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34화 (134/221)

134

탁탁탁탁탁!

"차일드들이 확실해? 상대도 확인했고?"

"네. 주의하라고 한 인물들 중 하나였습니다."

"..."

감시병의 보고에 라이트를 들고 수림 사이를 뛰어가던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안 그래도 날이 선 시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거기다 상대 진영도 지금 내부세력 정리로 이런저런 난리 통이 많아 보였다.

힘을 가진 놈들이 옆에서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상대 쪽 수뇌부와 충돌이라니.

거기다 이왕 충돌했으면... 이기기라도 하던가.

기선제압이라도 하게 말이다.

'어서 가서 말려야 한다. 일이 커지기 전에.'

타타타타탁!

뛰어가는 사내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졌다.

소장님은 아래서 바쁘니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직무대행 중인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가까워진 목적지를 향해 사내를 비롯한 모두가 한층 더 속도를 올리려던 그때.

쿠르르르르르릉!

달리던 이들 모두가 기우뚱 넘어질 정도로 심상찮은 진동이 그들이 선 대지를 스쳤다.

순간 창백해지는 이들의 표정.

파팟!

사내의 오른쪽에 있던 한 명이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단말기 하나를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이어 그 위로 표기되는, 요동치듯 떠오르는 수많은 수치.

이를 보는 수하를 향해 달리던 사내가 다급히 물었다.

"어떤 놈이야?"

"몬트라... 몬트랍니다!"

"말도 안 돼! 그놈들이 왜 여기까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던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콰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앙!

꾸어어어어어엉!

대지가 뒤집히고 회색의 암벽과도 같은 몸뚱이가 요동치듯 솟구치며 그들의 시야 앞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

콰아아아아앙!

꾸어어어어엉!

"아니 오늘 진짜 뭔..."

온 시야를 가로막고 꿈틀대며 나타난, 수림 전체를 뒤집으며 솟구친 몬트라의 등장에 강태석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어릴 적부터 저주파 장치에 절여져 저주파라면 학을 떼고 싫어할 놈이 왜 이렇게 기지 가까이까지 나타났단 말인가?

'아 설마 파일런 때문에 동력 공급이 약해져서?'

한가지 떠오른 가설에 인상을 쓴 강태석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업그레이드의 진행 정도로는 그렇게까지 많은 전력을 잡아먹지 않는다.

되려 권역 내 설비들의 효율을 자동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퉁!

투우웅!

쿠어어어어!

콰르르르르르르릉!

대체 뭘 먹겠다는 건지 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무작정 주변 수림의 대지를 헤집어 놓으며 내달리는 녀석을 피해 이리저리 뛰던 강태석이 인상을 썼다.

기지 쪽으로 가려면 이 기둥처럼 위아래로 솟구치는 녀석을 지나 건너편으로 가야 하는데, 덩치가 덩치인지라 좀처럼 쉽지가 않다.

혹시나 그러다가 이 녀석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km 단위로 길이를 세야 할 정도로 커다란 주제에 예민하기는 어찌나 예민한지 등짝이라도 밟고 지나 기지로 향했다가는 그대로 기지를 향해 돌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끝장.

레벨 25 이상의 중장갑 병기를 만들기 전인 지금, 녀석과 싸우면 높은 확률로 필패한다.

기껏 얻은 자원기지는 박살이 나고 자신은 패잔병마냥 파일런만 허겁지겁 챙기고 흩어진 생존자들을 끌어모아 난민마냥 이 G구역을 떠돌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리틀월드는 북쪽을 향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목숨만 부지하면 센트라까지 도착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판단이 끝난 순간.

촤르르르르르르르륵!

"너희들. 그쪽은 안 된다. 이쪽으로 와라.

강태석이 NO. 111을 촤르륵 늘려 대지와 허공 사이, 뛰어 건너려는 녀석들을 모조리 휘감아당기며 외쳤다.

이 녀석들 몸놀림을 보아하니 어찌어찌 건널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절반쯤 죽을 수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몬트라를 자극해 기지 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이에 녀석들이 혼란한 와중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휘감는 채찍의 칼날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상황 자체가 위기.

잠시후.

콰아아아앙!

콰아앙!

