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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르릉!
무너지는 동굴 속, 알레고리아로 인해 생겨난 공동 사이로 거체의 이족보행 병기가 몸을 일으켰다.
파르스.
키이이잉...
금속 생명 안에서 뽑혀 나온 파르스 안에 탑승한 강태석이 콕핏에 앉은 채 사방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받아들이며 주변, 혼란에 빠진 이들을 훑었다.
스피어측이고 에르트 쪽이고 모두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상황.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곧이어 자신을 공격해 올 것이다.
그래선 곤란하며 좀 더 정신을 못 차려 줘야 한다.
'동맹에 대한 예의는 여기까지다.'
무너져 내리는 동굴 속, 사방으로 버럭 소리를 치며 혼란을 다잡으려는 스피어측 사내를 강태석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파르스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동굴이 무너지면 그들이 원하는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데, 자신이 녀석들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자신의 두 손과 두 발마냥 파르스를 입은 강태석이 그대로 발을 내질러 무너져 내리는 동굴 벽을 다시 한번 걷어찼다.
이제는 아까 전과 반대.
동굴이 무너지면 안되는 게 아니라 동굴이 무너지면 더욱 좋다.
이 거체의 병기에게 암벽는 따위 두부에 지나지 않으니.
그리고 그사이에 취할 수 있는 이득이란 다 취한다.
콰르르르릉...!
한층 더 가열차게 무너지는 천장,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
키이이잉...
쿵쿵쿵쿵!
콰지지지지직!
파르스의 양팔에 시퍼런 사이오닉소드를 피워 올린 강태석이 그대로 질주해 죽음의 기사 중 하나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
콰아아아아앙!
"...!!!"
혼란스런 상황 속, 에르트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다 된 밥이었고, 이제 떠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왜 갑자기 아늑하던 이곳이 이렇게 변해 버렸단 말인가?
거기에 가장 큰 문제는 눈앞에서 날뛰기 시작한 거대한 금속의 병기.
콰아아아아앙!
크기만 해도 4m에 달하는, 양팔의 시퍼런 불꽃의 칼들이 질주할 때마다 아래 있던 죽음의 기사들과 스켈레톤들이 산산조각 나고 불타오르며 허공으로 먼지가 되어 스러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죽음의 기사들이 자랑하는 화려한 검기도, 갑주와 칼들도.
수천 배에 달하는 체중 차이와 그에 비례하는 출력, 운동량, 파괴력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당랑거철.
사마귀가 거대한 수레 앞에 짓뭉개지듯 죽음의 군대들이 달려드는 족족 녀석의 거대한 손발과 불타오르는 칼에 뭉개져 나간다!
심지어 마력이 넘쳐나는지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번개의 권능은 기체에 탑승한 이후 더 넓게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릿.
이제는 자신의 몸마저 파고들려 하는 사방의 스파크들을 바라보며 에르트가 흉신악살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꾸나."
시왕님의 화려한 열병식을 위해 준비하려던 기사단이고, 뭐고.
더이상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남은 건 이 구역 전체를 묘비로 만들어 버리고 오직 죽음으로 그득 채우는 것뿐이다.
이곳 지하에서 발견한 이후 좀 더 아껴 두려 했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따악.
에르트가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겼다.
쿠르르릉...
안 그래도 거칠게 흔들리던 동굴이 더욱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콰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악!"
"안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암석 덩어리에 찍혀 그대로 하반신이 뭉개진 수하를 보며 내달리던 사내가 괴성을 내질렀다.
깔리기 전 발악적으로 위를 향해 시퍼런 파괴의 장벽, 면검기를 후려쳐 보냈지만 무의미했다.
쿠르르릉...
조금 갈려 나갔을 뿐, 그 질량 그대로 내리꽂히며 수하를 으깨 버린 거대한 천장의 파편을 보며 사내가 주먹을 까득 쥐었다.
벽검기고, 검체고.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는 게 있다.
무너지듯 내리꽂히는 수천 톤의 질량들은 한낱 피륙으로 이루어진 나약한 몸뚱아리로는 버텨내기 힘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그냥 사로잡힌 녀석들과 내 수하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빠져나가려 했던 것뿐인데.'
꿈틀거리다 시체로 변해버린 눈앞의 수하를 사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뿐만이 아니라 온 사방이 난리다.
무너져 내리는 동굴의 파편들에 의해, 그 속에서도 기운차게 날뛰는 죽음의 군대에 의해.
항상 무서울 것 없이 대지를, 전장을 질주하던 자신의 수하들이 마치 벌레마냥 허무하게 짓눌리고 휩쓸려 죽어 나간다.
이 와중에도 돋보이는 것은 파편이고 뭐고, 지지 않겠다는 듯 모조리 튕겨내고 갈아버리며 죽음의 군대를 으깨고 있는 거대한 병기였다.
콰아아아아앙!
"..."
저 멀리, 자신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죽음의 기사들과 구울 군대를 후려치고 있는 파르스를 본 사내가 이를 까득 악물었다.
대체 저걸 어떻게 몰래 챙겨 왔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저게 중요한 게 아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검기를 퍼부어 저 물건을 고철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오히려 녀석이 분전하길 바라야 할 상황이다.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모두가 빠져나갈 순 없겠지만 빠져 나갈 수 있는 이들이라도 챙겨서 동굴이 통째로 무너지기 전에 바깥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최우선순위는 정해져 있다.
청년.
콰드드드드드드득!
사내가 한발 앞으로 내디딘 순간 몸 전체, 사방 6m로 원형의 반투명한 구체가 뿜어져 나오며 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재차 갈아버렸다.
