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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21화 (21/121)

21화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성진아가 거머쥔 빛나는 소원권을 바라봤다.

결국, 그녀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

사실 강태식이 최후의 발악으로 숨겨왔던 힘인 SS급 ‘무한의 검격’ 스킬을 발동할 때는 안젤라와 함께 깜짝 놀랐다.

저번 회귀 때 쓰던 SS급 스킬과는 전혀 다른 스킬이라는 것보다 철저하게 암살자와의 대결만을 염두에 둔 점이 더 놀라웠다.

그때 안젤라가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건네왔다.

“이르카 님은 다 보셨죠??”

“응, 안젤라는?”

“중간에 부딪혔을 때 너무 빛이 강해서 잘 안 보이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강태식이 스킬을 쓸 때 하늘에서 검이 미친 듯이 떨어져 내렸잖아?”

“네, 보고 깜짝 놀랐어요. 보고서에 적혀있던 스킬하고는 전혀 다른 거라서.”

“아마 성진아하고 마지막으로 싸울 때를 대비해서 익히고 있던 스킬일 거야. 저거 끝까지 다 익히면 보이지 않는 대상을 따라가는 기능도 있으니까.”

“와, 그거 너무 사기 아니에요?”

“…원래 그 정도 등급쯤 되면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죄다 사기야.”

실제로 아직 숙련도나 완성도가 부족해 불안정하게 쓰이지만 않았다면 성진아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종 보스를 향한 공격에 성진아가 휘말려 죽었다면 이건 회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성진아의 패배로 기록될 수도 있는 상황.

강태식은 성진아를 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부를 포기하고 자살하러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판결을 내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계속 당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강태식의 노련함이 빛을 발할 수도 있었다.

“그럼, 성진아 씨가 어떻게 해서 소원권까지 뺏은 거예요?”

“사실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어.”

“도박이요?”

“응, 가브리엘 님의 물병으로 떨어져 내리는 검을 막았거든.”

“……?”

“임기응변이긴 했는데, 같은 광(光) 속성이라 위력이 반감된 거지.”

어안이 벙벙해진 안젤라를 바라보며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재차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성진아는 강태식이 스킬을 발동함과 동시에 최종 보스에게 달려들었다.

강태식의 공격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격이라고 생각한 듯 그녀는 가브리엘의 물병에서 나오는 물을 최종 보스의 입에 쑤셔 넣고는 물병을 이용해 최종 보스의 급소와 자신의 급소만 철저하게 방어했다.

그 뒤 너무 강력한 성수가 몸에 직접 들어와 고통에 떨던 최종 보스의 목을 간발의 차이로 직접 친 것.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한 그녀의 집념이 일궈낸 결과였다.

물론, 가브리엘님이 선물로 넣어준 백합 한 송이가 아니었다면 물병이 깨졌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물체에 한순간 신성력을 부여해주는 신성한 백합 덕분에 물병은 같은 속성의 공격에서 무사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성진아와 최종 보스의 목숨을 지켜줬다.

강태식이 불쌍해질 지경이었지만,

원래 인생은 운구기일(運九技一)이다.

강태식은 운이 없었고,

성진아는 운이 좋았다.

상실감이 컸는지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기절해버린 강태식을 물끄러미 바라본 성진아가 고개를 들고는 나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성, 성녀로군요.”

“아? 요한 님 오셨어요?”

“저 빛! 신성한 가브리엘 님의 빛 아닙니까! 오오! 대천사의 축복이 그녀에게 감돌다니! 신의 기적입… 쿨럭!”

성진아의 주변에 흘러나오는 강력한 신성력을 본 요한이 감동한 듯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황당하게 지켜보던 안젤라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저거… 템발이잖아요.”

“그치, 가브리엘 님의 물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에 저런 거니까.”

“요한 님 죽는 거 아니에요? 벌써 피를 한 바가지나 흘리고 계시는데?”

“저 정도에 죽을 거면 진즉에 죽었겠지.”

“아… 수혈은 필요 없겠네요.”

“응, 가서 스테이크 좀 구워줄래? 하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요한 님이 드실 거죠?”

“응, 죽지는 않아도 며칠 앓아누우면 안 되니까.”

“네, 알았어요. 일단 요한 님 좀 말려봐요. 카펫 청소가 얼마나 힘든데…….”

“응, 알았어.”

몸에서 신성력을 줄줄 흘리는 성진아를 바라보며 감동한 듯 기도를 올리는 요한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요한 님, 기도 중에 죄송하지만, 카펫에 피를 토하시면…….”

“이런! 제 실수입니다. 이렇게 멍청할 때가 있다니. 민폐를 끼쳤군요.”

“…….”

“…….”

“…요한 님.”

“네, 네네? 무, 무슨 일이신지요.”

“지금 불안하시죠?”

“아, 아닙니다. 그냥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빈혈이 온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두 손을 모았다가 다급하게 떨어트렸다 하는 요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달달 떨고 있는 입술과 손을 바라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한은 정말 희소한 질병에 걸린 것이다.

바로 기도중독증.

요한은 중증 기도중독자였다.

피로 범벅된 카펫을 치우고 신문지를 깔아놓고 요한에게 말을 건넸다.

“카펫은 제가 빨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오오! 이르카 님, 신의 축복이! 있을 겁…….”

또다시 기도를 올리는 요한의 등을 몇 번 두들겨 주고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하늘소의 고기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굽고 있던 안젤라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요한 씨부터 처리하자.”

“네?”

