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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24화 (24/121)

24화

피가 엄청나게 많이 뽑혀도 살아날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종족이 있었다.

인간은 인간이되 뱀파이어와 같이 반쪽짜리 인간.

바로 늑대인간.

늑대인간 중에서도 회귀를 원하는 자들은 분명히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그런 자를 포섭해 수혈팩.

아니, 파트너로 짝지어줘야 한다.

크게 심호흡하며 카르나님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민망한 자세로 커다란 황금색 고양이의 배를 간지럽히며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던 카르나티우스가 경기를 일으키듯 깜짝 놀라서는 소리쳤다.

“너, 너너너! 노크!”

“똑똑…….”

입으로 노크 소리를 흉내 내고는 고개를 돌렸을 때 얼굴로 날아오는 황금 베개가 눈에 띄었다.

퍽-!

“억!”

베개에 돌덩이라도 넣었나?

푹신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른 딱딱한 베개에 부딪힌 충격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평소 잘못하면 잔소리만 했지 물건을 집어 던진 적은 없었기에 그녀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까먹은 것.

내 실수였다. 그리고 왜 카르나 님이 항상 들어오기 전에 노크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고양이와 놀고 있는 모습은 꼬맹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고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카르나 님에게 말을 건넸다.

“급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노크하지 못한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흠흠! 그, 그래 이번에는 넘어가 줄게. 무슨 일이니?”

“요한 씨랑 관련된 문제인데요.”

“요한? 7아르카니아로 보내기로 하지 않았니?”

“네, 거기로 보내긴 했는데, 사실 조금 전에 메타트론 님을 만나고 왔거든요?”

“메타트론 아저씨? 설마 천계에 직접 간 거야?”

“네.”

“우리엘 녀석도 만나고 왔겠네?”

“그렇죠?”

“쯧,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뭐, 빨리 도망쳤어요.”

“에휴, 그 자식은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까. 다음부터 어지간하면 천계 갈 때는 보고해. 내가 같이 가줄 테니까.”

“넵.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카르나 님이 같이 가면 우리엘에게 삥 뜯길 일은 없을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메타트론과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전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마치자 카르나 님이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턱을 괴더니 이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늑대인간이라… 좋은 생각 같기는 한데, 개들 뱀파이어랑 사이 안 좋지 않니?”

“그래도 회귀를 시켜주는 조건으로 꾀면 되지 않을까요?”

“글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을 거 같아. 요한이랑 비슷한 성향이 있는 대기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요한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너, 진심이니?”

“네?”

“포인트 더 뜯어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에이~ 아시잖아요. 아무리 제가 포인트랑 카르마에 환장했어도 저런 불쌍한 애들한테 등쳐먹지는 않는걸요.”

“그래서 1:9 계약을 했구나.”

“그, 그건 요한이 먼저 제안한 건데…….”

“훗, 장난이야. 그냥 한번 놀려본 거란다.”

“넵.”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늑대 인간이 안 된다면 요한과 짝지어줄 인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답답함에 한숨을 길게 내뿜을 때 카르나 님이 뭔가 떠올린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얘! 이르카야.”

“넵?”

“너 메르나랑 한 내기 있잖니?”

“그거 성진아 씨 일 끝나고 하려고 했는데요?”

“걔는 어떠니?”

“인간이 혈 마법에 쓰일 피를 뽑히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몰라도 걔는 좀 무리 아닐까요? 드래곤 하트 먹은 것도 회귀하고 나서잖아요.”

“이르카야, 네가 뭔가 까먹었나 본데, 드래곤 하트라는 게 그냥 평범한 애가 꺼내서 박으면 박히는 거니?”

듣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실제로 드래곤 하트에 담겨있는 강력한 마력을 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흑화한 회귀자가 엄청난 경지에 올랐기에 그 마력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 그녀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

그때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카르나 님이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메르나 고것이 너한테 얘기 안 해줬나 보네? 걔 인간 아냐.”

“네?”

