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울에 비친 성진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좀비의 입에 넣고 있었다.
콰득-!
좀비에게 확실하게 물렸다는 것을 알리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성진아를 바라봤다.
마치, 이건 무슨 미친놈인가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때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은 손가락을 메트로놈처럼 흔든 성진아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대신 좀비로 변한 널 강태식에게 널 보내겠지. 난 한번 말한 건 꼭 지켜.]
[끄으으, 이런 미친년! 너도 물려놓고 그게 무슨 헛소리…….]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성진아가 푸른 액체가 든 병을 꺼내 든 것.
남자가 보는 앞에서 여유롭게 병뚜껑을 딴 성진아는 한입에 액체를 삼켰다.
[이거 좀비 치료제다?]
[뭐, 뭐?]
휘둥그레진 표정을 지은 남자는 재빨리 성진아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이빨 자국은 남아있지만, 점차 푸르게 변해가던 그녀의 손가락이 혈색을 되찾았다.
남자의 동공이 좌우로 미친 듯이 떨려왔다.
이미 손부터 시작해서 손목까지 올라오는 죽음의 냄새가 코를 진동했기 때문.
[제, 제발 내게도 그 약을….]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강태식이 뭘 꾸미고 있지?]
[그, 그건…….]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우물쭈물하자 성진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때.
[자, 잠깐만!]
남자의 간절한 외침이 폐쇄된 하수구에 울려 퍼지고 난 뒤.
정말 성녀라고 불러도 믿을 만큼 환한 미소를 지은 성진아가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느끼기에는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갑작스레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쟤 마신 거 그냥 피로회복제잖아?”
“그쵸. 성진아 씨는 이미 좀비 바이러스 면역자잖아요.”
“독하다. 진짜 독해.”
그녀는 처음부터 남자를 살려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때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 성진아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진아: 상점창 열어주세요.]
또 뭔가를 말하려 하는 건가?
내심 불안해졌다.
물론, 카르나티우스 신이 이런 행동을 눈감아 주기는 했지만, 너무 과용해서는 안 된다.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헤라클레스지만 멍청이는 절대 아니다.
너무 심하게 이용하면 눈치를 챌 수도 있는 상황.
조용히 그녀에게 상점창을 열어줬다.
열린 상점창을 물끄러미 바라본 성진아가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물건을 흩트려놓지 않는 거로 봐서 내게 말을 걸 목적은 아닌 모양.
그녀가 상점창을 닫은 뒤.
과연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 확인해봤다.
[소모품][지배의 물약][A]: 5,000P
[소모품][하급 재생의 물약][C]: 300P
[소모품][바이러스 억제제][B]: 1,000P
구매한 물품은 총 세 가지.
왜 이걸 샀을까?
성진아의 행동 패턴을 봤을 때 그녀는 포인트를 알뜰하게 쓴다.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만 소비를 하는 것.
세 가지 물품을 합쳤을 때 효과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지배의 물약.
신체 재생력을 늘려주는 재생의 물약.
그리고 전염병이 몸에 퍼지는 속도를 늦춰주는 바이러스 억제제.
그걸 한 번에 섞어서 먹는다?
아니, 먹인다.
그녀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녀의 계획을 알고 나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아빠 웃음이 피어났다.
우리 똑똑한 싸이코 회귀자께서는 유능해도 너무 유능했다.
물론, 가끔 미친 짓을 저질러 내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긴 하지만 결국에는 실보다는 득이 훨씬 큰일이었다.
내 표정을 살핀 안젤라는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팝콘을 튀겨왔고,
함께 팝콘을 씹어 먹으며 성진아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봤다.
[빨, 빨리 줘! 강태식이 뭘 하려는지 다 알려줬잖아!]
[거짓말은 아니겠지?]
[이런 씨! 내가 이 상황에서 왜 거짓말을 해!]
남자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했다.
어느새 한쪽 팔을 다 뒤덮은 좀비 바이러스에 이성을 점차 잃어가던 남자에게 성진아는 푸른 액체가 든 병을 건넸다.
세 가지 소모품이 모두 섞인 물약.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꿈에도 모른 채.
그 물약을 허겁지겁 마셨다.
그리고 이내 찾아온 격통에 온몸에 핏줄이 돋아난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끄으어억! 너, 너 무슨 짓을…!]
[트로이가 왜 멸망했는지 알아?]
[너, 너 설마! 끄어어억!]
[넌 내 첫 번째 목마야.]
절망감에 휩싸인 남자에게 성진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잘 들어. 돌아가서 강태식에게 나를 인천에서 봤다고 보고해. 그리고 추격대를 이끌고 오는 거야.]
