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212화 (212/221)

212

어둠 속.

꿀렁.

심연 속에 홀로 잠들어있던 강태석은 자신의 몸을 감싼 금속의 생명체를 어루만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안과 밖이 다르게 흘러갈 이곳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향해 덤벼들던 모든 것을 <집어삼킨> 후로도 꽤나 오랜 시간을.

덕분에 소화도 거진 끝나갔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먹어 치운 금속 생명은 다소 의사가 생겨 어느 정도 강태석과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래 붙어있어서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여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기는 하지만 이제 미약한 대화 정도는 가능한 상황이다.

<그래. 바깥에서 왔다고? 떨어져 내려서 사냥당해 육신이 분해되었고?>

<... ... ..... ..>

<네 코어는 여기 어딘가에 연구목적으로 보관되었고... 파편만 탈출해서 그 구석에 숨어있었다 이거지?>

강태석이 금속 생명의 말을 정리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외계 금속 생명체는 제법 오래전 이 대륙에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순간 현지의 <무언가>들에게 공격당해 포획당하고 갈기갈기 해체되어 곧바로 연구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금속 생명에게 전해 들은 특징을 통해 강태석은 그 <무언가>들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대초인>들.

연방에 군림하는 진짜 주인.

'본체가 강했었나 보네. 싸움이 되었던 걸 보니.'

강태석이 금속 생명을 새삼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격전의 결과는 패배였고, 가지고 있던 무기는 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육신은 이곳, <궤도 엘리베이터>로 옮겨져 온갖 연구를 당했다.

자신이 지하 자원정제시설에서 이 녀석을 마주칠 수 있었던 건 궤도 엘리베이터 추락의 순간, 녀석이 전력을 다해 몸 일부를 떼어낸 뒤 갇혀있던 곳에서 탈출하였기 때문이었다.

워낙 소량이었던 데다 의지도 없었기에 거의 활동 정지상태에서 지나가던 누군가가 주워 보관되던 중 자신과 접속되어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검은 생명체와 칸헬 등 수많은 먹거리를 소화시키며 어느 정도 예전의 힘을 되찾은 녀석은 비로소 자신에게 원래의 목적을 말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 <콜로니> 어딘가에 보관되어있을 자신의 진짜 본체를 되찾게 도와달라고.

그리고 이 모든걸 정리한 강태석은 자신이 걸어갈 화신의 길을 깨달았다.

띠링!

<메인 퀘스트 : 별의 인도>

> 현재 대륙 곳곳(30~60레벨 구간)에 퍼져있는 ????의 육신과 병기를 회수하십시오.

> 이 존재는 당신을 감싸는 힘의 증명이 되어 당신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 제1 목표 : 운석 육신-현재 궤도 엘리베이터 내부 어딘가에 존재.

> 제2 목표 : ????? (전직 후 확인 가능)

> 제3 목표 : ????? (전직 후 확인 가능)

> 제4 목표 : ????? (전직 후 확인 가능)

소화도 끝났고 목표도 생겼다.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되었다.

강태석이 어둠 속을 향해 손을 내뻗은 순간.

키리리리릭...

콰드드드드득!

거대한 금속의 팔이 강태석의 주먹을 감싸며 어둠의 공간을 찢어발겼다.

**

콰드드드드드드득!

"!!!!"

바깥에서 소음이 난 방향을 지켜보던 기리스가 기겁을 했다.

물이 고인 호수의 한가운데 허공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거대한 강철의 손아귀가 주변의 광경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검은 구멍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치 거인이 좁은 알껍질, 혹은 벽을 깨고 그 너머에서 넘어오기라도 하려는 듯 보였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풍겨대며.

그리고 그 변화를 느낀 건 기리스만이 아니었다.

타타타타탁.

"뭐야. 뭔 일이야!"

"저거...!"

부리나케 달려온 사뮤엘이 기리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눈썹을 치꺾었다.

