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무림계 사람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 거다.
망나니로 악명이 자자한 광마가 진짜 복날에 개 맞듯이 처맞고 있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웅성거렸다.
퍽-! 퍼버버벅! 퍽퍽-!
마치 고기를 다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질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한 노인이 외쳤다.
“진, 진짜로 먼지가 난다…….”
“이건 기적이야!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나다니!”
“세, 세상에 개방 방주한테 얻어맞는 개처럼 처맞고 있는 저 사람 진짜 광마 맞죠?”
“미친놈이… 진짜 미치도록 처맞고 있네.”
내 실수다.
얘가 쪽팔려서 죽으면 나만 손해.
어? 정신을 잃었구나?
이미 정신을 잃은 녀석을 질질 끌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장면을 본 한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 저거 광마 묻으러 가는 거 맞죠?”
“허어, 오늘이 그 악독한 광마의 제삿날이었구려.”
그제야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에서 매일 같이 행패를 부리던 광마가 드디어 사라진 것.
“세상에… 저 광마를 저렇게 두들겨 패다니 누구지? 천하제일인이라는 독고구패라는 자가 온 것인가?”
“그래! 독고구패! 독고구패였어! 참으로 신묘한 무공이로다.”
광마가 사라진 거리.
사람들은 광마가 죽었음에 환호하며 다시 하던 일을 하러 거리를 나섰다.
독고구패가 나타나 광마를 제압했다는 소문과 함께…….
* * *
비를 피하고자 동굴로 들어온 뒤.
죽은 듯 쓰러져있는 광마의 몸에 재생력 향상 포션을 들이부었다.
원래 때린 놈이 약도 주는 법.
말을 안 들으면 또 패야 하지 않겠는가?
“어푸푸! 무, 물고문만은!”
“이거 비싼 거다. 흘리면 뒤진다.”
“…알았소.”
“알았소?”
“알겠소이다.”
몸이 뻐근한지 인상을 찌푸린 광마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주무르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뭐가 말이오?”
“그렇게 처맞고도 어디 하나 안 부러진 거 말이야. 신기하지 않냐?”
“본좌를 놀리러 오신 것이오?”
“아니, 너 독고구패한테 맨날 처맞고 다니다가 이제 아예 손 놓았더라? 그래도 예전에는 바득바득 덤비더니만.”
“회귀하기 전까지 포함하면 7번을 죽었다 깨어났소. 그런데도 못 이기는 괴물을 어찌 상대해야 한단 말이오.”
“내가 말했잖아. 독도 쓰고 다른 거로 유혹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라고.”
“무인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일이오.”
“응, 자존심 중요하지.”
“그렇….”
“근데 지금 그런 걸 챙길 정신이 있냐? 너 이번에 또 그냥 죽으면 그냥 계약 파기할 거야. 그럼 평생을 개돼지로 태어나겠지.”
광마는 계약서의 내용이 떠올랐는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아직 충격을 덜 받은 모양.
“아, 개돼지로 태어나는 게 더 쓸모가 있으려나……?”
“대협이 아무리 반신이라고 해도! 그런 발언은 너무한 것 아니오!”
“개돼지가 뭐 어때서? 사람들한테 친구도 돼주고 맛있는 고기도 제공하는데? 너보다 훨씬 쓸모 있는 애들이야.”
“모욕이오!”
“응 모욕 맞아. 근데 질질 짜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말하던 놈이 처맞고 쫄아서 이러고 있는 건 나한테 더 모욕 아니겠니?”
“…….”
그제야 시끄럽던 광마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마법 보따리를 열어 무공서 하나를 구매해 꺼낸 뒤.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녀석에게 던져줬다.
툭-!
바닥에 떨어진 무공서를 잠시 바라본 녀석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책을 펼쳐봤다.
“으헉!”
안에 적힌 내용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녀석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무림에서는 이미 실전된 천무신공(天武神功)이다.”
“이, 이걸 어떻게…….”
“너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던 거야.”
실제로 SS급 스킬북은 5만 포인트.
녀석 역시 노력했다면 충분히 가질 수 있던 것.
