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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5화 (15/121)

15화

점차 자신이 불리해져 감을 느낀 강태식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의 행적을 짚으며 의문점을 제시했다.

“성진아 헌터님께서는 ○월 ○○일부터 ○월 ○○일까지 두문불출하셨더군요, 그 이유가 뭡니까?”

강태식은 그녀가 당연히 대답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그날은 인천에서 그가 거느리던 헌터들이 떼죽음을 당한 날이니까.

오히려 그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치명적인 증거를 남겼다.

그동안 성녀로 추앙받던 성진아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은 점과 함께 의문을 제기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그녀의 추악한 모습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회심의 반격을 한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강태식은 굳은 표정의 성진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심장에 비수를 꽂기 위해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제가 이끌던 헌터 여러분들이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좀비로 변한 인천에서 성진아 헌터님이 발견된 사진입니다. 왜 이곳에 갔었죠?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깔끔하고 치명적이었다.

이제 그녀가 반격할 카드는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그때 성진아가 품에서 수상쩍은 초록색 액체가 담긴 병을 꺼내 들었다.

“이게 보이십니까?”

“그게 뭐죠?”

“좀비 역병의 근원인 바이러스를 담은 병입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라디오를 통해 강태식과 성진아의 치열한 설전을 듣던 사람들도 깜짝 놀랄 만한 충격적인 답변.

완벽한 자충수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감을 느낀 강태식은 그녀가 왜 이런 자충수를 뒀을까 곰곰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내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 남은 잡생각을 떨쳐버린 강태식은 그녀의 자충수를 더욱 파고들기로 했다.

“좀비 역병의 근원이라… 그러한 것을 어떻게 가지고 있으신 거죠? 혹시, 성진아 헌터님께서…….”

“제가 새로 얻은 능력 중 성분분석이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분분석이요?”

“네, 사물의 성분을 분석하는 능력입니다. 또한! 이 역병의 성분을 분석해 그에 맞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떠돌아다닌 것이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그것과 인천에 나타나신 이유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군인의 난입으로 인해 잠시 과열되었던 토론의 진행이 끊겼다.

강태식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일어난 군인에게 말을 건넸다.

“말씀하시죠.”

“쉘터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새로운 쉘터를 찾기 위해 떠나신 성진아 성녀님이 인천에 나타난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시고 긴급히 지원 요청을 하시더군요…….”

군인의 말을 계속 이어졌고,

사람들은 성진아가 어떻게 성분분석이라는 능력을 얻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말한 그 능력을 얻으면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의구심을 가지고 토론을 지켜보던 좌중은 그녀의 숭고한 희생에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과, 과연 성녀님… 자신의 전투능력을 잃으면서도 그런 숭고한 결정을 하시다니.”

“흐흑, 성진아 씨야말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이다!”

“옳소! 강태식 씨는 어디서 성녀님을 모함하는 거야!”

“강태식은 꺼져라! 탑인가 뭔가로 들어가 버리라고!”

눈물바다가 된 토론장과 금방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아진 좌중을 둘러본 성진아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새로운 특성을 얻으면서 전투능력을 상실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소중한 생명과 제 전투능력? 과연 뭐가 더 중요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까?”

“오오! 성진아! 성진아!”

“저는! 앞으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좀비 역병의 치료제를 만들어 낼 것을 약속합니다!”

강태식의 이맛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지금 여기서 그 약품을 헌터들에게 이용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악의 축으로 사람들에게 매도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으니까.

짜증이 치솟은 강태식은 더 대화를 나눠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성진아가 마치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듯 강태식을 껴안으며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기대해. 넌 가장 처참하게 죽여줄 테니까.”

“지랄하고 자빠졌네. 조금 인기를 얻었다고 유세 떨지 마.”

“응? 이걸 어쩌나? 그 주둥이로 조잘거릴 날도 앞으로 11개월밖에 남지 않았네.”

