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헤라클레스가 건네준 강태식에 대한 정보를 찬찬히 읽어봤다.
그중 눈에 띄는 정보를 찾았다.
바로 둘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보고 난 뒤 침음성을 삼켰다.
확실히 서로 미워할 만한 입장이었다.
왜 강태식이 성진아를 죽였는지,
그리고 성진아가 강태식을 왜 증오하는지 모든 내용을 깨달았다.
둘을 저울에 올려놓고 열심히 비교하고 있을 때 헤라클레스에게서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헤라클레스: 근데 성진아 초기 C등급이네? 강태식은 초기 D등급이고 조금 불리하지 않냐?]
[이르카: 그럼 1년 동안은 서로 공격하기 없는 거로 하자.]
[헤라클레스: 왜? 그때 둘 다 B등급 되니까?]
[이르카: 응, 그런 것도 있고 이런 소재를 언제 또 써먹겠냐? 원래 판은 크게 키워서 먹는 거야.]
[헤라클레스: 조건은 딱 그것뿐이야?]
[이르카: 아니, 서로 1년 동안 후원받은 포인트의 10%만 쓰자. 남은 포인트는 몽땅 이긴 사람이 가지기 어때?]
[헤라클레스: 콜! 간만에 목돈 좀 만지겠네. 그거 뿌려서 빨리 계약 종료시켜야지.]
그래 지금 웃을 수 있을 때 얼마든지 웃어둬라.
언젠가 땅을 치고 후회할 테니까.
[헤라클레스: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 나한테 카르마 잃으면 3등 되는 거 아니냐? 나는 잃어도 그대로 1등 유지지만.]
[이르카: 4등 된다…….]
[헤라클레스: 풉! 그래 알았어.]
잘난 척하기는.
하긴, 녀석이 강태식을 잃어도 그동안 획득한 카르마의 차이가 그 정도로 심하긴 하다.
이마에서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을 겨우 참으며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근데 강태식은 하겠대?]
[헤라클레스: 내가 걔 의견을 왜 신경 써야 하지?]
[이르카: 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헤라클레스와 연락을 끊고 앞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저 성진아 씨?”
“네.”
“강태식과 상대하는 건 1년 뒤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상관없어요.”
“…대결을 회피, 네? 상관없다고요?”
“네. 진짜 상관없어요. 저는 오히려 더 좋아요.”
“강태식은 세계 최강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이길 자신이 있으시다고요?”
“네, 강태식은 모르고 저만 아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자신만만한 모습은 좋다.
근거 없는 자신감만 아니라면.
뒤쪽에 있는 안젤라에게 곁눈질했다.
그녀의 특성정보 열람이 가능해지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
‘얘 특성 뭐야?’
‘이거 재밌네요. 한번 확인해보세요.’
곧이어 나만 볼 수 있는 그녀의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름: 성진아][등급: S]
[특성: 귀살ㆍ최상(S), 암살(S), 독극물 제조(A)]
[기술: 태백 보법(B), 백두 검술(A)]
얘 봐라?
기본적인 재능인 특성과는 전혀 다른 기술을 익혀 그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가 종종 있다.
특성은 보통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이고 그 등급은 거의 변하지 않으니까.
성진아 역시 그런 케이스에 가깝다.
자신에게 전혀 맞지 않는 보법과 검술을 배웠다.
이런 경우 하위 등급을 전전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S등급까지 올라간 집념의 화신이었다.
만약 자신의 재능과 같은 암살자의 길을 걷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괴물이 나올 것이다.
문제는 성진아가 자신의 특성이 뭔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이거 얘 모르지?’
‘음, 아마 알걸요?’
‘어떻게? 자기 선천특성이 뭔지 아는 사람은 없잖아. 우리도 우리한테 계약하러 온 사람이어야만 볼 수 있는 거고.’
‘죽으면서 자기 특성이 뭐였는지 깨달았을 거 같은데요?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 보세요. 가끔가다 그런 애들 있잖아요.’
‘그러면 얘는 회귀해서 헌터가 아니라 암살자가 되기로 가닥을 잡은 건가?’
‘아마도요. 얘가 그걸 깨달았다면 이번에 헤라클레스 님한테 한 방 먹일 기회 아닌가요?’
때마침 헤라클레스에게 메시지가 왔다.