“이러다가는 집무실이 완전 피범벅 될 거 같아.”

“아직 이스마엘 씨가 결혼식을 하려면 멀었잖아요?”

“어떻게든 앞당겨야지. 어휴! 이 카펫 좀 보라고. 이게 얼마짜린데!”

“이르카님이 빠실 거죠?”

“어? 음… 그게 번개의 정령왕하고 얘기도 해봐야 하고. 또 헤라클레스 녀석한테도 일정 조율을…….”

“요한 님을 누가 여기에 데려왔죠?”

“그, 그건!”

“핏자국 남기 전에 얼른 가서 빠시죠? 그리고 다 들었거든요? 직접 빠신다면서요?”

“알았어.”

저지른 죄가 있기에 이건 어쩔 수 없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근처에 있는 강가에서 카펫을 빨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일정 조율을 위해 번개의 정령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야, 뤼슈타. 뭐하니?]

[상대방의 응답이 없습니다.]

[이르카: 너 결혼식 언제 할 건데? 결혼식 비용 회수한다?]

[뤼슈타: 아! 바쁜데 왜!]

[이르카: 노는 일이 더 많은 녀석이 뭐가 그렇게 바쁜데.]

[뤼슈타: 응? 궁금해? 그러면 너도 나한테 장가오든가. 잘해줄게♡]

[이르카: …사양한다.]

[뤼슈타: 쳇! 까탈스럽기는 근데 왜 그러는 건데? 19번째 결혼식은 다음 달에 하기로 했잖아?]

[이르카: 이스마엘 녀석이 있던 곳에 보내야 하는 회귀자가 있는데 결혼식 전에는 정령계 소속이 아니잖아.]

[뤼슈타: 그래? 정 원한다면 앞당겨 줄 수도 있긴 한데…….]

[이르카: 그러면 앞당겨줘.]

[뤼슈타: 좋아! 나랑 한번.]

[이르카: 닥쳐.]

[뤼슈타: 어머, 나쁜 남자 컨셉이니? 근데, 나는 나쁜 남자도 좋다?]

[이르카: 시끄럽고, 당겨줘. 대신 이번에 재밌는 거 보여줄게.]

[뤼슈타: 재밌는 거? 뭔데?]

[이르카: 헤라클레스랑 내기 한 게 있는데…….]

헤라클레스와 한 내기에 관해 한참을 설명하자 그녀는 미친 듯이 웃더니 재밌는 광경을 보게 될 것 같다며 곧바로 승낙했다.

결혼식은 일주일 뒤.

아마 다른 신들은 지금 내가 보는 것 이상의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의 컨셉을 어떻게 해야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더러워진 카펫을 벅벅 빨기 시작했다.

* * *

5일 뒤.

소파에 앉아서 관리하는 회귀자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주문하고 있을 때 안젤라가 다급하게 뛰어오며 말을 건넸다.

“지, 지금 4지구 채널 한번 보세요.”

“응? 성진아 씨?”

“네! 빨리요!”

무슨 일이 또 벌어진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4지구를 비추는 채널을 틀자마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두운 방에서 성진아와 독대를 하는 남자를 바라본 순간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최적의 상대를 찾아간 것.

포마드로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문하듯 질문을 건넸다.

[한국의 헌터가 이곳까지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곳은 좀비 역병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하던데요?]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나요?]

[흠, 조금 다르죠. 한국은 의문의 암살자 덕분에 수뇌부가 궤멸한 상황이었고 미국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골치가 아픈 건 사실 아닌가요? 왜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좀비 역병이 미국에도 커다란 타격을 준 건 사실이니까요.]

[저희는 막을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대도시는 이제 조금씩 정상화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저력을 무시하는 발언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네요.]

남자의 말에 성진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에 했다.

실제로 미국은 언제나 최강의 국방력과 자본력을 자랑하는 나라였다.

야생과도 같은 국제정치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다는 증거를 언제나 내놨으니까.

S급 헌터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도 미국이었고 좀비 사태를 가장 빨리 대처한 곳도 미국이었다.

[그런 사실은 잘 알고 있죠, 그런데 하와이에 나타난 소원의 탑이 이미 클리어되었다는 걸 아시나요?]

[뭐라고요! 그 괴물 같은 곳이 클리어되었다는 말입니까?]

[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하시면 하와이에 가보시면 알 거예요.]

[어, 어떻게?]

[아, 협회장님께서는 한번 실패하셨죠. 그 대가로 S급 헌터를 10명이나 잃었고요.]

[후우… 아픈 기억을 쑤시는 취미가 있으신가 봅니다? 이곳은 미국이에요 성진아 헌터님?]

미국 헌터 협회장 트리스탄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성진아를 잠시 노려봤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그의 말은 성진아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성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소원권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는 않으신가요?]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당연히 한국에 발생한 좀비 역병을 없애는 데 쓰셨겠죠.]

[설마요. 미국의 정보력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나 보네요.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나요?]

[그거야 강태식 헌터와 계속 대립각… 어?]

트리스탄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성진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연히 미국은 좀비 사태로 인해 많이 위축되기는 했어도 정보력은 세계 최고로 꼽히는 나라.

당연히 성진아에 대해 자세히 파악했을 것이고 최고의 헌터로 손꼽히는 강태식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호기롭게 소원의 탑을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강태식의 의견을 반대했던 인물이 바로 성진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트리스탄이 깍지를 낀 손을 턱에 가져다 대며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소원권. 가지고 있으신가요?]

[지금, 그 문제에 관해 협회장님과 협상을 하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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