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72화 (17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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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악...”

팔이 잘려 나가 울부짖는 사내를 보던 강태석이 옆의 카르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보니 작정하고 일부러 한 것.

"화났어?"

"..."

강태석이 허리춤의 칼 손잡이에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무표정하게 주변만을 둘러보는 카르멘을 보다 주변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나름 이곳 리더를 자처하는 녀석의 팔을 잘랐지만, 주변 녀석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마냥 녀석들의 표정이 굳고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철커덕.

마치 불길처럼 번져가는 움직임에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이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기에.

자신들에게야 문제 될 건 없지만 사태가 커진다.

그런 강태석에게 건네지는 한마디.

"먼저 가시지요. 걱정 말고."

"?"

"저는 여길 해결하고 가지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이 망할 새끼들이!”

투타타타타타타타!

누군가의 괴성과 총질을 시작으로 사방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수도, 로블롭의 성벽 내부.

투타타타타...

"바깥이 소란스럽네요."

"어련히 있는 일이지."

경사가 비스듬히 져 있는 수도 내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저택의 최상층, 집무실에 앉아있던 사내가 성벽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콧김을 흥 내뿜었다.

이 난리통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만 부지한 채 몰려들었으니 어련하겠는가.

사실 지금에서야 이 사태가 벌어진 것도 평민들치고는 제법 오래 참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다른 일.

끼익.

끼이익...

흔들의자에 앉아 의족으로 바뀐 자신의 왼쪽 다리를 보며 몸을 흔들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무릎 꿇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적통 파벌 녀석들이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네. 이오스와 특전대 녀석들이 지금 수도 안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적통 파벌 측 인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습니다."

"으으음."

사내가 묘한 소리를 내며 재차 흔들의자에서 몸을 흔들었다.

이오스가 돌아온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 녀석들, 적통 파벌 측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것도 자신이 심어놓은 첩자들에게도 들킬 만큼, 노골적으로?

비밀스럽게 접촉한다면서 벌써 자신에게 정보가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상대의 움직임이 투박하면서도 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지금 바깥에 다녀온 이오스가 이렇게 급하게 자신들 주요 인물들을 만나고 다닐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난리가 난 C구역과 뇌종의 상황 때문에?

그럴 거라면 그냥 군부로 가서 특전대로서의 제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

여기까지만 들어서는 영 감이 안 잡혔기에 사내는 곰곰이 고민하다 재차 물었다.

"목록 한번 읊어보지.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아 네. 적통 군벌 측, 카빌룬 대령과 검공, 그리고 그 7제자와..."

차례대로 읊어져 나오는 명단들을 듣던 사내가 눈을 감고 의자 팔걸이를 탁탁 두들겼다.

적통 파벌인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이런 이들을 조심스레 만나고 다닐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사내의 눈이 어느 순간 크게 떠졌다.

저들의 공통점이 떠올랐기에.

모두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대단하고, 그 옛날 사라진 왕가를 그리워하며 이를 지금도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는 점.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이오스가 이런 이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럴 이유가 없지만, 만약 그래야 한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정말로 말도 안 되지만...

'왕실 적통의 후계를 찾아내어 같이 돌아온 것.'

벌떡.

"...!"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선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란 청년을 무시한 사내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저택의 집무실 밖, 성벽 너머로 펼쳐진 땅과 그 너머의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 둥둥 떠다니는 한 척의 배마저도.

이오스가 타고 들어온 배.

그러고 보니 저게 아직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유도 수상하다.

육지가 난리라지만 굳이 그게 문제라면 적통 파벌 측의 해양 기지 안에 배를 대면 그만이다.

'설마 저 안에..'

굳은 눈으로 배를 바라보던 사내가 청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라함. 지금 당장 네 아래 수하들을 풀어서 배로 보내봐라. 그리고 혹여 배로부터 흩어지거나 빠져나온 흔적은 없는지도."

배에 아직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배를 띄워 놨다는 건 그 안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는 거고.

그곳에 가면 이 사태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으리.

"서둘러야 한다."

"... 알겠습니다."

그라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항상 여유로우시던 분이 이런 태도라니.

스윽.

고개를 들어 올린 그라함이 눈앞, 자신들 신흥 파벌의 수장을 맡고있는 외교부장, 칼리만 공을 바라보았다.

**

투타타타타!

콰아아아아아아앙!

"진짜 내버려 두고 와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사방에서 거세어지는 총소리와 격돌음 속, 그 사이를 걷던 강태석이 숨을 푸 내쉬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모두가 날이 선 채 모여있던 일촉즉발의 상황에 불씨가 제대로 던져 지펴진 상황.

이 근방에서 제대로 된 녀석은 없을 거 같긴 했지만 이 수도 전체, 모든 난민촌을 고려한다면 또 모른다.

제대로 된 녀석들, 혹은 강자들 또한 자신들의 한 몸을 부지한 채 이곳으로 흘러들었을 테니.

하지만 강태석은 이내 신경을 끄고 몸을 숙인 채 전장, 그 한복판을 지나며 발걸음을 옮겼다.

티이이이잉!

터어어엉!

'본인의 뜻이 있겠지.'

강태석이 날아드는 총알을 전마강갑을 일으켜 튕겨낸 뒤 중얼거렸다.

결국 상황이 복잡해지면 각자가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가던 길을 가게 되는 법이다.

자신은 이곳 도시 지하에서 할 일이 있고, 카르멘은 이곳 위에 남는 길을 택했다.

그 뒤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

쿠르르르릉...

