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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8화 (18/121)

18화

갑작스럽게 벌어진 돌발 상황에 강태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번 회귀 전 소원의 탑을 클리어했을 때 분명 상층부에서 나왔던 괴물들이 1층에 들어서자마자 나온 것은 물론 몰려나온 괴물들의 숫자도 한 번에 상대하기엔 너무 버거운 숫자였다.

발걸음을 뒤로 돌릴 수도 없었다.

보스를 사냥하기 전에 입구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미 알고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괴물들과 힘겹게 사투를 벌이던 강태식은 다른 헌터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하고 있는 소머리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끄아아아! 꺼져라!”

8층의 보스형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한 손으로 다른 헌터의 목을 꺾으며 자신을 향해 겁 없이 달려드는 벌레를 바라봤다.

미노타우로스는 감히 벌레 같은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덤벼들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흥분한 미노타우로스는 붉은색 안광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달려오는 강태식과 그 뒤를 따라오는 헌터들을 향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므어어억-!

“끄윽!”

“으, 으아! 몸, 몸이!”

콰직-!

자신보다 약한 생명체에게 극심한 공포를 안겨주는 피어에 적중당한 헌터들을 짓밟아 한 줌 핏물로 만들어버린 미노타우로스가 거센 콧김을 내뿜었다.

“이런 씨발! 용철아! 준태야!”

탕-! 타당-!

허무하게 부하를 잃은 강태식이 흥분해 손에 쥐고 있던 리볼버가 과도한 마력으로 불탈 때까지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엄청난 마력이 집중된 마력 탄에 적중당해 주춤거리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강태식이 달려드는 찰나.

쓰걱-!

툭.

섬뜩한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내렸다.

쿠웅-!

곧이어 목을 잃은 미노타우로스의 몸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고 강태식은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한 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온통 검은색 옷과 검은색 복면.

단 한 가지 알아볼 수 있는 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

강태식은 머리끝까지 화가나 그녀에게 외쳤다.

“너, 너 이 씨발! 네년 짓이었냐!”

미노타우로스의 막타를 빼앗은 존재는 다름 아닌 성진아.

그녀라는 증거는 없었으나 이런 짓을 할 자는 무조건 성진아밖에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강태식이 계약이고 뭐고 들고 있던 칼을 휘두르려 할 때.

성진아는 복면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강태식에게 분홍색 병을 내던졌다.

“감히! 이딴 걸!”

챙! 쨍그랑-!

흥분한 그가 폭발물로 보이는 분홍색 병을 칼로 베자마자 그 안에 있던 액체가 강태식의 몸에 튀었다.

뭔가 비릿한 향이 나는 액체가 강태식의 몸에 묻은 것을 바라본 성진아가 피식 웃더니 와이어를 천장에 연결해 그대로 도망쳤다.

“감히! 어딜 도망가는 거냐! 계약이고 나발이고! 넌 뒤졌어!”

그때 강태식에게 자신의 관리자인 대영웅 헤라클레스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헤라클레스: …발정제.]

“……?”

그가 왜 갑자기 발정제를 말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강태식은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쿠어어어-!

쿠어-!

모든 괴물이 다른 헌터들을 공격하던 행동을 멈추고 강태식을 둘러싸기 시작한 것.

개중에는 붉어진 얼굴로 콧김을 내뿜는 녀석들도 있었다.

기분이 더러워진 강태식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치더니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외쳤다.

“내가 괴물을 막겠다! 전열을 정비하라!”

“대, 대장! 위험합니다!”

“아니! 너희들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 내가 길을 열겠다! 부상자들을 먼저 치료해라!”

하늘을 힐끔 바라본 강태식은 이내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연기가 감동적이었길 바랐다.

* * *

엉망진창.

소원의 탑 내부 상황은 지금 딱 그 말이 어울렸다.

아니,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라가 내게 말을 건네왔다.

“쟤 지금 알리바이도 만들어 놓았네요?”

“응, 분신은 지금 한국에서 순찰 돌고 있으니까 나중에 딴지도 못 걸지.”

성진아가 구매한 꼭두각시 인형의 춤은 별다른 전투 능력은 없는 대신 그녀의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와 평소 그녀의 행동까지 똑같이 따라 한다.

