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과거로 돌아가서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영혼들과 계약을 맺어 회귀를 시켜주는 일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조롭고 따분한 일이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상태창.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창.
그 두 가지를 열어주고 난 뒤에는?
회귀자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또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지켜보고 싶어 하는 신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끝이다.
물론, 조금 자극적인 연출을 할 때도 있고 말 안 듣는 악성 계약자들을 직접 잡으러 가는 일도 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예 손 놓고 있는 관리자들도 있었으니…….
신도, 하계 종족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반신(半神)에서 벗어나 신이 되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이 일은 너무 따분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냥 평범한 원한을 가진 영혼 하나와 계약을 맺은 뒤 맘껏 휴식을 취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과 향긋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이르카 님!”
“응? 무슨 일이야?”
비서인 안젤라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외쳤다.
“검, 검성님이 회귀를 안 하시겠대요!”
“뭐?”
“회귀 말고 환생하시겠대요!”
“뭐라고!?”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나?
다급하게 집무실로 뛰어들어 갔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하얀 장삼을 입은 노인이 심통 맞은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성(劍聖) 구진운.
무림 세계의 절대자로 불리며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죽은 그가 지금 내 앞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진정시키자 편두통이 내려온 듯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콧잔등으로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며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 말 안 듣는 회귀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봤다.
내 모든 고민이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구진운에게 질문을 건넸다.
“왜 회귀를 하기 싫으신 거죠?”
“내 말 하지 않았소. 이미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루고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그런데 왜 또 회귀해야 하는 거요? 나는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소.”
“계약서에는 미련이 남아있습니다.”
“그건 억지요.”
“억지가 아니라 계약서에 적으신 내용입니다. 검성님께서도 합의하신 거고요.”
구진운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성질 같아서는 확 쥐어패고 싶지만.
어떻게든 이놈을 다시 회귀시켜야 한다.
“허허, 귀공은 평소에 악마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않소?”
“악마요? 요즘 악마들은 사람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걔들이 하는 짓 중에 가장 나쁜 짓이 뭔지 아세요?”
“사람을 유혹하는 거?”
“아뇨, 똥 눌 때 휴지 정도 빼앗는 거요.”
“그게 가장 나쁜 짓이오?”
“못 믿겠으면 지옥으로 가보시든가요. 지옥행 열차표 끊어 드려요?”
쉴 새 없이 나불대던 구진운의 입이 마치 조개처럼 오므려졌다.
사실 저것보다 조금 더 나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요즘 인간들보다는 덜하다.
악마들한테 사람 같다고 말해주는 것.
‘너 진짜 인간만큼 사악한 놈이구나.’
이런 의미로 통용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럴 때 삐친 회귀자들이 자주 하는 말.
신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꺼내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쳤다.
“전 엄밀히 말하면 신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읽은 거요?”
“아뇨. 이건 경험입니다.”
“경험이 참 용하시구려.”
“저도 신들의 대리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신들이 뭐 자원봉사자인 줄 아세요? 다 이유가 있으니 회귀를 시켜주는 겁니다. 제가 분명 처음 계약하실 때 말씀드렸을 텐데요?”
왜 신들이 회귀자를 없애지 않고 지켜보겠는가?
악귀로 환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론,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조금 변질되었다.
회귀자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은 무료한 신들의 생활에 크나큰 재미를 주었다.
사실, 예전에는 회귀자들의 목표가 거의 다 비슷비슷했다.
자신을 무너트린 자들에게 복수하겠다.
세상을 구원하겠다.
성공하거나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
결국, 뭐겠는가?
복수, 성공 이런 것과 관련된 행동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맨날 김치찌개를 먹으면 맛있겠는가?
물론, 맛있긴 하지만 가끔은 된장찌개도 먹고 여러 반찬을 곁들여야 더 맛있는 법.
똑같이 반복된 행동에 흥미를 잃은 신들은
재밌는 목표를 가진 놈들을 회귀자로 뽑아보라는 말까지 꺼내기 시작했다.
나와 계약한 구진운은 그런 재밌고도 이상한 목표를 가진 고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성공을 한 놈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안락한 삶을 살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기르다 보니 자기가 왜 회귀를 했는지 까먹은 것.
