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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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릉...

철크럭.

연기 속, 흙먼지를 헤치고 걸어 나온 강태석이 자잘한 상처가 난 자신의 몸을 보며 혀를 찼다.

이래서 어지간하면 그냥 적당히 몰아내려고 했던 건데.

"한놈 한놈 실력이 좋아."

이제는 완전히 멀어졌을, 다른 한 녀석을 떠올리며 강태석이 목을 우득 풀었다.

군바리안의 자락들.

오랜 세월 이전에 태어난 녀석들은 아직 현대 문명에는 무지했지만, 그만큼 개개인이 강하고 노회하며 술수에 능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빠른 속도로 흡수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모자란 부분은 아너스빌이 차례대로 메워줄 테니 점점 더 상대하기 귀찮아질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아니지만, 그나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자폭 직전 녀석이 보였던 그 묘한 미소였다.

<크흐흐흐. 애 좀 쓰세요.>

'뭔가 기분이 나빴단 말이지.'

터어어어엉!

터엉!

땅을 텅텅 내리밟으며 소년과 소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던 강태석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저 멀리, 뇌기를 품은 소년이 당황하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소녀를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터어어엉!

"왜... 왜 이래요! 왜 이래요. 내 동생 대체!"

"..."

'이게 노림수였나.'

떨그렁.

바닥에 떨어져 내린 강태석이 기묘한 주술 문양이 새겨져 있는 앰풀을 주워 살피며 중얼거렸다.

**

"..."

고철 더미 속, 추욱 몸을 늘어트린 채 안정적으로 숨을 내뱉고 있는 숨을 바라보던 강태석은 그제서야 조금 가라앉은 소년에게서 눈을 뗀 채 자신의 손에 들린 앰풀 병을 바라보았다.

유리병에 한가득 새겨져 있는 기하학적인 주문들, 효과는 간단했다.

어느 정도 마력을 불어넣으면 자동으로 주변의 사람을 유혹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 안의 액체를 먹게 하는 것이다.

강태석이 빤히 앰풀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민도 잠시, 추측이야 할 수 있지만, 추측에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명확한 결단에 방해가 될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이걸 뿌린 놈들을 찾아가 알아보는 것이다.

블랙네트워크.

혹은 군바리안의 자락 녀석들.

보아하니 놈들은 금속섬에 시선을 돌려가면서까지 이걸 뿌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뭔지는 몰라도 이게 녀석들의 핵심 목표라는 뜻이다.

"결국 찾아가 봐야 되나."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강태석이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았다.

"네 동생을 업어라. 그리고 내가 말해준 곳으로 가라. 이걸 가지고."

짤그랑.

그러며 강태석은 작은 펜던트를 소년에게 건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카르멘이 건네주었던, 신원 증명용 목걸이다.

이걸 가지고 적통 파벌 측, 카르멘쪽에게 가면 문전박대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보낸 것이거니와, 이들은 그들이 그토록 찾는 또 다른 왕가 혈통의 씨앗이 될 존재들이었으니.

찾아가면 자신보다 소년과 기절한 소녀를 세심하게 보살펴줄 것이다.

그런 강태석의 말에 침묵하다 조용히 목걸이를 받아 든 소년의 한마디.

"사부는 어쩌시려고요."

"..."

'사부?'

낯간지러운 말에 강태석이 뒷목을 벅벅 긁었지만, 또 결의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보니 싹 무시하기도 그랬다.

결국 대충 넘어가기로 한 강태석이 숨을 후 내쉬며 중얼거렸다.

"무시하려고 했는데 한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

군바리안의 자락.

어디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어디 엮여 있는지는 안다.

블랙네트워크.

아마 뿌리부터 탈탈 털면 감자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오리라.

"하여간 네 동생 챙기는 데나 집중해.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

그런 강태석의 말에 부스럭 정신을 잃은 소녀를 들쳐 멘 소년, 카인이 다부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블랙네트워크 지부.

타타탁...

콰아앙!

"허억... 허억."