이미 죽기 전에 S급으로 분류되는 무공을 네 개나 익힌 녀석이었기 때문에 익힐 수 있는 조건은 충분했다.
재능도 충분하니 남들은 익히는 데만 2, 3년 걸리는 SS급 무공을 획득하는 데도 한 달이면 충분할 터.
귀한 무공서를 받고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기연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 그러면?”
“네가 모든 걸 포기하고 놀고먹을 때, 다른 누군가는 어떤 짓을 해서라도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성진아에 관한 얘기였다.
실제로 그녀가 벌어온 포인트가 아니었으면 이런 비싼 스킬북을 사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들이 힘들게 벌어온 포인트로 사주는 거다. 이걸로 큰일 한번 터트려봐.”
“미안하오…….”
“미안하면 죽도록 익혀서 독고구패인지 뭔지 하는 놈 이기라고. 이벤트 열어서 포인트도 좀 벌게.”
“알았소.”
“기한은 딱 한 달이다. 영약도 몇 개 놓고 갈 테니까 필요하면 마셔.”
공청석유, 대환단 등 무림에서 손꼽는 영약들을 녀석의 주변에 놓았다.
그걸 본 광마 이천웅의 눈이 한순간 부르르 떨리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난 쓰레기요.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쓰레기요. 복수하겠다는 약조도 제대로 못 지킨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것이오.”
“실패한 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녀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한 말이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아무튼, 난 간다. 한 달 뒤에도 또 이런 모습이면 그냥 내가 손수 널 죽여줄 테니까 열심히 익혀.”
“알았소. 이번에는 꼭!”
“그래, 얼른 죽어서 회귀 끝내야지.”
“잘 나가다가…….”
“크흠!”
괜스레 헛기침이 나왔다.
뭐, 녀석이 빨리 목표를 이루고 회귀를 끝내야 내게 카르마가 쌓이는 거니까.
빨리 죽어서 회귀를 끝내라는 말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못다 이룬 소원을 이루라는 말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무공서를 품에 안고는 기쁨에 겨워하는 광마를 놔두고 길을 나섰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무공을 익혀서 목표를 이루겠지.
한참을 걸어 무림계와 연결된 신선계의 초입에 들어섰다.
광활한 구름에 쌓인 무릉도원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앞에 있는 허름한 만둣가게에서 열심히 반죽을 만들고 있던 꼬마가 나를 반겼다.
“어? 이르카 님이다!”
“오! 창표 오랜만이다? 많이 컸네.”
“헤헤, 잘 지내셨어요? 요즘 잘나가신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그, 이상한 회귀자랑 계약하셨다고 하던데.”
“이상하긴 한데 능력은 있어. 지금 광철 할배 안에 있어?”
“할아버지요? 지금 낚시하러 가셨는데요. 모셔올까요?”
“아니, 내가 가야지.”
똘똘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창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안 되는데… 손님은 편하게 모시라고 하셨는데…….”
“에이, 바쁜데 괜찮아. 아! 그리고 만두 세 판만 포장해줄래?”
“안 드시고 가시려고요?”
“응. 카르나 님 때문에 잠깐 들린 거야.”
“아하! 카르나티우스 님이 심부름시키셨구나! 근데 왜……?”
“응? 안 식게 포장해줄 수 있지?”
“그럼요! 저도 이제 그 정도 능력은 있어요!”
“그러면 이따가 보자.”
“네!”
마치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을 헤치고 호수로 걸어갔다.
확실히 신선계의 공기는 깔끔하고 안에 정기가 가득하다.
이런 곳에 사니 신선들이 여길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는 이유기도 하겠지.
구름을 헤치며 걸어갈 때.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나?”
“오랜만이야.”
“허허, 고작 이십 년 전에 봐놓고 오랜만이라니 너도 나이를 먹기는 먹는 모양이구나.”
내 나이가 사천오백 살입니다요.
주변의 풍경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했다.
은퇴하고 난 뒤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느낌을 절로 받을 정도로 좋은 장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낚싯바늘이 없는 낚싯대를 호수에 던져놓고 세월을 낚고 있는 광철 할배에게 말을 건넸다.
