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3화 (3/121)

3화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그나마 정상적인 사람들을 뽑기로 하고 추린 사람들.

조금 전 소환되자마자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 첫 번째 대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그러니까 회귀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재벌가 사위가 되고 싶으시다는 거죠?”

“네.”

“죄송한데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뭐라고요?”

“회귀는 과거로 돌아가는 거 아시죠?”

“제가 설마 그것도 모르고 왔겠어요?”

“그럼 확실히 잘못 찾아오셨는데… 그건 빙의나 환생을 관장하는 곳으로 가셔야…….”

“나 정도면 뭐 어때서!”

“탈락!”

팟-!

양심이 있어야지.

물론 외모만 보고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실행이 가능한 목표를 가져야 계약을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그냥 놀고먹는 무한 회귀자를 만들게 되는 거니까.

손가락 스냅으로 남자를 사라지게 한 뒤.

두 번째 대상자에게 말을 건넸다.

“소드마스터가 되고 싶어서 회귀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소.”

“원래 직업은 대마법사 아니셨나요?”

“그렇소. 마법의 끝을 보고 이제 검술의 끝을 보고 싶소이다.”

그런 순수한 의도로 계약을 하겠다고?

남자의 서류를 자세히 살펴봤다.

25살 하급 마법사 각성.

40살 중급 마법사 각성.

60살 고급 마법사 각성.

80살 대륙 유일의 대마법사로 각성.

특이사항: [동자공]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는 듯했다.

왜 소드마스터가 되고 싶은지 알 만하다.

고자로 살다가 고자로 죽었다.

그 원한이 여기까지 온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귀를 시켜주면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뻔했다.

특히 올림포스의 신들을 제외한다면 그런 장면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신들은 없다.

아마 눈 버렸다면서 내 머리에 철퇴를 내릴지도 모르는 일.

신들이 내리는 철퇴와 내 머리.

둘이 부딪치면 누가 이기는지 실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음…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남자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올림포스 전용 채널 개설 비용이 얼마더라?

나중에 저런 놈들 깡그리 모아서 회귀를 시키면 어느 정도 이득이 나올 것이다.

헤라 아줌마한테 걸리지만 않는다면 나름 쏠쏠하겠지.

세 번째 대상자.

드디어 기다리던 성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모르게 침이 흘러내릴 뻔했다.

단아한 흑색 장발을 가진 성진아는 올림포스에서 미의 여신이라는 아프로디테와 견줄 만큼 아름다웠다.

“합격.”

“네?”

당황한 성진아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잠시만요. 이 일이 좀 스트레스가 심해요. 관리자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나 약 안 먹는데?”

“닥치고 따라오세요.”

안젤라를 따라가자 그녀는 화가 잔뜩 난 눈초리로 날 바라보며 쏘아댔다.

“이르카 님. 이거 총관리 신님한테 보고할까요?”

“어? 아니.”

관리자의 비서에게는 신에게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자잘한 업무를 도와줌과 동시에,

감시역의 역할까지 겸비하는 것.

근데 나 쟤 얼굴만 보고 뽑는 거 아닌데?

그때 안젤라가 성진아를 힐끗 바라보더니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저 정도가 뭐가 이쁘다고 그래요?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나보다 형편없구만.”

“응?”

이거 뭔가 이상하다?

지금은 멸망한 달빛 엘프족의 후예인 안젤라도 이쁘긴 엄청 이쁘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수준.

근데 왜 질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안젤라. 혹시 질투…….”

“관리 신님 연락 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할 리가 없지! 안젤라가 훨씬 이쁜데.”

“그건 당연한 거고요.”

“자자, 다시 면접 보자 면접!”

“사심 빼고 면접 보세요.”

“당연하지!”

계속 툴툴거리는 안젤라를 뒤에 앉혀뒀다.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은 뒤.

조용히 앉아있는 성진아에게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회귀하고 싶으신 목표가?”

“모든 괴물과 헌터들을 없애고 싶어요.”

“괴물은 이해하겠습니다만 헌터들은 왜 그런 거죠?”

“헌터들은 자신이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범죄를 저질러요.”

“범죄는 일반인들도 많이 저지르는 일 아닌가요?”

“그렇다고 일반인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잖아요.”

“네?”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지?

분명 궤변이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말발에서 밀린 느낌을 받았다.

그때 눈을 내리깐 성진아가 말을 마저 이었다.

