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최후의 만찬과 태초의 배신자.
두 가지 단어를 합쳤을 때 연관되는 인물은 단 한 명이다.
이스카리옷 유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개돼지로 환생했다.
영혼석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
그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진짜로 벌을 받고 있는지 아는 존재조차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메타트론이 왜 말해 주지 않았는지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때 우리엘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어쨌든! 그만 꺼져! 내가 왜 네놈의 하찮은 고민을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 거냐!”
“…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쯧, 성질머리하고는.
여기서 계속 머물러봐야 괜히 우리엘의 화만 돋울 가능성이 크다.
중간계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설 때였다.
“야! 도마뱀!”
“네? 또 무슨 일이신지?”
“지옥에나 가라고.”
“넵…….”
“그 더러운 엉덩이 그만 뭉개고 빨리 지옥으로 꺼져버려.”
“……?”
오늘따라 더 심하게 난리를 피우는 우리엘이 자기 할 말만 하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발 걸어가다가 길에서 개똥이라도 밟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 때 녀석이 말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내 아둔함을 자책하며 허탈한 마음에 저 멀리 사라져가는 우리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인간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스카리옷 유다는 천계에서 최고의 금기로 꼽는 자살을 한 인물.
그가 죽은 뒤에 갈 곳은 바로 지옥밖에 없었다.
일단 지옥에 가면 뭔가 방법이 나올 것이다.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탄을 만났을 때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밉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엘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지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화염이 이글거리며 다른 이의 출입을 거부하는 지옥의 입구에 들어서고 얼마나 걸어갔을까?
어디선가 날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보자 옷을 걸친 것인지 벗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속살을 다 드러낸 서큐버스 하나가 묘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반신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의문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살며시 날아온 그녀가 삐친 듯 입을 쭉 내밀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흐음~그쪽이 관리자 이르카 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뉘신지?”
“흐응? 당신을 찾아올 서큐버스가 누군지 예상이 안 되나요?”
“아?”
얼마 전에 7 아르카니아에서 요한에게 쫓겨난 시트리 휘하의 군단장 베르티아.
지옥으로 돌아와 요한의 뒷조사를 하다가 나까지 알게 된 모양.
표정을 싹 굳히며 그녀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베르티아 님.”
“흥! 뭐, 뭐어, 그때 일은 고마웠어요.”
“……?”
뭐지? 뭘 잘못 먹었나?
고마워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왜 고맙다고 하는지 의문이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꺼냈다.
“흐음? 기억 안 나세요? 그 뱀파이어가 결국엔 시트리 님을 소환하지 않았잖아요. 솔직히 처음부터 시트리 님을 소환할까 봐 얼마나 쫄아있었는데요.”
“아! 사실 요한이 시트리 님을 소환한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든 뜯어말렸습니다. 만약에 징계라도 받으면 베르티아 님의 하계 외유가 막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흥! 아무튼, 고마워요.”
“어휴, 고맙긴요. 균형을 잡는 것은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어줬다.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베르티아가 갑자기 볼을 붉히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어, 어쨌든! 지옥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혹시…….”
“아닙니다.”
“호,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메시지 보내세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바빠 죽겠는데 자꾸 귀찮게 말을 건네는 베르티아를 떼어내고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박쥐의 피막과 같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슬그머니 곁으로 날아온 베르티아가 귓바퀴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헤에, 기다릴게요.”
“…….”
어처구니가 없어 그녀를 빤히 바라볼 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베르티아 님. 제가 여쭤볼 게…….”
“흐흥! 지, 지금? 제 방으로 가시면…….”
“아뇨, 그게 아니라 다른 질문입니다.”
“쳇! 그럼 뭔데요?”
“혹시 태초의 배신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흐응? 배신자? 그런 애들은 워낙에 많아서…….”
“천계에 계신 십자가의 신이 지구에 갔을 때 배신했던 제자가 있잖습니까?”
“움… 배신자?”
이 정도 말해줬으면 알 만하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고민하는 베르티아를 빤히 바라봤다.
“아!”
짝-!
곧 베르티아는 뭔가 떠올랐는지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뼉을 치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자 그녀가 곧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고는 있는데… 거긴 악마들도 갈 수 없는 곳이에요.”
“네?”
“흥! 제가 알기로 2천 년 동안 그분을 만나본 분이 바싸고 님밖에 없을걸요?”
또다시 나온 바싸고의 이름에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바싸고는 도무지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대악마.
그가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후원하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서 뭔가 재밌는 모략을 꾸미는 것처럼 내 채널을 샅샅이 뒤져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게다가 그가 괜히 지식과 모략의 대악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 사고의 뒤를 파보면 결국 바싸고가 관심을 가졌던 일이거나 그가 어느 정도 개입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많았다.
다만, 물증이 없어서 심증으로만 그가 개입했겠거니 하는 일이 많았기에 그냥 넘어갔을 뿐이었으니까.
골치가 아파져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베르티아가 몸을 살짝 숙이더니 아래에서 위로 날 빤히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헤에, 그러면 내가 바싸고 님한테 안내해줄까요? 말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되지 않겠어요? 시, 싫으면! 그냥 우리 집에서 라면이나 먹고 가든가!”