[아, 안 돼!]
남자는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놀랍게도 멍한 눈빛으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자신이 원래 속해있던 그룹.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남자를 바라본 성진아는 남자가 말한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순발력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 계획했던 것일 거다.
남자를 고문했던 것.
그리고 좀비에게 물리게 한 것.
모든 일은 지배의 물약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행한 행동이었다.
지배의 물약은 강력하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바로 상대방의 심력이 극도로 소진된 상황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점 때문에 제대로 쓰기엔 어려운 물건.
그걸 성진아는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안젤라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성진아가 한 행동을 바라보더니 질문을 건넸다.
“쟤 지금 트로이의 목마 말한 거죠?”
“응, 지구에서 옛날에 있었던 일.”
“그럼 폭탄 드랍하겠다는 거네요?”
“그렇지.”
남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지만,
현재 좀비는 아니다. 재생의 물약으로 어느 정도 망가진 신체는 재생이 되었다.
또한, 바이러스 억제제의 효과는 변이를 늦추는 것.
인간인 남자의 말을 강태식은 믿고 인천에 추격대를 보낼 것이다.
아마 그녀는 찢어진 강태식의 세력을 야금야금 갈아먹을 것이다.
과연 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밀린 채널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악마들이 왜 저자를 살려두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고구마에 숨 막힘을 토로한 일부 대악마들이 실신합니다.]
[대천사들은 그래도 인정이 있는 회귀자라며 2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대악마들이 하차한다는 댓글을 달기… 시작하려다 변화된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그녀의 사악한 계획을 알아챈 대악마들과 많은 신이 환호하며 6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실신했던 대악마들이 일어나 사이다를 들이켭니다. 2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일부 대천사가 재밌다며 5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대천사장이 대천사들을 노려봅니다. 몰래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사탄 님이 10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메시지를 읽다가
마지막에 입이 쩍 벌어졌다.
혼자서 10만 포인트나 쏘다니.
확실히 네임드는 네임드다.
바로 사탄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사랑합니다! 사탄님!]
[사탄: 그러지 마라. 징그럽다. 나중에 쟤 죽으면 지옥에 좀 데리고 와. 우리 애들 교육 좀 시키게.]
[이르카: 넵! 1순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사탄: 어 고맙다. 그리고 이거 우리 마누라한테 얘기하면 안 된다?]
[이르카: 후원자의 신분은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듬뿍듬뿍 후원해주시면 됩니다!]
[사탄: 어 그래, 아이고! 또 마누라가 찾는다. 그리고 나중에 꼭 쟤 나한테 보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너 찾아간다.]
[이르카: …넵! 방어전 잘 치르십시오! 사탄 님!]
사탄은 소문난 애처가다.
부인이 정욕의 대악마니 당연하겠지만.
마지막에 찾아온다는 말에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 고위 신은 카르나티우스 님의 허락이 없으면 내가 있는 중간계에 오지 못하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온 후원 포인트를 정산하기 시작했다.
총합 19만 5천 포인트.
만약 포인트를 물질로 바꿀 수 있다면.
난 지금 포인트의 산에 파묻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해있었다.
“저, 이르카님.”
“응? 왜?”
“슬슬 다른 회귀자들 계약 종료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포인트 꽤 쌓였잖아요.”
“흠, 지금 포인트가 얼마나 있지?”
“잠깐만요. 성진아 씨한테 나중에 줘야 할 포인트를 빼고 나면… 14만 포인트요.”
14만 포인트.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남겨놓는다고 치면 이번에 투자할 수 있는 포인트는 대략 9만 포인트가량.
계약한 회귀자들의 리스트를 쭉 살펴봤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계약자 두 명.
[1. 정령사 이스마엘.]
[2. 광마 이천웅.]
벌어오는 포인트도 거의 없으면서,
회귀한 목표까지 잃은 채 떠도는 망령과도 같은 자들이 눈에 띄었다.
“안젤라 미안한데 이천웅이랑 이스마엘 계약서 좀 가져와 줄래?”
“그 두 분부터 보내시게요?”
“응. 가장 악성 계약이잖아.”
“네, 잠시만요.”
안젤라가 그들의 서류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한가롭게 농사를 짓고 있는 이스마엘.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술만 퍼마시고 있는 이천웅.
내가 구두쇠처럼 포인트를 악착같이 모을 수밖에 없게 하는 녀석들치고는 너무 한가로운 모습들이었다.
