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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르릉...
지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물건들을 뿜어내는 어딘가로 다가선 강태석이 그 밀려 나오는 중심지로 향했다.
치직...
치이이익...
치직.
고철 한가운데.
수십 개의 로봇팔과 레이저, 벨트와 기계들이 자유자재로 위치를 바꿔가며 시시각각 여러 가지의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연방이 완성시켰다는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
<팩토리>
플랜트보다 한 단계 위의 문명.
플랜트는 단순히 에너지를 생산해내고 간단한 물건 등의 조립과 비축 등에 특화되어 있지만, 팩토리는 다르다.
말 그대로 설계도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무엇이건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추가적인 공정도, 특화된 제조 라인도 필요 없이 자유자재로.
심지어 이를 운용하는 테크니컬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 즉석으로 설계도가 제작 가능하고 이를 팩토리의 수준이 받쳐준다면, 그 자리에서 이 세상에 없던 물건을 즉각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눈앞, 고철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팩토리도 그중 하나.
정확히 말하면 팩토리, <야전 타입>
"낮은 수준의 팩토리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지."
키이이잉...
어느새 기계 근처까지 다가간 강태석이 흘러내리는 고철들 틈새로 보이는 매끈한 표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팩토리, 야전 타입.
말 그대로 야전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이동 혹은 조립이 가능하게 설계된, 조금 낮은 등급의 팩토리.
정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무한정에 가까운 자원과 에너지원을 공급받으며 한 문명을 책임질 만한 군대와 물자를 뽑아내는 등급의 진짜 팩토리와는 비교하기 힘들다.
하지만 특수한 지역의 특수한 자원을 곧장 활용하기 위한 등의 목적으로 특별 제작된 팩토리, 야전 타입, 통칭 팩토리-M(Movable) 타입은 각기 다양한 형태와 성능을 자랑하며 때로는 정식 팩토리조차 뛰어넘는 특수한 이점을 선보인다.
일단 이런 걸 손에 넣었으니 중요한 건 작동 정지, 그리고 등록이다.
띠링!
<관리자 권한이 리셋 됩니다. 재인증 중...>
<충분한 수준의 권한을 보유하였습니다. 팩토리-NO. 1148의 정식 소유자로 등록하시겠습니까?>
고철 사이로 보이는 패널 위에 손을 얹은 강태석이 버튼에 손을 가져가자 또다시 패널이 떠올랐다.
띠링!
<재등록 중... 일시적으로 작동을 중단합니다.>
키이잉...
쿠르르르릉!
그제서야 작동을 멈추고 온갖 잡동사니들을 뱉어내는 행위를 멈춘 강태석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원래 공업지대에 자리 잡고 이 구역에서 필요로 하던 모든 물건의 생산을 담당하던 녀석은 궤도 엘리베이터의 추락과 함께 그 기능이 일시적으로 망가진 것으로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이 도망친 자리, 끊임없이 물자와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온갖 쓸모없는 물건들을 토해냈던 것이고.
어느 정도냐면... 이 구역이 고철로 그득 차 하나의 육지를 이뤄버릴 정도였다.
어쩌면 이 팩토리는 바닷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렇게 쌓여버린 고철속에서 홀로 작동하던 중, 금속 생명체처럼 틈바구니를 찾아 든 외계 생명체가 그 에너지를 탐내어 파고들었을 것이다.
이후 모조리 빨아 먹히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작동을 멈췄을 것이다.
"얻은 게 많네."
절그럭.
키잉...
휏불마냥 검기를 피워 올려 주변을 둘러보던 강태석이 철그럭거리는 고철을 헤집으며 일단 바깥으로 향했다.
플랜트를 얻었다고 해도 제대로 써먹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이 주변의 고철더미들을 치워내고 끄집어 내야 하며, 제대로 된 자원과 동력의 공급도 필요하다.
외계 생명체의 지나친 포식으로 인해 주변 동력원들이 거의 망가져 버렸을 테니.
잡동사니 따위의 생산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된 병기들을 생산하려면 이전까지 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수준의 에너지 공급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설계도!
