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38화 (13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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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어억!

날아든 검기, 머리를 읽고 쓰러진 거프.

부우우우...

서서히 내려앉는 부유바이크 위에서 시체가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통로 안쪽에 서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와 열두 남녀.

이를 본 강태석이 뭐라 하기도 전에 통로에서 등장한 이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 예의 그 소녀부터.

텅텅!

콰아아아아아앙!

어찌나 날랜지 통통 튀어 볼크스의 사이로 도달한 소녀가 스스로와 강태석을 공격하려는 녀석들의 공격을 피해낸 채 그대로 양손을 내질렀다.

아까전까지와는 다르게 시커먼 검기까지 품은 두 줄기 폭풍.

콰드드드드드득!

강태석이 이를 막아서느라 잠시 균형을 잃은 순간 갑자기 발치 아래서는 가시와도 같은 무언가가 솟구쳤고, 위로는 거대한 볼크스의 움켜쥔 두 주먹이 해머처럼 내리꽂혔다.

위아래 둘 모두 느낌이 이상한 걸 보니, 필시 저 멀리 있는 열두 녀석들 중 하나의 작품.

콰아아앙!

콰앙!

NO. 111을 들어 위의 공격을, 발을 들어 아래에서 솟구치는 가시를 짓밟은 강태석을 향해 쉴 틈도 없이 소녀의 양손과 뒤에서 검기들이 후두둑 날아들었다.

달려드는 볼크스들을 무시한, 철저히 자신에게만 집중된 공격들.

그걸 보며 이런저런 걸 계산한 강태석은 순간 알 수 있었다.

저 성숙해진 볼크스 녀석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이 녀석들이 자신과 떠나있는 동안 어딜 다녀왔는지.

"독한 녀석들이었구나. 생각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달아드는 검기 다발과 소녀의 양손, 그리고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지 이제는 숫제 볼크스의 사이사이를 뚫고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강태석이 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면 좋은 선택이긴 하다.

볼크스를 상대하느라 자신은 체력이 빠진 상태이고.

무슨 수를 써놨는지 몰라도 커다란 볼크스 녀석들은 녀석들보단 자신에게 집중하는 상태였으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면 전마강갑이 버티는 속도 보다도 깎여 나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 테니까.

하지만 녀석들이 모르는 것 한가지.

"차라리 이 녀석들은 만들지 말았어야지."

"?"

콰아아아아앙!

내리찍는 커다란 볼크스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강태석의 말에 달려들던 소녀가 눈썹을 찡그렸다.

**

제3 자동 채취시설, 근방 1km.

"어우. 이게 그놈 하나가 만든 흔적이라니."

"그런 게 어떻게 존재하는 거야?."

밭고랑마냥 헤집어진 대지의 흔적을 따라 사방을 뒤지던 사내 둘이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화강암 계곡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땅이야 그렇다 치고 절벽이 뒤섞인 낭떠러지 계곡이 두부마냥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걸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과연 이 안에서 사람이 살아남았을지가 의문일 지경이다.

"아무리 카트란이라고 해도 이번에는 죽었을 거 같은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지금 그 녀석 찾으려고 몇 명이 동원됐는데."

"연구시설 쪽은 카트란이 아니라 같이 실종된 그 꼬맹이들 찾으려고 그러는 거겠지. 그리고 뭐... 찾아야되는 건 맞아, 이거?"

츠츠츠츠츠...

계곡면을 따라 돌아다니는 거대한, 한눈에 봐도 걸리면 전신이 찢겨 나갈 게 분명한 지네들을 불안한 듯 바라보던 사내가 옆 조사팀원으로 함께 파견된 동료에게 대답하며 중얼거렸다.

자신이라고 카트란 그 녀석이 죽었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듣자 하니 이번에 아예 장이 바뀌었다던데?

아너스빌.

마찬가지로 카트란과 같은 검기 사용자.

거기에 그 유명한 "귀족"의 혈통.

귀족의 혈통이라는 걸 들는 순간, 어지간히 대가 쎈 녀석들도 일단 목소리를 삼키고 그대로 고개를 수그러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은 기존의 주요 멤버들조차 그녀를 인정하고 들었던 데다, 만약 자신들이 정말 <센트라>로 가고 있는 것이라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수장일 경우 받게 될 어드밴티지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저기 촌 동네 남쪽에서 배를 타고 난민마냥 목숨만 건져 입성한 것과 자그마치 그 귀족님들의 귀한 혈통의 후계를 보필하여 함께 도착한 건 아예 느낌부터가 다르다.

카트란이라는 녀석도 뭔가 있기는 있어 보였지만, 정체가 명확하진 않았던 걸 감안하면 누가 더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는 두말할 필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이렇게 되면 오히려 카트란이 살아 돌아오는 게 더 큰 문제를 가져오는 건 아닐까?

머리가 둘 있으면 혼란이 생기는 건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심지어 생존자들 중 음모론을 좋아하는 몇몇은 몬트라는 핑계고 이미 카트란이 권력 교체 과정에서 치워진 게 아니냐는 소리마저 떠들고 다니는 상황이다.

거기에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정작 조사대를 꾸린 아너스빌은 뭐가 그리 바쁜지 이곳에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에기.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저 멀리 돌아다니는 지네들로부터 몸을 숨기려 납작 엎드린 채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던 사내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엎드린 배 아래에서 갑자기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

쿵...

쿠우웅...

선명하게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육중한 무언가의 쿵쿵거림.

순간 또다시 몬트라가 등장했나 싶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울 뻔했지만 사내는 직감적으로 이게 요 며칠간 두 번이나 겪었던, 몬트라의 진동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에서부터 헤집으며 다가오는 느낌이 아니다.

마치 커다란 무언가가 지상을 저 멀리서부터 쿵쿵 짓밟으며 걸어온 느낌이다.

