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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
모여드는 이들의 북쪽을 향한 돌파.
그 숫자는 순식간에 불어 수백에서 일천, 일천에서 일천오백.
이어 원래 그들의 숫자를 향해 착실하게, 차곡차곡 불어나갔다.
그들의 우려대로 중간중간에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 격렬함이 크지는 않았다.
이유는 첫 번째.
쿠구구구궁...
"... 저거 건드려볼 거야?"
"미쳤냐?"
피라미드 안에서 풀려나자마자 웬 기묘한 햄스터 쳇바퀴 같은 세계를 마주친 이들 중 그들을 임시로 이끌게 된 여인이, 옆에 함께 풀려난 소녀의 말에 퉤 입에 고인 침을 뱉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오고 있는 건 하나.
그야말로 수천에 달하는 이들이 모여 대오를 이뤄 만들어낸 대행진.
쿵...
쿵쿵...
수많은 엑소 슈트들부터 수천의 무장병들까지.
걷는 발걸음만으로 금속의 대지가 떨어 울릴 정도다.
저걸 건드려보겠다고?
흩어져 있을 때야 만만했지, 지금 저걸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간신히 풀려났는데 오래 살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직 합류 못 한 작은 무리들 정도는 털어먹고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검기 사용자가... 몇 놈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눈에 확 띄네."
콰콰콰콰쾅!
콰쾅...!
저것도 마찬가지로 건드리고 싶지 않다.
사방, 온 플로어를 질주하며 섬광을 번쩍이고 있는 몇 개의 작은 불빛들을 보며 여인이 입맛만 다셨다.
**
텅!
텅텅텅텅!
콰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주파한 강태석이 그대로 몸을 날려 운동에너지 그대로 생존자들을 덮치려던 거미 전차의 포신을 강하게 후려쳤다.
어느새 새로 챙겨 온 육중한 전투군형 대검으로!
움직임은 조금 지쳐 보이기는 해도, 아까 전보다 한층 더 강하고 빨라진 상황.
이유는 하나.
띠링!
<스탯 투자... 흑선 1(전 근력> 검체)/암흑 회로 1(전 반사신경> 뇌속)/짙은 그림자 1(전 체력> 기심)/어둠샘 1(전 마력> 감염된 푸른 피).
<스킬... <그림자칼-천/지/인>, 셋 중 하나를 골라 해금이 가능합니다.>
<선택... 그림자칼-지 획득. 나머지 천/인은 일정 레벨이 오른 이후 해금이 가능합니다.>
<강태석>
> 레벨 : 13(7.54%)
> 직업 : 전마강갑지주(등급-?)
> 스킬 : 전마강갑 장착*해방(?)/영뇌수(D+)/무량검기(D+)/그림자칼-지(D++).
> 스탯 : 흑선(D+) 9/암흑 회로(D+) 9/짙은 그림자(D+) 9/어둠샘(C+) 9/이상 상념(D+) 8.
> 무장 : 전마강갑(?)/여의(S?)/칠채영창(B?)/오시리스(C-잠항 중)/알레고리아(B)/L-43 타입 전투군형 대검(D-).
콰아아아아아앙!
레벨이 오르며 생겨난 스탯의 투자.
더 강해진 힘, 강해진 속도.
튕겨 나갔던 포신 위, 다시 한번 강렬하게 휘둘러진 군형 대검에 의해, 이번엔 포신이 위에서 아래로 우득 패이며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자세를 다잡고 휘두르지 않았기에 위력은 조금 모자랐지만 더 이상 포격을 행하기엔 힘든 상황.
하지만 메탈 스파이더의 무기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키이이잉!
쾅쾅쾅쾅!
더 이상 포격이 힘들다는 걸 깨달은 메탈 스파이더가 여섯 개의 다리로 몸체의 평형을 다잡은 뒤, 남은 두 개의 팔을 사정없이 자신의 몸체 위로 휘둘렀다.
그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강태석을 으깨거나, 그것도 안 되면 떨궈버리기 위해.
