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뱀파이어는 어둠에서 강한 힘을 얻는 대신 빛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물론, 해가 쨍쨍 떠 있어도 걸어 다니는 뱀파이어들도 있기는 하지만…….
황당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요한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가능한가요?”
“그건 저도 모르죠.”
“혹시 태양 밑에서 걸어 다닐 수 있으신가요?”
“그 정도 수련은 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갈릭 스테이크입니다. 물론 레어로 구운 걸 가장 좋아하지요.”
“은에 대해서는?”
요한은 목에 차고 있는 은빛 목걸이를 내 앞에 보여줬다.
눈으로 성분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은으로 만들어진 물건.
수련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이런 데는 면역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신선한 피를 아직 갈구하고 있지 않을까?
“혹시 사람들의 피를…….”
“제 취미는 헌혈입니다.”
“넵.”
얘기를 듣고 나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물론, 뱀파이어가 성직자가 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다만 진짜 회귀를 시켜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요한이 말을 건넸다.
“힘드실까요? 개인적으로 이번에 이르카님의 채널을 보면서 후원도 많이 했는데…….”
“아 그래요? 제 채널 중에서 어느 걸 가장 즐겨보셨나요?”
“4지구에 관한 채널입니다. 그곳에는 사악한 악의 무리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넘쳐 흐르더군요. 그들이 신의 뜻을 섬길 수 있도록 구원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요한을 빤히 바라봤다.
미친놈아 거기 가면 네가 악의 축이야, 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겨우겨우 참았다.
실제로 헌터 세계에서 나오는 고위 괴물 중 하나가 뱀파이어.
즉, 괴물로 오해를 받고 사냥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어딜 가나 비슷하겠지만.
골치가 아파져 펜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 요한이 거래를 제안했다.
“회귀에 대해서 알아보니 포인트 정산비율이라는 게 있더군요.”
“네, 그렇죠. 저는 평균적인 비율을 제시합니다만?”
“1:9 어떻습니까?”
“네?”
“제게는 그저 부족한 이들에게 보태줄 수 있는 조금의 포인트만 얻으면 충분합니다.”
요한은 스스로 포인트의 10%만 먹겠다고 역으로 제안해 왔다.
그런데, 성직자가 되고 싶어 하는 뱀파이어가 과연 인기가 있을까?
차후 골치가 아파질 확률이 높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을 때 요한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제가 성직자가 된다면 관리자님께 드릴 수 있는 카르마 포인트는 10%입니다. 이미 여쭤본 것이고요.”
“10%요!?”
“네. 그래도 반선의 경지까지 올랐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포인트에 순간 혹해서 받아들일 뻔했지만, 이내 이성을 차렸다.
0.2%면 어떻고 10%면 어떤가?
내게 들어와야 쓸모있는 포인트 아닌가?
생각해보니 요한은 죽음을 맞이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가능성이 컸다.
“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역시나.
요한은 단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순혈의 뱀파이어.
이런 커다란 조건을 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 카르마 포인트가 제게 들어오려면 회귀를 끝내셔야 합니다. 즉, 죽어야 끝난다는 말이 되는 거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님께서 카르나티우스 님께 여쭤본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요한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동안 카르나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카르나 님! 필독 바람!]
[카르나티우스: 이르카야 죽고 싶구나? 필독 바람?]
[이르카: 죄송해요. 근데 진짜 급해서 그랬어요. 얘 안 죽어도 저한테 카르마 쌓이는 거 맞아요?]
[카르나티우스: 응. 워낙 특이한 경우라 회의를 좀 했단다. 특별하게 몇 가지 사명만 완료하면 회귀를 다시 하지 않도록 조항을 바꿨거든?]
[이르카: 사명이요?]
[카르나티우스: 응, ‘인간’한테는 뭐 어렵진 않아. 자기도 이미 알고 있을 거고.]
[이르카: 오호? 넵! 알겠습니다.]
이건 그냥 떠먹여 주는 건데?
카르나 님한테 앞으로 더욱 잘해야겠다.
환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요한에게 말을 건넸다.
“계약비율은 1:9 그리고 다른 추가조항은 없으신가요?”
“혹시 무대연출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음… 혹시 이런 것은 가능합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한번 말해주세요.”
“선교할 때 후광이라든가… 하는 특수효과를 좀 넣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요한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아챘다.
극적인 연출을 위한 투자는 가능하기는 하다.
단, 내 포인트에서는 못 해주지만.
“포인트를 내신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신의 길로 이끄는 것인데 포인트야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그런데 10%의 포인트로도 그런 효과를 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얻으시는 포인트가 너무 적으셔서…….”
“걱정하지 않으실 만큼의 포인트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아, 맞다.
얘 내 채널에 후원도 했었지.
포인트에 연연하지 않으니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하기도 하는 걸 테고.
다방면으로 이 계약이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계산해봤다.
내게 불리한 계약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4지구로 보내는 것은 보류.
그곳에 가면 무슨 난리가 날지 안 봐도 훤했다.
게다가, 성진아와 둘을 붙여놓는다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구를 중점으로 보는 신이 있고,
다른 세계를 중점으로 보는 신이 있다.
당연히 같은 곳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더 많은 포인트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계약하시죠.”
“그럼 전 4지구에 가게 되는 겁니까?”
“아뇨, 제가 관리하는 곳 중에서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머지않아 자리가 날 예정이거든요.”
“조금 아쉽군요. 성녀라 불리는 성진아 씨와 함께 활동하는 것도 좋아 보였는데 말이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같이 활동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4지구에서 강태식이 죽은 다음에 시들시들해지면 요한을 성진아와 붙여 줄 수도 있는 문제니까.