날뛰는 몬트라 속, 한쪽으로 휘리릭 끌려간 이들과 강태석이 흙먼지와 붕괴되는 대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지축을 뒤흔들며 위아래로 용솟음치는 녀석에 의해 수림 한켠은 완전히 무너지고 붕괴되어갔다.

**

저 멀리, 산 끝자락.

"와. 엄청나네. 엄청나. 저런데 혹시 자원할 인재는 없었겠지 언니?"

콰아앙!

수 킬로미터 밖, 날뛰는 몬트라에 의해 모조리 붕괴되고 있는 대지의 한켠을 바라보는 소녀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바보도 아니고 누가 저런 것의 <유인>에 자처해서 나서겠는가?

협박한다고 해도 그냥 적당히 듣는 척 하다가 거리가 멀어지면 도망가면 그만인 것을.

아니, 오히려 그쯤 하면 적진 녀석들에게 붙어버린 뒤 나불나불 모조리 불어버릴 것이다.

계획이 성공한 건 어디까지나 소녀의 시체 조종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콰아아아앙...

"나쁘진 않았는데, 결론만 놓고 보면 실패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언니. 시도가 중요한 거지. 안 그래?"

"결론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거야."

소녀를 달랜 여인이 저 멀리 몬트라가 날뛰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기운차게 대지를 뒤집어놓고 있지만, 결론만 보면 실패였다.

정작 중요한, 녀석들이 숨어있을 기지 근처에는 무슨 짓을 해놨는지 일정 영역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 주변만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수림이야 근사하게 박살 나겠지만 결국 원했던, 녀석들의 몰살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아니 몰살은커녕 거의 피해조차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여인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그래도 뭐. 운 좋으면 <한 놈>은 죽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

자신들의 원래 목표, 그 둘 중 하나.

기지의 몰살, 혹은 거슬리게 하던 <그놈>의 사망.

사실 이번 계획의 목표는 후자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시설 같은 것들은 이 난리통에도 멀쩡하던 것이, 왠지 보험이 있을 것 같기는 했으니까.

거기에 일단 이간질도 해놨으니 나쁘지 않은 상황.

'살았으려나, 죽었으려나?'

저 멀리, 무너지는 대지 사이로 정신없이 휩쓸려가던 녀석을 떠올리며 여인이 중얼거렸다.

**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사방을 뒤흔들던 진동이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뭐에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모를 몬트라 녀석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쿠르릉 땅 밑으로 다시 기어들어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상황이 끝난 건 아니었지만.

"하아. 끝내주는 산책이네. 다들 살아있니."

허억...

콜록...

화강암으로 된 절벽의 협곡 사이, 아래쪽에 처박혀 있던 강태석의 질문에 옆에서 흩어져 있던 소년, 소녀들이 콜록거리며 신음을 토했다.

그런 이들을 대충 스윽 훑은 뒤 모두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강태석이 위쪽, 수백 미터 높이로 솟은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몬트라의 난리에 치즈마냥 뻥뻥 구멍이 뚫리고 무너져내린 절벽 면.

하지만 그럼에도 천장과 아래를 따라 쭉 뻗은 그 위용은 사뭇 대단했다.

얼마나 대단하냐면... 당장 기어 올라가기 피곤해 보일 정도로.

스르르르르륵...

스르륵...

몬트라가 지나간 자리를 이리저리 훑고 지나다니는 백여 미터 크기의 지네를 보며 강태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몬트라에 비하면 작지만, 저놈들도 레벨 20은 훌쩍 넘는 녀석들이다.

하여간 G구역 자체가 영 먹고 살기 편한 곳은 아니다.

덜그럭.

"콜록... 후욱... ??"

"아니 뭐. 보통 이런 절벽 아래 떨어지면 기연 같은 거 있지 않아? 그런 눈으로 보진 말고."

근처, 바위 더미 아래를 슬쩍 들춰보던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를 향해 대답한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풀떼기와 나뭇가지, 돌부리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계곡이었다.

역시나 안타깝게도 기연이나 내단 혹은 은거기인 같은 건 없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이이익...

"뭔가 있긴 있네."

협곡과 협곡 사이, 화강암 틈새.

