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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38화 (38/121)

38화

아르한의 행동력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물론, 아르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악마들이 하계에 갈 때 자신과 가장 파장이 맞는 대상에게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은 내 실수도 있으니까.

파장이 잘 맞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베아트리체의 성격이 지금 시무룩하게 지옥에 돌아갔을 베르티아와 비슷하다는 소리였다.

그녀에게 빙의한 악마 베르티아가 누구였나?

바로 정욕의 화신인 서큐버스였다.

게다가 요한은 확실히 뱀파이어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생긴 편이다.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 정신을 잃은 여인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한눈에 반할 정도로 잘생긴 남자 그것도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게다가 성격이 조금 적극적인(?) 편이라면…….

요한을 어떻게든 꼬셔보려고 한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두들겨 패다니.

똑똑한 놈인데 단순한 척하는 놈인지 아니면 진짜 단순한 놈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게거품을 물고 꿈틀대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주먹을 꽉 쥔 아르한이 다가갈 때 메시지를 보내줬다.

[이르카: 아르한?]

[아르한: 이거, 아주 악독한 마귀 같습니다!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셨습니까? 요한님께서 방금 물릴 뻔…….]

[이르카: 악마는 지옥으로 돌아갔어.]

[아르한: 네?]

[이르카: 설마 아직 악마한테 씐 거로 생각한 거야?]

[아르한: 네…….]

[이르카: …악마는 자신과 가장 파장과 성격이 잘 맞는 대상에게 빙의해. 지금 너한테 얻어맞고 널브러져 있는 백작 영애의 몸에 들어간 악마가 뭐였는지 기억나?]

[아르한: 그, 글쎄요? 저는 그런 건 잘…….]

[이르카: 정욕의 화신인 서큐버스였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아르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은 모양.

그때 쓰러진 베아트리체와 그녀가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는 돌처럼 굳어있는 아르한을 번갈아 보던 요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후우, 아르한 님… 이분을 치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호, 혹시 기억을 지울 수 있습니까?]

[네?]

[방금 관리자님에게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거 난처하군요. 제 실수입니다. 혹시 제가 때린 기억을 없앨 수 있습니까?]

[그렇게 섬세하게 제어하지는 못합니다만….]

기억을 삭제하자는 아르한의 말에 요한이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다.

실제로 요한이 쓰는 기억삭제는 특정 시간 특정일에 대한 기억만 골라서 지우는 게 아니라 하루에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지우는 거였으니까.

저걸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보고 있을 때.

아르한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말을 꺼냈다.

[일단, 지우고 생각해보죠.]

[……?]

[일단, 지워보고 뭔가 잘못되면 튀죠. 요한 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

저런 미친놈을 봤나?

아르한의 눈은 광기에 휩싸여 희번득 빛나고 있었다.

이제 아르한의 뇌 구조가 확실해졌다.

자신이 목표로 한 것에 대해서는 비상할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그리 관심이 없는 문제에서는 평균 이하로 머리가 돌아간다.

조금 전까지 정확하게는 베아트리체를 두들겨 패기 전에 녀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지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곳을 발판삼아서 포교 활동을 해야 한다.

이런 바른말을 꺼내던 놈과 같은 놈이 맞나 고민될 정도였으니까.

아르한이 폭주하기 전에 말려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튀면 죽도 밥도 안된다.

한숨을 내쉬고는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요한 씨.]

[요한: 네, 관리자님. 아르한 님이 왜 이러는 걸까요?]

[이르카: …지금은 무시하세요. 조금 차분해지면 말이 통할 겁니다.]

[요한: 그렇습니까? 일단 진정 좀 시키겠습니다.]

요한이 혼란 상태에 빠진 아르한을 붙잡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확실히 요한의 말이라면 내 말보다 더 고분고분하게 듣는 아르한이 어떻게든 진정해보려고 다리를 달달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마법 보따리에 진정에 효과가 좋은 약술을 하나 넣어서 녀석에게 상점창을 열어줬다.

재빠르게 구매하고는 병째 술을 들이붓고 있는 녀석을 뒤로하고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베아트리체의 기억을 지우지 마세요.]

[요한: 네? 그렇다면 아르한에게 맞은 걸 기억할 텐데요?]

[이르카: 그녀가 깨어나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퇴마는 성공적으로 했는데 워낙 강력한 악마여서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들어오려는 걸 아르한이 막았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설명을 할 틈도 없었다.]

[요한: 그건 거짓말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신을 모시는 몸인데 그런 거짓말을…….]