“할배는 이런 곳에 있으니까 이십 년이 짧지. 바깥세상에서 이십 년이면 세상이 변하는 걸 따라가기도 벅차.”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여기로 오라고. 뭐 하러 그 힘든 고행길을 자처하는가?”
“신이 되는 거? 뭐 별거 없어. 그냥 못다 이룬 것을 이루기 위해서지. 난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에잉, 못난 놈. 아직도 그 일이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야. 못난 놈.”
“에이, 인제 와서 그런 말은 하지 말자고 할배.”
“그래 알았다. 내 말 하지 않으마. 만두 먹으러 온 것이냐?”
“응. 카르나 님 심부름 그리고 나도 할배가 만든 만두는 꼭 먹고 싶었다고.”
실제로 광철 할배가 만드는 신선 만두는 명품 중의 명품.
정기가 가득 담긴 달콤하고 오묘하며 신기한 맛은 살아있을 때 먹었던 그 어떤 음식과 비교를 불허하는 맛이었다.
그때 나를 빤히 바라보던 광철 할배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으흐흐, 이놈아 카르나 고것이 말해 주지 않았나 본데, 우리 배달도 한다.”
“잉? 배달도 해?”
전혀 몰랐다.
신선계에서 배달이라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나도 모르게 어벙한 표정으로 광철 할배를 바라보자 그는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긁더니 말을 꺼냈다.
“그래. 카르나 고것이 너로 정했나 보구나.”
“정하다니 뭘?”
“너, 나랑 일 하나만 같이 하자.”
“무, 무슨 일? 나 바빠.”
불현듯 솟아오른 불안감이 내 온몸을 감쌌다.
괜히 신선놀음이라고 하겠는가?
여기서 바둑을 두다가 늙어 죽은 인간이 부지기수.
불안한 표정으로 광철 할배를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별거 아니고, 저기 저쪽에 제일 높은 산 하나 보이느냐?”
“뭐, 잘 보이지.”
“거기 가면 네 도움이 필요한 녀석이 있을 것이다.”
“내 도움?”
“거참, 나도 신선 생활 수천 년 만에 처음 보는 경우라…….”
말끝을 흐리는 광철 할배를 바라보니 머릿속에 경고등이 번쩍번쩍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뭔가?
회귀자들이 못다 한 한을 풀어주는 일을 하는 일 아닌가?
즉,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저기에 회귀를 간절히 바라는 녀석이 있다는 뜻과 같았다.
“그냥 그놈이랑 얘기 한번 해보아라.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지를 않으니 원.”
“신선이야?”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특이한 녀석이지.”
“설마 등선까지 한 신선이 회귀하고 싶다는 거야?”
“아마도?”
“…나 놀리는 거 아니지?”
“예끼! 이놈 내가 널 왜 놀려먹겠느냐? 몇 달 전 카르나 녀석이 배달을 시킬 때 녀석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너한테 맡긴 모양이구나.”
이거 설마 대형 짬 처리?
신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회귀를 원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어졌다.
낚싯대를 여전히 호수에 드리운 채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광철 할배를 바라봤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만두 두 판 서비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배달 오기.”
“허허, 알았노라.”
“할배가 만든 거로. 할배가 직접 배달 오기.”
“응? 창표 녀석이 만든 거나 내가 만든 거나 이제는 별 차이 없을 텐데?”
“흐흐, 나 혼자 고생하는 꼴은 못 보지.”
“이 녀석이?”
결국, 꿀밤 한 대를 얻어맞은 뒤.
회귀를 원하는 이상한 신선이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하얀 눈이 뒤덮인 설산의 꼭대기.
신선계에서는 절대 보지 못할 고풍스러운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이거 동양식이 아닌데?
중세 유럽에서나 볼 법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보자 더 불안해졌다.
신선답지 않게 화려한 장식이 달린 거대한 문 앞에선 뒤. 노크했다.
똑-똑-
“계십니까? 중간계에서 온 이르카라고 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때.
-이르카? 혹시 지금 4지구에서 유명한 성진아의 관리자가 당신이오?
아오. 씨 놀라라.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네, 제가 성진아 씨의 관리자 이르카가 맞습니다.”
푸드덕-!
갑자기 새가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