"야! 파스멜!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장사 하러 가서 한정 허가권까지! 그리고 호프만은!"

다짜고짜 어둑한 골목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파스멜을 향해 지부장이자 그의 누나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자신들, 블랙네트워크도 난리가 난 상태였다.

아무리 지금 물자와 병기를 긁어모으고 있다 한들 한정 허가권은 그들에게도 귀했다.

미사일 자체가 귀하다기보다는 그걸 양측 파벌의 묵인하에 사용할 수 있다는 <권리>가 소중한 것이다.

한데 그걸 다짜고짜 세 발이나, 그것도 어디 적대 세력의 본진이 아닌 고철 지대 야산에 처박았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호프만은 죽었어."

"뭐라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는지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는 파스멜의 말에 여인이 눈을 꿈벅였다.

호프만이 죽었다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호프만은 지금 이 구역 자신들 지부 전체가 덤벼들어도 학살이 가능한 실력자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죽었다고?

그것도 미사일까지 퍼부었는데?

순간 여인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미사일을 퍼부었는데도 진 게 아니라, 미사일을 퍼부었어야 할 정도의 <무언가>를 만난 것이라는걸.

그와 동시에.

까득.

"파스멜... 이 새끼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손 떼라고 했었잖아."

이를 간 여인이 파스멜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재수 없게 강적과 엮일 일이 없다.

다만 남은 가능성이라고는 하나다.

자신이 포기하라고 한 그 적통가 꼬맹이 둘을 쫓다가 재수 없게 휘말린 것이다.

그런 여인의 말에 눈을 질끈 감은 파스멜은 이내 여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누나. 그건 진짜 미안해. 내 잘못이야. 호프만이 죽은 것도 내 잘못이고. 하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냐."

"?"

"도망가자. 우리."

"... 갑자기 뭔 미친 소리야. 어디로."

"바다 건너로."

호프만의 말에 여인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다 건너 다른 구역으로 가자고?

물론 지금 이 구역, 뇌종 지대가 개판이긴 하다.

하지만 바꿔 말해 그런 개판이기에 자신 같은 녀석들이 활개 치고 나름 목에 힘주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꾸라지는 흙탕물이 제격인 셈이다.

한데 다른 구역으로 가자고?

지금 여기 기껏 마련한 기반에 잘 나가는 사업들을 모조리 놔두고?

그래, 그럴 수 있다 치자.

설령 그렇게 넘어간다 한들 그곳엔 무엇이 있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파스멜. 네가 지금 좀 다급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인데... 네가 지은 게 그렇게까지 죽을죄는 아니거든? 호프만도 딱 잘라 말하면 그냥 외부 인원이고... 내가 힘 좀 쓰고 징계 좀 먹으면 발바닥에 땀나게 일하고 끝날 정도라고. 한데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정신이 나간 듯한 파스멜을 일단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여인이 살살 타이르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급박하면 모를까 지금은 블랙네트워크의 대호황기다.

새로운 아이템에 각종 귀족가들로부터 수요가 폭주하고 있으며 온갖 물자와 자원들이 창고가 부족할 정도로 쌓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파스멜과 같은, 믿을 만 하면서도 일 잘하는 인력이다.

파스멜이 한정 허가권을 날려버렸다는 건 반대로 말해 파스멜에게 그걸 사용해도 될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즉 미사일 세 발에 호프만 같은 외부 인력을 날려버린 것 정도는 한심하긴 해도 죽을죄는 아니란 거다.

한데 무슨 도망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여인을 향해 불안한 표정을 짓던 파스멜이 뭐라 입을 열려고 하기도 전.

쿠구구구궁...!

"엉? 뭐야."

철문 밖, 골목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진동에 여인이 눈썹을 꺾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컥 열리는 문.

"지부장님! 습격... 습격입니다!"

"????"

다급하게 뛰쳐들어온 수하의 외침에 잠시 벙찐 얼굴로 바라보던 여인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

고철성.

