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강태식과 성진아가 자신의 세를 불려 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총관리 신님의 부름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긴장감에 주먹을 괜스레 쥐었다 폈다 하며
정신 사납게 계속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새로 도입한 시스템을 만지작거리며 서류를 정리하던 안젤라에게 물어봤다.
“내가 요즘에 뭐 잘못한 거 있니?”
“성진아 씨한테 사기 치신 거?”
“5… 5:5가 뭐 어때서!”
“에이, 요즘엔 6:4 계약만 해도 들고 일어나는걸요?”
아니다.
물론 사소한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로 직접 부를 분이 아니다.
“설마 일반인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음, 글쎄요. 바스테트 신님이 원래 좀비 역병이 일어날 사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지.”
“그럼, 강태식을 이기고 사람들한테 면역력 포션을 나눠주면 원래 일어날 일을 막는 거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일으킨 뒤.
사람들에게 면역력 포션을 나눠주면 좀비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계약 조항에 보면 전 세계 헌터의 10%라고 했지 일반인에 대한 수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뭐, 막무가내로 일반인들을 학살하고 다닌 건 아니었으니까.”
신들이 성진아의 행동을 보고 좋아했던 것은 그녀가 힘없는 일반인들을 직접 학살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회귀자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것.
바로 반항할 힘도 없는 자를 아무런 이유 없이 짓밟는 것이었다.
반항하지 못하는 자를 죽이는 걸 보며 즐기는 신은 아무도 없으니까.
뭐, 가끔 정신이 이상한 이계의 신 중에서는 그런 장면을 좋아하는 신도 있지만…….
그때 안젤라가 뭔가를 떠올린 듯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혹시.”
“혹시?”
“에이, 이건 아니겠죠.”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뭔데?”
“포인트 관리 제대로 못 한 거?”
“어? 그, 그건 성진아가 후원받은 포인트로 메꿔놓았잖아.”
“에이, 찢어진 옷을 꿰맸다고 티가 안 나나요.”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침을 삼켰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이게 확실했다.
그때 총관리 신님께 메시지가 왔다.
[카르나티우스: 이르카야 안 오고 뭐 하니?]
[이르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카르나티우스: 빨리 와. 죽여버리기 전에.]
[이르카: 넵!]
카르나티우스 신의 메시지를 받고 난 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왔다.
아니, 온몸이 떨려왔다.
“나, 나 지금 떨고 있니?”
“에휴. 주책맞게 고전 드라마 패러디나 할 때가 아니잖아요.”
“…갔다 올게.”
“올 때, 아니다. 못 오실 수도 있겠구나.”
“아 좀!”
안젤라의 불길한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뒤.
가지 않으려는 다리를 질질 끌며
총관리 신인 카르나티우스 신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 * *
카르나티우스 신의 집무실.
황금빛으로 도배된 휘황찬란한 문 앞에 서서 마른 침만 목으로 삼키고 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
“안 들어오고 뭐 하니?”
“드, 들어갑니다!”
심장이 툭 떨어지는 줄 알았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책상에 앉아 황금빛 사과를 깎아 먹고 있던 카르나티우스가 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왔니?”
“관리자 이르카! 지금 막 도착……!”
“귀청 떨어지겠다. 힘 빼 뒤지기 싫으면.”
“네.”
과연 무슨 말을 할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녀가 들추고 있는 서류를 힐끔 쳐다봤다.
‘4지구 보고서 – 바스테트’
‘포인트 정산 보고서 – 이르카.’
포인트 정산 보고서를 보고 난 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살아서 집무실에 돌아갈 수 있을까?
“얘, 이르카야.”
“넵.”
“내가 너 이뻐하는 거 알지?”
“당연합죠.”
“너 죽을 때 데리고 온 것도 나고.”
“네, 그렇죠…….”
“어머? 너 인상 쓰니?”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어째 카르나티우스 님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십니다.”
살벌한 그녀의 말에 최대한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사극에 나오는 간신들과 같은 모습이 지금 내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이르카야.”
“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렴.”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영업용 미소를 환하게 지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에 포인트…….”