설계도가 내장되어 있던 파일런과 다르게 팩토리는 스스로 설계도를 구해 입력을 시켜야 한다.
어쩌면 저 안에 설계도가 들어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강태석은 거기까지는 기대 안 하기로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그리고 저걸 제외해도 얻은 게 많다.
옆에서 열심히 외계 생명체를 소화시키며 불룩거리고 있는 금속 생명체부터, 한 단계 오른 레벨까지.
띠링!
<레벨 19 달성!>
<추가 스탯 4가 지급됩니다.>
<전마강갑 자체가 강화됩니다. 전마강갑과 외부와의 동조율이 증가합니다.>
<스탯 투자...어둠샘 4(전 마력>감염된 푸른 피)>
<외부와의 동조율 증가로 이상 상념(전 기술>기예)가 2 증가합니다.>
<강태석>
> 레벨 : 19(7.08%)
> 직업 : 전마강갑 지주(등급-?)
> 스킬 : 전마강갑 장착*해방(?)/영뇌수(D+)/무량검기(D+)/그림자칼-지*인(D++)/금안(C-)
> 스탯 : 흑선(D+) 13/암흑 회로(D+) 13/짙은 그림자(D+) 12/어둠샘(C+) 18/이상 상념(D+) 14.
> 무장 : 전마강갑(?)/여의(S?)/칠채영창(B?)/오시리스(C-잠항 중)/알레고리아(B)/NO. 111(C+)
꿈틀
한차례 촤르르륵 비늘처럼 변하며 피부를 뒤덮었다 사라지는 전마강갑의 검은 광택을 보며 강태석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일단 중요한 건 마력.
밸런스를 좋아하지만 강화된 흑기사의 장착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마력부터.
거기에 이런 변화를 감지한 것인지 전마강갑 자체가 이번에는 스스로 변화했다.
마치 파일럿의 슈트마냥, 흑기사를 더욱더 정밀하게 집어삼키고 조종할 수 있는 형태로.
이제 자신의 몸을 감싼 이 갑옷은 흑기사에 탑승한 순간 신경계마냥 쭉쭉 뻗어 더욱 섬세하게 기체 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증가한 이상 상념 스탯이 그 증거.
한층 더 정교한 검기와 검술, 혹은 그 이상의 권능들을 흑기사에 탄 채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놈이 언제 소화를 다 시키냐 이건데..."
철그럭.
고철 사이를 헤치며 내려온 입구까지 다가간 강태석이 자신의 옆, 울룩거리고 있는 정팔면체를 보며 중얼거린 그때.
쿠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아앙!
"?"
위로 쭉 뻗은 수직, 수백 미터의 통로.
이를 격하고 지하까지 울려 퍼지는 우렁찬 굉음에 강태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금속섬. D-113구역.
"미쳤어? 대체 무스으으으으으으은!"
쿠르르릉...
피범벅이 된 통제실 안에 서 있던 중년 여인이 흥얼거리는 사내를 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기습은 적절하게 먹혀들어 갔으며 수도의 비상사태에 집중하던 방위 부대들은 자신들의 공격에 저항했지만, 착실히 베어 넘겨졌다.
그중 눈에 돋보이던 것이 사내의 실력.
곳곳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지휘관은 모조리 베어 넘겼고 탑승 대기 중이던 파일럿들은 사로잡았으며 이곳, 통제실까지 훌륭히 손에 넣었다.
그래, 완벽했다.
방금 전 이 미친 녀석이 건너편의 금속섬에 포격을 갈겨버리지만 않았다면!
키이이이잉...
무인 조종 시스템으로 원격 관리되는 <터렛 타워>의 통제 패널을 쥔 채 재미있다는 듯 그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대던 사내가 중년 여인을 보며 웃었다.
"너희는 통이 너무 작아. 일단 손에 넣었으면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우리가 이런 미친 짓도 할 수 있다는 걸."
"...!"
