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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218화 (2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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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쯔파파파팟!

    복도를 타고 직각으로 내달려오는 빛들이 사방팔방, 강태석을 뱀처럼 물어뜯기 위해 내달렸다.

    이를 본 강태석은 즉시 그림자에서 두 개의 두꺼운 강철 장갑을 꺼내 양팔에 덧씌웠고 이어 이걸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어지는 폭발음.

    키키키킹...

    콰콰콰콰쾅!

    어둑하던 복도 전체가 순식간에 화악 밝아지며 달아오를 정도의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이에 양팔의 거대한 철갑으로 빛을 막아내었던 강태석이 슬쩍 인상을 썼다.

    실내라고 무시했는데 에너지의 양이 보통이 아니다.

    아까 전 바깥의 포격 한발 한발을 수십 갈래로 쪼개서 쏘아대는 느낌이다.

    그런 것들이 실시간으로 수백 발, 그것도 사방팔방 비틀려 약점을 노리며 날아왔다.

    그냥 바깥의 포격을 두들겨 맞고 있을 때와 별반 다른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혀를 찬 강태석이 한쪽 팔로는 여전히 방어를 한 채 다른 한쪽 팔을 들어 복도 벽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직!

    마치 거울에 금이 가듯, 일격에 우그러진 벽면을 중심으로 쩌저저적 금이 가며 복도 한켠이 완전히 박살 났다.

    이어 거칠 것 없이 복도를 따라 저 너머 어둠 속에서 뻗어오던 빛들이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어그러진 복도 벽 너머에서 맴돌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광학 굴절구조를 적용한 복도 벽이 박살 나자 공격들이 이곳까지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벽 자체는 어지간한 포격에도 버텨낼 정도로 단단했지만 언제나 상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는 법이다.

    "좋아. 이런 식으로 가면 되겠네."

    멎어버린 공격 속, 우그러진 복도를 보던 강태석은 두 강철 주먹을 쥔 채 앞으로 성큼 걸었다.

    이윽고.

    콰아아아앙!

    콰득!

    콰아아앙!

    강렬한 주먹질에 무언가 박살 나고 우그러드는 소리가 끊임없이 복도 벽을 따라 울려 퍼졌다.

    **

    철상아탑, 정상.

    "... 역시 <이레귤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군요."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지요."

    정상에 모인 일곱 명의 남녀들이 살짝살짝 회의실을 휘감는 진동을 느끼며 탄식을 토했다.

    광학 굴절이 깨져 복도 내부 감시조차 불가능했지만 전달받지 않아도 상황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철탑 전체를 휘감는 충격.

    바깥에서 거대한 팔을 휘둘러 방어체계를 단번에 무시하고 들어온 상대는 마치 바이러스마냥 철상아탑 내부를 헤집으며 착실히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이 탑에 살아온 이들은 바깥, 혈혈단신으로 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존재가 어떤 상대인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이레귤러.

    세상의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존재하는 이들.

    석 달 전, 온 콜로니 내부를 죽음과 전염병이 휘감았을 때도, 거대한 군락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수도 전체가 몰락해버렸을 때도.

    그렇게 멸망해가는 세계 속에서도 재앙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엔 어딜 가나 그들이 존재했다.

    그날, 플래그의 <멸망>에서 그 실체를 누구보다 명확히 살폈던 그들은 이곳에 머무르면서도 끊임없이 콜로니 전역의 그 존재들을 관측하고 대비하려 노력해왔다.

    비록 그 성과 자체가 박살 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쿠릉...

    "... 콜로니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더 오래 버텼을 텐데. 그 정신병자 같은 년 때문에."

    이제는 이쪽 세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소군주, 아너스빌을 떠올리며 한 사내가 이를 까득 갈았다.

    콜로니의 인프라가 제공하는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훨씬 더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았다.

    지난 3년간 자신들이 준비해온 것들 역시 이를 전제로 개발되었다.

    한데 그 미친 여자가 콜로니 전체를 장벽에 꼬라박아버리는 바람에 그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몇몇 종류는 지금처럼 작동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이레귤러를 상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뚫려버릴 것이다.

    이윽고.

    회의실의 원탁에 모여 고민하던 일곱 중 한 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요. 이제 빠져나갑시다. 일단 피하는 게 우선이니."

    사내가 서서히 커지는 진동을 느끼며 말했다.

    이레귤러들은 도무지 예측 불가의 존재다.

    예전 <찬>처럼 인간을 적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침입해온 이상 일단은 자리를 피하는 게 맞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뭘 노리고 왔는지 몰라도... 순순히 넘겨줄 수야 없지요."

    그 말에 원탁에서 일어서던 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콰콰콰쾅!

    "그래도 생각보다는 할 만하네."

    거침없이 복도를 깨부수며 향하던 강태석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퍼부어지는 질량탄 공격을 몸으로 버텨내며 앞으로 가며 중얼거렸다.

    콜로니의 에너지가 끊겨서 그런지, 쏟아지는 공격들은 위협적이긴 했지만, 심장부를 향하는 적에게 퍼부어지는 총공세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아껴두었던 것들을 발악하듯 퍼붓는 마지막 반항의 느낌이랄까.

    물론 수준이 수준이니만큼 어지간한 군벌 정도는 갈아버리고 남을 정도는 되었지만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득!

    직경 35cm.

    도저히 내부에서 쏘아질 법한 크기의 포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철갑탄을 선 자리에서 막아낸 강태석이 향하는 곳은 이곳의 지하였다.

    쿵...

    쿵쿵...

    쿵쿵쿵...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화신, 그리고 이와 연결된 금속 생명이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헤어져 있던, 너무나 그리운 짝을 만나듯 말이다.