“사실 헌터들이 괴물보다 더 미워요.”

“괴물보다 더요?”

“네, 죽기 직전에 들었어요. 제 부모님을 죽인 것도 다 헌터들이었다고요.”

그런 비사가 있었어?

흔하지만 나쁘지 않은 소재다.

S급 헌터가 회귀해서 가족의 복수를 한다.

중간중간 그녀가 힘들 때 기연으로 포장된 상점 물품을 뿌려주면?

사이다가 분수처럼 터져 나올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중 가면 갈수록 사이다에 힘이 빠진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초반 포인트 벌이로는 이만한 소재도 없기는 하다.

다만, 문제는 얘를 이대로 회귀시키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건데…….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회귀가 가능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제약이 있어야 할 것 같군요.”

“제약이요?”

“괴물들은 사실 완벽히 없애는 게 불가능합니다. 신들의 능력으로도 불가능한 게 있어요.”

“왜죠?”

“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 아닌가요?”

어,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한다?

전지전능을 가진 신은 창세신밖에 없다.

나머지 신들은 한없이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갖췄지만 완벽한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다.

그때 안젤라가 성진아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신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괴물도 없앨 수 있을 거예요.”

“안젤라! 어디서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신을 죽인다는 불경스러운 말을 스스럼없이 꺼낸 안젤라에게 구박을 준 뒤.

다시금 고개를 돌려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자, 아무튼 괴물은 없애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헌터들 역시 너무 많이 죽이면 안 돼요.”

“또 왜요?”

“그거야 괴물들을 잡을 수 있는 헌터들이 남아있어야 하니까요. 아까 말씀하셨죠? 일반인들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다고.”

“흠… 그러면 얼마나 죽일 수 있는데요?”

“그건 이제부터 계약하면서 논의하도록 하죠.”

살벌하네, 벌써부터 얼마나 죽일 수 있는지 물어보다니.

속내를 감추고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회귀 계약서]

1) 갑(성진아)은 을(이르카)과 회귀 계약을 체결한다. 갑과 을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다.

2)갑은 [전 세계 헌터의 10%를 죽일 권리]의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만약 조건을 초과하거나 미달할 시 계약은 그대로 파기될 수 있으며 갑의 영혼은 평생 귀축으로 환생한다.

3)갑은 계약조건[전 세계 헌터의 10%를 죽일 권리]을 달성할 경우 절대 [헌터를 살해]할 수 없다.

단, 대다수 신으로부터 악인이라는 동의를 얻으면 가능하다.

4)을은 갑에게 신들로부터 얻는 포인트의 [50%]를 제공해야 한다.

5)갑은 회귀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목표를 달성할 시 [상식적인 소원을 이뤄주는] 소원권 하나를 얻을 수 있다.

.

.

.

계약서를 쭉 훑어본 성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0%밖에 안 되나요?”

“전 세계에 있는 헌터 10%입니다. 죽이고 싶은 놈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건 너무 적은데…….”

“그래서 특별히 3번 조항을 준비했습니다. 보이시죠? 대다수 신으로부터 동의를 얻을 만큼 악인이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의미에요.”

무조건 좋은 것처럼 포장해야 한다.

독소조항이 결코 들어가 있지 않은 계약인 것으로 포장해야 했다.

“보세요. 요즘 갑과 을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을입니다. 진아 씨는 갑이고요. 이거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거 갑하고 을하고 말 바꿔도 똑같은데요? 그리고 원래 정산 비율이 5:5인가요?”

“처음 죽어보셔서 모르시겠지만, 제가 제시하는 건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원래는 7:3이에요. 제가 ‘7’ 진아 씨가 ‘3’.”

입술에 침이라도 바를 걸 그랬나?

괜스레 목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뒤에서 날 노려보고 있는 안젤라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있을 때.

“왜 저한테 이런 특별한 혜택을 주시는 거죠?”

낚였다.

“계약 당사자와 조건 차이가 꽤 많이 날 때 이 정도 혜택은 제 재량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조건 차이요?”

“원래 원하신 건 모든 괴물과 헌터의 말살. 하지만 제가 수정을 제안한 건 전 세계 헌터의 10% 이 정도 차이면 그런 혜택을 드릴 수 있죠.”

내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삼각형이 없다.

이미 닳고 닳아 원형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성진아는 계약서에 쓰인 한 부분을 가리키며 질문을 건넸다.

“이 포인트라는 건 어떻게 얻는 건가요?”

