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출장보고서를 받아든 카르나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건넸다.
“네가 직접 4 무림계에 갔다 오겠다고?”
“네. 아무래도 예전에 홍보하면서 이벤트도 걸어놨고 또, 지금은 성진아나 요한도 큰일을 벌이지 않고 있으니까요.”
“나머지 잡무는 안젤라한테 떠넘기고 가겠다는 거네?”
“에이, 급한 일은 다 처리해뒀습니다. 그리고 이거 홍보까지 해놓은 거라 안 가면 안 돼요.”
초조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관리자가 그냥 강림하면 채널에 열람 제한이 걸리기에 채널을 통해 지켜보던 신들이 화를 낼 가능성이 크다.
잔뜩 홍보해놨는데 아무것도 나오지도 들리지도 않는 검은 화면을 보고 좋아할 신은 아무도 없으니까.
총관리 신인 카르나님의 허락하에 송출이 가능한 문제기에 그녀의 허락은 필수였다.
그때 한숨을 내쉰 카르나님이 경고하듯 말을 건넸다.
“회귀자의 소원을 직접 들어주는 건 금기인 거 알고 있지?”
“당연하죠.”
“가서 힘을 쓰는 것도 안된단다? 만약에 그….”
“독고구패요.”
“그래, 그 독고구패란 아이를 네가 막 두들겨 패면 큰일 나는 거 알지?”
“그럼요, 제가 직접 가는 건 흥을 돋우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죠.”
“너 돈독 올랐니?”
“네?”
“요즘에 너무 포인트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걱정돼서 하는 말이란다.”
그녀가 어떤 것을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비다르나 일부 반신들처럼 신이 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그냥 지금의 삶에 안주하는 것을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 카르나 님에게 대답했다.
“포인트를 악착같이 모아야 다른 회귀자들 빨리 계약 종료시키죠. 그래야 카르마를 쌓을 수 있잖아요.”
“그래, 알았단다. 나랑 한 약속을 잊지 말렴.”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알았단다. 조심해서 다녀오렴, 오는 길에 광철 아저씨한테 잠깐 들렀다 오렴.”
“혹시 만두예요? 그거 배달도 된다는데…….”
“어머? 내가 무슨 만두만 먹는 줄 아니? 그리고 광철 아저씨가 먼저 오라고 했거든? 오는 길에 만두도 좀 가져오면 더 좋고.”
“…넵.”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그냥 가져오면 더 좋다는 말이야. 꼭 가져올 필요는 없어.”
“넵.”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뒤.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만두를 신선하게 저장하기 위해 전용 아공간을 만들 정도로 만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황금과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그냥 만두의 여신이다.
밖으로 나와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안젤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안젤라, 무림계에 가 있는 동안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줄 수 있지?]
[안젤라: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큰 사건만 보고드리면 되는 거죠?]
[이르카: 응, 그렇게 해주면 더 고맙지, 부탁할게.]
[안젤라: 흐흫, 걱정하지 마시고 포인트나 많이 벌어오세요!]
[이르카: 응, 알았어. 다녀올게.]
자꾸 듣다 보니 안젤라의 웃음소리 적응이 되었는지 어딘가 귀엽게 보이는 그녀의 배웅을 받고 4 무림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광마 이천웅이 알려준 장소인 4무림계의 하북성(河北省)에 도착하고 난 뒤.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확실히 녀석이 주변에 많이 알린다고 한 약속을 지킨 모양.
쉽게 보기 힘든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도의 고수들이 셀 수 없이 길가에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때 날카로운 눈매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흔과 허리춤에 칼을 매단 척 봐도 무림인처럼 보이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무림 고수로구나.
그자에게 빠르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대협 실례합니다. 혹시 철가장(鐵家莊)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지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면서생처럼 모습을 바꾸고 왔으니 큰 거부감 없이 대답해줄 것이다.
예상대로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커다란 대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을 따라 쭉 가시면 되오. 그런데 그쪽도 철가장에 가는 길이오?”
“네, 광마와 독고구패의 생사결이 펼쳐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싸움을 언제 또 보겠습니까? 당연히 구경하러 가는 길이지요.”
“흠, 혹시 정파…….”
“설마요.”
“킥, 역시 그렇구려. 여긴 음흉한 정파 놈들도 많으니 조심해서 가시오.”
“감사합니다.”
생긴 것부터 나는 마인이오. 이렇게 쓰여 있던 사내가 서둘러 길을 떠난 뒤.
대로를 따라 걸어가 도착한 철가장에는 이미 무림의 수많은 명사가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산같이 굳건하게 서서 독고구패를 기다리고 있던 도전자 광마 이천웅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야. 천웅아.”
“허, 여긴 어찌한 일로 오셨소이까?”
“당연히 구경하러 왔지.”
“요즘, 또 한가하신가 보오?”
“바빠 죽겠다. 한가해서 온 게 아니고, 너한테 얘기해줄 것도 있어서 왔다.”
“…지면 죽는다?”
“에이, 그건 당연한 거고.”
“…….”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이천웅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독고구패 그놈이 싸울 때 하는 행동을 살펴봤거든?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더라고, 녀석이 허공답보(虛空踏步)를 쓸 때 너는 지룡출타(地龍出他) 초식에 이어서 광무일출(狂武一出)을 써.”
“흠, 알겠소이다.”
대답을 마친 이천웅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질문을 거넸다.
“그런데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직접 오신 거요?”
“에이, 설마.”
직접 무림계에 온 이유는 현장감 있는 중계를 하기 위해서다.