[헤라클레스: 강태식이는 얼마든지 덤비라는데?]
[이르카: 그래?]
[헤라클레스: 야! 너 막 걔한테 특성 같은 거 말해주면 안 된다? 그거 계약 위반이야.]
[이르카: 당연하지.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고?]
헤라클레스와 메시지를 종료한 뒤.
그녀에게 아주 조그맣게 말을 건넸다
“강태식은 어떻게 죽이실 건가요? 대중 앞에서? 아니면 조용히?”
“조용히 죽여야죠. 아무도 모르게.”
내 예상이 맞았다.
성진아는 자신의 재능이 암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강태식의 회귀 시점은 성진아와 다르다.
재능을 알았다고 해도 이대로 가면 정보 부족으로 인해 필패.
어떤 방법이 없을까?
그때 신선계에서 자주 하던 바둑이 떠올랐다.
표정을 굳히며 그녀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혹시, 바둑 좋아하십니까?”
“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제가 직접 조언해드릴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여기서 대답을 어떻게 하시냐에 따라 저는 당신과 계약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네.”
“바둑을 둘 때 상대가 몇 수 앞을 이미 알고 있다면 과연 그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요?”
“어렵겠죠.”
“만약, 성진아 씨의 대국 상대가 몇 수 아니 몇십 수 앞을 알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발 깨달아라.
그녀가 내가 예상한 것처럼 총명하길 빌었다.
여기서 그녀의 대답에 따라 계약할지, 아니면 엎을지 결정할 수 있다.
초조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잠시 고민을 하던 성진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연히 판을 엎어야죠.”
그녀의 대답을 듣자 한쪽 입꼬리가 자꾸 씰룩거렸다.
미안해서 어쩌나?
크게 키운 판 내가 먹게 생겼는데?
영업용 미소가 아닌 진심이 담긴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우리 계약합시다.”
성진아는 계약서에 거침없이 서명했다.
이내 영혼의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얀 빛이 비쳐올 때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제 조언을 귀담아듣고 행동하시길.”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관리자님.”
팟-!
그녀가 하얀빛에 감겨 사라지고 난 뒤.
4지구의 시간이 5년 전으로 돌아갔다.
복잡한 계약을 체결하고 나니 온몸에 진이 빠졌다.
안젤라가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지친 몸을 일으켰다.
“4지구 신님한테 보고하고 올게.”
“올 때 천도복숭아…….”
“하나면 되는 거지?”
“두 개 사와 주세요.”
“끙… 알았어.”
조금 상한 거로 사와도 괜찮겠지?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며 4지구의 신을 만나러 갔다.
* * *
4지구 신의 집무실.
문 앞에는 꼴 보기 싫은 근육 돼지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녀석 역시 보고서를 들고 있는 거로 봐서는 강태식 건으로 보고를 하러 온 모양.
그때 녀석은 지나가는 여자 반신들에게 잔뜩 펌핑된 근육을 자랑하더니 잇몸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징그러운 놈.
지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데 이런 꼴을 보면 누가 믿을까?
하기야, 나도 내 행성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회귀자들 상대로 사기나 치고 다닌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만.
그때 4지구 신의 집무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냥.”
나와 헤라클레스는 앞다투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녀석의 어깨빵에 밀쳐질 뻔했지만,
재빠르게 발목을 걸어 겨우겨우 동시에 도착했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도착한 4지구 신의 집무실에는 안경을 쓴 고양이 한 마리.
아니, 고양이 신이 책상 위에 앉아서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바스테트(Bastet).
눈앞에 있는 고대 이집트 고양이들의 신의 이름.
어떻게 헤라클레스보다 먼저 신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신은 신.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서를 건넸다.
“이번에 4지구에 회귀를 하게 된 성진아 씨의 보고서입니다.”
“원래 4지구에서 사명을 수행하던 강태식 씨의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를 들춰본 바스테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리에게 질문을 건넸다.
“흠, 얘들 원수지간 아니냥?”
“계획적인 강태식의 공격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목숨을 잃은 성진아 씨의 회귀는 정당하다고 판단합니다.”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회심의 미소를 지어주려고 할 때 헤라클레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강태식 또한 성진아의 부모에게 부모가 살해당했습니다. 성진아를 죽일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 강태식의 부모는 살해당한 게 아니라 단순한 사고사입니다.”