“네 모가지가 떨어질지 내 모가지가 떨어질지는 모르지, 아? 넌 한번 떨어졌었지? 원한다면 한 번 더 떨어트려 줄게.”

“아무튼, 지금 진행하는 일 잘 해봐. 재밌어질 테니까.”

이죽거리는 강태식의 등을 두드려준 성진아는 그의 손을 붙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마치 정치인들이 선거유세를 펼치는 것과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난 뒤.

사람들은 자신을 공격하던 강태식까지 감싸는 성진아의 포용력에 더욱더 감탄을 내뱉으며 그녀를 칭송했다.

* * *

강태식과 성진아의 치열한 설전이 끝나고 난 뒤. 그녀가 앞으로 취할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거 꽤 재밌는 일을 벌이려는 모양.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안젤라에게 보고서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안젤라! 성진아 씨 보고서 좀 가져와 줘!”

“거기 책상 위에 놔뒀어요.”

“벌써? 엄청 빠르네?”

“제일 먼저 찾으실 게 그거잖아요.”

“고마워, 그리고 사과 좀 깎아…….”

“이거 카르나님이 저 먹으라고 주신 거든요? 드시고 싶으시면 5천 포인트만 주세요.”

“그럼 커피…….”

“흐흫, 가져다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성진아가 그동안 활동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던가?

성진아는 실제로 인천에 있는 던전을 공략하기는 했다.

문제는 거기서 얻은 게 성분분석이 아니라는 것과 그 일은 단순히 알리바이를 만드는 용도였다는 것뿐.

그녀의 전투능력은 온전하다.

사실, 전투능력을 잃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는 했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성진아의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이거 재밌게 진행되겠네.”

“뭐가 재밌게 진행돼요?”

탁-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 한 잔과 껍질을 토끼 모양으로 깎은 황금사과 한 접시를 내려놓은 안젤라가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나 이제 포인트 없는데?”

“응? 안 드실 거예요?”

“잘 먹을게!”

안젤라가 가져온 황금사과를 먹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지금 성진아 씨가 사람들 앞에서 면역 포션을 개발한다고 공언했잖아?”

“그렇죠.”

“그런데 그녀는 이미 포션을 가지고 있어. 안젤라도 기억나지?”

“어? 그러네요?”

“이미 가지고 있는 면역 포션을 개발한다고 거짓말을 하면 그녀가 얻는 게 뭐겠어?”

“음… 시간?”

“그렇지. 시간을 버는 거야.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아 면역 포션을 만들려고 두문불출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겠지.”

“근데 그렇게 시간을 벌어서 뭐 하려고 하길래 재밌어져요?”

안젤라의 의문은 타당했다.

그녀가 시간을 벌어서 뭘 할지는 그녀만 생각하고 있는 문제일 테니까.

그녀가 타온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는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자신의 포지션을 바꾸기 위해서지.”

“네?”

“방금도 사람들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려서 그렇지, 답변 자체는 깊게 파고들면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거든?”

“무슨 문제가 있었어요?”

“응.”

거울을 돌려 성진아가 말하던 부분을 다시 되감았다.

인천에서 찍힌 사진.

그리고 쉘터를 찾기 위해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말까지 모두 튼 뒤 안젤라를 바라봤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인천에서 헌터들이 몰살당하던 날. 거기서 왜 사진에 찍혔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은 맞지.”

“근데 그걸 사람들이 왜 눈치를 못 채요?”

“안젤라도 눈치 못 챘잖아?”

“뭐라고요!?”

안젤라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기 전 헛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사람들의 이미지에 성진아는 지금 성녀야.”

“그렇죠.”

“당연히 그 현장에서 사진이 찍혔다고 한들 어떠한 숭고한 이유로 근처에 있었고 ‘우연히’ 그 사진을 찍혔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야.”

“그게 가능한가요?”

“지금 군인을 이용해서 그렇게 했잖아?”

실제로 증인으로 나선 군인의 말을 듣고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이해를 했다.

거기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당연히 두 눈에 콩깍지가 씔 수밖에.

