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상하게 일이 몰리는 하루였다.
검성을 보내자마자 찾아온 또 다른 계약자 천마를 다른 세계선으로 회귀시키고 난 뒤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르카 님.”
공기가 얼어붙을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비서 안젤라가 날 뽀로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했나?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응?”
“사기 치시는 거 다 봤어요.”
“이건 사기가 아니라 기술이야. 말 안 듣는 회귀자들을 보낼 때 쓰는 기술이지.”
“그래도… 명백한 사기 아닌가요? 검성님하고 천마님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어쨌든 같은 무림인은 맞잖아.”
“쓰레…….”
“뭐?”
“쓰레기통에 음식물 버리지 마시라고요. 어휴 냄새나. 어디서 개밥 쉰내가 나는 거야?”
무심결에 쓰레기통에 넣고 있던 포도 껍질을 조심스레 다시 빼냈다.
뭐, 어떻게 보면 사기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자기들이 계약을 한 조건을 지켰으면 나도 이런 식으로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회귀자들과는 상생 관계에 가까우니까.
그들이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회귀를 끝마칠 때. 내게 카르마라는 업이 쌓인다.
카르마를 충분히 쌓아야만 지금처럼 반쪽짜리가 아닌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난 꼭 진정한 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때 청소를 하러 갔던 안젤라가 어마어마한 서류 뭉치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쿵-!
얼마나 많은 양인지 내려놓자마자 커다란 충격파가 발생할 정도의 서류 뭉치.
내가 서류의 산이라고 불러야 할 서류 뭉치를 멍하니 바라볼 때 안젤라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르카 님. 이거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이건 너무 많지 않아?”
“어머? 그동안 비다르 님이랑 여기저기 놀러 다니실 때 회귀자들이 쓴 포인트 내용이거든요?”
“응? 뭐 자기들이 번 거 자기들이 쓴 건데…….”
“제가 출장 간 사이에 몰래 도망치시면서 후원금 자동 송금이랑 상점창, 상태창 자동 오픈 기능 켜놓고 가셨더라고요?”
“응. 비다르도 그거 켜놓고 왔는데?”
이건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쏘아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비다르님이야 최신식 시스템이니까 자동 송금 비율을 조정할 수 있어서 쓰신 거고요.”
“뭐?”
“저희는 초 구형 시스템이라 그거 비율을 설정할 수 없거든요? 제가 이걸 왜 안 쓰겠어요.”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안젤라가 가져온 서류를 다급히 꺼내 봤다.
-소드마스터 회귀자 프란츠의 결제 내역
‘미스릴 구매 10,000포인트, 엘릭서 구매 5,000포인트…….’
-망한 재벌 집 회귀자 김도진의 결제 내역
‘주식투자 기록부 3,000포인트, 상대 심리상태 파악 500포인트…….’
회귀자들이 그동안 흥청망청 쓴 포인트들이 그 영롱한 자태를 보였다.
그런데 이건 좀 많은데?
후원이 그렇게 많이 들어왔나?
모든 서류를 확인한 뒤.
남은 후원금을 확인해봤다.
[남은 후원금: 2만 포인트.]
“……?”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눈을 비비고 확인해봤지만 확실했다.
남은 포인트 2만.
정상적이라면 16만 이상 남아있어야 할 포인트가 몽땅 사라진 상태였다.
“다, 당장 상점 기능 중지시켜!”
“늦었어요.”
“뭐?”
“방금 회귀하신 검성님이 7무림계에서 2만 포인트 사용하셨어요.”
“커헉!”
피를 토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안젤라에게 말했다.
“우리 한, 한 달 유지비가 얼마나 들지?”
“9,300포인트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내 치명적인 실수.
송금 설정을 계약 비율인 70%가 아니라 실수로 100%로 설정한 것.
“오늘 강림해서 이 새끼들 다 때려죽이련다!”
“어머? 방귀 뀐 신이 성낸다더니, 이건 이르카님 잘못이잖아요.”
“…….”
“그러게 왜 일 안 하고 도망치셨어요?”
계속 놔두면 오늘 온종일 잔소리를 할 게 뻔하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한숨을 내뱉으며 안젤라에게 질문을 건넸다.
“다음 관리비 납부가 언제지?”
“일주일 뒤요.”
“그때까지 큰 사건 없지?”
“네.”
이거 큰일인데?
큰 사건이 없으면 후원이 거의 안 들어온다.
하지만 나는 지금 포인트가 필요하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빨리 포인트를 버는 방법.
무료해진 신들에게 더 강한 자극을 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상점 기능 중지시키고, 앞으로 후원금은 안젤라가 받아. 그리고 회귀 보류자들 리스트 좀 가져와 봐.”
“그 사람들은 조금 위험하지 않아요?”
“아니, 지금 내 상황보다는 위험하지 않아.”
솔직히 걱정되기는 했다.
검성처럼 적당히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놈들도 회귀를 시켜주는 마당에 보류를 한 놈들이 정상적이겠는가?
아마 정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안젤라가 가지고 온 서류를 받아 들고 그나마 정상적인 놈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름: 성진아
행성: 4번 지구
직업: S급 헌터
사망 원인: 던전 진행 중 살해당함.
회귀하고 싶은 이유: 복수
과거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 모든 괴물과 모든 헌터를 없애고 싶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얘는 왜 보류했어? 이 정도면 정상아냐?”
“이게 정상으로 보이세요?”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정상 아닌가?”
“이르카 님 4번 지구가 어떤 곳이죠?”
“헌터 세상이지.”
“거기 주 동력원이 뭘까요?”
“그것도 모를 줄 알고? 당연히 영혼석이잖아.”
“영혼석이 어디서 나올까요?”
“그거야 그거 7계 신님이 만들어서 보내는 거잖아. 괴물 안에… 음,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다는 말하고 똑같은 거네?”
왜 보류를 시켰는지 알만했다.
검성처럼 무림을 멸망시키겠다는 소소한 목적과는 다르게 아예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안젤라.”
“네.”
“우리, 얘 면접 보자.”
“네?”
“계약조항만 조금 손보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요?”
“비율을 5:5로 손보고…….”
“이런 양아…….”
“응?”
“양호하다고요.”
“그치? 처음 죽어봤는데 뭘 알겠어. 그리고 회귀 조건을 좀 빡빡하게 걸어서 뭘 해보기도 전에 소원을 이뤘다! 하면 되는 거잖아.”
“이런 쓰레기.”
“…….”
날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안젤라의 뜨거운 시선을 무시한 채 그녀와 다른 원혼들의 파일을 집어 들었다.
“일단 이렇게 세 명 면접 보자고.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애들 같잖아?”
“어딜 봐서요? 다른 관리자들이 회귀 거부판정 내린 사람들인데요?”
“…그냥 감? 게다가 걔들이 전부 면접 본 건 아니었잖아.”
“또라이만 아니면 다행이겠네요.”
“에이, 뭔가 이상한 애는 딱 티가 난다고.”
“알았어요. 지금 소환할게요.”
안젤라가 원혼들의 소환을 준비하는 동안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팟-!
이내 안젤라의 소환이 끝나고.
갑작스러운 소환에 어리둥절해하는 세 명의 원혼들에게 영업용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저는 관리자…….”
“나! 이제 회귀한드아!”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거 또라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