인간이 아니라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일까 싶어 카르나티우스 님에게 반문했다.

분명 메르나는 인간이라고 말했는데?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사기를 치나 싶어졌을 때 카르나 님이 말을 건넸다.

“트리오스라고 들어봤니?”

“트리오스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음, 8 에르프네임에만 있는 종족인데, 걔가 그 종족이거든? 쉽게 설명해서 트롤의 재생력을 가진 오크라고 보면 된단다.”

“오크요?”

“응, 평범한 오크랑은 조금 다르긴 한데 만나보면 알 거야. 근데 걔들 피가 인간하고 비슷하거든?”

“인간하고 비슷한 피를 가진 트롤 같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는 오크라… 그럼 피를 좀 많이 뽑혀도?”

“당연히 샘물 아니겠니? 그러니까 걔를 한 번 더 회귀시켜서 요한하고 붙이는 건 어떻겠니?”

카르나티우스 님의 제안을 들으니 혼란했던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트롤과 같은 재생력을 가진 녀석이라면 피를 많이 빨려도 금방 회복할 것이고 피를 빨려도 죽지 않는 대상의 피를 뽑는 것이기에 요한의 멘탈방어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한 번 더 회귀를 시켜야 한다는 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카르나 님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그 말씀은 녀석을 한번 죽여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그래도 돼요?”

“응, 회귀자 관리법 37조 27항에 나와 있어. 그런 경우에는 회귀자를 죽여도 아무런 책임이 없단다.”

“그럼 저 오랜만에 힘 좀 씁니다?”

“너무 심하게 쓰진 말렴, 나중에 최종 시험 볼 때 더 많은 제약이 걸릴 테니까.”

“넵. 그리고 조언 감사합니다.”

“얘는, 이 정도로 고마울 것까지 있니?”

“그래도요. 항상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훗, 잘 다녀오렴.”

카르나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선 뒤.

집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안젤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안젤라, 나 급한 일이 생겨서 8 에르프네임에 갔다 와야 하거든?]

[안젤라: 또요? 요즘엔 정말 스펙타클하네요. 맨날 빈둥거리던 게 일이셨는데.]

[이르카: 나 그래도 그렇게까지 빈둥대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아무튼, 성진아 씨가 또 무슨 사고 치나 유심히 지켜보다가 급한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줘.]

[안젤라: 음, 핵 쏠 때요?]

[이르카: 어, 음… 그건 뭐 알고 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사고 칠 때? 아니면 어떤 나라에 쐈는지만 알려줄래?]

[안젤라: 네~ 알았어요. 그리고 진짜 다치면 안 돼요?]

[이르카: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너무 힘 조절할 필요 없대. 허락받았어.]

언제 사고를 칠지 몰라서 가장 불안한 성진아에 관해 신신당부하고 난 뒤.

굳어있던 목을 좌우로 꺾으며 드래곤 하트를 심장에 박은 회귀자가 있다는 8 에르프네임으로 통하는 붉은 차원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반쯤 무너진 채 그 흉물스러운 몰골을 없애기 위해 불타고 있는 성벽에 피어난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을 쫓아 거대한 늑대를 타고 무참히 도륙하는 거대한 녹색 덩치들.

창칼에 난도질되어 죽은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와 투명한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컹컹-!

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찾아라!

네! 대장!

거대한 회색 늑대를 탄 커다란 덩치의 트리오스 기병들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바람결을 따라 몸을 뉘는 갈대 수풀 사이에 울려 퍼졌다.

흙이 잔뜩 묻은 거친 손으로 벌벌 떠는 딸아이의 입을 꼭 틀어막고 마른침을 힘겹게 삼키던 남자는 제발 지나쳐가길, 이 지독한 악몽이 현실이 아니길 신에게 빌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벌레의 울음소리도 하늘을 떠도는 공포에 잠식되어 사그라진 벌판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도 트리오스들의 거친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가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줬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흐으! 찾.았.다.”

이 세계에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남자가 딸아이를 아내에게 내던지며 소리쳤다.