"참새가 발톱 가진다고 사자들이 코웃음이나 치겠어? 이렇게 한입 앙~ 베어 물어줘야 녀석들도 안다고. 아 이 새끼들이 진짜 제 몸을 안 사리는구나. 여차하면 다 죽어도 동귀어진의 자세로 발버둥 치겠구나... 이렇게 말이야."
"..."
사내의 말에 중년 여인의 표정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책임질 이들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오직 홀로 날뛰는 광인의 마인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도박과 같다.
강자는 납작 엎드려 설설 기는 약자는 용서해도, 대거리하는 녀석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어맛 뜨거라!’ 하며 조심할 수도 있지만, ‘어라 뜨겁네?’ 하며 짓밟아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졸지에 이 모든 일의 공범자가 된 중년 여인이 분노에 그득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넌 미쳤다. 넌 미쳤어. 왜 홀로 떠돌아다녔는지 알겠구나. 그딴 식으로 사니..."
"응? 아닌데?"
"뭐?"
"혼자 아니라고."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터어엉...
터어어어어엉...
터엉...
중년 여인의 초인적인 감각에 금속섬의 구석구석에서 무언가들이 뛰어오르는 소리들이 들렸다.
바다에서 차례대로 올라오는 몇 명의 남녀들.
하나하나 그 기파가 장난이 아니다.
자신도 일대일로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지경.
그런 이들이 거진 열, 스물을 넘어 속속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런 중년 여인을 향해 사내가 웃었다.
"일단 내 동료들이야. 당분간 여기서 먹고 자고 활동하려고. 좀 잘 챙겨줘."
"......."
이곳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나운 기운들에 중년 여인의 얼굴이 비통으로 물들었다.
자신들은 결국 이용당한 것이었다.
눈앞의 사내와 녀석들의 동료에게.
단순한 거점의 확보와 제공을 위해서.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섬 위에 오른 이들의 수준은 격전에 피해를 본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으니.
그런 여인을 보며 웃은 사내가 섬 너머, 육지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한결 조용해진 바다 건너의 수도 근처를.
"이제 어떻게 해볼까?"
마치 잘 차려진 만찬을 보듯 사내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고철의 대지 위를 바라보았다.
**
쿠르르릉...
"이게 뭔 일이래."
지상으로 기어 나온 강태석이 주변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어른들끼리 싸우기 시작하면 어린아이들이 지레 놀라 싸움을 멈추듯.
강태석이 내려가기 전보다 지상은 한결 더 평화롭고 조용해진 상태였다.
이유는 갑작스레 금속섬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굉음 때문.
쿠르르르릉...
키리릭...
적통 파벌 측의 금속섬을 둘러싼 푸른 장막이 지금도 불타오르는 화염과 연기들을 밀어내며 굳건히 제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갑작스레 가해진 신흥 파벌 측 금속섬의 공격을 쉴드 계통 중장갑 병기로 막아낸 것.
일단 피해는 없다.
하지만 이걸 지켜보던 난민과 생존자들 모두 오금이 저려 자신들이 벌이던 학살과 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자신들은 정말로 다 죽으니까.
그들의 난동은 이런 상호 확증 파괴 속, 지나치게 강한 힘을 가진 저들이 스스로가 두려워서라도 결코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좀 더 약세를 보인다고 여겨지는 신흥 파벌 쪽이 적통 파벌 쪽을 선제공격하며?
전면전이 벌어지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수준이 아니다.
둘 사이에 낀 생존자들은 도망가지도 못한 채 퍼부어지는 화력에 짓눌려 모조리 불타오르고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광기 위를 압도적 공포가 차갑게 짓눌러버린 현장 속.
저벅.
"원하던 바는 이루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그런데 옆의 그 사람은 누구지?"
한결 피로한 표정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오는 카르멘을 발견한 강태석이 그 옆, 처음 보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이오스와 비슷한 행색이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전혀 다르다.
그런 강태석의 말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탈리만 공 쪽에서."
탈리만이라면 신흥 파벌 측 수장의 이름.
이에 강태석이 이채를 띈 채 카르멘의 옆에 선 청년, 그라함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