물론 저런 평화로운 농사 생활을 좋아하는 신도 있고 남의 성생활을 보는 걸 좋아하는 관음 병에 걸린 신도 있다.
문제는 거의 후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거지만.
그때 안젤라가 그들의 서류를 가져와 책상에 내려고는 말을 건넸다.
“이르카 님 지금 카르마 얼마나 쌓였어요?”
“지금? 67.82% 쌓여있어.”
“한 명 보낼 때마다 평균적으로 0.2%에서 0.4%니까… 아직 한참 남았네요.”
“뭐, 이번에 헤라클레스 녀석한테 카르마 좀 뺏어오면 조만간 70%는 넘지 않을까?”
“아직도 한참 남았네요.”
“에이, 이 정도면 많이 따라온 거지. 원래 끝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뭐.”
안젤라는 갑자기 재밌는 장면이라도 떠올랐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제가 교육받고 비서로 오기 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카르마를 쌓으신 거예요?”
“아, 그거? 이제 보여줄게.”
포인트가 충분히 쌓였으니 한동안 쓰지 않았던 방법을 쓸 때가 왔다.
카르나티우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저 잠깐 내려갔다 오려고 하는데요.]
[카르나티우스: 어디에 갈 거니?]
[이르카: 4무림계랑 7아르카니아요.]
[카르나티우스: 너 악성 계약 처리하러 가는 거구나? 포인트 좀 많이 모였나 보다?]
[이르카: 넵. 올 때 뭐 사 올까요?]
[카르나티우스: 프러포즈니?]
[이르카: …해드릴까요?]
[카르나티우스: 어머 얘는? 아직 천 년은 이르단다.]
[이르카: 진짜 사 올 거 없어요?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예요?]
[카르나티우스: 무림계 먼저 갈 거지? 중간에 광철 아저씨한테 들러서 신선 만두 좀 사와.]
[이르카: 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르나티우스: 예전처럼 애들 심하게 굴리진 마렴.]
[이르카: 넵!]
심하게 안 굴리기는.
죽기 직전까지 굴려야지.
무림계로 강림하기 전.
안젤라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성진아 씨 보고서는 매일 보내주고, 어차피 금방 갔다 올 거니까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안젤라에게 인사를 건넨 후.
무림계로 향하는 빛의 길을 따라갔다.
* * *
4무림계.
광마 이천웅은 집보다 더 자주 들락거리던 천화루에서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와 불쾌한 날씨 때문일까?
평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셨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어제 자신이 회귀할 때 만났던 그 관리자라는 놈이 기분 나쁜 독촉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
‘그 미친놈은 왜 자꾸 죽으라고 하는 거야.’
광마는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바로 고금 천하제일인 이라 불리는 독고구패(獨孤求敗)를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보는 것.
그러나 6번의 회귀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번번이 패배했다.
무력감에 빠진 광마는 이내 술에 빠져 허송세월하던 것.
어차피 죽어도 다시 돌아왔다.
끝없는 무력감을 준 독고구패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계속해서 돌아왔다.
망나니처럼 살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가끔가다가 관리자가 뭐라고 했지만,
그냥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런데 어제 죽기 싫으면 계약을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살지라도 명색이 광마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미친 마인이라 불린 자에게 그런 협박이라니.
“술! 술을 더 가져오너라!”
“어머, 대협 벌써 여섯 병째옵니다. 오늘은…….”
짝-!
“어디서 말대꾸를 하는 것이야! 냉큼 가져오지 못하겠느냐?!”
억울하게 뺨을 얻어맞은 기녀는 자신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더니 고개를 조아리며 밖으로 나갔다.
텅 빈 방 안에서 비어버린 술잔을 내 던진 이천웅은 방금 말대꾸를 한 어린 기녀 덕분에 짜증이 치솟았다.
“요즘 것들이란!”
“그치? 요즘 것들이란 참, 말을 안 들어요.”
“……!”
분명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천웅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아무도 없던 자리에서 마치 귀신이라도 솟아오른 듯이 나타난 이르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천웅아.”
“에이 씨!”
퍽-!
이르카의 가벼운 주먹질에 이천웅의 몸이 기루를 부수며 장대비가 내리는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이천웅이 가쁜 숨을 토해내고는 이르카에게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쿠, 쿨럭! 대, 대협! 지, 진정하시오!”
“날이 참 좋네. 나랑 내기하자.”
“무, 무슨 내기 말씀이시오!”
“네 몸에서 먼지가 나는지 안 나는지.”
“……!”
비가 오는데 먼지가 난다는 이상한 소리에 벙찐 표정을 지은 이천웅을 바라본 이르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난다에 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