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요한이 죽어가고 있다니?
뱀파이어는 기본적으로 반(半)불사의 존재.
불사의 존재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는 광철 할배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요한이 왜 죽어가?”
“녀석의 시간을 돌리지 않았더냐?”
“그거야 일단 몸에 쌓인 선기(仙氣)를 빼야 하니까 그런 거지.”
“쯧, 그 선기가 빠져나간 게 문제다. 이 녀석아.”
선기가 빠져나간 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광철 할배를 재촉했다.
“할배. 지금 내가 이해가 안 가거든? 핵심만 빨리 설명해줄 수 있어?”
“요한 녀석이 지금 하는 게 뭐냐?”
“성직자 수행?”
“쯧, 그러면 녀석의 몸에 그럼 뭐가 들어오더냐?”
“신성력… 설마?”
“그래, 선기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 요한에게 신성력은 독과도 같은 것이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혈 마법을 통해 신성력을 발휘할 때마다 요한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인가?
확실히 요한이 이번에 피의 날개까지 쓰고 난 뒤 평소보다 더욱 많은 피를 토하기는 했다.
그게 후유증 때문이었다니…….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요한이 신성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선기를 없애야 했다.
하지만, 선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온 신성력은 요한의 몸을 죽여가고 있었다.
이보다 모순적인 결과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광철 할배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할배가 여기까지 날 찾아온 거고?”
“그래, 이 녀석아. 저것 보이느냐?”
“아까 할배가 가지고 온 거?”
조금 전 창표와 안젤라가 낑낑거리며 들고 간 포대 자루가 떠올라 질문을 건네자 고개를 끄덕인 광철 할배가 가지고 온 물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임시처방으로 요한 녀석의 몸에 선기를 넣어주는 환단을 만들어왔다.”
“정말 고마워! 할배 약선이라더니 진짜 약….”
말을 끝마치기 전.
광철 할배가 내 말을 끊으며 말을 건넸다.
“몸에 선기를 다시 불어 넣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고 있느냐?”
광철 할배가 왜 이런 질문을 건넬까?
설마?
“신선으로 돌아가는거야?”
“그건 아니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흠…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
“응?”
“말 그대로 저걸 먹는 동안은 신성력을 쓰지 못한단 말이다.”
“그게 무슨…….”
성직자가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면?
그걸 성직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면 요한의 꿈은?
거듭된 고민에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때 내 표정을 유심히 살핀 광철 할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녀석을 도와주고 싶으냐?”
“그걸 말이라고 해?”
“왜? 녀석을 통해서 네놈이 포인트를 벌어야 하니까?”
“할배! 장난해?”
“쯧, 말버릇하고는.”
계속해서 혀를 끌끌 차고 있는 광철 할배에게 눈을 흘기고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할배를 알고 지낸 세월이 천 년이 넘어.”
“그것밖에 안 되었더냐?”
“그 시간 동안 날 그 정도로 본 거야?”
“껄껄! 그랬다면 내가 네게 요한을 맡겼을꼬?”
“그러면, 할배. 솔직히 말해줘.”
“무엇을 말이더냐?”
계속 시침을 떼고 있는 광철 할배를 잠시 노려보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다른 방법도 있는 거지?”
“응?”
“막말로 그 약만 전해주는 거면 카르나 님한테 보내면 되는 일이었잖아. 나한테 직접 찾아왔다는 건 내가 어떻게 하면 요한을 도와줄 수 있는지 할배는 알고 있는 거지?”
“눈치 하나는 기똥차게 빠른 녀석.”
역시 예상이 맞았다.
광철 할배는 요한이 약을 먹으면서도 신성력을 쓸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요한이 나오는 아르카니아의 채널을 유심히 바라본 광철 할배가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르카야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단다.”
“알고는 있다는 말이네?”
“나도 이천 년쯤 전에 지나가다 들은 소리라 잘 모른다. 하지만 그때 대천사장이었던 녀석이라면 알겠지.”
“메타트론 님?”
“그래.”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수신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하긴, 업무량이 막대한 이런 최상위급 신이라면 직속 부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메시지를 차단해놓는 게 정상이다.