분명 모든 게 끝난 곳이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왜 이 난리인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튀자. 빨리."

"..."

"어서! 뭔지 모르는 건 피해야 안 죽는 거 몰라?"

그게 이제까지 두 쌍둥이가 살아남은 제1 비결이었다.

호기심은 이 세계에서 독약과도 같다.

그 예전, 판도라의 상자조차 열었을 때 대부분이 재앙과 저주 덩어리였다고 하지 않는가?

희망은 불과 한 줌뿐이다.

이에 주춤한 기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부리나케 뛰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쩌어어어어어엉!

무언가 완전히 박살 나듯 사방을 떨어 울리는 청명한 진동,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검은 구멍.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돌아본 두 쌍둥이는 알 수 있었다.

구멍이 사라진 게 아니라 구멍 너머의 공간 자체가 박살 나며 사라진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면 그 안에 있던 녀석은...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검은 갑옷으로 몸을 휘감은 무언가가 강렬한 굉음을 토해내며 그들의 앞으로 뛰어내렸다.

**

뚜두두둑!

스르르르륵...

자신의 몸 안으로 다시 흡수되는 전마강갑을 본 강태석이 어깨를 한 바퀴 내돌렸다.

금속 생명이 안에서 많은걸 먹어 치웠다지만 이 전마강갑 역시 만만찮게 안쪽에서 게걸스럽게 모든 걸 집어삼켰다.

마치 누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크고 무거워진 금속 생명과 다르게 이 전마강갑은 더욱더 깊고 조용해져 갔다.

마치 바다가 크면 커질수록 더욱 잠잠해지는 것처럼, 아직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간 일단은 금속 생명의 메인 퀘스트에 집중할 상황이다.

현재 레벨은 30.

이미 상당히 <가득 찬> 상태이므로 이 퀘스트가 끝날 때쯤이면 벽도 무사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에 지금 당장 궁금한 건 현재의 상황이었다.

"혹시 지금이 언제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그러니까... 이 구덩이가 생긴 뒤로부터요."

과거의 역법은 쓸모없어진 지 오래일 것이다.

자신의 옆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를 가리키며 묻는 강태석의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던 두 쌍둥이가 주춤했다.

**

"3개월..."

타탁...

피어오른 모닥불 앞에 앉은 강태석이 바깥에서 흐른 시간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시간이다.

하지만 확실히 세상은 변화한 것처럼 보였다.

"7국은 모두 <벽> 건너로 넘어갔다고요?"

"듣기로는요."

모닥불에 앉아 차분히 대답하는 쌍둥이, 기리스의 말에 강태석이 가늘게 눈을 떴다.

<백색 장벽>

이곳, 레벨 10~30구간과 30~60구간을 나누는 대장벽으로 그 실체는 저 너머의 수십 개의 <위성 요새>들이 친 방위 결계에 우르르 몰려 붙은 기계 병기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었다.

옵저버의 역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하고 강력한 쉴드 장벽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수억 단위로 우글거리는 온갖 종류의 기계 병기들.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이제껏 벽 너머는 넘어갈 수도, 살필 수도, 범접할 수도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통했다.

그 너머에 사람이 살아있는지 아닌지, 문명이 건재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걸 뚫었다고?

그때의 사건이 제법 유명했는지 이 자매 또한 상세히 알고 있었다.

"새로 부르탄 대신 칠국으로 들어간 <군바리안>이 주도한 거죠. 이 거대한 콜로니를 못 삼아서 그대로 쉴드에 때려 박았어요. 그렇게 쉴드가 일시적으로 금이 가고 몰려있던 기계 병기들이 우르르 안으로 무너져내리는 동안 다른 칠국연합들은 그대로 장벽 밖으로 넘어간 거고."

룬의 <천공 위성>.

아벨의 <메가 트레인>.

루한의 <오행도>.

마슬룬의 <대방주>.

청무의 <금오도>.

일월의 <고대 거북>.

그리고 군바리안의 <공중요새>까지.