건네준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요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일단, 신선계에 머무르고 계시면 나중에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관리자님의 집무실에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이곳은 제겐 너무 삭막합니다.”
“신선분들하고 같이 지내시는 게 싫으신 건가요?”
“네, 이곳은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겠으니 조금 답답하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중간계에 있는 제 사무실에서 기다리시면 될 것 같네요. 제 비서에겐 말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르카 님. 신의 축복이 있으시길. 쿨럭!”
“……?”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졌다.
성호를 그으며 인사를 건네던 요한이 갑작스레 붉은 피를 토한 것.
그 황당한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요한이 입가에 흐른 피를 쓱 닦으며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번 있는 일입니다.”
“매번?”
“기도할 때나 신전에 들어설 때 몸에 약간 타격이 있더군요.”
“……?”
“하핫!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정도 시련에는 죽지 않으니까요.”
“……?”
“아무튼, 저는 길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이르카 님께서도 편안한 여행이 되시길 신께 빌겠습니… 쿨럭!”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흐른 피를 닦은 요한이 자신의 짐을 챙기러 떠난 뒤.
나는 그 자리에서 돌이라도 된 듯 굳어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기도를 드리면 피를 토하는 성직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거 똥 밟았다.
요한이 사는 저택을 나선 뒤.
힘없는 발걸음으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을 내려갔다.
산에서 내려와 만둣가게에 도착하자 광철 할배와 창표가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줬다.
“잘 만나고 왔느냐?”
“할배, 혹시 알고 있었어?”
“응? 뭘 말이냐.”
“거기 아들 말이야.”
“허허, 알고 있다마다.”
“기도할 때마다 피를 토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글쎄다. 그것까지는 잘…….”
이건 확실하다.
어물쩍 넘어가려고 뜸을 들이는 걸 보니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날 보내?
“응? 이르카 님 왜요? 요한 아저씨 또 기도하셨어요?”
“창표 너는 알고 있었구나?”
“네! 요한 아저씨 만두 드시러 오실 때마다 피 토하세요. 식사하시기 전에 꼭 기도하시거든요.”
창표의 말을 듣자 확신이 들었다.
이건 나를 엿 먹인 거나 마찬가지.
“이, 이르카야.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만두 한 판 서비스로 더 줄까?”
“할배. 이건 아니지.”
“이놈아 생각의 폭을 넓혀라. 흡혈귀도 신선이 되는 세상이다. 성직자라고 안 될 리가 없지 않으냐.”
“아니, 그렇다고 해도 기도할 때마다 피 토하는 성직자를 누가 믿어!”
광철 할배와 투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표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입에 자그마한 손가락을 가져다 대더니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르카 님. 성직자가 피를 토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당연히! 성직자가 하는 일이 뭐야! 병을 치료해주잖아! 그런데 성직자가 피를 토하면 무슨 병이라도……!”
어?
잠깐.
이거 잘하면 먹히겠는데?
극한의 컨셉충으로 간다면 오히려 일이 쉬워질 수도 있다.
생각의 전환을 하자 머릿속에 모든 시나리오가 잡혀갔다.
이것이 깨달음인가?
요한이라는 미친놈을 어떻게 써먹을지에 대한 해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을 때.
“할아버지, 이르카 님 왜 가만히 계세요?”
“잘 보아라. 이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허허.”
“그럼 이르카 님도 깨달음을 얻어 우화등선하시는 거예요?”
“에이, 이놈은 번뇌가 많아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할배 다 들리거든?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광철 할배와 창표에게 만두를 건네받은 뒤 길을 나섰다.
* * *
앞으로 요한이 활동하게 될 7아르카니아에 도착하고 난 뒤.
안젤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안젤라, 뭐 특이한 거 없어?]
[안젤라: 특이한 거는 없어요.]
[이르카: 성진아 씨가 사고 친 게 없어?]
[안젤라: 네, 그냥 평범했는데요?]
[이르카: 그런데 카르나 님한테 정산받은 포인트 보니까 거의 10만 포인트 이상 늘어났던데?]
[안젤라: 아, 그거요? 그냥 평범하게 예전에 고문하던 남자를 미끼로 쓴 다음에. 인천에서 강태식의 주력 중 25% 정도를 좀비로 만든 거밖에 없어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적대하는 자의 주력 중 25%를 좀비로 만들었다는 건 꽤 큰일 아니던가?
[이르카: 그게 평범한 거야?]
[안젤라: 지금까지 했던 게 있는데 이건 평범한 거 아닌가요?]
[이르카: …일단 알았어. 나중에 보고서 만들어서 보내줄래?]
[안젤라: 네에.]
하긴, 그동안 보여준 몇 번의 미친 짓을 보다 보면. 이 정도는 평범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이스마엘이 자리 잡은 숲속의 작은 농가에 도착했다.
푸르른 숲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고,
한적해 보이는 농가에는 흙 묻은 옷을 입은 이스마엘이 조그만 갈색 강아지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구구구! 그래쪄요?”
멍!
작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먹이를 주던 이스마엘이 잠시 하늘을 바라보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래! 역시 말 안 듣는 정령들보다는 네가 더 낫다!”
멍! 멍!
혀를 길게 내밀어 헥헥거리는 강아지와 놀고 있는 녀석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이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목표를 포기한 이유를 알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그때 내 기운을 느꼈는지 강아지와 놀고 있던 이스마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날 빤히 바라봤다.
이내 강아지를 품에 안은 녀석이 처량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이르카 님.”
“그래. 내가 왜 왔는지는…….”
“텔레포트!”
팟-!
“넌 뒤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