로블롭, 성벽 외곽. <철거북성>

지금 난민들이 넘쳐나서 그럴 뿐, 원래 로블롭 성벽의 바깥쪽에도 수많은 이들이 살았었다.

고철을 이어 붙이고 개조하며 증축하고 골목과 구조물을 만들며.

그렇게 수만이 넘는 이들이 끊임없이 거주구를 개조하고 개조하며 고철로 만들어진 미로의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넓어져 갔다.

현지인이라고 해도 그 길을 제대로 알기 힘들 정도였다.

이젠 이곳에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도 가장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마치 홍콩의 구룡성채마냥 말이다.

블랙네트워크의 주요 활동 지역도 이 중 하나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간 이 없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런 녀석들을 두려워하는 일반인들 기준인 것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정확히 말하면 헌 집을 박살내 주는 중이다.

새집은 알아서 구해야 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우아아아아악!”

놀러 가듯 걸어가 미로처럼 뻗은 금속 구조물의 일부를 걷어차 날려버린 강태석이 뻥 뚫린 벽 안으로 들어가 우르르 도망치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일반인일 수도 있지만, 강태석은 그런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럴 구역도 아니거니와 일반인 놈들은 저렇게 흉악한 무기를 들고 쏴 갈길 준비를 하지 않을 테니까.

"죽어 이 새끼야!"

투콰콰콰콰콰콰콰콱!

평범한 고철집으로 위장하고 있던 진지, 그 안에 준비되어 있던 거치형 레일건 포대가 굉음과 함께 드르르르륵 불을 내뿜었다.

엑소슈트의 팔에 붙어있는 디스트로이어를 떼다가 거치형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평범한 거주구가 아닌, 블랙네트워크의 진짜 입구 방어 진지 역할을 하는 이 구조물에 어울리는 물건이다.

검기 사용자라고 해도 맨몸으로 버텨 낼 만한 물건이 아니니 예전의 강태석이었다면 몸을 비켜서야 했겠지만...

콰르르르르륵!

강태석이 손에 들린 칠채영도를 한 바퀴 가볍게 휘돌리자 허공에 원형으로 뻗어 나간 한줄기 선이 순식간에 구체처럼 번져 강태석의 몸을 뒤덮었다.

직경 2.5m 정도.

흰 거미줄들을 엮어 만든 것 같은 반투명하고 헐거운 구체.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구체가 강태석의 몸을 감싼 순간 날아드는 총알이 모조리 조각나 바닥에 떨어지거나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륵....

"어헉... 우아아아아아악!"

기겁을 한 상대가 놀라 더욱 조정간을 가열차게 잡아당기며 연사를 해댔지만, 소용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강태석이 슬쩍 칼끝을 움직이자 몸 주변을 감싸고 있던 구체가 마치 비누 거품처럼 쭈욱 밀려 나가며 강태석의 몸을 벗어나 전방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총알을 모조리 갈아버리며, 궤적 안에 남아있는 파편과 구조물 또한 가루로 만들었다.

잠시 후.

“우아아아아악!”

서거거거거거거걱!

비명을 내지르며 조종간에서 상대가 뛰쳐나온 자리.

이를 스치고 지나며 디스트로이어고 탄알이고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버린 구체가 허공에서 스르륵 흩어지는 걸 본 강태석이 적막해진 고철 미로성의 안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구검기.

온몸을 펼쳐 휘감는 공능.

이로써 검기 사용자 또한 전장을 누빌 정도의 파괴력과 방어력을 지닌다.

"두껍아. 머리를 내놓아라. 어디 있는지 몰라도."

강태석이 휘적휘적 걸으며 중얼거렸다.

안 나와도 별 상관은 없다.

자신은 오늘 내로 여기 있는 블랙네트워크 지부 전체를 모조리 갈아버릴 생각이니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후우웅...

칠채영도를 부웅 휘두른 강태석이 재차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너 이 새끼야. 진짜 뭐하는 놈이야."

"흠."

우르르 수하들을 끌고 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여인을 보며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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