[이르카: 아뇨, 선의의 거짓말은 그분께서도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이건 선행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매야 꼬이지 않는 거예요.]

[요한: 흠, 알겠습니다. 신께서 이해해주시길…….]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이해해주시겠지?

뭐, 만나본 적이 있어야 알지.

그래도 이런 거로 처벌하실 분은 아니시니까 별 상관은 없을 거다.

사실 이런 거짓말을 일일이 처벌한다면 세상에 남아있는 생명체는 말 못 하는 녀석들만 있지 않겠는가?

요한이 아르한의 피를 뽑아 그녀를 치유하고 설명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얼굴이 붉게 변한 아르한을 바라보더니 경기를 일으킨 베아트리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는 요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또 다른 골칫거리인 성진아가 뭘 하고 있는지 바라봤다.

그런데, 이건 딱히 조언해 줄 필요도 없겠는걸?

그녀는 조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 잘하고 있었다.

북한 지역에 들어간 성진아는 효율적으로 천부령의 복제품을 이용해 좀비들을 없애며 진격하고 있었다.

좀비를 처치하며 진격하던 도중 토굴에 숨어서 성진아와 미국 헌터들을 경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 성진아가 다른 헌터들을 다른 곳에 세워두고는 북한 주민들에게 외쳤다.

[저는! 남쪽에서 온 성진아입니다! 생존자 여러분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저, 저 애미나이가 뭐라네?]

[우리를 구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네?]

[남조선에서 온 아새끼 말을 믿간? 고조 이 움직이는 시체들은 금방 사라진다고 당이 어떻게든 버티라고 했잖네!]

[아새끼래! 지랄하지 말간! 저 시체들이 몇 달 동안 기다니는 거 못 봤네? 당은 우리를 버렸어야!]

의견이 분분한 북한 생존자들 사이에서 한 어린아이가 성진아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중얼거렸다.

[고조, 질문 있시요. 성진아라면 얼마 전에 남조선에 나타난 신이 말했던 애미나이 이름 아닙네까?]

[아새끼가 어데 어른들 말하는데 주둥이를…….]

[잠깐 기다리라우. 확실히 나도 얼마 전에 들었어야? 성진아라면 진짜로 신이 말한 이름 아니네?]

마고 신이 직접 계시를 내려준 효과였을까?

북한에서도 성진아의 이름이 어느 정도 퍼진 모양.

이런 상황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지.

서둘러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였다.

[맞습니다. 저는 신에게 고통받는 북한 주민분들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은 와해했습니다!]

[……!?]

[더러운 권력을 잡기 위한 배신자들에 의해 위원장이 암살당하고 그 승냥이 같은 자들이 한 줌의 권력을 잡기 위해 여러분을 버렸습니다!]

[……!!??]

[저는 여러분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고 북으로 넘어왔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오십시오! 여러분을 이 악몽에서 구하겠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사소한 일은 이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상황판단 능력을 확인하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똘똘한 제자를 둔 스승의 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치는 제자가 얼마나 기특하겠는가?

지금 성진아가 딱 그랬다.

입가에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 옆에 쪼르르 달려와 앉은 안젤라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쟤 앞에서는, 악마들이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에이, 그래도 사탄 님이나 루시퍼 님 아니면, 바알 님? 정도면 명함은 내밀 수 있지.”

“네? 그분들은 지옥의 3대 군주님들이잖아요. 지금 하신 말씀은 그분들이랑 성진아 씨랑 동급이라는 소리 아니에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반박할 말을 찾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지옥에서 지금 꼭 불러오고 싶은 초청 강사 1순위로 꼽히는 게 바로 성진아였으니까.

“뭐,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까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말을 듣고 애써 수긍하려 고개를 끄덕이던 안젤라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르카 님, 일주일 뒤에 그 날 아니에요?”

“그 날?”

“이천웅 씨요.”

“응? 천웅이가 왜… 헉!”

큰일 났다.

뤼슈타의 결혼식 때 주된 홍보는 요한이었지만 부가적으로 광마 이천웅이 4무림계의 절대자 독고구패와 대결한다고 잔뜩 소문을 내면서 이벤트까지 연다고 말했는데 그걸 까먹고 있었다.

“뭐 하세요? 일단, 이르카님이 주신 그 무공 비급 다 익혔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응? 어, 어.”

“진짜, 저 없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이르카 님은 복 받으신 거예요.”

“진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사 먹어!”

“진짜요? 진짜? 진짜? 얼마든지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더니 입맛을 다시며 몇 번을 되묻는 안젤라를 바라보니 두려워졌다.

