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64화 (16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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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릉!

줄기줄기 머리 위로 뻗은 아홉 줄기 번개.

그 사방으로 터져 나오며 다가드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뇌전의 폭풍.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칼라다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젊은 녀석들이야 모르겠지만 잠들었다 일어난, 자신 같은 이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녀석.

특히 이 근방에서 활동했었다면 모를 수가 없다.

황금 순록의 왕관.

뇌지국의 왕가만이 부릴 수 있는 특별한 권능.

특히 여덟 뿔이 아닌, 아홉 뿔이라면 적통 국왕만이 부릴 수 있는 신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실로 오랜만에 보게 되었으니 반가울 수밖에.

"나라가 통째로 망하고 국왕은 실종되었다기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더니."

깨어난 이후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칼라다가 턱을 매만졌다.

자신이 잡혀 들어간 때가 한참 그쯤이었다.

기계병기들이 발원하기 전, 연방이 세력을 떨치며 사방을 집어삼키던 시기.

자신이 활동하던 뇌지국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국가 전체가 통째로 뒤흔들리며 연방에 집어 삼켜졌다.

자신은 그 혼란 틈에 어떻게든 좀 더 챙겨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사고를 쳐서 사로잡힌 뒤 연방의 에테르장에 갇히게 되었다.

깨어나 들으니 국왕놈은 기계병기들의 습격 속에 끝내 인간을 배신하고 그쪽에 붙었다가 연방에서 나온 귀족인가 초인에 의해 박살이 났다고 들었는데 이를 눈으로 확인하니 어찌 아니 반가우랴?

하지만 칼라다는 이내 신경을 껐다.

자신이 맡은 바 일은 저쪽이 아니었으니까.

일단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우선.

인력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이를 알차게 써서 해내야 한다.

그리고 성공한다면 보상으로는...

"나중에 소주한테 티타임이나 갖자고 할까? 단둘이?"

흥얼거린 칼라다는 뒤쪽에 관심을 꺼버린 뒤 성큼성큼 고철산을 마저 뛰어 내려가 번개 폭풍이 터져 나오고 있는 도시의 반대 방향을 향했다.

**

콰르르릉...

콰지지직!

띠링!

<황금 순록의 왕관이 발현됩니다.>

<반경 140m 이내 필중 효과의 번개가 발현됩니다.>

<기계병기들에게 250%의 추가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단 유지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사용에 유의하십시오.>

<본체의 동력이 끊길 시 마력이 남아있어도 흑기사의 구동이 멈출 수 있습니다.>

<... 현재 정체불명의 에너지장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끊임없이 동력원을 갉아먹고 출력을 저하시킵니다. 운용에 주의하십시오.>

쉴새 없이 떠오르는 상태창을 한쪽으로 치워버린 강태석이 자신의 전신을 휘감은 번개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꼈다.

자신의 뇌신경, 수백 수천만 개의 세포들에서 뻗어 나온 가닥들이 모조리 머리 밖으로 나와 얽히고설켜 굵은 뿔이 된 듯하다.

그런 뿔이 아홉 개.

뇌를 뽑아내어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바깥으로 드러낸 듯하다.

과도하게 개방된 감각, 온 사방을 오감을 넘은 육감으로 샅샅이 핥는 기분.

하지만 강태석은 왜 이토록 과도한 감각이 필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방을 감싼 번개 줄기들을 자신의 수족마냥 다루기 위해서!

콰르르르릉!

콰지지지지지직!

체인라이트닝.

어지간한 마법사들도 신경 써서 다뤄야 할 스킬들이 수십 다발 뻗어 나가며 주변에서 달려드는 기계병기들의 내부와 코어를 모조리 불태웠다.

자폭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채 무력하게 그 자리에서 타들어 가며 멈춰버릴 지경.

거기서 멈추지 않고 뻗어 나간 번개는 대기를 따라, 금속을 따라 주변의 다른 피뢰침 역할을 하는 기계병기들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가며 주변을 몽땅 뒤덮는 황금빛 파도를 형성했다.