“근데, 그렇게 해서 이제 포지션을 어떻게 바꾼다는 거예요?”

“아 그건…….”

그때였다.

쾅! 쾅!

문이 부서지라 두들기는 걸 보아하니 또 근육 돼지 헤라클레스 녀석이 찾아온 모양.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어줬다.

“야! 너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아, 또 왜!”

“닥치고 따라와. 너 이거 사기잖아!”

“내가? 뭘?”

“야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정산 보고서 받아보니까 딱 감이 오더만!”

“무슨 감? 너 감 떨어진 지 오래잖아.”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기실까?”

“내 혓바닥이 길어? 판을 키워놨는데 강태식이 계속 처발리니까 쫄리냐?”

“하! 계속 그렇게 나오시겠다?”

헤라클레스가 갑자기 콧김을 내뿜으며 내 멱살을 붙잡았다.

나도 질세라 녀석의 멱살을 마주 잡고는 녀석을 도발했다.

“꼬우면 한판 붙던가, 어디서 붙을까?”

“진짜 붙자고? 예전에 처맞은 거 기억 안 나냐?”

“그러는 너는? 예전에 나한테 발린 거 기억 안 나는 모양이네?”

이 자식이 뭘 알아챈 거지?

태연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녀석의 표정이 성난 멧돼지 같아 보이는 걸 보니 뭔가 알아챈 모양.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안젤라가 우리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두 분! 또 예전처럼 싸우시다가 어디 박살 내기라도 해봐요! 바로 카르나 님한테 이를 거예요!”

““안 싸워!””

안젤라의 구박에 헤라클레스 녀석과 동시에 소리쳤다.

그러자 눈에 습기가 차오른 듯 울먹인 안젤라가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붙잡고 있던 멱살을 풀며 헤라클레스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야.”

“왜.”

“일단 사과하고 오자.”

“그래야겠지?”

“응, 카르나 님한테 뒤지기 싫으면.”

“그, 그래.”

안젤라에게 사과를 마치고 난 후.

그녀를 겨우겨우 진정시키고는 식탁에 앉은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뭔데? 뭐가 불만인 건데?”

“너 계약 7:3 아니지?”

“7:3 맞는데?”

“지랄. 총 포인트는 내가 더 높은데 떨어진 포인트는 네가 더 높은 건데?”

뇌까지 근육은 아닌 놈이라 그런지 이런 건 빨리 알아차리는구나.

하지만 녀석에게도 약점은 있다.

시침을 떼듯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와, 이렇게 치졸하게 나오기야? 대단하네,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하시고, 아주 대단한 영웅 납셨어. 자기도 6:4로 계약해놓고는.”

“…비꼬지 말고, 너 그렇게 사기 치고 다니면 다른 반신들의 위명도 깎아 먹는 거야. 다른 회귀자들한테 소문이라도 나봐라. 너랑 누가 계약을 하나!”

오호라, 다른 회귀자를 건드렸다 이거지?

“그러면 나랑 내기하나 할까?”

위기는 기회로 바꾸는 법.

어리둥절해 있는 헤라클레스 녀석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내가 다른 회귀자랑 9:1 계약을 따내는지 못 따내는지.”

“미친놈, 그런 노예계약을 하는 놈이 어디 있어. 대가리에 벼락 맞지 않은 이상 누가 그딴 쓰레기 같은 계약을 하냐?”

“만약에 따내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내 손에 장을… 아니, 이 문제는 안 걸고넘어진다.”

“겨우? 그걸로 퉁?”

“진짜 네가 그런 계약을 따내면 팬티만 입고 네놈 채널 홍보영상 찍어주마! 그리고 행성 계약권 두 개도 넘겨주고!”

“진짜?”

“내가 너처럼 구라만 치는 놈으로 보이냐?”

“오케이! 그러면 계약 성립이다?”

헤라클레스와 계약서를 작성한 뒤.

손님방의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요한 씨. 잠깐 나오셔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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