장갑과 내부의 구동자들도 다소 충격을 받겠지만, 직접 이걸 두들겨 맞을 강태석이 받을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심지어 녀석은 여유가 생겼는지 네 개의 다리로 다시 한번 중심을 잡고 남은 두 개의 다리로 도망 못 친 쉘터의 인원들을 공격하려는 상황.
키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앙!
자신의 몸뚱이를 향해 휘둘러지는 기계 근육 덩어리의 일격을 피해낸 강태석이 아래의 쉘터 인원을 내리찍어버리려는 두 팔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검기 사용자라면 몰라도 일반 무장병은 저거에 찍히면 무조건 죽는다.
숨을 고른 강태석이 이내 결심한 듯 메탈 스파이더 위, 장갑 위에 올려져 있던 발을 가볍게 들어 내리찍은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발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장갑 표면을 타고 뻗어 나간 검은 그림자 몇 줄기가, 메탈 스파이더의 빈틈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파파파파파파파팡!
끼드드드득...
쿠우웅..
안쪽에서 터져 나오듯 솟구친 수백 줄기의 가시같은 칼날에, 내부의 연약한 신경계와 구동계가 모조리 썰린 메탈 스퍼이더가 끼드득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
<그림자칼-지>
> 발치의 그림자에서 어둠의 칼들을 소환해냅니다.
> 빛이 밝을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대신 소환 가능한 범위가 줄어듭니다.
> 밤이 깊을수록 소환 가능한 범위가 늘어나는 대신 위력이 줄어듭니다.
그림자칼.
새로 얻은 스킬.
위력이 검기를 능가할 만큼 특출난 건 아니었다.
마력 소모도 적은 편은 아니었고.
말하자면 가성비는 그저 그런 기술.
하지만 두 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쓸 수 있는 데다, 상대의 빈틈을 노릴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덕분에 D++에 가까운 등급이 부여된 것이고.
키이잉...
쿵쿵쿵쿵!
순식간에 기능을 잃고 쓰러진 메탈 스파이더의 상부, 개폐 기능마저 닫혔는지 안쪽에서 들려오는 구동자들의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던 강태석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왼팔을 가져다 붙인 건지, 새로 생긴 기계 팔로 더욱 기운차게 새로 생긴 닻을 휘두르고 있는 마르트.
마찬가지로 보급을 받고 칼을 휘두르고 있는 민트라와 두 소녀들, 그리고 사방을 질주하며 휘젓고 있는 아너스빌에 크란, 아린까지.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카티였다.
콰아아아아앙!
"..."
종횡무진 내달리며, 메탈 스파이더를 손으로 번쩍 들어 휘휘 던져버리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년을 보며 강태석이 가늘게 눈을 떴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힘.
저건 분명 C등급의 근력 스탯이다.
자신의 마력 스탯, 어둠샘과 동일한 수준의.
안 그래도 강했던 힘이, 벽을 돌파하며 강화된 육체와 검기가 맞물려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상리에 맞지 않는 힘은 거저가 없는 법.
분명 저 힘을 얻은 대가로 카티는 벽을 넘을 수 없었어야 했다.
그건 자신이 얼마 전에 얻었던 수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저주였건만...
휘릭.
강태석은 어깨를 으쓱하곤 대검을 챙긴 후 부지런히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뛰어가고 있는 생존자들의 뒤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아린이 지닌 유물도 그렇고, 저 비정상적인 근력에 소년 같은 외양도 그렇고.
심지어 청홍투갑같은 보물에 <벽>을 강제로 돌파할 수 있는 금지된 비술까지.
비밀이 많은 사람인 건 확실하지만 뭐가 문제겠는가?
그 비밀이 드러났을 때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확실한 아군이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구련장들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자신은 정의의 영웅도 아니고 악의 심판자도 아니다.
심지어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그럴 현실적 여유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터어어어어엉!
강하게 발을 박찬 강태석은 어느덧 대부분이 합류한 본대, 그보다도 한층 더 앞쪽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북쪽, 자신들의 목적지가 될 6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입구를 향해.
그리고 저 멀리.
키이이이이이이 잉...
한 메탈 스파이더 위에 선 청년이 그런 강태석과 생존자들의 행군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
11 권세 중 하나인 <뇌종>.
멸망한 뇌지국의 부활을 목적으로 한 마지막 생존자와 권세들이 모여 생겨난 집단.
