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정신없이 쏟아지는 메시지들의 향연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이 안 갔다.
이제까지 회귀자들의 수많은 미친 짓을 바라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성진아는 압도적인 미친 짓을 저질렀다.
분명 그녀에게 강태식을 이기기 위해서는 판을 엎어야 한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회귀하자마자 완벽하게 엎어버릴 줄은 몰랐다.
떨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정산된 포인트를 계산했다.
총 6만 6천 포인트.
회귀한 지 단 하루 만에 그녀가 벌어들인 포인트.
“안젤라 지난 1년간 수입이 어떻게 되지?”
“그새 까먹으셨어요? 총 56명의 회귀자를 관리하셨고 수입은 54만 포인트였습니다.”
“56명이 1년간 54만인데 한 명이 하루 만에 6만6천이라…….”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
너무 빨리 사고를 쳤을 때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뜨거운 신들의 반응을 보니 엄청난 자극이 된 모양.
그때 안젤라가 시스템 창을 두들기며 말을 건넸다.
“지금 바로 정산해서 보낼까요?”
“응, 지금 유의미한 격차를 벌려놔야지. 25%면 16,500포인트네? 바로 보내줘.”
“이럴 때는 엄청 빠르시네요. 결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자기 몫 30%도 다 보내셨던 분이.”
뼈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팩트 폭행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도 깨달은 게 있다.
받은 후원금을 나중에 정산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
물론 안젤라는 자신이 할 일이 늘었다며 툴툴거렸지만.
“안젤라 나 때는 말이야.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
“또 천 년 전 얘기하시는 거예요?”
“한 팔백 년 전……?”
“전 그동안 사고가 안 난 게 더 신기하네요. 엄청 착한 회귀자들만 관리하셨나 봐요.”
“…….”
괜히 시비를 걸어봤자 내가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거울에 시선을 집중했다.
성진아가 자신에게 온 이 커다란 포인트를 어떻게 쓸지 심히 궁금해졌다.
가장 정석은 검성처럼 스킬북을 구매하는 거다.
검성이 회귀하자마자 구매한 물건.
S급 무공서인 창룡신무(蒼龍神武)가 바로 1만 5천 포인트짜리였다.
초반에 S급 스킬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성진아가 바로 S급 스킬을 획득한다면?
이제 다른 히든 던전들을 클리어해서 강태식과 유의미한 격차를 벌려 나갈 것이다.
판은 이 정도만 깨도 충분하다.
헤라클레스 녀석이 전전긍긍할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자신이 명성을 크게 얻은 지구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회귀자가 패배한다.
그것보다 쪽팔린 일이 어디 있을까?
그때 상념을 깨는 안젤라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송금 완료했어요. 상점창 열까요?”
“잠깐만, 상점창 리스트 정리한 다음에 열어줄래?”
“네.”
내가 직접적으로는 도와줄 수 없어도.
이런 상점 정리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팟-!
성진아가 보게 될 마법 보따리를 열었다.
수많은 물품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는 마법 보따리에서 갓 회귀한 회귀자가 쓸 만한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검술, 마법 이런 쓸데없는 것은 제외.
잡화류와 무기류도 제외.
제일 안 보이는 구석에 처박아뒀다.
무조건 스킬!
무조건 스킬북을 구매해야 한다.
[스킬북][암살자의 길][S]: 15,000P
[스킬북][죽음의 표식][S]: 15,000P
[스킬북][몰아치는 공포][S]: 15,000P
[스킬북][최후의 숨결][S]: 15,000P
그녀에게 필요한 암살과 관련된 스킬북을 최우선으로 배치해놨다.
구석에 박혀있던 한 물품이 눈에 띄었다.
음, 이것도 나름 쓸만하겠는데?
[방어구][검은 암살자 세트]: 15,000P
-머리, 마스크, 몸통, 장갑, 신발 5개 부위로 나뉘어있는 방어구 세트
-착용자에게 근력, 민첩, 감각 + 30
-어둠 속에서 이동할 때 은밀함 + 50
이런 세트 아이템이 남아있었다니.
하긴, 회귀자들 중에서 암살자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말이 좋아서 암살자지 사실 살인 청부업자나 다름없는 건데.
그런 애들이 원한을 가지고 회귀할 가능성은 극히 적었고 당연히 이런 아이템이 남아있을 만했다.
상점의 정리를 끝내고 난 뒤.
성진아에게 상점창이 오픈되었다.
이제 그녀가 어떤 물품을 구매할지 지켜볼 차례.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좋은 물품을 고르길 빌었다.
