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안젤라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강태식의 행동을 지켜봤다.
과연 내가 예상한 행동이 맞을까?
만약 예상대로라면 오늘 강태식은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받을 것이다.
그때 헤라클레스 녀석의 메시지가 강태식에게 전달되었다.
[시작해.]
조언의 형식이 아닌 일반적인 메시지.
내가 예상한 방법이 맞을까?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강태식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때 강태식의 앞에 상점창이 열렸다.
그는 상점창이 열리자마자 물품을 미친 듯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S급 스킬북 3개.
S급 무기와 방어구 세트 한 개.
그리고 자잘한 소모품들까지.
예상했던 방법이지만 금액의 단위가 달랐다.
확실히 4지구가 인기가 많은 지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솔직히 좀 놀랐다.
무려 쌈짓돈으로 10만 포인트나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기껏 해봐야 5만 포인트 정도로 생각했건만.
회귀 다회차의 이점을 이렇게 살려버리는 방식에 감탄도 절로 나왔다.
미친듯한 속도로 파워업을 마친 강태식이 처음 한 행동은.
촤악-!
헌터 협회장의 목을 날린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강태식 헌터!]
[더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꼴을 못 보겠다! 언제까지 이런 빌딩에 숨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것인가!]
[그, 그렇다고 협회장을!]
[닥쳐라!]
강태식의 압도적인 포스에 계속 말을 내뱉던 중년 남자의 입이 앙다물어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잠시 주변을 둘러본 강태식이 그를 바라보는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이렇게 겁쟁이로 살지 않는다! 괴물들을 사냥하는 건 우리의 일이자 숙명! 모두 날 따라라!]
[네가 뭔데! 명령하고 지랄…….]
쉭-!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간 강태식의 검이 그의 목을 날려버린 것.
크게 숨을 들이쉰 강태식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2만 포인트짜리 검을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촤악-!
바닥에 흩뿌려진 피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헌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미스릴 합금인가?
한 번 흩뿌린다고 기름기가 섞인 피가 저렇게 깔끔하게 날아가다니.
확실히 회귀자 상점에서 파는 물건은 비싸서 그렇지 돈값은 제대로 한다.
그때 강태식이 쓸쓸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목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시민을 지키기로 한 우리의 약속은 헛된 것이었나… 이 빌어먹을 세상을 구원하기로 한 우리의 약속은 헛된 것이냔 말이다!]
이내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은 그 분위기를 극도로 고조시켰다.
열심히 팝콘을 씹으면서 보던 중
나도 모르게 후원을 할 뻔했다.
물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와, 저거 연기 잘하네.
강태식은 헌터가 아니라 배우를 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다.
내가 이 정도인데 순진무구한 우리 헌터들의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나, 나갑시다!]
[헌터의 긍지를 위해! 좀비를 사냥하러 갑시다!]
[까짓거 한번 죽어보지 뭐! 나 좀비 되면 깔끔하게 모가지만 날려주쇼.]
완벽했다.
이제 강태식에게 후원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확인해 볼 시간.
[대천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적인 장면에 4만 포인트를 후원하였습니다.]
[대다수의 대악마들이 다 연기라며 툴툴거립니다.]
[일부 대악마들이 감동해 5천 포인트를 후원하였습니다.]
[대악마끼리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답답했던 전개가 확 바뀐 것에 흥미를 느낀 신들이 3만 포인트를 후원하였습니다.]
선즙 필승이라 이거냐?
꽤 많은 포인트가 강태식에게 들어갔다.
포인트를 정산받고 뒤에서 몰래 다른 물건을 사고 있는 강태식의 모습을 확인한 뒤.
같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안젤….”
건네려고 했다.
핑크색 곰돌이 잠옷을 입은 안젤라는 강태식의 모습에 감동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하긴, 악마들도 감동할 연기에 얘처럼 감수성 풍부한 애가 가만있을 리가 없지.
휴지 하나를 꺼내 주고는 안젤라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안젤라.”
“흐윽흑.”
“안젤라.”
“네, 네?”
두 눈이 퉁퉁 부은 안젤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얘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거야?
“쟤가 죽어야 우리가 이기는 거 알고 있지?”
“아, 맞다.”
“아, 맞다?”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은 안젤라가 툴툴대며 말했다.
“제가 요즘 보는 아침드라마보다 연기를 더 잘해서 그만…….”
“설마, 음식 가지고 귀싸대기 날리는 그런 막장 드라마 말하는 거야?”
“아무튼! 이건 드라마 보고 우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사람이 감수성이라는 게 없어 감수성이!”
“나 원래 사람 아닌데?”
“뭐요!”
“아니 너도 원래 사람 아니…….”
계속 튀어나오려던 뒷말을 꾹 참았다.
그녀가 쌍심지를 켜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지만 괜찮다.
물론 강태식 때문에 당황한 건 아니다.
이런 반응들까지는 충분히 예상했다.
다만, 성진아의 매력 포인트는 무감정한 싸이코패스라는 데 있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할 행동은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좀비들을 사냥하고 있던 성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던 대로.]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당황할 만도 하건만.