지금 이런 용도라면 최고의 선택인 스킬.

그때 혼자서 괴물들을 미친 듯이 썰어버리고 있는 강태식을 바라본 안젤라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건네왔다.

“음… 성진아는 강태식이 소원의 탑에 들어가길 오히려 노린 거네요.”

“처음부터 노린 건 아니었을 거야. 다만, 강태식이 들어간다고 하자마자 이 방법을 빠르게 생각한 거지.”

“그런데 왜 저렇게 위험한 짓을 해요? 사실 성진아 씨는 전면전이 특기가 아니라 괴물들한테 둘러싸이면 위험하잖아요.”

“음, 선택할 수단이 별로 없었을 거야.”

“선택할 수단이요?”

“응, 성진아는 지금 좀비 사태가 일찍 끝나면 손해거든.”

실제로 좀비 사태가 일찍 끝난다면 성진아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은 대부분 다른 헌터들과 힘을 합쳐야 하는 사건이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헌터를 이끄는 강태식이 소원의 탑을 클리어해 좀비 역병을 없앤다면 앞으로는 성진아가 무조건 불리해지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그녀를 지지해주는 지지기반이 헌터들이 아니었으니까.

계속해서 그녀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르카 님.”

“응?”

“아까 메르나 님이랑 무슨 계약 하신 거예요?”

“아, 별거 아냐. 그냥 흑화한 회귀자 하나 잡아달라는 거지.”

메르나와의 계약에 대해 대답을 한 뒤 다시 거울을 집중해서 보려고 했을 때 안젤라가 도끼눈을 치켜뜨고는 노려봤다.

“이르카 님 혹시 미치셨어요?”

“안 미쳤는데? 그보다 안젤라 말버릇이 점점 고약해지는 거 같…….”

“아니! 그런 악성 계약이면! 당연히 뭔가 문제가 있을 거 아니에요! 왜 도와주세요? 호구예요?”

“안젤라.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지금 도와줄 생각은 없어.”

“어쨌든 도와준다는 거잖아요! 이해가 안 되네. 빨리 신이 돼야…….”

흥분해서 앞뒤 안 가리고 말을 내뱉는 안젤라의 말을 빠르게 끊었다.

뭐, 그녀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전혀 흥분하지 않아도 되는 거래였기 때문.

“안젤라, 내가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하고 올 거 같아?”

“…차라리 사기를 치고 오지 당하고 오진 않죠.”

“잘 알고 있네. 그럼 내가 이번에 메르나 고것이 꾸미는 꿍꿍이가 뭔지도 모르면서 받아줬을까?”

“메르나 님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어요?”

“뭐, 내가 예언의 신이 아니니까 모르긴 하지만, 예전에 비다르한테 한 짓을 보면 당연히 뭔가 있겠지.”

메르나가 비다르에게 사기를 친 일은 아직도 유명하다.

덕분에 비다르는 최종시험까지 가는 데 몇백 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거기서 떨어지기 전까지 메르나가 비다르에게서 도망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는 일이었으니까.

“비다르 님한테 사기를 쳤었어요? 그분 반신반거인 아닌가? 메르나 님이 안 찢겨 죽은 게 신기하네.”

“응, 맞아. 템발이 좀 있었지만, 라그나로크에서 펜리르를 찢어 죽인 녀석. 순수 완력은 헤라클레스나 나보다 셀걸?”

“근데, 그런 분한테 사기를 쳤다고요?”

“워낙에 말이 없고 순하니까 사기를 치기는 딱 좋은 타입이기는 하지.”

“하긴, 저도 처음 그분 봤을 때는 벙어리 신인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기였어요?”

“계약자 뺏어오기.”

“네?”

“말 그대로, 크게 터질 싹수가 보이는 계약자를 뺏어온 거야. 사기 쳐서. 실제로 크게 터졌고.”

“와… 그런데도 이르카 님은 메르나 님을 도와주겠다고 하신 거예요?”

“응, 상대가 드래곤 하트를 먹었다면 이건 그냥 공짜니까. 얘들은 내가 반신반용인 거 모르잖아.”

“아, 맞다. 다들 이르카 님 반신반인으로 생각하고 있겠구나. 뭐… 그럼 별일 없겠네요.”