천계까지 가봐야 하는 생각에 잠시 맥이 빠져있을 때 광철 할배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힘들 것이야.”
“그래도 해야지.”
“진심이더냐?”
“응.”
“그 방법이 쉽지 않다고 해도?”
“어, 난 그 녀석의 관리자니까.”
거짓이 전혀 섞이지 않은 진심을 담은 말.
그 말이 광철 할배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나를 빤히 바라보던 광철 할배가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네 녀석이 내가 아는 최고의 관리자다.”
* * *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었다.
하늘에서 찬란하게 부서져 내리는 빛의 파편.
새가 지저귀어야 할 창공에서 누가 연주를 하는지 성스러운 음악이 사방 곳곳에 울려 퍼지는 천계에 도착하고 난 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똑똑-!
푸르른 유리 벽으로 가로막힌 문을 두드리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
눈보다 하얀 백발에 푸른 눈의 대천사 메타트론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그래, 이르카야 어떤 문제가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메타트론 님. 제가 관리하는 회귀자 요한에게 문제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요한에 관한 문제라…….”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나도 얼마 전에 광철 신선님께 얘기는 들어서 알고는 있었단다.”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없다.”
“네?”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광철 할배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메타트론의 표정을 계속 살펴봤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표정.
말하기 곤란해서 말을 돌린 것이 분명하다.
“광철 신선님이 메타트론 님을 찾아뵈면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방법을 알고 계신 것 아니셨습니까?”
“흠…….”
어지간해서는 표정을 찡그리는 일이 없는 메타트론이 이마에 내 천 자(川)가 새겨질 정도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쾅-!
문을 거칠게 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타오르는 불꽃보다 붉은 머리를 가진 천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와 메타트론을 번갈아 보더니 격분한 듯 크게 소리쳤다.
“뭐야! 네놈이 여기는 또 왜 왔어! 진짜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
“우리엘!”
“아니, 아저씨! 저 새끼가 어떤 새낀지 알면서 자꾸 여기 들일 거야? 한 번은 몰라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그만! 이르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느냐?!”
“그만? 그만하라고? 아저씨야말로 저 새끼가 뭔 짓을 했는지 까먹었어? 나는 아직도 저놈을 볼 때마다! 저놈 손에 무참히 죽어 나간 내 부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우리엘의 격정적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흘러간 과거의 시간에 얽매여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엘도 마찬가지였구나.
“아저씨도 잘 알잖아. 그때는 미카엘이 아니라 아저씨가 대천사장이었으니까. 저놈 손에……!”
“닥치지 못하겠느냐?!”
콰앙-!
격노한 메타트론의 몸에서 막대한 신성력의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한순간 천계 전체가 흔들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한 힘의 폭풍에 쉴 새 없이 떠들던 우리엘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과연 전대 대천사장이었다.
손짓 한 번으로 우리엘의 입을 다물게 만들다니.
메타트론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언령 마법을 사용했다.
“나가서 기다리거라.”
“읍읍! 으으읍!”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걸어간 우리엘이 서고의 문을 닫자 날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 메타트론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미안하구나.”
“제게는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느냐?”
마른침을 목으로 삼키고는 메타트론을 살짝 긁어보기로 했다.
계속 주저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 모르게 말해 주기 어려운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수를 내봐야 한다.
“저 말고 요한에게는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응?”
“저는 분명 메타트론님께 혈 마법을 통해 신성력을 쓰면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 요한을 보십시오. 제 목숨을 갉아먹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신성력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으시다면 부디 다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후-너 역시 끝까지 굽히지 않는구나.”
“여기서 굽힐 거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말을 마치고 고뇌하는 메타트론을 힐끔 올려다봤다.
내 진심이 통했다면 이쯤에서 말해 주겠지.
게다가 요한은 천사들이 아주 흥미롭게 바라보는 대상 아니던가?
솔직히 말해 주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메타트론이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힘들겠구나.”
“네?”
“오해하지 말아라. 알려주기 싫은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판도라의 항아리를 아느냐?”
“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재앙 중에서 가장 최악의 재앙이 뭐였는지 아느냐?”
젠장.
