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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37화 (13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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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드드득!

달려들던 볼크스를 후려 으깨던 강태석이 두 손 바삐 싸우던 중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매만질 뻔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잠시.

"뭐 별일 있겠나."

콰득!

꾸르르륵...

두부처럼 검은 시체를 뭉개며 강태석이 중얼거렸다.

어느새 거의 반절 가까이 정리된 녀석들.

대략 남은 숫자는 약 팔백가량.

이 정도 숫자라면 별 <탈> 없이 무사히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앙!

혹여 자원시설이 상할세라 NO. 111은 아예 바닥에 내려둔 강태석이 두손 두발로 열심히 달려드는 녀석들을 마저 으깨갔다.

**

지하 대피소.

아아아악...

크헉!

<...?>

갑작스런 경보음.

이에 아래의 학살을 멈추고 뻥 뚫린 객석 층을 바라보던 아이오스가 위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에 미간을 꿈틀거렸다.

오감을 증폭시켜주는 바이저를 통해 들려오는, 너무나도 생생한 살육의 소음들.

이는 오직 이곳에서만 들려야지 위쪽에서 들려올 소리가 아니다.

갑자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일순의 침묵도 잠시.

크우우...

<...>

콰직!

발치 아래서 들려오는 신음에 무표정하게 휘두르려던 칼을 다시 내리찍어 정리한 아이오스가 바이저에 튄 핏물을 스윽 닦아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주변, 처형장의 내부는 정리된 상황.

자신처럼 칼을 휘둘러 돼지들을 처리한 이들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리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아이오스가 크게 소리쳤다.

<일단 올라가서 확인해보자. 여차하면 대처해야 하니까.>

여기서의 대처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굳이 맞서 싸우는 것 뿐만이 아니다.

그런 아이오스의 말에 서로 눈을 마주치던 이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전신 무장의 출력을 안정시킨 뒤 위쪽으로 뛰어오르려던 그 순간.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왔으니까."

어느새 조용해진 객석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에 화급히 고개를 든 아이오스의 앞으로 무언가들이 떨어져 내렸다.

터어어엉!

터어엉!

잘려 나간 머리들.

그중 하나는 자신들에게 익숙하다.

<키르프.>

아까전 자신과 체스를 두던, 하지만 지금은 머리만 남아 나타난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오스의 앞으로 누군가 뛰어내렸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낸 소녀.

"다른 녀석들도 다 죽었어. 너희가 마지막이고."

<대체 왜 이런 거지?>

되려 차분해진 듯한 아이오스의 말에 멈칫한 소녀가 이내 혀를 찼다.

"그건 너희들한테 죽은 녀석들이 궁금해해야 하는 거 아냐?"

소녀는 자신의 동료인 청년의 능력, 염사를 통해 이곳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파악했다.

이곳에 갇힌 이들인 녀석들이 어떻게 조직을 유지했는지.

위쪽 놈들은 아랫놈들이 혹여나 밖으로 기어나가다 그나마 안정된 대피소로 다른 생존자나 짐승들을 끌어들일까 봐 필요도 없는 지뢰를 깔아 밖으로 나가는 걸 막았다.

미궁과도 가까운 복도에 은폐장을 걸어 깔아둔 지뢰들이 볼크스에게만 위험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좁은 공간에 오직 생존까지만 확보된 채 기약 없이 갇혀 버린, 일천이 넘는 숫자의 인원들.

이에 필연적으로 터져 나올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위쪽 소수의 지도자들은 한 가지 수를 더 썼다.

그들의 아래 <하층계급>을 만들자고.

죽어도 되고 죽여도 되는.

갇힌 이들에게 어느 정도 우월감과 스트레스의 해소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들 모두에게 혹여나 하층계급으로 강등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하며 눈치 보게 하고 스스로들의 품격을 지키게 할.

내면의 야만성을 다스릴 수 있는 건 결국 스스로의 차별성과 우월함이라고 생각한 이들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소수의 필연적 희생으로 이 조직은 3년간 계속해서 굴러올 수 있었다.

갇힌 공간 안에서 서로가 상쟁하며 모두가 죽어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게 되었고, 더불어 지도층의 특전과 혜택들도 계속 유지되었다.