“뺑소니를 단순한 사고사라고 부르지는 않지.”
“너 말 다 했어? 그래 처음 원인 제공은 성진아 씨 부모가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성진아 씨의 일가친척까지 깡그리 죽일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뭐 어때? 신들은 좋아하시던데?”
“닥쳐라냥! 둘 다 그만두지 못하겠냥!”
쾅-!
바스테트 신이 책상을 내려쳤다.
강렬한 충격파가 나와 헤라클레스를 덮쳤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신이시여””
“아무튼, 얘들이 1년 뒤에 붙는다 이거냥?”
“그렇습니다.”
“재밌겠다냥. 진행해봐라냥. 대가는 모두 알고 있냥?”
“알고 있습니다.”
“회귀자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하면 절대 안 된다냥.”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너도 알겠냥?”
“알겠습니다.”
“근데 10%가 뭐냥?”
“네?”
“후원받은 포인트 중에 10%는 너무 적은 거 아니냥?”
설마 비율을 올리자고 하는 건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바스테트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50%!”
““네!?””
나도 모르게 헤라클레스 녀석과 동시에 대답했다.
“직접 간섭하는 건 불허하더라도. 서로 다른 회귀자보다 더 잘났다는 건 보여줘야 하지 않겠냥?”
“그, 그렇습니다만 신이시여…….”
망했다.
성진아에게 주어지는 포인트는 50%.
그중 절반이면 25%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강태식은 헤라클레스가 사기를 치지 않았다면 평균적인 70%.
35%대25% 누가 이득일지는 뻔하다.
그런데, 그때 헤라클레스가 이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건넸다.
“절반씩이나 말입니까? 그냥 10% 정도만 쓰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왜 그러냥?”
“아닙니다. 그냥 너무 과도한 포인트 사용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가 너무 쉽게 이기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오호라?
얘 강태식하고 사기계약을 했구나.
헤라클레스는 내가 분명 70%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이러면 또 다르지.
멍한 헤라클레스 녀석의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사기계약을 왜 하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꼴이 딱 지금 내 꼴이었지만 이 정도로 통쾌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다들 그렇게 알고 물러가라냥!”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바스테트 신의 집무실을 나오고 난 뒤.
헤라클레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왜 한숨 쉬냐? 너 설마 사기계약 했냐?”
“사기라니! 6:4계약을 한 게 사기계약은 아니잖아.”
“뭐? 6:4!”
“조용해. 다 들려. 대신 1년마다 보장 포인트를 좀 넣어주긴 했다. 나 인간일 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계약이야. 그래도 강태식이다. 5% 정도 차이는 가뿐히 눌러줄걸?”
미친놈아 네가 5% 더 많다.
이거 성진아가 얼마나 뛰어난지 기대야 하는 상황이 된 건가?
집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천도복숭아 두 개를 사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안젤라에게 다가갔다.
“여기. 천도복숭아.”
“진짜 사 오셨네?”
안젤라는 이내 복숭아를 씻어오더니 내게 하나를 건네주며 질문을 건넸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나 어쩌면 4등 될지도 모르겠다.”
“음, 뭔가 추가적인 조건이 달렸나 보네요.”
“응. 성진아, 강태식 둘 다 각자 얻은 포인트에 절반씩 사용할 수 있대.”
“헤라클레스 님 계약비율은 당연히 저희보다 좋고요?”
“응. 6:4 보장 껴서.”
“어차피 보장은 이번에 안 들어오는 거고 5% 차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안젤라는 말없이 TV를 켰다.
채널은 4지구의 한 뉴스 채널.
푸른색 정장을 입은 아나운서가 뉴스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침통한 소식을 속보로 전해드리게 돼 시청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금일 오전 1시 24분경 정체불명의 침입자에 의해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그 외 다수의 국회의원과 북한의 김… 유례없는 테러가 벌어진 오늘…….]
미친 보고하고 오는 사이에 벌써 사고를 쳤다고?
판을 엎으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행동해?
다급하게 사망자 목록을 훑어봤다.
죽을 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맞았다.
수습이 가능한 문제인지 고민할 때.
머리 위에 신과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흥미를 느낀 다수의 신이 5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4지구의 고위층을 싫어하던 신들이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다른 국가의 성좌들이 부럽다며 5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후손들을 걱정하던 한국의 성좌들이 4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이거… 진짜 해볼 만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