래 사과는 직접 하는 것 아닙니까?”
퉁명스럽지만 핵심을 짚은 아르한의 말이었다.
바오로는 허허로운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허허, 요한이 현명한 친구를 뒀구나.”
“킁! 현명하다는 말이야 원래 매일 듣던 것이요.”
“허허, 그래. 그리고 기도드리는 건 조금 자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주겠느냐?”
“……?”
“몸이 나와는 완벽하게 맞지는 않아서 기도를 올릴 때 요한의 몸에 신성력이 조금 들어온단다. 물론, 예전과는 다르게 바로 치유가 되겠지만 피를 막 쏟으면서 다니면 아깝지 않겠느냐?”
“알았소이다. 요한 님께 그렇게 전해드리지요.”
“고맙구나. 네게 그분의 축복이… 쿨럭!”
입가에서 미량의 피를 토한 바오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르한.
그 둘은 무척이나 상반된 표정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바오로와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르한.
둘 사이의 침묵은 어색한 듯 크게 헛기침을 한 바오로가 바람같이 사라짐으로써 깨졌다.
바오로가 빠져나간 요한의 몸이 이내 침대 위로 쓰러져 내렸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본 아르한이 손가락으로 턱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흠, 머리가 조금 모자란 양반인가……?”
기도하지 말라고 해놓고는 자기가 기도를 하고는 나타날 때처럼 바람처럼 사라진 바오로를 떠올린 아르한이 요한의 침상을 정리할 때.
요한이 감았던 눈을 떴다.
* * *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강렬한 빛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이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창문을 바라봤다.
성직자를 모신다는 오크 기사가 다급하게 뛰어 올라간 것을 봤을 때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모양.
얼마나 지났을까?
커다란 테라스에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옷에 검은 머리와 눈.
아르카니아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 마족인가?”
“예끼! 이 사람아! 마족이 무슨 성직자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그렇지?”
“당연하지! 그리고 저 옆에 서 있는 성혈기사라는 자가 계속 치료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마족이 백작님의 성에…….”
남자의 물음에 대답하던 농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하하하하! 피의 비가 내리리라! 마구 내리리라!”
“……?”
“……?”
푸확-!
외침과 동시에 피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웃더니 몸에서 피를 뿜어내는 요한의 모습을 본 농부는 속으로 생각했다.
‘씨발, 진짜 마족이잖아?’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에서 비처럼 뿌려진 피를 맞은 모든 이들이 공황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려고 할 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요한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마, 마족이다!”
“어? 미친 마족이라고!?”
“저, 저게 성직자의 정체?”
“미친! 괴물을 키우고 있었어!”
“할파스 백작이 악마를 키웠다!”
“씨발! 병자들을 치료해준다고 해놓고 우리를 악마에게 바치려는 계획이었어!”
일촉즉발의 순간.
분노한 사람들이 흉흉한 눈빛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경비대를 노려봤다.
그대로 둔다면 큰 충돌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요한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당황해서 군중에게 말을 건네려 할 때.
한 여인의 품에 안겨있던 꼬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안 아파.”
“아, 아들아? 이 애미의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구나?”
“……?”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거동도 못 하던 노파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고, 쓰러져 신음하던 병자들이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일어난 것.
경비대와 요한을 향해 적의를 품고 소리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모두 바라본 경비대장 파히르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피의 성직자 만세!”
“피, 피의 성직자?”
“우리의 구원자! 피의 성직자가 드디어 일어났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과 요한의 이명을 외치며 환호하는 경비대를 번갈아 바라보던 환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요한을 향해 외쳤다.
“우와아아! 피의 성직자! 만세!”
“마족이 아니다! 진짜 성직자다!”
“그런데 저 옆에 있는 오크는 뭐 하는 거래요?”
“아까 보니까 성직자가 팔목을 물고 있던데, 수혈용 오크 아닐까요? 저렇게 피를 뿌리는데 피를 어디서 보충하겠어요?”
“아하! 그것도 그러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바라본 요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르카를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쿨럭……!”
