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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36화 (36/121)

36화

차가운 보름달의 일족.

자신을 밤의 일족이라 부르는 뱀파이어들이 늑대인간들에게 칭할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이었다.

매번 서로에게 냄새나는 똥개, 앵앵거리는 모기 새끼라고 하는 것이 그 둘의 관계였으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 요한의 반응은 무척이나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게다가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적인 은으로 만든 접시와 은잔을 내놨다.

또한, 일반적인 뱀파이어라면 살짝 맛이라도 봤을 닭의 피를 내놨음에도 입에 대지도 않았다.

화라도 냈으면 상대를 파악하기 쉬웠겠지만, 화조차 내지 않은 요한의 모습은 할파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요한을 흠칫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할파스 백작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사과했다.

“내 무례를 사죄드리리다. 수행이 깊은 밤의 일족분이신 모양이구려.”

“할파스 백작님. 저는 신을 모시는 몸입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요한의 신성력에 대해서는 이미 파히르의 보고를 받아 익히 들은 바.

원래 꺼내려 했던 말을 꺼내도 되겠다고 생각한 할파스 백작이 요한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둠의 일족이기 전에 한 가지 약조를 해주실 수 있겠소? 그렇다면 내 힘이 닿는 곳까지 도와드리리다.”

“어떤 약속입니까?”

“나와 내 딸아이의 정체를 말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구려.”

“경비대장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숨긴 사실을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은 성직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고맙소. 사실 부탁하려고 하는 것은 내 딸과 관련된 문제요.”

“영애께서 어디 불편한 곳이 있나 보군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말을 마친 요한은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할파스 백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딸의 정체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것은 딸 역시 늑대인간이었고 그들의 재생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다른 성직자를 찾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치료를 맡긴다면 치료는 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할파스 백작 딸의 정체를 다른 성직자가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 보는 뱀파이어 성직자를 발견해서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무릅쓰고 이렇게 초대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었을 때.

할파스 백작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요한의 귓가에 대고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혹시, 퇴마… 가능하시오?”

“네?”

“퇴마 말이오, 말 그대로 악귀를 쫓는 것 말하는 것이요.”

뜬금없는 퇴마라는 말에 요한은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요한이 성직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몸에 쌓인 선기(仙氣)를 빼기 위해 특이한 회귀를 진행한 지 얼마나 지났는가?

치료야 혈 마법을 이용해 신성력을 쏟아부어 가능했지만, 퇴마는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퇴마 요청에 요한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을 때였다.

[이르카: 가능하다고 하세요!]

[요한: 네?]

[이르카: 일단, 가능하다고 하세요! 방법은 제가 찾아봅니다!]

[요한: 아, 알겠습니다.]

[이르카: 요한 씨! 이제부터 중요한 건 제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셔야 한다는 겁니다.]

[요한: 네?]

[이르카: 저는 당신의 관리자입니다. 제 말을 믿어주셔야 해요. 조금 이상해도 믿어주세요.]

[요한: 허, 감사합니다. 덕분에 퇴마를 배우겠군요.]

관리자인 이르카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 요한이 이내 할파스의 안내를 받아 그의 딸이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퇴마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계가 궁금해서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가 그 삭막한 곳에 다시 돌아가기 싫어 자신과 신체 파장이 잘 맞는 자를 찾아가 들어간 것뿐이니.

강제로 돌려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요한이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안젤라, 내 채널을 보는 대악마들 리스트 좀 띄워줘.”

“잠시만요.”

안젤라가 리스트를 정리하는 동안 할파스의 딸을 만나러 가는 요한을 지켜봤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요한은 아직 악마를 퇴마할 수 없다.

걔들도 따지고 보면 불쌍한 애들이고 정식으로 퇴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요한이 무슨 수로 퇴마를 하겠는가?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 채널을 지켜보는 대악마라면 분명 내 요청을 들어줄 것이고 하계로 건너간 녀석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그때 안젤라가 대악마의 리스트를 말해줬다.

“음, 사탄님 같은 분 빼고 72 악마분들 말하는 거죠?”

“응. 몇 분이나 보셔?”

“총 52분이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뭔데?”

“거의 다 성진아 씨가 나오는 채널만 보세요.”

“…그, 그래?”

“네.”