채널을 통해 결투를 지켜볼 신들에게 내 시야를 공유해준다면 훨씬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그때 주변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 장발을 질끈 묶은 독고구패가 나타난 것.
재빨리 채널을 열고 대기하고 있던 신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아아-! 오래 기다렸습니다! 가족을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한 회귀자 광마와 무림계의 최강자! 독고구패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처절한 결투가 곧 시작됩니다!]
[많은 신이 오랜 시간 기다렸다면서 투덜거립니다.]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냐고 다수의 신이 질문을 건넵니다.]
이거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겠는걸?
룬 마법을 이용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는 사파 계열의 무림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소리쳤다.
“독고구패 대협! 개새끼 같은 사파 놈들에 협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뭐라! 여기가 어디라고 그따위 망발을 하는 것이냐! 대체 어떤 놈이냐!”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화끈하게 달아오른 사파와 마도의 진영에서 벗어난 뒤 목소리를 살짝 바꿔서 정파의 진영에서 소리쳤다.
“광마 대협! 음흉하고 썩어빠진 정파의 개들에게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누구냐! 더러운 사술을 쓰는 마의 종자 따위가 어디서 정의를 말하느냐?!”
“감히! 더러운 마의 종자들이!”
분위기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서로를 향해 창검을 꺼내 들고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뿜고 있는 정파와 사파 진영 사이에는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몰래 독고구패의 뒤로 이동해 녀석의 뒤통수를 아주 살짝 건드렸다.
퍽-!
마치 인사를 하듯 크게 고개를 숙인 독고구패.
고통은 없지만, 커다란 수치심을 느꼈는지 붉어진 얼굴로 안광을 줄기줄기 뿜으며 서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큭! 크크크크큭! 광마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으냐?”
“뭐라? 이것이 실성했나!”
“큭! 이제 보니 미친놈이 아니라 비겁한 놈이로구나. 이따위 암기를 던져놓고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암기라니! 인사를 해놓고 무슨 개소리냐! 날 모욕하지 마라!”
“수작을 부려놓고는 모른 척까지 한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더냐?”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오냐! 오늘 내가 하늘을 보여주마!”
“아니, 이런 미친놈이?”
황당한 표정을 지은 광마를 향해 분노한 독고구패가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이천웅과 독고구패의 천지를 격동하는 결투가 벌어질 때.
구경하러 나온 천마의 옆에 서 있던 핏빛 옷을 입은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라, 한눈에 봐도 살짝 어벙하게 생긴 녀석이니 호위병이겠지?
빠르게 다가가 희생양의 머리를 때렸다.
퍽-!
“끄억!”
“……?!”
모두가 놀라 나를 바라볼 때 쓰러진 녀석을 가리키며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여러분! 이놈은 정파의 첩자입니다! 이놈이 여러분께 독을 살포하려고 했습니다! 여기 이자의 몸에서 나온 이 독약 통이 증거입니다!”
“…혈마가 정파의 첩자였다고!?”
이런, 이놈이 오마(五魔)중 한 명인 혈마였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어수선한 좌중에 소리쳤다.
“저자는 혈마가 아닙니다. 제가 혈마니까요!”
“……!”
“저를 사칭하는 녀석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어보지 못하셨나 봅니다? 본좌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어쩌실 뻔하셨소이까!”
“하, 하긴! 혈마가 주먹 한 방에 뻗지는 않겠지!”
“허, 어찌 이런 살수를 보낸단 말인가! 정파 놈들은 수치조차 모른다는 것인가!”
기절해 있는 혈마를 발로 슬쩍 밀어 넣고는 반대편에 서 있던 무림 맹주의 머리 옆에 자그마한 돌을 던졌다.
휙-!
머리를 향해 재빠르게 날아온 돌에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피한 맹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무림인들 간에는 아무리 숙적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는 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서로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난 무림인이 아니다.
그때 부들부들 떨던 맹주와 눈치를 살피던 내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쳤다.
““저 더러운 놈들을 쳐라!””
말을 마치고 몸을 슬쩍 투명하게 만들어 그 현장을 벗어났다.
한쪽에서는 이천웅과 독고구패의 피 말리는 싸움이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그마한 정사대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그대로 채널에 비추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원래 싸움은 애들 싸움! 그중에서도 패싸움이 가장 재밌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입니다! 즐겁게 구경해주시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 신들의 능력이 어떤가?
막말로 저런 무림인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게 정상이다.
이천웅과 독고구패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들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면 이런 개판을 벌이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원래 허접한 애들이 패싸움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가장 재밌는 법이니까.
[다수의 신이 콧김을 내뿜으며 개판이 된 결투장을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역시 이르카의 채널이 최고라며 칭찬합니다!]
칭찬 말고 후원!
시청했으면 시청료를 내야 할 것 아닌가?
[오랜만에 보는 개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본 전쟁의 신 티르가 5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더 치열한 싸움을 원한다며 전쟁의 신 아레스가 6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더 막장 싸움을 원한다며 전쟁의 신 티르가 7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막장은 지금도 충분하다며 전쟁의 신 아레스가 8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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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이 더 재밌다며 최초의 왕 길가메시가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같은 전쟁의 신끼리 자존심 싸움인 후원 전쟁까지 붙은 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가 끌끌 웃으며 4 지구도 개판 4 무림계도 개판이라고 하고는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뭐?
바싸고의 후원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4지구가 개판이 날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이르카: 안젤라! 4지구에 무슨 일 일어났어?]
[안젤라: 이르카 님! 안 그래도 지금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지금, 러시아에서 전쟁이 날 것 같아요!]
[이르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