멸망 속, 이 궤도 엘리베이터로 흘러온 그들은 한때 공동의 이익을 따라 찬이라는 자의 <플래그> 아래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흩어져 열한 개의 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가지가 피어날 정도로 세력이 융성하지 못하니 뇌지가 아닌 뇌종.
번개의 씨앗.
터엉.
"야야야야야! 어쩔 거야! 아예 놓친 거 같은데!"
메탈 스파이더 위에 앉아 저 멀리 사라져 가던 이들을 지켜보던 청년의 옆에서 한 사내가 미친 듯이 쫑알거렸다.
"... 아 그럼 어쩝니까? 저 정도 뭉텅이로 가는데. 거기다 중갑 병기들만 없지, 톡톡 쏜다고요!"
키이잉...
사방에서 합류한 수하들의 보고를 종합하며 청년이 입맛을 다셨다.
정찰 겸 나온 가벼운 아래층 나들이.
가져 나온 메탈 스파이더의 개수는 총 27대.
하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자신들 같은 주축 세력들 입장에서 가볍게 동원했다는 거고.
저거 하나면 검기 사용자가 없는 무장세력 수백 명 따위는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는, 그렇기에 플랜트에서는 락이 걸려 생산조차 안 되는 귀한 물건들이다.
한데 한바탕 격전이 끝나니 남은 개수는 고작 8대.
이 이상 잃으면 돌아가는 길에 다른 세력 녀석들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으니 더는 무리할 수 없다.
거기에 저 녀석들에게만 잃은 것들도 아니었고.
"다섯 대는 저 녀석들 때문이고... 여섯 대는 다른 세력 녀석들 때문이고... 여덟 대는 위층 저 범죄자 나부랭이 놈들 때문이네."
하나하나 피해를 체크한 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숫자가 많았다지만, 오랜 냉동으로 형편없이 약해진 데다 변변찮은 무장조차 없었을 녀석들이다.
한데 그런 녀석들에게 메탈 스파이더를 그 짧은 시간에 여덟 대나 잃었다?
말 그대로 맨손에 박살 났다는 것.
하지만 청년이 인상을 찌푸린 건 녀석들의 강함보다는 다른 게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 연방은 정말 엄청나네요. 저런 전력을 그냥 폐품 처리하다니."
지금쯤 5층 플로어 사방에서 우글거리고 있을 녀석들을 떠올리며 청년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지금에야 에테르에 절여져 저 정도지, 멀쩡했을 때는 훨씬 더 강했을 놈들이 수만, 혹은 수십만, 혹은 수백만.
어지간한 국가라면 가지고 싶어 할 꿈의 전력이다.
자신들, 뇌지가 멀쩡했을 때도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힘.
헌데 그런 녀석들을 몽땅 잡아들인 것도 모자라 써먹지도 않고 그대로 에테르장 안에 처박아?
말 그대로 연방은 저따위 녀석들은 굳이 써먹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방조차 이 격동의 세계에서 기계 병기들의 습격에 몰락해버렸고.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미래가 안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
"..."
'부럽다 부러워. 그나마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는 너희들이. 아무것도 몰라서 그럴까?'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이들을 쓰린 눈으로 바라보던 청년이 옆의 사내와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올라가시죠. 이제 다른 녀석들도 빠질 테니."
"신경 안 써도 되겠어? 제법 숫자가 많은데!"
그런 사내의 말에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다 죽을 것이다.
녀석들이 향하는 입구가 연결된 곳은 6층의 마경.
자신들조차 위험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니.
그게 자신들을 비롯, 다른 세력들도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이유.
쿠르르릉...
"자자. 가자."
텅텅!
둥둥 떠서 멀어지는 검은색의 금속 블록과 아래, 옹기종기 모여 우글거리는 생존자들을 흘긋 본 청년이 온전히 관심을 끄고 메탈 스파이더의 본체 장갑을 텅텅 두들겼다.
**
"음. 결정. 저 녀석들 따라가자."
"어어? 언니 왜?"
부담스럽니 마니 하며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여인의 결정에, 범죄자들 사이에 서 있던 소녀가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