내가 친히 귀찮음을 무릅쓰고 상점창까지 깔끔하게 정리해주지 않았던가?
“팝콘 드려요?”
“오, 완전 고마워.”
안젤라가 가져온 팝콘을 씹으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때 안젤라가 턱을 손으로 괴고는 질문을 건넸다.
“뭘 고를까요?”
“음, 암살자의 길 아니면 검은 암살자 세트.”
“왜요?”
“그게 제일 효율이 높아. 그래서 암살자의 길을 맨 위에 올려놨잖아.”
“그게 왜 효율이 높은 건데요?”
“일단 살아야지. 다른 스킬들은 죄다 죽이는 데 집중해 있는데 암살자의 길은 목표를 죽이고 빠져나올 때 더 유용한 스킬이거든.”
“오호, 한마디로 유일하게 ‘너 죽고 나 죽자’형 스킬이 아니란 거네요?”
“그렇지.”
“이럴 때 보면 엄청 똑똑한데…….”
“응?”
“아니에요.”
그때 성진아가 고민을 마치고 상점창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오! 과연 뭘… 뭘! 사는 거야 저 또라이가!”
과연 성진아는 평범한 회귀자가 아니었다.
진성 또라이 아니, 미친년이었다.
* * *
폭풍이 몰아친 듯 초토화된 상점창을 열어봤다.
힘들게 정리해 둔 스킬북과 방어구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내가 손수 정리해 둔 물품은 하나도 구매하지 않은 것.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죽여서 또 회귀를 시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뱉은 뒤.
성진아가 구매한 물품 리스트를 쭉 살펴봤다.
[설산 코브라] - 500P
[맹독 파리] X5 – 1,000P
[역병 쥐] X10 – 1,000P
[썩은 좀비 시체] X2 – 500P
[저주가 깃든 해골] - 300P
[여왕의 밤놀이 채찍] - 2,000P
.
.
.
참 알뜰하게도 썼다.
문제는 진짜 쓸모없는 잡템들을 사는 데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소모했다는 것.
“와, 진짜 내가 다 어이가 없네.”
“왜요?”
“아니, 무슨 잡템을 사는 데 그 큰 포인트를 쓰냐고. 이게 말이 돼?”
“음-그러게요. 저도 이번에는 뭘 하려는 건지 감이 안 오네요.”
“아오. 열 받아! 그냥 나쁜 놈들 목이나 따고 다닐 것이지!”
“그쵸? 이번처럼 한 번에 왕창 벌어들이는 건 몰라도, 꽤 짭짤하게 벌어들였을 텐데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흥미를 느낀 신들이 큰 포인트를 후원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똑같은 전개가 나온다면 신들은 금방 질려서 떠나간다.
신들이 떠난다는 건 점차 후원하는 포인트 역시 줄어든다는 소리와 같다.
물론, 소소하게 벌어들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처럼 나라를 좀먹고 있던 암적인 존재들을 암살할 경우처럼.
후손의 미래를 걱정하던 대상 나라의 성좌들이 소소하게 후원을 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진아가 암살의 재능을 살려 그런 식으로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아서 더 좋은 기술과 장비들을 마련하길 바랐건만…….
그녀는 이미 의미 없는 잡템들을 사느라 거금을 탕진했다.
마치 혼백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 몸이 축 늘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것도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녀가 구매한 상품 리스트를 쭉 살펴보던 중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역병 포자]
설명: 여러 가지의 역병과 독이 잘 뭉치도록 조합한다. 독극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전염병을 퍼트릴 수 있다.
어? 독극물에 조예가 깊다면 특성을 말하는 걸 텐데… 성진아는 독극물 제조 특성이 있잖아?
이거 설마?
어렴풋이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아니, 이건 거의 확실하다.
또 우리 미친 회귀자가 이상한 짓을 벌이려 한다.
근데 이거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거야?
판을 깨라고 했더니 지구를 깨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두통약을 꺼내 먹었다.
* * *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거울을 통해 성진아가 중국으로 출국하는 장면까지 확인하고 그대로 거울을 껐다.
떨리는 마음으로 4지구를 관장하는 바스테트 신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이르카: 바스테트 님.]
[바스테트: 왜 그러냥?]
[이르카: 저 혹시 좀비 역병이 창궐해도 문제없는 건가요?]
[바스테트: 응? 지금 좀비가 왜 나오냥?]
[이르카: 그게 사실….]