안젤라는 비싼 음식일수록 더 좋아한다.

물론, 싼 음식이나 직접 해서 먹는 음식도 잘 먹긴 하지만…….

“3…3천 포인트 내로?”

“칫!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빨리 연락해보세요.”

“알았어!”

그녀의 성격이 까탈스럽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천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천웅아.]

[이천웅: 이르카 대협 아니시오? 무슨 일로 제게 연락을 다 주셨소이까?]

[이르카: 내가 전에 준 건 다 익혔니?]

[이천웅: 십 성까지 완벽하게 익혔소.]

[이르카: 익혔소? 말이 짧다?]

[이천웅: …익혔소이다.]

[이르카: 일주일 뒤에 독고구패랑 대결인 건 알고 있지?]

[이천웅: ……?]

[이르카: 설마, 까먹었냐?]

순간 녀석을 팰지 말아야 할지 마음이 자꾸 왔다 갔다 했다.

자기 대결 날짜를 까먹어?

그때 이천웅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이천웅: 무공을 언제까지 익히라고 했지 독고구패와 대결을 언제 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소.]

[이르카: 웃기시네! 내가 뤼슈타의 결혼식 때 분명히 말했거든?]

[이천웅: 뤼슈타? 그게 누군지…….]

아? 얘한테는 말을 안 했구나.

그날 말해야 했는데 홍보에 너무 열 올리느라 까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게다가 요즘 워낙 바쁜 일이 많아서 녀석에게 얘기했다고 스스로 착각한 모양.

시침을 뚝 떼며 녀석에게 말했다.

[이르카: 말했거든? 아무튼, 지금 독고구패한테 도전장 날려봐. 일주일 뒤에 한판 붙자고.]

[이천웅: 알았소이다. 그런데 진짜 말씀하신 것…….]

[이르카: 어허! 넌 내게 5만 포인트의 빚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독고구패만 이겨봐. 내가 그거 돌려달라는 말 절대로 안 한다.]

[이천웅: 돌려받으실 생각이셨소이까?]

[이르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준비 잘 해. 너도 이번엔 꼭 소원을 이뤄야지.]

[이천웅: 알겠소이다.]

[이르카: 그래, 천웅아 나는 널 믿는다. 뭐 영약 필요하면 말하고. 싸게 줄게!]

[이천웅: 그냥 선물로…….]

[이르카: 공짜 좋아하면 머리 더 빠진다? 아! 그리고 그 정파랑 사파 이런 애 중에 싸움 좀 하는 애들 싹 긁어모아 봐. 싸움 구경하라고.]

[이천웅: 설마, 공개 비무 말씀하시는 것이요?]

[이르카: 응, 많은 사람 앞에서 네가 독고구패를 이기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천웅: 호오, 일리가 있는 말씀이시오. 알겠소이다.]

몸에 진이 쫙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머리를 부여잡고는 안젤라에게 하소연했다.

“안젤라 나 요즘 몸이 좀 허한 거 같아. 어떻게 이런 걸 까먹을 수 있지?”

“광철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보약이라도 지어드릴까요?”

“광철 할배? 만두만 빚을 줄 아는 거 아니었어?”

“뭐래요? 광철 할아버지 원래 약선(藥仙)이잖아요. 그걸 까먹으셨어요?”

광철 할배가 원래 약선이었나?

어쩐지 만두에 보약 맛이 조금 섞여 있는 것 같더라니.

안젤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이마를 짚으며 말을 건네왔다.

“진짜 요즘 몸이 좀 안 좋으신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아, 아냐. 갑자기 신경을 쓸 게 많아서 그랬나 봐. 이제 다시 정신 차려야지! 하하하핫!”

“그 웃음소리는 뭐에요. 어색해.”

“네가 요즘 웃고 있는 그 흐흫? 그것보다는 어색하지 않거든?”

“흐흫, 뭐래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시스템을 조작해 독고구패의 영상을 찾아봤다.

녀석의 약점을 찾아야 천웅이한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독고구패란 녀석의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고 피곤해라. 그런데 독고구패 이 새끼 왜 이렇게 센 거야. 불안하게 시리.”

확실히 무림 최강자라 불릴 실력이었다.

최상위 무공비급을 익힌 이천웅과도 거의 동급으로 보이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힘으로는 거의 동급.

그렇다면 정신력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지개를 켜며 굳어있던 목을 풀 때.

결전의 아침을 알리는 동이 터왔다.

“그럼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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