“일단 리스트 좀 건네줄래? 어떤 분인지 확인하고 부탁해야지.”

안젤라에게 리스트를 받아들고 떨리는 심정으로 요한이 나오는 화면을 바라봤다.

[이곳이오.]

[후, 신의 축복이… 쿨럭! 있기를 빌어야겠군요.]

끼이익-!

굳게 닫힌 철문을 열자 요염한 자세로 옷을 홀딱 벗고 앉아있던 백작의 딸이 요한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어머? 늑대의 몸에 들어왔더니 뱀파이어가 찾아왔네?]

[당장 그녀의 몸에서 나오시지요.]

[왜? 그런데 너 옷이 그게 뭐야? 어울리지 않게 웬 성직자 나부랭이가 입는 옷을 입고 있니?]

[성직자 나부랭이가 아니라 성직자요.]

[그래? 후훗, 재밌겠네, 성직자랑 하는 건 처음인데 색다른 경험이 될 거 같아. 그 옷 답답하지 않니? 내가 벗겨줄까?]

[요망한 말을 내뱉는구려.]

[어머나? 너 설마 나 퇴마하러 온 거니?]

[그렇소. 당장 그녀를 풀어…….]

[좋아! 나랑 딱 한 번만 할래? 그러면 얘 몸에서 나갈게. 진짜라니까?]

도발적인 그녀의 말에 당황했을까?

입술을 굳게 다문 요한이 날 바라보듯 천장을 바라봤다.

“이거 좀 골치가 아프겠는데?”

“네? 뭐가 어머나! 쟤, 쟤 뭐예요!”

“안젤라도 쟤 정보 한번 확인해볼래?”

“아, 시트리 님… 소속이네요.”

요한의 앞에 있는 녀석의 정보를 확인하자 골치가 아파져 왔다.

[이름: 베르티아.]

[종족: 서큐버스 퀸.]

[소속: 시트리 7군단.]

[직위: 군단장.]

백작의 딸에 들어간 악마는 그저 그런 하급 악마가 아니라 사탄의 두 번째 부인 시트리 휘하의 군단장이었으니까.

요한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사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사탄 님.]

[사탄: 악! 또 성진아가 무슨 사고 쳤구나! 지금 당장 봐야겠…….]

[이르카: 네? 어디까지 보셨습니까?]

[사탄: 크흠, 만주랑 북한 먹겠다고 말하고 그곳에 들어간 것까지는 봤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지옥이 엄청 바쁜 시기라 거의 보지 못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 부분까지 봤다면 완전 채널을 눈에 달고 산다는 얘기였다.

[이르카: 아, 그렇다면 지금은 거기서 특별히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아직은 준비 단계니까요.]

[사탄: 그래? 좀 아쉽군. 그런데 네가 먼저 연락하다니 왜? 성진아가 쓸 포인트 부족하냐? 후원해줄까?]

[이르카: 아이고! 후원해준다면 감사하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사탄: 흠, 네가 먼저 말을 꺼낸 걸 보니까 뭔가 부탁하려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냐?]

[이르카: 사실 시트리 님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탄: 마누라?]

[이르카: 네, 정확하게는 시트리 님 휘하의 군단장 하나가 8 에르프네임에 갔습니다.]

[사탄: 그래? 또 하계에 나간 애가 있나 보네, 잠깐만 기다려봐. 마누라한테 물어볼게.]

[이르카: 넵.]

요한이 백작 영애의 몸에 들어간 베르티아를 향해 계속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사탄의 부인인 시트리의 살짝 짜증 섞인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시트리: 하아, 그래 이르카야. 누가 하계에 가서 사고를 치고 있니?]

[이르카: 시트리 님, 안녕하십니까! 지금 하계에 간 인물은 7군단장 베르티아입니다!]

[시트리: 베르티아? 그나마 정상적인 아이네, 그냥 한번 해주고 보내렴.]

[이르카: 네?]

[시트리: 한번 하면 돌아오는 아이란다. 그리 까다로운 취향은 아니니까 아무나 붙여서 한번 하게 해줘.]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목으로 넘어갔다.

확실히 쉬운 방법이긴 한데 지금은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지금 요한의 채널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신들이 누구겠는가?