랜덤해 보이지만 지극히 정교한 계산에 의해 완성된 현상.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아홉 개의 뿔, 아홉 개의 컨트롤타워를 머리에 왕관처럼 두른 강태석이 오른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주변의 잡스런 녀석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이제는 가장 문제 되는 녀석에게 집중할 차례.

콰드드드득!

작은 운동장 같은 라이노의 등판에 디딘 양발에 강하게 힘을 준 채 오른손을 잡아당기자 그 끝에 걸린 두터운 목이 콰드드득 소리를 내며 당겨졌다.

하지만 아무리 흑기사의 내부가 금속 생명의 고등지성에 의해 개조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9m와 50m라는 커다란 체급차가 있는 상황.

심지어 흑기사의 날렵한 형태와 라이노의 육중한 형태를 비교하면 체중 차이는 몇백 배나 더 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쉽사리 끌려오지 않는 상황.

오히려 라이노가 힘을 주자 바닥을 지탱하던 발이 콰륵 끌리며 일순간 짧은 고랑을 만들어냈고, 그 위에서 다시 전신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은 강태석이 흑기사 내부에서 심호흡을 했다.

체급 차이가 무슨 상관이랴?

인간이 언제 코끼리보다 덩치가 커서 만물의 영장 자리에 선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빈틈, 그리고 이를 찌를 더 강렬한 악의.

콰르르르릉!

코어에 남은 출력이 모조리 채찍을 타고 올라가 라이노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NO. 111의 이빨로 흘러들었다.

이어 이빨에 맺힌 건 주욱 솟은 황금빛 뇌전의 검기.

강태석이 한층 더 정신을 집중하자 목덜미를 둘러싼 이빨에서 길이 3m에 달하는 검기들이 기다란 송곳니마냥 솟구쳐 라이노의 목덜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도사견에게 채우는 삐죽한 가시 목걸이를 마치 역으로 휘감아 안으로 채우듯.

그렇게 수십 줄기 검기가 채찍을 타고 라이노의 목안을 파고든 순간.

"잘 가라."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득!

강태석이 강하게 힘을 주어 채찍을 당기자 수십 줄기 칼날들이 마치 믹서기마냥 강렬한 속도로 라이노의 목덜미 주변을 회전해 돌았다.

**

우지지직...

터어어어엉!

머리가 떨어져 내리자 육중한 거체가 그대로 기울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 타들었던 기계 거미들의 시체들 역시 우르르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요란한 소리를 토내했다.

터어엉!

흑기사에 탄 채 그 위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선 강태석이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상태를 체크했다.

마력은 살짝 여유, 25% 정도.

출력은 그보다 조금 모자라 15% 정도.

황금 순록의 왕관은 위력은 좋았지만, 출력 낭비가 심한 데다 이걸로 불태운 녀석들의 코어는 금속 생명이 흡수할 수가 없다.

반면 여전히 적은 많다.

라이노처럼 눈에 튀는 녀석들은 줄었지만, 도시와 대지, 구석구석을 녀석들이 집어삼키듯 몰아치고 있는 상황.

'이대로 가면 끝도 없겠는데.'

콰아아아아앙!

강태석이 달려드는, 늑대 모양의 기계병기 하나를 칼로 짓눌러 부수고 코어를 삼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자란 출력이야 또다시 이렇게 때려죽이고 흡수하며 채우면 되지만 마력은 그렇지 않다.

전투를 지속하는 이상 계속해서 줄어들고 언젠가는 바닥이 나며 변신이 풀린다.

싸울수록 경험치가 쌓이고 강해지는 거야 좋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적당히, 싸우고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

날던 새가 끝없는 바다에 지쳐 떨어지듯, 이대로 가면 마력이 바닥나 몰아치는 기계병기들의 물결에 집어 삼켜지게 생겼다.

녀석들의 숫자도 무한히 아니니 끝이야 있겠지만 이런 페이스로는 곤란하다.

좀 더 강렬하게, 단번에.

전술적이 아닌 전략적으로 녀석들의 숫자를 단번에 줄여버릴 방법이 필요하다.

잠시 후.

"흠. 어쩌면..."

콰르르릉...

