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좀비 역병을 퍼트린 장본인은 성진아.
성녀로 받는 사람도 성진아.
과연 무슨 미친 짓을 했길래 저게 가능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안젤라!”
“어? 벌써 다녀오셨어요? 이번에 만난…….”
“미안한데, 성진아 씨가 그동안 뭐 했는지 기록 좀 가지고 와줘. 빨리!”
“그럴 줄 알고, 책상에 정리해뒀어요.”
책상 위에는 ‘성진아 활동 보고서’라고 적혀있는 노란 종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급하게 보고서를 들춰봤다.
[성진아 활동 보고서]
1일 차: 1,300P 후원받음.
B급 던전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
찝쩍대는 동료 헌터를 암살함.(12명)
처음부터 숨이 막혀왔다.
조금 찝쩍댔다고 12명이나 죽여버리다니.
귀살 특성을 가진 애의 특징이긴 하지만.
이건 좀 막 나가는 거 아닌가?
2일 차: 집에서 포션 제조.
(좀비 역병과 관련된 것으로 보임)
좀비 역병 보균자들이 전 세계로 퍼짐.
보균자들이 좀비로 변하진 않았음.
3일 차: 첫 번째 좀비 발생(중국)
중국 헌터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됨.
4일 차: 대규모 좀비 사태 발생(중국)
헌터들도 감염돼서 빠른 초기진압에 실패함.
5일 차: 한국에서도 감염자 발생.
고위층이 거의 몰살된 상황이라 빠른 상황 대처가 불가능.
삽시간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짐.
특이사항: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
성진아가 방송에 출연해 쉘터를 만들고 몸을 피하라는 조언을 함.
6일 차: 포션의 정체를 알아냄(면역력 포션)
좀비 역병에 헌터들도 감염된다는 사실을 안 협회가 헌터들을 소집한 뒤 내보내지 않음.
성진아 혼자 면역력 포션을 마심.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고 생존자들을 이끌기 시작함.
7일 차: 한국의 성녀로 불리고 있음.
툭-
나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빠져 보고서를 떨어트렸다.
멍하니 거울에 비치는 성진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좀비 역병을 없앨 수 있다.
이미 면역력 포션을 제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만든 역병과 상황을 이용해서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준 헌터 협회.
그런 협회를 뛰쳐나와 사람들을 구하는 성진아.
누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지는 뻔하다.
몰래 헤라클레스의 채널에 들어가 봤다.
[어리바리한 모습만 보이는 회귀자를 본 신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떠나갑니다.]
[자신이 낸 후원금을 환불해달라는 신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하차한다는 신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신들의 메시지.
강태식은 미래가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하긴, 회귀자의 가장 큰 무기는 미래정보를 안다는 것인데 그걸 쓰지 못하는 이상 일반인과 똑같겠지.
헤라클레스의 채널에서 빠져나온 뒤.
쌓여있는 신들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인간성을 포기한 회귀자에게 흥미를 느낀 대악마들이 채널에 찾아옵니다.]
[화끈한 전개에 대다수 신이 콧김을 내뿜습니다.]
[너무나 유려한 대처능력에 신들이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대악마들이 보고 배우고 싶다며 회귀자와의 만남을 요청합니다.]
[회귀자의 행동에 반감을 보이던 대천사들도 이어진 회귀자의 선행을 보고 애써 고개를 끄덕입니다.]
“…….”
이거 실화냐.
후원으로 온 포인트를 살펴봤다.
무려 12만 포인트.
그녀가 회귀한 지 고작 일주일.
그동안 자신의 팬층을 만든 것은 물론,
자신의 특별함까지 맘껏 선보였다.
“안젤라 다른 회귀자들은 그동안 후원 얼마나 받았어?”
“음, 다 합쳐서 1만2천 포인트네요. 정산해 달라는 요청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나한테 보내야 할 포인트까지 쓴 놈들 빼고 정산해줘.”
“네에-”
12만 대 1만2천.
한 명 대 쉰여섯 명.
성진아의 특별함은 이 두 가지만 비교해봐도 확실하게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잘 키운 회귀자 하나.
쉰여섯 회귀자 안 부럽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야! 문 열어!”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근육 돼지 헤라클레스가 찾아온 것.
성진아를 비추던 거울을 끈 뒤.
녀석이 부서져라. 두들기고 있던 문을 열었다.
헤라클레스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날 노려보더니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야! 이건 계약위반 아냐?”
“내가? 왜?”
“너 사실대로 말해. 특성 말해줬지? 쟤 특성 연금술사 이런 거지?”
“창세신에게 맹세코 말하지 않았다.”
“그, 그래?”
헤라클레스는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뻘쭘한지 주변을 훑어봤다.
우리 같은 반신들은 창세신을 깔고 가면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설정되어있었다.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는지 헤라클레스는 이내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와, 진짜, 허, 아니 저게 말이 되나?”
“나도 좀 놀랐어. 내 회귀자가 저렇게 특별할 줄이야.”
“이거 조금만 물러…….”
“낙장불입(落張不入)! 일수불퇴(一手不退) 천하의 헤라클레스가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에이 씨!”
“많이 후달려? 조금 물러줄까?”
“어! 그러면 내가 포인트…….”
“비융신. 내가 왜 물려주냐 다 이긴 싸움인데.”
“맞을래?”
“꼬우면 한판 붙든가.”