그때 구진운이 뭔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무의 끝을 보고 싶다?”
아무 말 없이 구진운을 노려봤다.
그런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나랑 계약했겠냐?
“어, 음… 아니면 나를 죽인 놈들한테 복수하고 싶다?”
“다 틀렸어요.”
“까먹었소.”
“그럴 줄 알고 계약서 사본을 준비해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회귀 계약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한참 동안 계약서를 들여다보던 그가 놀란 눈빛으로 혼잣말을 꺼냈다.
“무림을… 멸망시키고 싶다?”
“네, 그거 구진운 님 친필입니다.”
“굳이 멸망시켜야 하겠소? 나쁜 놈들은 다 죽이고 왔잖소.”
“그래서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소! 계약의 파기를 원하오.”
이마에 핏줄이 돋아나는 걸 겨우 참았다.
계약서 한 귀퉁이에 쓰여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약 조항 보이시죠?”
“음, 눈이 침침해서… 잘.”
“현경의 고수가 눈이 침침하다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보이는구려.”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어물쩍 넘어가려던 구진운은 헛기침을 하고는 위약 조항을 읽기 시작했다.
“갑(구진운)은 을(이르카)과의 계약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갑은 소멸한다.”
“어떻게 소멸하시는지도 읽어보셔야죠.”
“커흠, 생전의 업적은 모두 사라지며, 사람들의 뇌리에서 갑이 살아있었다는 기억도 지워진다… 후, 갑의 영혼은 영원히 금수로 환생…….”
위약 조항을 전부 읽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구진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
“이제 회귀를 하러 가실지 환생을 하러 가실지 결정하시면 됩니다. 저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요.”
사실 계약 파기를 말할 때 조금 쫄렸다.
계약 파기는 관리자에게도 큰 패널티가 주어진다.
간혹 관리자 중에 악성 계약에 묶인 애들이 계약 파기를 못 하고 전전긍긍하는 이유도 자신이 받을 페널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 페널티는… 어 저거 뭐 하는 거야!
“그거 사본이에요! 먹는다고 소멸하는 거 아니라고요!”
망할 구진운은 계약서 사본을 입에 구겨 넣고 있었다.
그를 제압한 뒤.
눈두덩이에 시퍼렇게 멍이 든 그에게 달걀을 건네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구진운 씨. 저도 관리자일 뿐입니다. 계약 내용을 바꿔드릴 수는 없어요. 까짓거 무림 시원하게 멸망시키면 되잖아요.”
“세상이 나를 악마로 기억할 거요.”
“악마면 그나마 착한 거라니까요?”
“어쨌든!”
그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슬슬 약을 팔 차례.
“무림은 다른 말로 무협이라고 하지요? 무와 협. 그런데 지금 무림에 협이 남아있나요?”
“정과 사라고 하는 거요. 그리고 정파에는 어느 정도 의협심을 가진 협객들이 남아있소.”
잘 걸렸다.
“정파의 지주인 무림 맹주가 사실은 천마였는데도요?”
“뭐요!?”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봤다.
내 비서 안젤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구진운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 사람도 회귀자예요. 옆 동네 관리자가 관리하는 회귀자. 구진운 님 돌아가실 때 그 사람도 죽었나요?”
순식간에 커진 그의 눈이 비친다.
충격이 컸는지 구진운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좋았어! 이제 한 번 더 약을 치면 된다.
“그 사람 목표가 뭐라더라? 아 정파 무림을 멸망시키고 황제가 된다던가? 이걸 어쩌나, 멸망시킬 무림도 없으면 구진운님은 이제 평생을 귀축으로 살아가게 되실 텐데…….”
“당장 회귀하겠소!”
통했다.
이번 회귀에는 무조건 무림을 멸망시키고 오겠지.
“이번에는 꼭 목표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팟-!
이윽고 구진운의 몸이 빛과 함께 사라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똑똑-
다음 대기자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
칠흑 같은 검은 장발과 우수에 찬 눈.
멋들어진 흑색 장삼을 입은 사내는 내가 봐도 참 깔끔하게 잘생겼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걸어올 때 그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천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