각자가 이동할 수 있는 거대영지를 가지고 있던 칠국들은 콜로니에 온 기계 병기들의 신경이 쏠린 틈을 타 기다렸다는 듯 전 세력을 이끌고 그대로 벽을 넘어가 버렸다.

못의 역할을 수행한 이 거대한 콜로니는 그대로 남겨둬 버린 채.

이후는 뻔했다.

다시 가동된 쉴드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버린 콜로니, 그리고 다시금 우글거리며 몰려든 기계 병기들.

"중간은 꼼짝없이 막혔어. 그래도... 북쪽으로 가야지. 살려면."

치지지직...

치직...

다른 쌍둥이, 사뮤엘이 검게 지직거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명하게 만들어져있던 하늘의 홀로그램은 더 이상 없었다.

보이는 건 오직 시커멓고 거무튀튀한 천장이 고장 난 티비마냥 스파크를 내뿜으며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지직거릴 뿐이었다.

그나마 인공태양은 홀로그램이 아닌, 독립 발전식 열원을 사용했기에 굴절구조를 통해 콜로니 전체에 빛을 비추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거대한 충격으로 콜리니의 기능이 거의 대부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 충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모두 모여 북쪽으로 향했다.

벽을 뚫기 위해서라는 단 한 가지 희망을 품고.

현재 빨대마냥 벽을 관통하고 있는 콜로니 내부의 쉴드와 우글거리는 기계 병기들을 어떻게든 파쇄한다면, <저 너머>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힘들을 그러모아 저 멀리, 벽 앞으로 모였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벽을 뚫기 위한 투쟁은 진행 중이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들은 강태석이 아너스빌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과감하다면 과감하다고 해야 할까?

설마 이 콜로니를 통째로 버리는 패로 써서 단번에 벽을 뚫어버리고, 자신들은 <공중요새>를 타고 건너가다니.

스토리 설정상 당연히 자세히 알고 있다.

부르탄이 복구하던 건 추락해 고장 난 <공중요새>.

수많은 고철선들도, 이를 부리던 아홉 군주들도 모두 이를 위해 온 바다에서 재료를 모으고 수리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비록 기능의 10%만 되살린 위성 요새라도, 이 바다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힘을 선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부르탄이 흡혈귀왕에게 망해버리며 아너스빌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너스빌은 판단한 것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그녀의 선택은 간단.

파일런과 군대, 물자와 세력들을 비롯해 쓸만한 모든 것들을 <공중요새>로 옮겨 싣고 그곳을 새로운 영지로 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좋은 선택이다.

남은 군세들과 치고받으며 콜로니를 수복하려면 적잖이 피곤한 과정이 수반되었어야 할 테니.

반면 이해관계가 맞았던 칠국연합들을 조금만 꼬드겼다면 그들과 함께 이 콜로니를 쉴드에 처박아버리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이제 남은 생명들은 이곳에 꼼짝없이 갇혀 죽을 운명을 기다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강태석이라고 남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할 일은 간단했다.

코어를 손에 넣어 화신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대로 벽을 뚫어 <백색 장벽>을 건너간다.

그리고 금속 생명의 기억 속, 그 육신이 남아있는 곳은 이곳 6층에 있었다.

운이 좋다면 어딘가로 옮겨지지 않고 아직까지 잘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놈들은 잘살고 있으려나.'

기억의 마지막.

아주 그냥 열나게 도망가던 이동 요새를 떠올리며 강태석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

6층, <전장터> 앞.

콰아아아아아앙!

"이 무능한 놈들이 진짜아아아아!"

“키이이이익...”

“키이이익!”

수많은 기계 벌레들이 우글거리며 몰려있는 장벽의 건너편, 수많은 이들이 모여 세운 인간 측 진지가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한군데를 차지한 거대한 이동 요새, 탄트라의 통제실 안에서 기계 의족을 단 탈리만이 분통 터진다는 듯 책상을 콰앙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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