    하긴 잃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되찾는 일인데 그런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목적지는 코앞이다.

    콰드드드드드득!

    장갑 끝을 변형해 만든 단분자 블레이드로 바닥을 도려내자 수많은 기업과 연구진들이 물자를 쌓아두던 창고로 사용했던 광활한 공간이 보였다.

    낡은 컨테이너, 혹은 무언가 생명체였던 것이 썩어 문드러진 수조.

    한눈에 봐도 위험하다고 대문짝만하게 경고하는 마크가 붙어있는 커다란 상자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

    궤도 엘리베이터가 멀쩡하게 작동하던 시절, 이곳 B구역은 가장 풍족한 지원을 받던 곳으로 유명했다.

    연방은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가속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자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니.

    아니, 되려 연방 아래 복속하던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이를 위한 재료를 대기 위해 존재한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거대한 창고, 그 안에서 주인을 잃고 썩어가는 모든 자재들이 이에 대한 증거다.

    쿠우우우웅!

    하지만 위, 50m 아래로 뛰어내려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륙한 강태석은 그런 자재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 어느 한 방향을 향했다.

    자신이 예전처럼 세력을 책임지고 있던 때라면 도시의 캡슐이나 고철선 노획 때처럼 바닥까지 싹싹 긁어 나갔겠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 하나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정말로 귀한 것이라면 이곳을 선점했다는 이들이 이미 챙겨갔을 테고.

    순간.

    '잠깐. 그럼 이미 운석의 육신도 여기 있는 녀석들이 챙겨간 거 아냐?'

    거침없이 걸어가던 강태석이 순간 자리에서 멈춰 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렇게 귀한 물건이라면 어느 정도 티가 날 것이다.

    지금 금속 생명은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육신이 있던 곳을 향해가며 두근거림을 키워가고 있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 이미 싹 다 털려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에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박동을 향해가던 강태석이 어느 한 곳에 도달한 순간.

    "... 그럴 일은 없겠군."

    쿠르르릉...

    쌓여있는 컨테이너와 실험물자들 한가운데,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도달한 강태석이 발치의 철제바닥을 퉁퉁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금속 생명의 박동은 명확히 아래를 가리키고 있으며, 강태석도 도달한 순간 아래에서부터 무언가 기이한 열기가 감응하듯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금속 생명이 목표로 하는 육신은 이 귀한 것들이 그득한 창고 속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으며 바닥, 이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봉인되어있었던 것이다.

    아니, 혹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거대한 성 자체가 어쩌면 그 물체를 땅 아래 숨겨두기 위한...

    절레절레.

    끝없이 뻗어나가려는 생각을 멈춘 강태석이 강철 장갑을 변형시켜 만든 단분자 블레이드에 전마강갑의 어둠과 마력의 불길을 불어넣다가 순간 조용해진 창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덧 위쪽에서는 그렇게 발악적으로 퍼부어지던 공격이 모두 멈췄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이 귀하여 혹시 멈춘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정도의 물건들이었으면 애초에 빼돌려놨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 물건들 모두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적막은...

    "방심시키려고?"

    강태석이 홀로 중얼거린 순간.

    키이이잉...

    철컥!

    철커덕!

    철컥!

    창고 주변.

    안 그래도 두터운 내벽을 타고 한층 더 두터운 금속 격벽이 솟구쳐올라 창고 전체를 격리하기 시작했다.

    **

    철상아탑, 후위.

    "출발하지."

    일곱 중 한 사내가 말을 꺼낸 순간 다른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패널을 작동시켰다.

    이윽고.

    쿠르르르릉...!

    크기 160m, 기괴한 금속 장갑으로 뒤덮인 배 한 척이 철상아탑 뒷면으로부터 서서히 가속하여 북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과학선, 판트로넬.

    원래는 수송용이지만 지난 3년간 자신들에 의해 이루어진 마개조로 과한 출력과 무장을 갖추게 된 녀석이다.

    이미 자신들 역시 북쪽을 향해 떠날 준비 중이었기에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이 안에 실어두었다.

    자신들, 남은 73명의 생존자가 앞으로 의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마무리는 하나.

    "작동시켰나?"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작동시켰지. 빠져나가진 못했을 것이야."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레귤러 놈들의 최대 단점이자 약점은 너무나 건방지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에 도무지 조심하지를 않는다.

    원래는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던 두께 45cm의 특수 내벽.

    거기에 비축되어있던 철상아탑의 방어시스템 열원과 남은 고폭약을 모조리 쏟아붓는다면...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통구이가 될 거다.'

    "시작한다. 마지막 불꽃놀이니까 즐기면서 보라고."

    말을 마친 여인이 버튼을 꾸욱 누른 순간 금속으로 뒤덮인 철상아탑 전체가 기이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전,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을 때도 그저 표면에 수없이 불빛이 번쩍거리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걸 넘어 탑 전체가 빛으로 휘감기기 시작한 것이다.

    인위적인 폭주.

    평상시라면 탑 자체가 녹아내릴까 봐 절대 시도하지 못할 전력이다.

    거기에 공격이 퍼부어지는 방향도 바깥이 아니다.

    탑 전체가 끌어모은 에너지, 그 광선들이 굽이굽이 굴절 내벽을 타고 휘몰아쳐 향한 곳은 온갖 장약과 민감한 폭발성 물질들이 모여있는 지하 가장 깊은 곳이었다.

    쿠구구구...

    어느덧 부드럽게 가속하던 과학선, 판트로넬이 탑에서 순식간에 멀어져 거리를 벌린 그때.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빛나던 탑, 그 아래 모든 섬광이 그러모인 지하에서 마치 태양과도 같은 강렬한 분화가 일어나며 주변의 바다와 대기를 화악 뒤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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