물론, 미량의 피를 토하는 건 변치 않았다.
* * *
화면을 모두 지켜보고 난 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리 신성력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저렇게 피부터 뿌리고 시작하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후원 메시지를 살펴봤다.
[하늘의 대리자 메타트론이 경의를 표하며 10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파괴의 대천사 우리엘이 콧잔등을 훔치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광철 신선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쌈짓돈 3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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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을 때.
강제로 미소를 지우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가 즐거운 여행을 갔다 왔냐며 1,235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음흉한 늙은이.
포인트 주는 것도 쪼잔해서는.
물론, 유다를 만나게 도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유다와의 만남을 도와줬는지 도무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내 과거 일을 모두 알고 있을까?
연옥의 특성상 유다와 나눈 대화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유다가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고 말해줬으니 그런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겠지.
바싸고에 관해 고민하고 있을 때.
향긋한 커피잔을 든 안젤라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커피 드시고 일하세요!”
“오! 마침 딱 커피가 생각났는데 고마워.”
“흐흫, 고맙긴요.”
밝게 웃는 안젤라를 잠시 바라본 뒤.
지금까지 모인 포인트를 확인했다.
[잔여 포인트: 107만2,784포인트]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포인트.
물론, 성진아와 계약할 당시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포인트는 맞았지만, 아직 목표한 포인트까지는 한참 남았다.
“안젤라 카르마 수치 좀 띄워줄래?”
“이르카 님 거 말씀하신 거예요?”
“아니, 내가 관리하는 애들.”
“움, 잠깐만요. 조금 시간 걸릴 거예요.”
“응. 알았어.”
안젤라가 시스템을 조작하기 위해 총총걸음으로 멀어지고 난 뒤.
헤라클레스 녀석과의 격차를 확인했다.
[총합 카르마 획득 순위.]
1. 헤라클레스: 82.14%
2. 이르카: 75.02%
3. 오르카손: 6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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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꽤 많이 따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7%의 격차가 나고 있었다.
이건 꽤나 큰 차이였다.
이번 관리자 대전에서 우승해서 5%의 카르마를 추가로 얻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원래 9%의 격차에서 7%의 격차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고작 2%
물론, 헤라클레스 녀석이 관리하는 회귀자 중 이번에 회귀를 끝마친 녀석들이 많이 나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따라잡기 벅찬 것도 사실.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것이 자신의 신화가 알려진 행성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였다.
그것도 헤라클레스 녀석은 가장 인구수가 많은 지구에서 엄청나게 널리 알려진 녀석이 아니던가?
그냥 풀어놓기만 해도 알아서 회귀를 끝내는 회귀자가 많은 헤라클레스 녀석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다른 수를 써야만 했다.
지금까지 깔아둔 돌은 두 개.
강태식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성진아.
가장 많은 카르마를 보유한 요한과 아르한 콤비.
이 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모은 포인트를 풀어 관리하는 회귀자들의 능력을 강제로 끌어올려서 회귀를 끝낼까?
아니, 그래 봤자 얻을 수 있는 카르마는 5%가량.
다른 회귀자들과 계약을 빨리 끝냈을 때 얻을 이득과 손해에 대해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성진아가 있는 4 지구의 채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곳밖에 안 남은 건가요?]
[다른 지역은 모두 탐색을 끝마쳤어. 강태식이 숨어있을 곳은 이 미친 극동부 시베리아밖에 없어.]
얼마나 추운지 눈썹과 수염에 하얀 눈이 달라붙은 미국 헌터의 대답에 성진아가 하얀 입김을 뿜으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러면 이제 강태식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네…….]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쿠르르릉! 꽈르릉!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높게 솟아오른 산에 쌓여있던 만년설이 쏟아져 내리고 얼어붙은 땅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피, 피해!]
[끄아아악-!]
아비규환.
그 자리를 미처 피하지 못한 수많은 미국의 헌터들이 갑작스레 생겨난 크레바스에 떨어져 내렸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이 숨을 고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콰앙-!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강렬한 빛이 성진아와 간신히 살아남은 미국의 헌터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