어둠의 권속이었던 요한이 빛의 길을 걷겠다고 했기에 당연히 모든 천사와 선 성향 신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

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요한을 지켜보고 있는 이상, 이 방법은 절대 쓸 수 없는 방법이다.

그녀의 말을 따른 방법을 쓴다면 베르티아를 지옥으로 돌려보낼 수는 있어도 후원금이 끊길 수도 있는 초 위기상황.

조심스레 시트리에게 도박을 걸어봤다.

[이르카: 시트리 님. 제가 이런 방법을 쓰려고 하는데요 그게 어떤 거냐면… 혹시 이런 방법을 써도 괜찮으십니까?]

[시트리: 흠… 조금 거슬리긴 하는데, 뭐 상관없단다. 대신 나도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주겠니?]

[이르카: 저는 솔직함 빼고는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물어보시지요!]

[시트리: 우리 남편이 너한테 후원 얼마나 했니?]

[이르카: 네? 사탄 님께서 제게 후원도 하셨습니까? 리스트에는 없던데요?]

[시트리: 흐응, 그래? 요즘 포인트가 좀 비던데…….]

[이르카: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좀 궁핍해서 다들 요즘에 쓰는 최신식 시스템을 아직도! 쓰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시트리: 그렇다 이거지?]

[이르카: 아이고, 시트리 님. 요즘 업무가 얼마나 힘드십니까? 그런 자잘한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나중에 자그마한 선물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시트리: 그래? 어떤 선물인지 기대가 되네, 뭐 그래 알았어.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

[이르카: 넵! 알겠습니다!]

후원자의 신변 보호는 끝났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요한에게 보내줄 마법 보따리를 열어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하라는 허락도 맡았겠다.

제대로 일을 시작하기 전 물품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

물품을 정리하고 난 뒤.

요한에게 상점창을 열어주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맨 위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사세요.]

[요한: 오! 해결방법을 찾으신 겁니… 이게 다 뭡니까?]

[이르카: 퇴마 도구들입니다.]

[요한: 이, 이게요?]

[이르카: 직접 여쭤보고 알아낸 방법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한: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이르카: 그리고 그녀가 뭐라고 하든 절대 듣지 마세요! 오로지 기도만 올리는 겁니다. 아셨죠?]

[요한: 항상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순진한 요한이 물품을 모두 구매하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 요한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말해줬다.

* * *

베르티아는 지금 상황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 하계에 나와 순진한 남자와 놀고 바로 지옥으로 돌아가려고 했건만 신체 파장이 딱 맞는 여인이 하필 늑대인간 백작의 딸이었다.

게다가 수상한 것을 알아차린 백작이 그녀를 지하실에 감금을 시켜놨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었던 것.

‘시끄러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잘생긴 뱀파이어를 꼬셔보려고 했지만, 앞에서 시끄럽게 기도문만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성직자 뱀파이어? 분명 어디서 들었던 거 같긴 한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어디선가 성직자 뱀파이어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요한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요한이 옆에 서 있던 할파스 백작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부터 못 볼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잠시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설마 진짜 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단호한 표정의 요한을 바라본 할파스 백작이 잠시 고민하더니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흠, 그대라면 뱀파이어 사위도 괜찮…….”

“허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커흠! 알겠소.”

이내 뱀파이어 사위를 중얼거리며 바깥으로 나가는 할파스 백작을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베르티아에게 요한이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퇴마 의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응? 아니 너 생긴 거랑 다르게 왜 이렇게 고지식하니? 나랑 한번 하면 그냥 조용히 돌아간다니까?”

“저는 이제부터 당신의 목소리는 듣지 않겠습니다.”

“어머, 악마라고 다 나쁜 게 아니라니까? 요즘엔 우리도 어떤 인간을 보고 배우라고 하신다니까?”

계속 떠들고 있는 베르티아의 목소리를 무시한 요한은 이르카가 열어준 상점창에서 구매한 물품을 하나둘 꺼내놓고는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그대의 어린양이 비오니 악에 물든…….”

이내 주변을 돌면서 물품을 내려놓고 있는 요한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베르티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얘, 그런 거 효과 없다니까? 내가 무슨 하급 악마도 아니고 겨우 그런 거로… 헉!”

마지막에 요한의 품에서 나온 물품을 보고 경악한 베르티아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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