이에 사내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계곡 너머 하늘 위를 바라본 순간.

쿠우우웅...

쿠우우우웅...

"하하. 으하하하 진짜."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에 사내가 실성한 듯 웃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저 멀리서 계곡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건 거대한 <닭>.

쭉 뻗은 다리.

그 위의 백색 몸체.

우아한 붉은 깃과 뾰족한 부리, 선명한 검은 눈동자.

다리가 제법 길다는 걸 제외하면 생김새가 정말 자신이 알고 있는 닭과 명확히 일치했다.

다만 정말... 정말 보통 거대한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쿠우우우우우웅!

수백 미터 상공, 그 길쭉한 다리로 구름을 가르며 쿵쿵거리며 걸어온 닭 한 마리가 어느새 그들 근처까지 도달해 온 지표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르르르륵...

사르르르르르륵...

그 수많은 지네들이 기겁을 하며 사방팔방, 자신들이 기어 나왔던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아앙!

"우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악!"

"뛰어! 당장!"

그야말로 기쾌하게 절벽 아래를 지진이 터질 정도로 내리찍기 시작한 닭의 주둥이에, 땅에서 일어난 둘이 기겁을 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

지하 시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으아아악! 이거 뭐야!

와아아아아악!

"대체... 대체 무슨!"

지상부에서 갑작스레 지하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한 폭격과도 같은 무언가의 습격.

들락날락거리는 거대하고 뾰족하고 샛노란 무언가.

온통 헤집어지는 지면, 무너지는 천장.

이에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열둘을 보던 소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몰아붙이고 있던 포위망이 무너진 건 둘째 쳐도...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이건 그냥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고개를 들어 올린 소녀가 거침없이 부리로  땅을 헤집고 있는, 어느새 뻥 뚫린 천장의 거대한 구멍 너머로 드러난 거대한 <닭>의 천진난만한 면상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

부스럭.

"그러게 그 녀석들 만들면 안 됐다니까."

"!?"

꾸르르르륵...

그어어어어어어어억...

기겁하며 몸을 돌린 소녀의 뒤에 나타난 강태석이 사방에 난리가 나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 볼크스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급한 놈들은 작은 녀석들이 아닌 큰 녀석.

왜냐하면 저 닭대가리, <키갈> 녀석이 찾아온 게 성숙한 볼크스 때문이니까.

애초에 볼크스 군락이 깊숙한 지하 시설에 콕 숨어 박혀 대거리도 들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저 키갈 녀석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서다.

원래대로라면 훨씬 더 군락이 커져 어느 정도 저 거대한 녀석들에게 저항이나마 가능해질 때야 진화가 이루어지거늘...

운이 나쁘게도 이 군락은 꼬맹이들로 인해 너무 빨리 성숙한 개체가 나와 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냐면 달콤한 냄새를 맡은 키갈이 부리나케 걸어 들어와 행여 뺏길새라 지표면을 헤집으며 부리질을 해대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애초에 저 녀석들은 몬트라도 잡아먹으며 사는 상위 개체.

키갈 정도는 무슨 수를 써도 저항할 수 없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그래서. 비웃으려고 온 거야?"

난리가 난 사이에 도망쳤을거라 생각한 자신이 나타난 게 의외였는지, 쏘아붙이는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런 비생산적인 짓을 하려 이 위험한 곳에 남아있는 게 아니다.

다시 나타난 이유는 하나.

"일단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그 말과 동시에.

푸우우욱!

".... ...."

길게 뻗어 나온 지상으로부터 솟구쳐 뒤로부터 앞으로, 자신의 배를 관통한 그림자의 칼날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내려다보는 소녀를 강태석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발목을 잡는 것까지는 세력을 키우기 위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자신을 죽이려 한 녀석들을 이제는 살려둘 수 없다.

이곳에서 모조리 정리할 생각이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너희도 비슷한 생각 이었을 테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뎅겅!

한 줄기 칼날을 더 뽑아내어 소녀의 목을 친 강태석이 그녀를 지나치며 난리통 속, 흩어져 우왕좌왕하고 있는 열두 명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

쿠르르르릉...

한줄기 난리가 지나가고 마냥 시끄러울 것 같던 지하 시설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온통 무너진 천장,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비치는 햇살.

모조리 깔려 죽거나 잡아먹혀 버린 볼크스와, 그런 녀석들의 포식을 마치고 기분 좋다는 듯 쿵쿵거리며 돌아간 키갈 녀석.

그리고...

"... 이건 수리해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

쿠르르르릉!

자신의 <할 일>을 모조리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던 강태석이 부서지고 박살 난 자동 채취시설들을 보며 혀를 찼다.

수리해서 쓴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귀여운 칼질 수준으로 어느 정도 망가졌을 때 정도의 이야기지, 키갈의 부리질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수백 미터에 달하던 시설 전체가 모조리 찢겨나가고 무너진 잔해에 깔려 으스러졌다.

그나마 그 잔해 사이사이로 드러난 철판과 철골 쪼가리들이 예전, 이곳에 뭔가 있기는 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

이래서야 완전히 빈털터리 신세로 돌아가게 생겼다.

"아니지. 일단 하나는 건진 건가?"

우우우웅...

그 난리통 속에서도 운 좋게 멀쩡했던, 옆에 세워진 랜드마이너를 보며 강태석이 콧김을 흥 내뿜었다.

돌아가는 길에 탈 만한 제법 귀여운 탈것 같기는 했지만, 본전 생각을 하면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기에.

이래서야 완전히 손해 보는 장사다.

하지만...

"흠. 냄새가 나는데 뭔가."

쿠오오오오오...

무너진 폐허 사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지하 대피소 구역으로 향하는 통로를 보며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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