그녀가 제조한 것은 ‘좀비 역병’ 만약 일반인이 많이 사망한다면,
심각할 경우 계약 위반이 될 수도 있는 문제.
[바스테트: 꺄하하하. 재밌다냥.]
[이르카: 네?]
[바스테트: 원래 4지구는 좀비 역병이 1년 뒤에 퍼진다냥.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인데 큰 문제는 없다냥.]
오호라, 문제가 없다 이거지?
재빠르게 바스테트 신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이르카: 이건 미리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다른 신들에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바스테트: 알고 있다냥. 근데 너 이번에 포인트 제대로 터지겠다냥.]
[이르카: 네?]
[바스테트: 원래 4지구는 좀비 역병 전에는 큰 사건이 없어서 지켜보는 신들도 없고 시들하다냥.]
[이르카: 그런가요? 제가 4지구에 회귀자를 보내본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바스테트: 그런데 회귀자 하나가 좀비 역병을 빵! 하고 터트리면 다들 얼마나 재밌겠냥? 지금 다른 데도 재밌는 거 별로 없지 않냥?]
[이르카: 말씀 감사합니다. 신들께서도 포인트 후원은 해주실 거죠?]
[바스테트: 일방적인 후원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강태식하고 성진아하고 둘 중에 누가 더 잘하는지 봐서 후원하겠다냥.]
나이스!
이건 무조건 성진아한테 후원한다는 소리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좀비 역병이 1년 뒤에 벌어질 일로 알고 있던 강태식.
지가 직접 역병을 만들어서 퍼트리는 성진아.
누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나갈지는 안 봐도 눈에 훤하다.
바스테트 신과 메시지를 끊고 재빨리 성진아가 뭘 하는지 거울을 통해 확인했다.
깊고 어두운 하수구.
마스크를 쓴 성진아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치는 초록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상점에서 구매한 역병 쥐들을 조심스레 꺼낸 뒤.
그대로 쥐들에게 초록색 액체를 쏟아부었다.
찍찍-!
쥐들이 발광하는 소리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하수구에 울려 퍼지고.
짝-! 짝-!
여왕의 밤놀이 채찍을 꺼내든 성진아가 역병 쥐들을 멀리멀리 보내기 시작했다.
채찍의 특수효과인 매혹.
그녀에게 매료된 역병 쥐들은 그녀가 지정한 장소로 빠르게 이동을 했다.
식료품 창고. 시장. 사람이 모이는 광장.
곳곳에 역병 쥐들이 스며들어 갔다.
위생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인구수가 많은 중국의 특성상 이제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을 속도로 퍼질 것이다.
무표정하게 역병 쥐가 기어간 장소를 바라보던 성진아는 몸을 돌려 그대로 자리를 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옆에서 그 장면을 같이 지켜보던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쟤 저 정도면 싸이코패스 아냐?”
“포인트 잘 벌어다 주면 싸이코든 싸만코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
“왜, 왜요!”
겨울도 아닌데 온몸이 얼어붙는 서늘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내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자 민망한지 목까지 붉어진 안젤라가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 * *
일주일 뒤.
[헤라클레스: 너, 너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을 한 거야!]
[토르: 야 이거 개꿀잼인데? 너 어디서 이런 애 구했냐?]
[헬라: 어머, 이르카야. 쟤 내 세계에 데리고 오면 안 될까?]
[미카엘: 4지구의 성진아 회귀자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정신상태 감정은 하고 보내신 건가요? 어떻게 저렇게 천벌을 받을 짓을 하고…….]
[아프라토스: 너 진짜 제대로 된 또라이 데리고 왔구나? 지구에 저런 애가 있다니 완전 물건이네.]
[사탄: 쟤 나한테 소개 좀 시켜줘라. 우리 애들이 벤치마킹하고 싶단다. 와, 나 쪽팔려서 어디 가서 악마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미친 듯이 쏟아지는 신들의 메시지를 보고 실화인가 싶어졌다.
심지어 지구와 관련이 없는 이계의 신까지 메시지를 보낼 줄이야.
잠시 신들의 메시지를 차단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열어 4지구의 모습을 확인했다.
온통 좀비가 가득한 세상.
진짜 지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혼돈 속에서 성진아는 좀비들을 사정없이 썰어버리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제 지시를 따르세요! 우린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진아! 성진아!]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물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부상자는 뒤로 빠지세요! 포션은 제가 지급하겠습니다!]
[오오! 성녀다! 성진아 씨야말로 진정한 성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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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오늘 진정한 악마를 보았다.
그런데 그 악마가 성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