“음, 회귀하시고 나면 뭔가 목표를 가지고 행동을 하시잖아요?”

“네.”

“그때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신들이 후원을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짓이든 상관없어요?”

“음, 사실 좀 애매한데 사이다를 좋아하는 신들은 악인들을 처리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 신은 그런 모습을 좋아하죠.”

포인트에 관해 얘기하자 성진아가 호기심이 동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포인트로는 뭘 할 수 있는 거죠?”

“좋은 질문입니다. 원래 S급 헌터셨죠?”

“네.”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 적도 있고요?”

“그렇죠.”

“포인트를 이용하면 특별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스킬북부터 여러 가지 장비까지.”

“뭐든지 다 있나요?”

“뭐 잡템부터 해서 다 있기는 하죠. 원래는 회귀를 여러 번 하신 분들만 알려드리는 건데 성진아 씨는 특별히 알려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죽인 그놈이 그렇게 강했던 거구나.”

“네?”

“강태식 그놈도 관리자님이 관리하는 회귀자인가요?”

아, 맞다.

얘 살해당했지?

그런데 얘를 살해한 놈이 회귀자였어?

이런 특이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안젤라가 책상에 매뉴얼을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2,475페이지를 읽어보세요.”

“어? 고마워, 안젤라.”

“고마우면 이따 보고하고 오실 때 천도복숭아 하나 사 오시든가요.”

그거 비싼데…….

아무튼, 안젤라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매뉴얼을 읽어봤다.

1)다른 회귀자가 있는 세계선에 또 다른 회귀자가 등장한다면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

2)만약 한 명의 관리자가 아닌 다수의 관리자가 얽힌 일이라면 서로 합의를 봐야 한다.

3)회귀자 간에 전투가 벌어져 둘 중 한 명이 사망할 시 사망한 회귀자는 두 번 다시 회귀할 수 없다.

특수 조항) 회귀자 간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관리하는 관리자가 다를 경우. 패배한 관리자의 카르마 중 일부가 승리한 관리자의 카르마로 이전한다.

골치가 아파졌다.

얘를 다른 곳으로 회귀시켜야 할까?

아니, 그러면 악성 계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태식에게 복수를 원하는데 강태식이 없는 세계로 보낸다면?

분명 난리가 나도 심각한 난리가 날 확률이 높았다.

시스템을 열어 강태식의 관리자를 찾았다.

[관리자: 헤라클레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매번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는 근육 돼지 헤라클레스가 녀석의 관리자.

거기다 쌓은 카르마가 어마어마해서

유력한 차기 신 후보로 손꼽히는 녀석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살아생전에 자신이 활동한 세계에서는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녀석.

뭐 대략 1등과 아주 근소한 차이로 뒤를 쫓는 2등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재빠르게 헤라클레스에게 연락을 돌렸다.

[헤라클레스: 어? 뭐냐? 이르카 네가 나한테 연락을 다 하고?]

[이르카: 4지구에 강태식이가 네가 관리하는 회귀자지?]

[헤라클레스: 어, 그런데 왜?]

[이르카: 내가 거기 회귀자 하나 보내려고 하는데…….]

[헤라클레스: 싫은데? 4지구는 포인트 벌어다 주는 캐시 카우 같은 곳인데 내가 왜?]

[이르카: 내가 선물 하나 줘도 싫어?]

[헤라클레스: 무슨 선물?]

[이르카: 대마법사 어때?]

[헤라클레스: 대마법사? 그런 흔한 애들을 내가 왜 받겠냐? 너 혹시 머리에 벼락 맞았냐?]

[이르카: 올림포스 신들이 좋아할 텐데? 얘 대마법사 출신인데 동자공 익힌 놈이야.]

[헤라클레스: 도, 동자공? 회귀해서 뭐 하고 싶다는데?]

[이르카: 마법 때려치우고 소드마스터 하고 싶대. 어때? 얘가 회귀하면 뭔 짓을 하고 다닐지 딱 감이 오지? 너희 아저씨, 아줌마들 이런 거 엄청나게 좋아하잖아.]

제발 물어라.

올림포스 신들에게 총애를 받는 헤라클레스가 그런 회귀자를 끌고 온다면 반응은 아주 폭발적일 것이다.

그때 한참을 고민하던 헤라클레스가 답변을 보냈다.

[헤라클레스: 콜.]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난 미끼를 던졌고 넌 낚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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