의외로 순진한 면을 어필하려고 하는 베르티아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베르티아 님께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라면부터 먹고? 갈래요?”
“아뇨, 안내만 부탁드리죠.”
“흐흥! 쳇, 알았어요. 근데! 진짜! 진짜! 제가 라면은 진짜! 기가 막히게 끓이거든요? 악마 둘이 같이 먹다가 하나를 잡아먹어도 모를 만큼 잘 끓여요!”
이게 무슨 개소리지?
악마 둘이 같이 먹다가 하나를 잡아먹으면 당연히 잡아먹힌 놈은 모르는 거 아닌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죄송합니다. 밥 먹고 왔습니다. 반신 셋이 먹다가 둘을 잡아먹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밥을 먹고 왔네요.”
“…….”
순간 나와 베르티아 사이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이거 지옥식 농담이 아니었나?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재차 말을 꺼내려 할 때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은 베르티아가 아쉬움을 토로하며 대답했다.
“쳇! 누가 해줬는지 몰라도 요리를 엄청나게 잘하나 보네… 흥!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나중엔 꼭 악마 넷이 먹다가 셋을 잡아먹어도 모를 맛있는 라면을 끓이겠다고 중얼거리는 베르티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지옥을 구경하며 옆에서 계속 쫑알대는 베르티아를 따라 얼마나 걸어갔을까?
수분이 모두 빠져나갔는지 말라비틀어져 죽은 고목이 가득한 저택의 앞에 도착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몸을 잘게 떤 베르티아가 더듬거리며 말을 건넸다.
“흐, 흐흥! 여, 여기가 바싸고 님의 저택이에요. 저, 저도 이분은 좀 무서워서…….”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르티아 양.”
“……!”
두 눈을 부릅뜨고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가린 베르티아가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야, 양이라니!”
“아, 죄송합니다. 대화를 나누며 오다 보니 마음이 좀 편해져서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베르티아…….”
“계, 계속! 양이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베르티아 양.”
“아, 아무튼 일 끝나시면 메시지 보내세요. 바, 밤에 보내시면 더 좋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보내도록 하죠.”
“후훗, 꼭 보내세요.”
말을 마치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미친 듯이 뛰어가는 베르티아를 배웅하고 굳게 닫힌 녹슨 철문의 문을 두드렸다.
탕탕-!
“바싸고 님! 계십니까?”
몇 번을 반복해서 두들겨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잠시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히히힝-!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의 울음소리에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하얀 해골마가 끄는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마차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마차가 멈추더니 회색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노인이 마차에서 내렸다.
바싸고!
때마침 바싸고가 돌아온 것.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바싸고 님. 관리자 이르카라고 합니다.”
“…….”
먼저 인사를 건넸음에도 바싸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날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다시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할 때.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듣기 거북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끌끌, 이 할 일 없이 늙어가는 뒷방 늙은이를 찾아왔다니 어지간히 급한 일인가 보군?”
“지식의 대악마인 바싸고 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호오? 실례인 것은 알고 있는 겐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받지 않으셔서 어쩔 수 없이 직접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끌끌, 역시 재밌는 친구로군. 들어오게.”
“네, 바싸고 님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나자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바싸고가 이중 삼중으로 쳐놓았던 문의 결계를 풀었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계속 대답이 없으면 그냥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려고 했을 텐데, 그랬으면 진짜 크게 다쳤을 가능성이 컸다.
그가 쳐놓은 결계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하급 신물에서 나오는 마력에 버금갔기 때문.
그런데 저 정도 마력이면 거의 대군주급인데?
서열이 높은 대악마인 것은 맞지만 그가 가진 힘이 대군주급이라고?
알 수 없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바싸고가 녹슨 쇠문을 열었다.
끼이익-!
“끌끌, 들어오게나.”
“네, 바싸고 님.”
대답을 마치고 결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악-!
갑작스레 환한 빛이 날 덮쳐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천부령을 이용해 반응하려고 할 때.
텁-!
바싸고가 내 손목을 잡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
“끌끌, 젊은 친구가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아, 죄송합니다.”
“마고의 천부령이라… 예전부터 항상 가지고 싶었던 물건인데 자네에게도 꽤 어울리는구먼.”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탐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천부령을 바라보고 있는 바싸고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나, 지금은 탐내지 않는 물건이라네.”
“네. 그런데 저택 내부는 확실히 바깥과는 다르군요.”
“호오? 다 늙은 늙은이가 이게 무슨 주책인가 싶지 않은가?”
“아뇨, 이런 최신식 물품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의 저택 내부는 색달랐다.
카르나님의 집무실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고, 마고 신의 오두막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늑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자의 실험실과 같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마법사의 탑 혹은 대장장이의 대장간처럼 보이기도 하는 장소를 이리저리 둘러볼 때 바싸고가 탁자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 시공의 드래곤 이르카시우스 루트 드위치노바 엔카나시온께서는 날 어떻게 찾아오셨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