저 멀리.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살피던 강태석의 시선이 도시 한가운데 우뚝 선 고철산에 고정되었다.

**

"..."

콰아아앙!

기계병기들 속, 칼을 휘두르던 흑발 여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까 전 보았던 광경이 눈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도시를 짓밟아 부수던 거대 마수.

그 주변에 해일처럼 달려들던 적세.

그리고 이를 단번에 짓밟아 부수던 황금 갑옷, 황금 왕관의 기사.

옛 왕가의 권능 따위, 단순히 상징성만 되찾는 데 사용하면 그만인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 권능이 그토록 위엄 있고 강렬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적들에게 왕국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옛 왕이 비통에 그득 차 기계병기들에게 투신하지도 않았을 테니.

하지만 직접 보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심장 깊숙한 곳이 쿵쿵, 두근두근 울리는 기분.

사랑이나 놀라움 같은 감정이 아니다.

그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그렇지만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

쩌어어어어어엉!

여섯 갈래의 번개 가지가 돋아난 검기의 칼을 휘둘러 주변을 정리해가던 여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잡념을 품은 채 싸우다 보니 어느새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

시가지 사이, 주변은 온통 키릭거리는 소리만을 뿜어대는 기계병기들 뿐.

'시선을 끄는 역할이라고 해도 너무 멀어지면 안 됐는데...!'

콰지지지직!

검기를 휘둘러 딱정벌레 형태의 기계병기 하나를 베고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려던 흑발 여인이 당황하며 멈춰 섰다.

쉽게 베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크기 30cm의 조그마한 녀석이 어찌나 단단했던지 안쪽 몸뚱이로 칼날을 꽈득 물어 세우고 붙잡았기 때문.

심지어 그 자리에서 요동치는 코어까지.

이대로라면 폭발한다!

칼을 놓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의 순간, 어느새 시뻘겋게 변한 기계병기의 모습에 여인이 이를 악물고 온몸을 검기로 휘감으며 몸을 웅크리던 그때.

쿠우웅!

콰드드드드득!

"!!!!!!!!"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린 거대한 손바닥.

이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으깨져 손바닥과 바닥 사이에서 최후의 단말마마냥 비좁은 틈으로 열기를 뿜어내고 스러진 기계병기를 본 여인이 웅크린 몸을 피고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아직은 낯선 흑색의 기체.

<본대에 합류하십시오.>

콰드드득...

작은 한마디와 함께 짓눌렀던 기계 벌레에게 손을 떼고 일어난 흑색의 기체가 그대로 검을 수평으로 휘두르자 사방으로 광풍이 휘몰아치며 여인의 머릿결을 이리저리 흩날리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대파괴.

콰콰콰콰콰콰콰쾅!

콰드드드드득!

기계병기, 고철 건물, 지형지물.

범위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가리지 않고 단번에 두 동강이 나며 위아래로 솟구치고 처박혔다.

주욱 늘어난 수백 미터 길이, 강철의 칼날에 의해!

키드드득...

단번에 확보된 시야 너머, 이쪽 방향을 황망히 바라보는 본대와 사람들을 확인한 여인이 몸을 날리기 전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려구요? 따라가겠습니다."

쿠우웅...

자신과 다른, 그러니까 서쪽으로 빠져나가려는 본대와는 다르게 중앙으로 향하려는 흑색의 기체의 움직임을 보고 내뱉은 한마디.

그런 여인의 말에 안에 타고 있던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방해됩니다. 그냥 다 같이 빠져나가요.>

어차피 이 일이 다 끝나고서 자신의 안내역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모두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나은 상황.

잠시 후.

쿠우웅...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도시를 짓밟으며 고철산 방향으로 질주하는 흑색 섬광.

그리고 이를 쫓아 우르르 몰려가는 수많은 기계병기들을, 뒤에 남겨진 여인이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도시, 고철산 반대쪽.

"서둘러라! 서둘러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급박한 와중에도 뭔가를 부랴부랴 잔뜩 챙긴 고풍스런 복장의 사내가 사방, 분주히 움직이는 자신의 식솔과 가솔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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