“도, 도망쳐!”

“크흣! 여자는 죽여라! 남자는 내가 가진다!”

사선으로 가로지른 선명한 상처가 있는 트리오스 부대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기병들에게 외쳤다.

딸을 받아든 남자의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꺄아악! 아, 아빠!”

“금, 금방 뒤따라갈게! 커헉! 어, 어서 도망쳐!”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뱉은 남자는 이내 절망했다.

괴물 같은 트리오스들이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

“토실토실한 게 과녁으로 삼기 딱 좋은데?”

“크흣, 어린년은 죽이지 말라고 난 계집이 더 좋단 말이야.”

“조준 잘하라고! 또 계집의 골통을 날렸다가는 네 골통을 날려버릴 거야.”

“병신, 그 전에 네 골통이 날아가지 아무튼,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만 쏘면 되는 거 아냐?”

“흐흐, 뭐 하나는 죽여도 상관없겠지.”

나머지 트리오스 기병들이 음탕한 농을 던지며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활을 꺼내고는 입술을 혀로 적시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 때였다.

쿠우우우웅-! 파지직-!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분명 환한 달빛에 구름조차 모습을 감춘 밤하늘에서 갑작스레 벼락이 내리쳤다.

붉은빛을 머금은 벼락이 떨어진 자리.

남자의 바지를 거칠게 벗기고 있던 트리오스 부대장.

활시위를 겨누고 있던 트리오스 병사들.

그리고 겁탈당할 뻔한 아비와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있던 어미와 딸.

모두가 하늘에서 붉은 벼락이 떨어진 자리를 쳐다봤다.

착시였을까?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트리오스 부대장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옆에 있던 부대원에게 손짓으로 가보라 명령을 내렸다.

고개를 끄덕인 부대원은 조심스레 등에서 거친 무늬가 그려진 도끼를 꺼내 들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긴장감에 입이 타는 것 같은 마른 갈증을 느낀 부대원이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붉은 불길이었다.

그 불길이 핏빛보다 더 붉은 적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려 경고를 하려고 할 때.

푹-!

찌릿한 통증과 함께 가슴에 삐죽이 나와 있는 붉은색 검을 바라보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본 게 착각이 아니었구나.’

그게 그 트리오스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참혹했던 과거의 잔상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일까?

이르카는 격동하는 룬과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겨우겨우 진정시키고는 붉은 적안을 돌려 눈앞에 있는 모습을 천천히 둘러봤다.

지옥도, 아니 지옥보다 더 참혹한 모습이 펼쳐진 장소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이르카가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붉은 색 룬을 발동시키며 외쳤다.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모두 재가 되리라.”

“저, 적이다! 공격해!”

그제야 적이 나타났음을 깨달은 트리오스 부대장은 다른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석궁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파스스스-

손이 마치 재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것처럼 아니, 삭아 없어지는 것처럼 손목에서 팔뚝으로, 팔뚝에서 몸통으로.

주변을 둘러본 부대장은 다리부터 재로 변해가는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짜 신이 나타났구나.

그때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부대장의 귀를 붙잡은 이르카가 조용히 속삭였다.

“붉은 돌에 갇혀 윤회하며 평생 네가 지은 죄를 씻으리라.”

그 말을 끝으로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부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본 이르카가 한숨을 내쉬며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실례합니다? 쟤들 대장 어디 있는지 아세요?”

“네? 그, 그건 여기서 3일 정도 가면 있는데…….”

“꽤 머네. 이거 받고 멀리 도망쳐 숨어 계세요. 금방 끝나요.”

“이, 이런 귀한 것을!”

잡다한 약병과 처음 보는 신비한 식량이 담긴 일견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강철 통을 받은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이르카에게 질문을 건넸다.

“다, 당신은 신입니까?”

남자의 질문에 어딘가 모르게 처연한 미소를 지은 이르카는 그 대답을 대신 한 뒤 나타났을 때처럼 바람과 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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