하지만 소녀 입장에서는 우스울 뿐이다.

파리대왕 같은 놈들에 똥파리 같은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 자신들 연구시설에 섞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분란만 초래할 뿐이다.

이곳에서 나가기 전, 이 자리에서 모조리 정리한다.

그리고 하나 더.

<재활용>.

"너무 걱정 마. 너희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잘 써줄 테니까."

털썩.

꾸르륵...

말을 마친 소녀가 내려놓은 커다란 자루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기묘하고도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에 살던 이들이 그토록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소음.

<안돼. 안돼..>

키이이잉!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존재, 볼크스가 푸대 안에서 기어 나오는걸 본 아이오스가 반사적으로 에너지소드를 들어 휘두르기도 전.

콰직!

"안되지. 재료 주제에 우리 병사를 망치러 들면.”

어차피 필요한 건 시체뿐.

꾸르륵...

단번에 바이저째 상대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소녀가 바닥에 털썩 쓰러진 상대, 그리고 그런 시체를 향해 기어가 감염시키려는 볼크스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주춤거리며 물러나려고 하는 다른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

콰아아아앙!

"좋아. 이제 육백 정도."

달려들던 볼크스 하나를 후려쳐 으깬 강태석이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경험치 상승 알림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심히 소리 내며 가동되는 시설 속, 이제 달려들려는 녀석들의 숫자는 육백 정도.

이제 여기는 대충 정리하고 이곳, 아까전 거프라는 녀석이 도망쳤을 대피소의 사람들과도 이야기해본 뒤 챙길 것 챙겨서 연구시설로 돌아가는 길을 알아보면 될듯싶었다.

그곳 사람들도 아마 여길 나가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섞이면 초창기에 문제야 좀 생기겠지만...

'아너스빌이 알아서 잘하겠지.'

콰드드드득!

달려들던 녀석 하나를 으깨버린 강태석이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제 그걸 해결 하는 게 아너스빌의 몫.

자신은 이제 자리를 넘겼으니 그 뒤를 생각 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그리고 머릿수가 늘어나는 걸 좋아하기도 할 테고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머리가 쓸 패가 늘어난다고 반길 테니.

"귀족가 출신이긴 한가 봐. 그나저나 그 녀석은 이제 도착했으려나?"

강태석이 근처로 다가오다가 자신을 훅 떨구고 랜드마이너로 돌아가던 거프를 떠올렸다.

돌아갔다기보단 거의 도망쳤다는 표현이 걸맞았지만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가서 나갈 준비를 하라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했다면 생존자들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한결 진행이 빨라질 터.

이제 자신만 여길 다 정리하면 된다.

강태석이 한껏 힘을 끌어 올려 주변 녀석들을 빠르게 으깨 가려던 그때.

부아아아아앙...

"...?"

통로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음에 주먹을 휘두르던 강태석이 멈칫했다.

랜드마이너의 기동음.

하지만 자신을 도와주러 올 의리까지는 없어 보였는데?

강태석이 자원시설 밖, 회색빛의 통로를 돌아본 순간.

부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아아악!

쿵쿵쿵쿵쿵쿵!

"아... 쉽게 가는 게 없어 하여간."

랜드마이너 위, 거프의 다급한 괴성.

동시에 그 뒤를 따라오는 훨씬 더 육중하고 강렬한 발걸음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지하 대피소, 연결 입구.

"다 정리했어?"

"구석구석. 도망갈 곳이 없어서 어렵진 않네."

털썩!

어느새 가장 위로 올라와 어둠 너머, 자원시설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다 시체를 내던지고 걸어온 청년에게 말을 건 소녀가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청년처럼 일 처리를 끝내고 다시 자신의 곁으로 모인 열한 명의 소년, 소녀들.

그리고 그 너머, 꾸물거리며 볼크스로 변화하고 있는 시체들 앞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소년 하나.

"끝나가?"

"거의 다... 끝났어. 나머지는 이미 다 보냈고 이제 이 녀석이 마지막!"

그 말과 동시에.

그어어어억...

꾸어어어어어어억...!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십 구의 볼크스들이 마치 타르가 녹아 붙는 것처럼 꾸물거리며 한군데로 뭉치기 시작했다.