떨어져 내리는 파편도, 혼란 속에 달려들려는 듀라한들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렇게 구체로 몸을 감싼 사내가 향한 곳은 아까 전, 인질들이 잡혀있던 십자가들이 있는 장소.
콰드드드드득!
흰빛의 구체로 몸을 감싼 사내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차례차례 한발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잠깐만 사용해도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구검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건 사내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검기도 계속 사용하기 힘든데 하물며 그 몇십 배나 마력을 잡아먹는 구검기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온몸을 감싸지 않으면 무너져 내리는 하늘과 갈라지는 땅속에서 한 발짝 걸어 나가기도 힘든 상황.
'미안... 미안하다. 다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콰드드드득!
자신과 달리 수하들은 이 정도 천재지변 속에서 몸을 지킬 여력이 없다.
사방으로 발악하듯 검기와 검벽을 뿜어내다 차례대로 깔려 나가며, 혹은 땅 밑으로 추락하거나 시체 병사들에게 공격당해 죽어 나가는 수하들의 비명을 애써 무시한 채,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분쇄해버리며 걸어 나간 사내는 드디어 난리 통에 방치된 십자가들이 널브러진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천운인지는 몰라도 그곳은 아직 무너져 내리던 동굴 속에서 무사한 상황이었다.
콰득.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둔덕을 넘어 십자가에 도달한 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십자가, 그 위로 건재한 금속의 결박 안으로 반쯤 가려진 청년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난리통 속에 오히려 금속 결박이 보호해준 것인지 청년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상태였다.
"기다려라! 내가 구해주마!"
촤아아아아악!
단박에 뛰쳐 들어간 사내가 십자가를 둘러싼 금속 결박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금속 결박 따위, 사로잡혔을 때야 모르겠지만 검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사내에게는 종잇장 수준이다.
쩌적!
묘기를 부리듯 청년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정확히 굳어버린 금속만 잘라낸 사내가 황급히 청년을 일으켜 세워 품에 안았다.
이제 청년을 구했으니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기에.
비록 여전히 결박된 다른 수하들과 분투 중인 남은 수하들이 걸리긴 했지만...
꽈득.
'용서해라. 나를.'
눈을 질끈 감은 사내는 애써 이를 무시하고 청년을 등에 둘러업었다.
지금 이 상황에 수하들까지 챙기겠다는 건 욕심이다.
이 지옥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청년 정도만 챙겨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넌 꼭 데려 나가주마."
따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그대로 땅을 박차며 뛰쳐나가려던 사내가 순간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했기에.
분명 아까 전, 인질을 교섭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불쾌한 악취와 시향이 자신의 코를 찌른다.
살아있는 인간에게서는 맡을 수도 없고 맡아져서도 안 되는 죽음의 향기.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사내의 표정이 이내 불신과 경악으로 물들었다.
눈에 들어온 건 업힌 채 오른쪽 어깨에 축 늘어트린 청년의 얼굴.
쭉 내밀어진 혀, 제멋대로 양쪽으로 이리저리 회전하고 있는 동공, 질질 흘러나오는 침.
멋대로 딱딱거리고 있는 입이 벌어졌다 닫힐 때마다 썩은 악취가 훅하고 풍겨 나온다.
이미 청년은...
"아아... 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사내의 입에서 슬픔을 머금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
“으아아아아아...”
'알아챘나 보네.'
터져 나오는 괴성에 에르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쯤 되면 알아챌 때도 되었다 싶었기에.
사실 이미 청년을 비롯한 사로잡았던 녀석들은 모두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죽음과 전염병과 저주에 푹 절여져 죽음의 기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재료 상태로 손질을 끝마쳐 두었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녀석들을 인질로 활용하기로 한 건 자신의 기지였다.
적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죽음의 기운과 시체 냄새를 불태우는 번개의 권능 안에서는 녀석들이 이미 반 좀비 상태였다는 걸 감출 수 있었으니.
물론 그 권역에서 벗어난 지금은 얄짤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녀석 따위는 자신의 관심 밖이다.
중요한 건 지금도 실시간으로 자신의 권세를 갈아버리고 있는 거구의 기체.
대체 어디서 마력이 솟구치는지 이제는 저 거체 전부에 검기를 두른 채 달려드는 죽음의 기사와 듀라한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다.
물론 이제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쿠르르르릉...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동이 점점 더 커져간다.
더 강렬하게, 더 선명하게.
그 진동이 이제는 숫제 지진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자 에르트의 얼굴에서도 아까보다 훨씬 더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곳 지하에서 발견한 이후 죽음의 기사 이상으로 심혈을 기울여 작업하던 녀석.
이곳 토착 생물의 사체로 만들어낸 자신의 새로운 애완동물.
"가라."
에르트의 말이 떨어진 순간.
꾸어어어어어엉!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지하에서 솟구친, 온몸이 걸쭉하게 너덜너덜해진 몬트라가 괴성을 내뿜으며 날뛰고 있는 이족 보행의 거체를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찍어 올리며 밀어붙였다.
**
동굴 밖, 수림.
꾸어어어엉...
콰르르르릉!
뒤흔들리던 절벽 쪽으로 접근하던 아너스빌이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웅혼하면서도 불쾌한 장소에 미간을 좁혔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단순히 조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수준으로 보이던 절벽이 이제는 거의 당장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요란하게 떨린다.
거기에 안쪽에서 훅 풍겨져 나오는 죽음의 기운과 정체불명의 괴성들까지.
"..."
접근하던 아너스빌이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춘 뒤 절벽을 주욱 훑어보던 그때.
"우리가 갈 필요가 있는 겁니까 이거? 저기서 누가 살아나온다고."
뒤쪽에서 들려 나오는, 이죽거림에 가까운 목소리에 아너스빌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