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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1화 (11/121)

11화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신선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툭 튀어나온 두 개의 송곳니.

“뱀파이어?”

“허허, 오랜만에 듣는구려. 내 신선이 되기 전 어둠의 일족이었던 건 맞소이다.”

“이거, 좀 놀랐습니다. 뱀파이어도 신선이 될 수 있군요.”

“모든 것은 만류귀종 아니겠소?”

만류귀종이 이걸 뜻하는 게 아닐 텐데…….

그는 마치 도를 닦은 도인처럼.

아, 신선이니까 진짜 도인은 맞다.

어쨌든, 처음 보는 뱀파이어 신선이었다.

그것도 회귀를 원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어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자 그는 이내 손짓으로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가길 권유했다.

“이쪽으로 오시겠소?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구려.”

“아, 네 알겠습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는 온갖 기괴한 물건이 가득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찻잔부터 먼지떨이, 빗자루 등등 모든 집안일을 알아서 하는 도구들.

몇 개 집어다 주면 안젤라가 정말 좋아할 것 같은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한눈에 봐도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더니 말을 건넸다.

“이리 와서 앉으시오. 내 물어볼 게 많소이다.”

“네, 어떤 걸 물어보고 싶으신 거죠?”

“음…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야 뻔한 것 아니겠소?”

“그렇다면 회귀 말씀이시죠?”

“그렇소.”

말을 잠시 멈춘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내 직설적으로 여쭤보겠소. 가능하오?”

“인외의 존재도 가능은 합니다만.”

“다만?”

“신선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존재. 회귀가 가능할지는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까…….”

힘들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을 건네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능하다는 소리는 맞습니까?”

“여쭤봐야 하겠지만 가능할 것도…….”

“아니, 인외의 존재도 회귀할 수 있다는 말 말입니다.”

“네, 인간만 회귀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간만 회귀하는 법은 없었다.

실제로 인간이 아닌 다양한 종족의 회귀자들과 계약을 맺고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괴물로 환생을 했는데 회귀를 한 경우도 봤다.

계약해본 적은 없지만, 다른 관리자가 관리하는 회귀자 중에 뱀파이어도 있긴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뱀파이어처럼 신선은 아니지만.

“내 진심으로 궁금한 건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요?”

“궁금하신 게 있으신 거 같은데 말씀하세요.”

“내 나이가 올해 600이 넘었소.”

“네.”

그의 뜬금없는 나이 고백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깜짝 놀랐다.

하긴, 여기 있다 보면 말투가 저렇게 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내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겠소.”

“넵. 말씀하세요.”

“회귀하게 되면 주변 인물들의 시간도 돌아가는 것이 맞소?”

“보통은 그렇죠? 시간을 되돌리는 행위니까요.”

“그렇다면 회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돌아간다는 소리요?”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돌아갔는지 모릅니다만?”

“회귀하는 정확한 시간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소?”

“저도 정확한 매뉴얼을 찾아봐야 알겠지만, 보통은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 회귀를 하는 것이니, 죽기 직전…….”

뭔가 말이 이상해서 잠시 말을 끊었다.

죽기 직전이라고 하면 육신을 벗어 던지는 등선 전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등선 후를 말하는 것인가?

“사실 의뢰자분께서 신선이기에 정확한 시간대를 알 수가 없겠네요.”

“그렇다면, 지금 세상으로 회귀를 할 수는 없는 거요?”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일까?

회귀하는데 지금 세상으로 회귀를 시켜달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멀뚱히 쳐다보며 질문을 건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사실 회귀를 하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요.”

“아드님이요?”

“그렇소, 아직 신선은 되지 못하고 반선의 경지에 이른 아이라오.”

“아드님의 나이가?”

“올해 400살쯤 되었을 거요.”

회귀를 바라는 아들.

지금 세상으로 회귀를 시켜 달라는 뱀파이어의 말.

이제야 이자의 고민이 이제 이해가 갔다.

“의뢰자분께서는 당연히 회귀시키기 싫으신 거군요.”

“그렇소.”

“하긴,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신선의 경지에 오른 분이 회귀를 바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러게나 말이오. 녀석은 조금만 더 수련하면 등선할 수 있는데, 굳이 수련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구려.”

“언제 등선하셨죠?”

“한, 200년 정도 되었을 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허허, 남는 게 시간 아니겠소. 얼마든지 기다리겠소.”

남자와 얘기를 나누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르카: 카르나티우스 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그녀에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르나 여신이시여. 미천한 반신 이르카가 당신을 애타게 찾습니다.]

[카르나티우스: 어머, 나 불렀니?]

[이르카: 신선계에 왔는데요. 문제 해결하라고 보내신 거 맞죠? 광철 할배한테 물어보니까 배달도 해준다는데…….]

[카르나티우스: 응, 왜? 싫어?]

[이르카: 싫은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해서요. 아들을 회귀를 시켜달라는데 200년을 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카르나티우스: 꼭 그렇진 않아. 어쨌든 아들은 신선의 경지에 오른 뱀파이어가 아니잖아?]