일촉즉발의 순간.
이마를 맞대고 어린애처럼 싸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 안젤라가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두 분 뭐 하시는 거예요! 반신들끼리 싸운다고 총관리 신님께 보고할까요?”
안젤라의 개입에 나와 헤라클레스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너야말로.”
“아이참! 어린애들도 아니고! 다 큰 신이 말이야! 그만 싸우시고, 들어와서 차 한 잔씩 하세요!”
“오! 오랜만에 안젤라가 타주는 차 한 잔 마실까?”
“양심도 없는 놈.”
“그거 너도 없잖아?”
아 맞다.
사실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안젤라의 입에서 양아치 쓰레기까지 나왔는데 여기서 거절하면 좀팽이까지 나오지 않겠는가?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걸 겨우 참으며 헤라클레스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젤라가 가져온 향긋한 차를 음미할 때.
헤라클레스 녀석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야.”
“왜.”
“계약 조항 하나만 바꾸자.”
“왜?”
“너 이번에 포인트 정산 밀렸다면서?”
“누, 누가 그래.”
“시끄러워 임마. 너 이번에 포인트 낼 거 내가 내고 왔다.”
“나도 포인트 있어.”
“아무튼, 내가 냈으니까 그렇게 알아.”
“아니 왜?”
“그러면 징계받을래? 포인트 관리 제대로 못 했다고 징계받으면 성진아가 아무리 뛰어나도 절대 못 이겨.”
헤라클레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관리자가 징계를 받으면 회귀자들에게 포인트를 건네주지 못하는 건 물론.
상태창과 상점창도 열어주지 못하니까.
그런데 이놈이 왜 날 도와준 거지?
그때 헤라클레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만약 그렇게 해서 불리하던 게임 이겼다는 소리 들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 못 하지.”
“그게 아닐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은 뭐지?”
“불길하긴 뭐가 불길해. 야, 계약 내용 딱 하나만 바꾸자.”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 꿍꿍이가 뭔지 알 방법이 없으니 답답했다.
“하루에 한 번. 각자 관리하는 회귀자에게 짧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거 어떠냐?”
“겨우 그 조건을 바꾸자고 포인트를 내고 왔다고?”
“왜? 쫄리냐?”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걸 그대로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헤라클레스 녀석이 말을 건넸다.
“상대방 위치나 뭘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건 불가. 직접 조언을 주는 메시지도 불가. 이 정도면 할 만하지?”
“말만 들으면 할 만한데. 네가 숨겨둔 수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받아들이기 어렵지.”
“너, 이대로 승부가 나면 포인트가 지금처럼 들어올 거 같아?”
헤라클레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성진아의 일방적인 페이스.
강태식에게 들어오는 후원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대로 성진아가 승승장구하고 강태식을 압살하듯 찍어 누른다면 긴장감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 뻔했다.
“그건 어렵겠지.”
“그러니까, 판을 키우자는 거야.”
“판돈을 더 키우시겠다?”
“원래 도박은 크게 걸어야 크게 먹는 법이라는 헤르메스 님의 말씀도 있으셨다.”
“크게 먹으려다 크게 먹힌다는 말도 있고.”
“누가 먹을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헤라클레스는 마치 날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쁠 건 없는 조건이었다.
아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조언이 아닌 짧은 메시지를 보내주는 건 대세에 그리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하지만 상대가 너무 자신만만하게 나왔다.
이건 이미 어느 정도 판가름 난 승부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묵직한 한 방이 있다는 것.
과연 그게 뭘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계산해 봤다.
이거 설마?
에이 그렇게 쪼잔한 방법까지 쓰겠어?
천하의 헤라클레스가?
내 예상이 맞다면 녀석이 쓸 방법은 하나.
이거까지 쓰고 지면 헤라클레스 녀석은 한동안 내 앞에서 오징어 신세가 될 것이다.
근데 이거 지금 상태면 성진아가 충분히 카운터 칠 수 있을 텐데?
주어진 조건은 동일하다.
나 역시 성진아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줘서 카운터 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표정 관리를 위해 이맛살을 찌푸리며 헤라클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후-그래 네가 이렇게까지 나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받아들인 거다?”
“그래. 대신 조언은 절대 하면 안 된다? 막 어디로 가라 이런 말 하는지 다 지켜볼 거야.”
“너나 당황해서 그런 말 하지 마.”
“아무튼, 바스테트 신한테는 네가 보고해.”
“오케이!”
계약서를 조금 수정한 뒤.
녀석에게 건네줬다.
추가 조항으로 하루에 한 번 짧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조건만 다는 것이라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녀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떠난 뒤.
안젤라를 불렀다.
“아마 강태식이가 큰 사건을 터트릴 거야.”
“그러면 불리하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내가 유리해질 거야. 불리하게 보이는 척 연기를 해줘야 할 텐데…….”
“조언하는 메시지는 안 보내기로 약속하셨잖아요.”
“성진아가 눈치가 좀 빠른 거 같지?”
“지금까지 봐서는 머리가 좀 비상하죠.”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계약 조항에 걸리지 않나 한번 확인해 줄래?”
허공에 빛으로 글귀를 그려냈다.
떠오른 글귀를 확인한 안젤라가 규정집을 뒤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건 문제가 안 될 거 같은데요”
“오케이, 좋았어.”
헤라클레스 녀석.
판을 키워준 걸 오히려 후회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