“잘못했습니다!”
“응? 왜 말을 끊어?”
“…….”
“대답 안 해?”
“하겠습니다.”
“말을 또 끊겠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장난이야.”
“넵.”
관리자들이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이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다.
분명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어떨 때는 잘해주다가도 어떨 때는 몇 시간 동안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때 카르나티우스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황금 사과를 건네줬다.
“이르카야. 이거 먹으렴.”
“넵. 잘 먹겠습니다.”
“응. 그거 1만 포인트짜리란다.”
“쿨럭!”
“어머? 너 포인트 많니? 그걸 뱉으려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사과를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사과를 다 먹고 난 뒤.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카르나티우스 님. 무슨 일로 절 부르셨습니까?”
“응? 심심해서.”
“네?”
“설마 포인트 좀 구멍이 난 거로 널 불렀겠니.”
“하, 하하! 설마요.”
어색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잠깐 고개를 돌려 사과를 마저 먹고 있을 때 그녀의 황금색 눈이 날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거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이번에 너랑 헤라클레스랑 한판 붙은 4지구 말인데.”
“넵.”
“그쪽에서 다른 세계로 갔던 애가 하나 있거든?”
“넵?”
“아, 지금 당장 회귀시키라는 건 아냐.”
“갑자기 그런 말씀을 꺼내신 이유가?”
“걔가 사실 보류대상이었던 애거든.”
보류대상이라면 한마디로 성진아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이거 왠지 폭탄을 떠안기려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어머, 뚫어지겠다 얘. 아직 천 년은 일러.”
이천 년이 지나도 당신은 아닙니다, 라는 말이 목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무튼, 너 이번에 포인트 좀 벌었잖아? 몽땅 구멍 난 곳에 채워 넣기는 했어도.”
“그렇죠.”
“4지구 일 끝나면 얘 좀 맡아봐.”
“짬 처리인가요?”
“……?”
“……!”
망했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애써 태연한 척 뒤통수를 긁으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짬, 짬이 나면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지금 만나볼까요?”
“연기 그만해. 짬 처리시키는 거 맞아.”
“넵.”
“사실 그동안 네가 맡아왔던 회귀자들이 너무 평범했던 건 알잖아? 뻔하디뻔한 이야기만 하고 있던 애들이었고. 원한도 깊지 않아서 카르마도 별로 안 주는 애들.”
“그렇긴 하죠.”
원한이 깊은 원혼들을 그대로 환생을 시키면 역사적으로 기록될 최악의 악인들이 나온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회귀시스템.
하지만 관리자들이 감당이 안 되는 원혼들을 맡기 거부해 연옥에서 수백, 수천 년을 기다리던 원혼들이 있다.
바로 성진아와 비슷한 케이스라는 소리.
그때 그녀가 성진아의 사진을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얘 어때? 반응 죽이잖아.”
성진아를 맡기 전까지 관리해왔던 회귀자들을 곰곰이 떠올려봤다.
검성, 천마, 소드마스터, 대마법사, 재벌 등등.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리 신선한 반응을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카르나티우스가 비스듬히 앉아있던 자리에서 자신의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내 귓가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에 상점을 이용해서 성진아랑 말한 건 봐줄게.”
“쿨럭!”
얼마나 놀랐는지 숨이 멎을 뻔했다.
성진아와 상점창을 이용해 대화를 주고받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앞으로도 계속 봐줄 수 있다?”
“……?”
어안이 벙벙해져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건 걸고넘어지려면 크게 걸고넘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걸 봐준다?
이건 기회다.
재빨리 표정을 바꾼 뒤 그녀에게 대답했다.
“문제 삼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네요?”
“그렇지. 어쨌든 남들은 모르게 한 거니까. 원래 걸리면 위법이고 안 걸리면 편법인 거란다?”
“대신 조건은 그 짬… 아니, 그 회귀자를 맡으라는 거고요?”
“그렇지. 너도 빨리 카르마 쌓아서 신이 되어야지 않겠니? 네가 신이 되고 싶은 이유를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뭐,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아직도 그 일로 꿍해 있는 거니?”