희망을 주기 싫다는 말이로구나.
판도라의 항아리에 담겨있던 재앙 중 가장 최악의 재앙은 바로 희망이었으니까.
항아리에 꽁꽁 담겨있는 희망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재앙이 튀어나왔던 일화를 말한다는 것은 내게 희망을 주기 싫다는 뜻과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말씀해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언젠가는, 이라…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씁쓸하게 말을 내뱉은 메타트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다시 말을 꺼내려 할 때 메타트론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할 일이 많을 테니 이만 가보려무나. 내가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니.”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붙들고 늘어져봤자 대답이 들려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메타트론의 서고에서 나와 다시 중간계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최적의 방법을 떠올려봤다.
요한의 채널을 이용해 이 사실을 알릴까?
아니면, 라파엘 같은 다른 대천사들을 만나볼까?
오만가지 고민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야.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야.”
“아, 우리엘 님. 안 그래도 돌아가는 길입니다.”
“크흠! 아까는 내가 좀 조금 흥분했던 것 같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어쨌든! 네놈 면상을 보면 어제 먹었던 것도 넘어온다고.”
이 새끼 지금 사과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갈피를 못 잡는 태도를 보이는 우리엘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줬다.
인사를 하고 다시 걸어가려고 할 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엘도 요한의 채널을 보잖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는 온갖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엘 님.”
“왜? 아까 그 일을 사과하라는 거면 넌 뒤진다?”
“설마요. 저도 과거에 제가 했던 잘못은 아직 잊고 있지 않습니다.”
“크흠! 그래, 그걸 잊으면 진짜 개새끼지.”
“우리엘 님.”
“아! 또 왜?”
“혹시, 제가 관리하는 회귀자들 중에 요한이라는 뱀파이어 성직자에 대해 아십니까?”
“요한? 잘 모르겠는걸?”
되지도 않는 시침을 떼려는 우리엘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얼마 전에 후원해주신 5천 포인트는 잘 받아서 요한에게 정산해줬습니다.”
“……!”
“참 대단하죠? 뱀파이어가 성직자를 하겠다면서 그 고된 수행을 하는 것 말입니다.”
“어, 음. 생각해보니까 얼마 전에 미카엘 녀석 만나러 갔다가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본 것 같기도 하네.”
대답을 마친 우리엘은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려는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그렇게 욕을 했는데 내 채널을 봤다는 게 쪽팔려서 그런 건가?
아무튼, 핑계를 이리저리 대더라도 스스로가 요한 채널의 애청자라는 것을 확인사살 한 셈.
웃기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우리엘을 한번 쳐다본 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쳐 지나가면서 보셨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그 채널을 폐쇄하려고 했는데 참 다행입니다.”
“뭐!? 아니 왜?”
“네?”
“커흠! 아, 아니 그러니까 채널을 폐쇄하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게다가 이번에 그 늑대한테 씐 서큐버스도 퇴마했고 이제 한참 재밌어지려고 하는 채널을 왜 폐쇄해?”
“스쳐 지나가면서 보신 거 아니셨습니까?”
“어? 음… 그랬지. 네놈의 채널인 줄 알았으면 후원도 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채널 폐쇄로 요한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더 올바른 일이겠죠.”
“어? 그게 무슨 소리야? 걔가 왜 죽어가?”
“요한이 신성력을 쓸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간답니다… 그래서 이미 죽어가고 있는 중이고요.”
“엥? 혈 마법을 이용해서 신성력 쓰는 건 메타트론 아저씨가 허락도 받아주고 또 괜찮은 거 아니었어?”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엘을 바라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에휴,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너무 답답합니다.”
말을 마치고 우리엘을 힐끔 바라봤다.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이제 말할 만한데?
“흠, 그런데 말이야, 그거 어떻게 보면 태초의 배신자 얘기랑 비슷하긴 한데…….”
뭐?
무심결에 내뱉은 우리엘의 말을 듣고는 그가 누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태초의 배신자라면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아니, 그건 배신까지는 아니었지,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최후의 만찬에서…….”
“……!”
태초의 배신자.
다른 말로는 배반의 12번째 제자.
메타트론이 왜 그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