안젤라는 그제야 안심을 한 듯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에 들어갔고 나는 재빠르게 거울을 켜 성진아가 뭘 하는지 다시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헤라클레스의 집무실.

어두운 밤하늘을 다급하게 날아온 메르나가 집무실 바깥에서 부엉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으오 후-우후-!

잠시 후 슬그머니 열리는 문에서 빛이라도 새어 나올까 싶어 조심스레 집무실 내부로 들어간 메르나는 책상에 앉아있는 헤라클레스에게 짜증이 섞인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야! 덕분에 뒤지게 처맞을 뻔했잖아!”

“갔던 일은?”

“하아, 이르카랑 계약은 했어.”

“왜 한숨이야? 이건 네가 먼저 제안한 거잖아.”

“이르카가 안젤라랑 무슨 말 하는지는 도무지 안 들리더라.”

“들었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네 말을 안 들을 테니까.”

“뭐? 중요한 정보가 나와도?”

“어, 1등 자리는 놓치기 싫어서 네가 제안한 걸 받아들이긴 했어도 이번 경쟁에서까지 꼼수를 쓰기는 싫거든.”

“마누라한테 잡혀 사는 주제에 잘난 척은.”

“…아무튼, 이르카 그 녀석이 그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거지?”

“그렇다니까? 사실대로 말하니까 의심도 안 하던데? 제힘을 너무 믿는 거지, 솔직히 제약 걸린 상태에서 드래곤 하트를 처먹은 놈을 어떻게 막아.”

그 후 영웅으로 죽은 뒤 회귀를 하고는 악당으로 흑화한 악성 계약자에 관해 쉴 새 없이 설명하는 메르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헤라클레스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이르카가 급격히 쫓아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메르나가 계획한 일에 동참은 했지만,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도무지 감출 수 없었다.

“…아무튼, 걔 진짜 더럽게 세다고. 이르카라고 해도 얘 회귀 못 시켜. 수명도 더럽게 길어서 최종심사에도 못 가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1등은 네 차지고 다음번 심사에는 내가 1등으로 올라갈 테니까.”

“비다르가 아직 이를 갈고 있을 텐데?”

“뭐, 어차피 한번 최종심사에서 떨어져서 나랑 카르마 수치가 많이 차이 나는데 제가 무슨 수로 쫓아올 거야.”

실제로 메르나의 현재 순위는 4위.

그것도 이르카와는 그리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메르나가 이르카보다 관리자가 된 것이 800년은 더 빨랐기에 그 시간의 간격 덕분이었지만.

3위인 다른 이계 출신 관리자 오르카손 같은 경우 헤라클레스보다 더 빨리 관리자를 시작하고도 거의 제자리걸음이었으니 메르나가 이렇게 자신만만할 만하긴 했다.

그런데도 헤라클레스는 계속해서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이르카는 절대 이런 계략에 쉽게 빠질 인물은 아니었다. 쉽게 당해주는 척하며 어떠한 계략을 세우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시각 이르카는 카르나티우스의 집무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카르나 님. 만두 가져왔는데요.”

“얘, 그걸 지금 먹으라고? 살쪄 나중에 먹을래.”

“그러면 여기 놓고 갈까요?”

“아니, 있으면 먹고 싶어져. 다시 가지고 가.”

“그냥 제가 다 먹습니다?”

“싫어! 광철 아저씨가 직접 만든 거라면서!”

이르카는 카르나티우스의 어처구니없는 투정을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표정을 굳히며 정중히 말을 건넸다.

“저 지금 4지구에 집중하기 바쁩니다. 지금 하이라이트인데 만두 가져오라고 부르셨잖아요. 그런데 왜 다시 가져가라는 건데요?”

“메르나랑 한 계약 말인데. 그거…….”

“알고 계약한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말 자른 거니?”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미천한 절 걱정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린 거죠.”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이르카를 잠시 쳐다본 카르나티우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얘, 넌 연기할 때 너무 티 나.”

“뭐, 다른 애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데요, 아무튼 이번에 4지구 일 끝나면 그곳에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아! 지금 성진아한테 메시지 좀 보내렴.”

“네? 그게 무슨…….”

“걔 이번에 또 죽으면 회귀할 수 있니?”

“네!?”

“지금 또 회귀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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