어둠을 한층 더 짙게 끌어올려 난전 속에서 자신을 낮춘 강태석이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금속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길쭉하게 뻗어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던 정팔면체가 수직으로 선 채 그 뾰족한 끝점으로 바닥,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바닥,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기운.

이 아래 지하 공간이 있고 목적지가 그곳이라는 뜻이다.

키리리리릭...

정팔면체에서 NO. 111을 뽑아 들려던 강태석은 순간 그 손잡이만 잡고 뽑아 든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래 인걸 아는 건 좋은데...

"이거 뭐 얼마나 파야 하는 거야."

아래서 뭔가 느껴지기는 하는데 상당히 아래서 느껴진다.

지하까지의 거리가 제법이라는 뜻.

이걸 어느새 삽마냥 칼질을 해가며 뚫어낸단 말인가?

투타타타...

“아악!”

"..."

전장 속, 땅바닥을 보며 고민하던 강태석은 이내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NO. 111의 손잡이를 금속 생명 안에 스윽 집어넣고 자신의 왼손 반지를 뽑아 들었다.

알레고리아.

여전히 붉고 영롱한 빛을 뽐내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던 강태석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손끝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검기를 넘어선 검벽, 면검기의 원리를 응용하여.

날카로워지되 터져나가지 않고 부드럽게.

그렇게 알레고리아가 면검기의 묘리와 함께 마력을 쭉쭉 빨아먹던 어느 순간.

키이이이이잉...!

강태석이 손끝에서 빛나는 반경 20cm의 붉은 빛무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완성.

떨어트리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빛무리의 반지를 강태석이 손끝에서 놓은 순간.

키이이잉...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순식간에 반경 1m가량으로 확장된 금속의 칼날이 마치 믹서기 같은 형체를 유지한 채 거침없이 땅을 갈아버리며 아래, 그 아래로 시추공마냥 깊숙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

해안가.

쩌어억...

"끄어어억..."

멋도 모르고 덤벼들던 난민 하나를 썰어버린 청년, 그라함은 자신의 발치에 튈 뻔한 피를 보며 인상을 팍 쓴 뒤 고개를 돌려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이오스가 타고 온 배.

<배로는 네가 직접 가라.>

"크흐. 우리는 인연이 참 많구나. 이오스."

칼리만 공의 명에 따라 해안가로 온 그라함이 배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오스와 그라함.

적통 파벌과 신흥 파벌.

광채와 그림자.

녀석과 자신은 비슷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를 떠올리며 웃은 그라함이 몸을 우득 풀며 손안에 나무판자 몇 개를 움켜쥐었다.

강기 사용자들, 혹은 특별한 기공을 익힌 상위 검기 사용자들은 물 위를 박차고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족히 수백 미터는 떨어진 배까지 도달하려면 적어도 판자 열 장은 써야 할 터.

오는 길에 적당히 주워온 판자의 개수가 여덟 장.

"나머지는... 좋군."

마침 자신의 발치에 쓰러져있는 녀석의 손에 판자 조각 몇 개가 보인다.

온통 고철뿐인 이곳, 불쏘시개로 쓸 것들도 구하기 힘들기에 이리저리 구하러 돌아다닌 모양.

자신을 덮치려던 이유도 자신의 손에 들린 것들 때문인 걸로 보였고.

'나무판자 몇 개에 목숨을 잃다니.'

그 부질없음에 콧김을 내뿜은 그라함이 상대의 손에 들린, 피 묻은 판자 몇 개를 주워들은 뒤 그대로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잠시 후.

휘리리리릭....

터엉...

휘리리리릭!

내던져지는 판자.

이어 그 위로 거침없이 뛰어오른 그라함이 이를 징검다리마냥 박차고 내던지기를 반복하며 바다에 뜬 배로 나아갔다.

**

지하, 깊은 곳.

콰콰콰콰콰콰콱...

어두컴컴한 공간, 그 천장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쩌저적 금이 가며 무언가가 파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콰콰콰콱...

콰득!

위에서 떨어져 내린 붉은 광채의 칼날 구체가 커다란 구멍을 낸 채 바닥에 떨어져 내려 처박히며 제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우웅...

터어어어엉!

키리리릭...

이어 그 구멍을 따라 쭈욱 떨어져 내린 강태석이 바닥, 서서히 오그라들며 반지 형태로 돌아간 알레고리아를 주워들어 살폈다.

알레고리아의 개량 운용 형태.

마력을 불어넣었을 때는 단순히 폭발의 형식으로밖에 쓸 수 없었지만, 면검기의 원리를 이용하면 이렇게 지속적인 파괴가 가능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예전, 무림계의 십단금처럼 말이다.

'한 2성? 그 정도 위력이랑 비슷하려나?'

쓸데없는 정보를 떠올려보던 강태석은 알레고리아를 자신의 왼손에 다시 낀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칠흑뿐인 어둠.

이곳은 거의 수백 미터나 지상에서 내려온 지하이다.

아무리 콜로니가 넓다고 해도 기이할 정도의 형태.

하지만 강태석은 왜 이 6층이 이곳을 둘러싼, 원통형의 콜로니보다도 광대하고 높고 깊은지 잘 알고 있었다.

위쪽, 7층의 <왜곡차원장>.

7층의 구조물이 차원을 비틀어 6층을 확장시킨 채 고정한다.

덕분에 이곳 6층은 다른 공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볼륨의 대자연환경을 말 그대로, 통째로 <때려박아> 넣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깊은 곳에 자신의 목적지가 있다.

키이잉...

다시 나침반처럼 빙글빙글 돌다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는 금속 생명의 정팔면체를 본 강태석이 다시금 어둠 한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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