성진아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쟤 확실히 알아들은 거 맞겠지?
그때 역으로 나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성진아 : 상점창 열어주세요. 그리고 ■■■■을 ■■■■■■ 응?]
갑자기 자신의 메시지가 필터링이 되자.
성진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메시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건 내 실수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은 것.
헤라클레스와 계약 덕분에 상점창이나 상태창 같은 말을 제외하고는 모든 말이 필터링이 된다.
우리 회귀자께서 뭔가 하려는 모양.
그녀에게 메시지 전달이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대화는 하루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다.
그녀의 요청 중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상점창을 열어줬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마법 보따리를 잠시 바라본 성진아는 미간을 찌푸린 뒤.
S급 스킬북 2개와 검은 암살자 세트를 구매했다.
S급 스킬인 암살자의 길과 죽음의 표식.
확실히 궁합이 잘 맞는 스킬들의 조합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던 때.
갑자기 그녀가 내가 정리해둔 물건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쟤가 뭘 하려고 하는 거지?
저거 다시 정리하려면 귀찮은데….
그러곤 소모품 몇 가지를 구매한 뒤
상점창을 끄고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거 날 바라보는 것 같은데….
설마?
쟤가 그 정도로 똑똑하다고?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나는 다급하게 안젤라를 찾았다.
“안젤라! 상점창 좀 열어줘!”
“정리하시게요?”
“응. 성진아가 좀 어지럽혀놨네.”
“잠시만요.”
이윽고 열리는 상점창을 바라본 뒤.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정리해둔 물건의 리스트를 바라보자 한쪽 입꼬리가 자연스레 말려 올라갔다.
[주문 박이 검.]
[변이 세포(그리핀).]
[인화성 폭탄.]
[물의 표식.]
[먼지구름.]
[전격 화살.]
[제노사이드 검법.]
[거인의 발톱.]
성진아가 실제로는 다회차 회귀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총관리 신에게 걸릴까 봐 쓰지 않았던 방법을 그대로 쓴 것.
바로 상점에 있는 물건들로 내게 말을 건넨 것이다.
그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미치려면 확실하게 미치라는 게 이런 것을 뜻하는 걸까?
이런 과감한 일을 했던 회귀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가 건넨 말은.
‘주변 인물 먼전(저) 제거.’
강태식의 주변 인물부터 제거하고 그의 힘을 빼겠다는 뜻.
자신과 강태식 사이에 걸린 1년간의 제약.
바로 서로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일반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성진아.
헌터들에게 그럭저럭 지지를 받는 강태식.
강력한 무력을 가진 헌터들의 지지를 받는 강태식이 훨씬 유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왜?
강태식이 일반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 입으로 말해놨으니까.
게다가 민주주의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 중 하나.
바로 다수결의 허점.
헌터는 일반인보다 훨씬 적다.
혹시라도 그녀가 헌터들을 암살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강태식이 공표해도 상관없다.
일반인들은 좀비들에게 고통받을 때 꼭꼭 숨어있던 헌터들보다 성진아를 훨씬 더 믿을 테니까.
이거, 강태식이가 진짜 임자를 만난 것 같은데?
* * *
성진아는 생각했다.
‘이쯤 되면 강태식이 헌터들을 꼬드겨서 나왔을 거야. 녀석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 일가견이 있으니까.’
그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신을 회귀시켜준 신을 생각했다.
‘내가 말한 걸 알아차렸겠지? 조금 어벙해 보이긴 했어도 눈치가 없는 신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사실 회귀를 하러 갔을 때 능글맞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르카를 보고는 믿음이 잘 안 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성진아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포인트 비율도 3:7이 아닌 5:5로 크게 나눠준 것부터 해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에 걸맞은 스킬북을 정리해둔 것까지.
절망에 빠져 영혼 상태로 있을 때.
이 세계에 다시 되돌려준 이르카는 은총과도 같았다.
‘절대 이 싸움에서 지면 안 돼. 그 어떠한 짓을 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은 성진아는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남자에게 다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피곤하시죠?”
“어엇! 괘, 괜찮습니다!”
“제가 죄송해요. 헌터들이 조금만 빨리 나섰어도 이런 일은 안 겪었을 텐데.”
우수에 찬 눈빛으로 살짝 입술을 깨문 성진아는 슬퍼 보이지만 너무나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그에 넋을 잃은 남자는 헛기침을 하더니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그래도 성진아 헌터님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고마워요. 하진우 대위님.”
“제, 제 이름을 다 기억해주시고 영광입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보초를 서주시는 분인데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남자의 군복에는 하진우라는 이름과 대위임을 알리는 계급장이 선명하게 붙어있었다.
성진아는 하진우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준 뒤.
다친 사람들을 찾아가 포션을 나눠주며 격려를 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
신들의 후원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행을 베푸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한 대천사들이 2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대악마들이 그녀가 과연 어떤 사악한 일을 벌일지 기대하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시민을 먼저 챙기는 모습에 감동한 한국의 성좌들이 2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그 시각 이르카는 팝콘을 뜯으며 쏟아지는 포인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