훨씬 더 크게, 훨씬 더 강하게.

<세뇌>와 <강제진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의 능력 덕분.

잠시 후.

꾸어어어어어엉!

쿵쿵쿵쿵쿵!

"끝났으면 이리 와."

"아... 응응."

훨씬 더 크게 변모해 일어선 채 이전, 다른 시체들처럼 어딘가로 달려가던 거대 볼크스를 흐뭇하게 보는 소년을 불러들인 소녀가 이제는 온전히 다시 모인 열셋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곳의 시체들을 활용해 만든 마흔일곱의 강력한 병종들을 미리 보내 놓았다.

이제 자신들 차례.

"가자. 완전히 끝내러."

소녀가 양손에 푸른 빛의 검기를 줄기줄기 피워내며 덤덤히 말했다.

아까 전에는 자신들의 힘이 다소 모자랐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새로운 녀석들의 도움까지 있다면 어쩔까?

어차피 시작한 싸움, 끝을 봐야 하는 상황.

자신들이 이곳을 이 꼴로 만들어 놨다는 걸 새로 유입된 녀석들이 알게 되면 정치적 명분에서 크게 밀린다.

그렇게 되면 소장님께 폐가 될 터.

이곳에서의 일을 아는 건 오직 자신들, 열셋 뿐이어야 한다.

잠시 후.

우웅...

모두가 같은 색의, 황금빛 눈동자로 변한 열셋이 커다란 볼크스가 사라져간 통로를 통해 발걸음을 옮겼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우아아아아악! 저 좀 구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기엔... 나도 지금 좀 바쁜데."

콰직!

부유바이크의 엔진을 풀로 끌어올려 한계 고도인 7m 상공에서 도망 다니고 있는 거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래서 싸우던 강태석이 혀를 찼다.

이번엔 자신이 후려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반대로 자신이 후드려 맞는 소리.

콰드드드드드득!

터어어엉!

어둠을 감싸 자신을 후려치는 신장 8m짜리 볼크스의 완력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자원시설에 처박힌 강태석이 꿈틀거리며 피부를 파고드는 흑연 같은 그을음을 무시하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NO. 111의 손잡이를 퉁 걷어찼다.

어지간하면 박살 안 나게 싸우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어차피 녀석들 손에 박살 날 것이다.

나중에 건설로봇들 끌고 와 수리하더라도 일단은 녀석들 먼저 박살내어 놓는 게 우선.

후우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손잡이를 움켜쥔 강태석이 기쾌하게 힘을 준 순간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NO. 111이 갑자기 괴성을 토해내며 강렬하게 허공을 질주했다.

쩌저저적 분리되며 늘어나는 수십 미터 길이의 칼날, 이어 휘감기는 커다란 볼크스의 머리통!

이윽고.

콰드드드드드득...!

<제법 성숙한 볼크스(LV.15)를 처치하셨습니다.>

<상당량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3(57.11%).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미약한 볼크스가 아닌, 제법 성숙한 볼크스.

훨씬 더 많은 시체를 집어삼키고 내부의 검은 무언가를 배양시켜야 태어나는 녀석.

아직 이 정도 둥지에서 태어날 녀석은 아닌데 어떻게 태어난 건지.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상대할 만도 하고 경험치도 제법 많이 주지만...

"벗어나야겠는데?"

콰드드드드드드득!

콰르르르륵!

강태석이 사방팔방으로 강철의 칼날을 휘두르며, 걸리는 시설이고 볼크스고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갈아버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법 성숙한 볼크스가 등장한 이상 일단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게 낫다.

<녀석>들이 위험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느리고 덩치 큰 녀석들은 숫자가 많아도 빈틈투성이.

'옳지. 저기로 나가면 되겠네.'

몰려드는 볼크스와 휘몰아치는 칼날의 틈새.

빠져나가는 입구 중 한 군데를 확인한 강태석이 위쪽, 거프까지 데리고 갈까 말까 고민하며 훌쩍 몸을 날리려던 그때.

퍼어어어어어어어억!

"...!"

날아든 시퍼런 검기.

이어 단번에 머리가 날아간 바이크 위, 거프의 모습에 발을 구르려던 강태석의 눈매가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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