[이르카: 그러면, 어느 시간대로 회귀시켜도 상관없겠네요?]

[카르나티우스: 응 근데, 이번에 요청한 뱀파이어가 이르카 너 팬인가 보더라?]

[이르카: 제 팬이요? 저한테 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카르나티우스: 그건 나도 모르지. 자세한 건 걔를 만나보고 결정해. 반선이면 어차피 어떤 지구로 보내든 상관없는 존재니까.]

[이르카: 이자가 짬 처리 맞죠?]

[카르나티우스: 어머, 걔는 짬 처리 아냐. 내가 말한 애는 다른 애야.]

[이르카: …넵.]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그녀와 메시지를 종료하려고 할 때였다.

[카르나티우스: 이번 달 보고서 다 올라왔단다?]

그녀가 말하는 보고서는 보통 정산 보고서를 말하는 것.

매달 관리자가 얼마만큼의 포인트와 카르마를 획득했는지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는 바로 그것.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르카: 헤라클레스 녀석이 당연히 1등이고요?]

[카르나티우스: 응.]

[이르카: 전 2등인가요?]

[카르나티우스: 아니 1등.]

[이르카: 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반문했다.

[카르나티우스: 카르마는 헤라클레스가 조금 더 얻어서 1등인데, 포인트는 네가 압도적인 1등이던데?]

포인트 차이가 그렇게 심하게 났다고?

헤라클레스 녀석이 관리하는 회귀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가장 숫자가 많은 지구 출신 녀석들이 헤라클레스에게 관리받고 싶어서 줄 서서 기다리니 어쩔 수 없는 일.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다시 질문을 건넸다.

[이르카: 성진아 씨가 아무리 열심히 포인트를 벌어다 줬어도 그건 조금 힘들었을 거 같은데…….]

[카르나티우스: 너 안젤라한테 보고 못 받았나 보구나? 지금 또 재밌어졌던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성진아의 트로이의 목마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모양.

[카르나티우스: 아무튼, 이번에 애들 회귀 잘 끝내주고 오렴. 포인트 1등 먹은 김에 카르마 1등 자리도 뺏어보렴.]

[이르카: 넵! 감사합니다!]

[카르나티우스: 보고서 종합한 거 지금 전송해줄 테니까 한번 읽어보렴.]

[이르카: 넵.]

파츠츠츠-

황금색 번개와 함께 황금색 종이로 이뤄진 보고서가 눈앞에 나타났다.

때마침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실려 날아가려는 걸 붙잡고 난 뒤.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월간 포인트 획득 순위.]

1. 이르카: 233,150P

2. 헤라클레스: 183,270P

3. 메르나: 116,780P

4. 푸카스: 87,170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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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총합) 카르마 획득 순위.]

1. 헤라클레스: 0.54%(76.24%)

2. 이르카: 0.52%(67.82%)

3. 오르카손: 0.4%(67.62%)

4. 메르나: 0.38%(67.52%)

.

.

.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회귀자를 관리했지만, 그들을 거의 압도적으로 이긴 것.

카르마 획득에서도 다른 관리자들보다 천년은 더 늦게 시작해놓고 이 수치면 엄청나게 많이 따라온 것이다.

물론 헤라클레스 녀석이 좀 걸리긴 하지만, 이번에 뺏어올 카르마와 다른 회귀자들을 관리해서 얻을 카르마를 생각하면 언젠가는 충분히 앞설 수 있지 않을까?

성장 속도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마치고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장식품이 걸린 저택 안을 걸어가자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지고 있던 뱀파이어가 내게 반갑게 말을 건넸다.

“보고는 하고 오셨소?”

“네,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아드님을 만나보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내 아들 녀석을 불러오겠소.”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미간을 잠시 찌푸리며 조심히 말을 건넸다.

“녀석이 조금 황당한 소리를 해도 조금 참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소.”

“황당한 소리요?”

“자기도 실패를 해봐야 깨닫고 신선의 길로 들어설 것 아니겠소?”

“당연히 목표를 못 이룰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그게… 아무튼, 들어보면 알 것이요.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지.”

“네, 알겠습니다.”

한숨을 푹 내쉰 그가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잿빛 머리에 흑요석 같은 검은 눈을 가진 미청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르카 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저는 베르포시카 얀 크로이츠 뤼미테르 뤼트 반 에르카 드라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베르포시카…….”

“짧게 요한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요한.”

다행이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앞에 몇 글자 빼고는 까먹었었는데 알아서 애칭을 말해주다니.

근데, 애칭이 뭔가 이상했다.

요한이라는 이름과 그의 종족인 뱀파이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큰 괴리감이 존재했다.

하긴, 뱀파이어가 신선도 되는 마당에 뭘 따지겠는가?

내가 느낀 이상함을 내색하지 않고 앞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요한에게 질문을 건넸다.

“회귀하고 싶으시다고요? 과거로 돌아가신다면 뭘 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신선이 아니라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다.”

“네?”

“잘못 들으셨나요? 저는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는 요한.

그런 요한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의문만이 가득했다.

뭐지? 이 또라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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