실로 어울리지 않는 낡은 철문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어두컴컴한 통로를 보며 강태석이 웃었다.

**

본진, 연구 시설 근처 수림.

"이게 생명체 하나가 만들어낸 흔적이라 이거지?"

저벅.

어느덧 서서히 밝아오는 햇살 아래, 수림의 흙을 밟고 선 아너스빌이 뒤따르던 이들 앞에서 정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러난 건 그야말로 자연재해와도 같은 광경.

영화 속에서나 보던, 지진 때문에 땅이 무너지고 산이 붕괴되며 협곡이 생겨난 형상들이 그들의 앞을 그득 메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 안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해 보였을 지경.

스윽.

"대체 그런 짐승 같은 건 왜 만든 거죠?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과 우리 쪽에 충돌이 있었다는데."

고개를 돌린 아너스빌이 뒤쪽,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장을 보며 물었다.

현재 실종자 수는 총 열네 명.

자신들 측의 카트란과 연구 시설 측, 열세 명의 남녀들.

추궁을 하고 싶은건 아니다.

현재 자신의 취임으로 내부가 혼란스러운 와중, 협력이 필요한 소장과 연구 시설의 세력들과 굳이 적대적 마찰을 빚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왜 이리 된 건지 이유는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아너스빌의 말에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충돌은... 우리도 모르겠군요. 그 녀석들이 대체 왜 그런 건지. 그리고 몬트라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걸 키워달라고 의뢰를 받은 거지."

"?"

소장의 말에 아너스빌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그 괴물 같은 녀석이 이런 연구 시설에서 생체실험 같은 걸 통해 태어난 줄 알았는데,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몬트라 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 녀석들도 그렇다.

저런 것들이 생체실험 없이 태어났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아너스빌은 지금 그게 중요하진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수색대를 꾸려봐야겠군요. 찾아야 할 범위가... 좀 넓긴 하겠지만."

쿠르르릉...

범위뿐 아니라 난이도 또한 만만치않다.

시야 너머.

지평선을 향해 드넓게 쭉 뻗은 거대한 파괴의 밭고랑과, 그 위를 기어 다니기 시작한 거대한 짐승과 벌레들을 보며 아너스빌이 중얼거렸다.

**

끼이이이익...

"하나 둘... 열셋. 좋아 다 모였구나. 가자."

문을 열고 앞장서서 들어간 강태석이 뒤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돌리자 한 20m쯤 멀찍이 떨어져 절벽 아래 모인 채 자신을 응시하는 녀석들이 보였다.

아까전과 같이 확연한 적대감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꺼리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이들의 태도에 강태석이 귀를 매만지며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초면이고 딱히 저럴 이유가 없는데 왜 저런단 말인가?

하지만 잠시 후.

"너희 혹시 숲에서 누구 만났니? 그리고 뭐 이상한 이야기 들었고?"

"..."

"맞구나."

움찔거리는 이들의 태도에 강태석이 혀를 찼다.

보아하니 숲에서 정찰 온 범죄자 놈들 중 일부를 만난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을 사로잡아 사실확인을 하려고 했던 걸로 보아 좋은 내용은 아니었던 게 당연해 보이고.

이런 상황에서 성숙한 어른이라면 우선 편안함을 조성하고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겠지만...

"얘기는 나중에 돌아가서 너희 소장님이랑 하고, 일단 멀찍히서 따라오건 말건. 편하게 하렴."

말을 마친 강태석이 NO. 111의 기다란 칼날을 앞으로 세운 채 통로 안으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자기 뒷담을 들었을 텐데 제대로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고.

힘으로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보려고 하면 되레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그냥 자신은 할 일만 하면서 이 지하시설을 통해 돌아갈 길을 찾아보고,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두면 그만이다.

딱히 이 절벽 아래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만히 두면 녀석들도 알아서 따라붙을 것이다.

한 번 푸닥거리 했으니 당장 뒤통수를 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당장 강태석은 눈앞의 시설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데...

"이거 설마."

<제3 자동 채취시설-14 탈출구>

통로 벽면에 쌓인 먼지를 스윽 쓸어낸 강태석이 거기에 쓰여진 문구를 보며 이채를 띄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