“아뇨, 제 실수였는데요. 이미 천 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옛날 일을 들쑤시자 나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이래서 이 양반을 만나기 싫었다.
내 과거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신이었으니까.
카르나티우스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허공에 손을 몇 번 휘저었다.
팟-!
황금색 빛이 마치 가루처럼 퍼지더니 이내 향긋한 냄새가 나는 차가 책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할게, 이거 몸에 좋은 거니까 안젤라랑 나눠 마셔. 이거 진짜 진짜 비싼 거다?”
“아이고, 제가 뭐가 이쁘다고 이런 걸 다 챙겨주십니까? 은총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이르카야.”
“네.”
“난 네가 빨리 신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저도요.”
그녀를 향해 밝게 웃어준 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 * *
사무실에 돌아오자 긴장이 확 풀렸다.
여전히 온기가 가시지 않은 찻잔을 식탁에 내려놨다.
“나왔어.”
“벌써 오셨어요? 한번 불려가면 기본이 하루였는데 이번에는 엄청나게 빨리 오셨네?”
“응, 오늘은 르아(LA) 행성 때부터 얘기 안 하시더라.”
“그럼 아무 얘기도 안 하신 건데?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시면 귀에서 피 나올 때까지 하시잖아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카르나티우스 신의 주특기.
‘내가 르아 행성에 있을 때…….’
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기본이 하루.
심하면 이틀, 사흘까지 쉬지 않고 얘기를 한다.
귀에서 피가 나온다는 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피가 흐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심하냐면 예전에 헤라클레스 녀석이 설교를 듣다가 자기 귀를 때려서 고막을 터트리고 돌아간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안젤라에게 책상에 내려놓은 황금색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거 마셔.”
“어? 이거 평온한 오후 아니에요?”
“응, 너랑 마시라고 하시더라.”
카르나티우스가 전해준 평온한 오후를 본 안젤라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잔뜩 혼날 줄 알았는데 이런 비싼 걸 받아왔으니 놀랄 법도 하지.
스트레스 해소와 피로 해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평온한 오후를 마시자 그동안 받아왔던 모든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
문득 성진아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거울을 켰다.
“허어?”
“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고문하고 있었다.
[강태식은 지금 뭘 꾸미고 있지?]
[아, 악마 같은 년!]
짜악-! 짜악-!
무표정한 얼굴로 사내의 등에 채찍을 휘두르는 성진아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끄아아악! 태, 태식이 형님이 꼭 복수할 거다 이 미친년아!]
[말하지 않겠다고?]
[너, 너라면 말하겠냐! 말해도 죽고 말하지 않아도 죽을 텐데!]
[그럼, 말하지 마.]
[뭐?]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안젤라에게 말을 걸었다.
“쟤 강태식이 오른팔 맞지?”
“오른팔까지는 아니고 오른손 새끼손가락 정도였을걸요?”
“그치, 성진아가 죽을 때 강태식하고 같이 공격한 놈이기도 하고….”
“와, 근데 진짜 표정 하나 안 변하네요. 으으 징그러워, 손톱을 생으로 뽑네.”
“거기다 소금도 뿌리고 있네.”
이미 너덜너덜해졌음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사내를 잠시 바라본 성진아가 자리를 비웠다.
“뭐지? 그냥 가려는 건가? 에이 설마?”
내 착각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입마개를 씌운 좀비를 끌고 왔다.
끄어어어-!
섬뜩한 좀비의 울음소리에 남자가 몸을 움찔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어도 좀비가 되기는 싫은 모양.
성진아는 조용히 부들부들 떠는 남자의 손가락을 그대로 좀비의 입안에 쳐넣었다.
[끄악!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보통 고문을 할 때는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거 아냐?”
“보통은 그렇죠.”
“근데 왜 그냥 죽여버려?”
“어머? 쟤 뭐 하는 거야?”
황당한 표정을 지은 안젤라의 의문 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온한 오후는 개뿔.
깔끔하게 날아갔던 스트레스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 미친 회귀자가 또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