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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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쪽에서 울리는 진동

쿠궁...

쿠구구구궁...

"뭐야 이거."

퍼어어억!

어느새 달려들던 개조 병사들을 모조리 해치운 아니타가 주변, 뒤틀리는 기이한 보랏빛 장막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이 끝나갈 때쯤 지하로부터 퍼져 나와 순식간에 도시 바깥으로까지 뻗쳐나간 기묘한 파장.

마치 세상이 아주 연한 보랏빛 필터를 낀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대기가 뒤틀리고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어 생겨난 변화.

쿠드드드드득..

쿠득...

쿠드드드득...

"무슨..."

뭐야 이거.

어어어?

부서지고 박살 난 도시가 마치 되감은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파인 도로가 보랏빛 일렁거림에 메워지고.

무너진 유리창과 빌딩 외벽들이 그림처럼 수복되며.

기계 병기니 뭐니, 하며 어지간한 산전수전 다 겪은 아니타와 무장병들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

하지만 변화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주춤거리며 본능적으로 무기를 움켜쥐는 아니타와 무장병들의 앞으로.

키이이이이잉...

키이잉...

대기가 뒤틀리며 십 수 미터에 달하는 <무언가>들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들.

크기 15m.

두꺼운 외장에 사나운 발톱.

어딘가 외계 행성에 살 것 같은 모양새의 전투 병기 같은 놈들.

그런 녀석들이 빌딩 사이사이로 수십 마리.

보는 순간 아니타는 알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이 도시 밖에서 마주쳤던 <기갑화 보병>의 상위 단계에 해당하는, 말하자면 어떤 행성의 <기갑 중병기>에 해당하는 놈들이라는 걸.

검기 사용자인 자신도 벅찬,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군대가 와서 상대해야 하는!

"도망가!"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앞장서 일단 막아선 아니타가 연검을 휘두르며 뒤쪽, 패닉에 빠지려는 무장병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

같은 도시의 지하.

콰아아아아아앙!

<망할. 꿈쩍도 안 하네.>

포식 장갑을 입은 채, 전력으로 상대를 후려 찬 뒤 다시 땅으로 내려앉은 군파츠가 여유롭게 허공에 뜬 사내를 보며 재수 없다는 듯 침을 퉤 뱉으려다 꿀꺽 삼켰다.

뱉어봤자 장갑 안, 자신의 얼굴에 튀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런 바이저 너머로 반투명하게 들어오는 사방의 지하 속 광경들.

키이잉...

키이이이잉...

끄어어어어어어억...

바닥에 누워있던 수많은 이들이 하나둘씩 보랏빛으로 분해되어 마법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빠르게, 온 지하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숫자들만 해도 수백, 수천.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지하까지 고려하면 더욱 빠른 속도일 것이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하냐?>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상황이 심상찮은 건 알겠다.

하늘을 향한 군파츠의 욕지기에 위쪽에 떠있던 사내, 론 아쥬하가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뭐긴. 드디어 미뤄왔던 일을 행하는 중이지."

권선징악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론은 처음 이곳에 들어와 수정을 마주치고 수정과 대화했을 때를 떠올렸다.

황무지 한가운데, 마치 이질적인 그림처럼 홀로 떠 있던 수정.

그 앞에 론이 홀린 듯 터벅거리며 이끌려 서자마자 수정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하는 게 있으면 상상해보라고.

<적합한 대가>만 <정당하게> 지불된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고.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바깥의 지옥도에서 간신히 대피했던 터라 제정신도 아니었던 데다.

수정이 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대체 무슨 수로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따라 자신들의 개조 수하를 데리고 도착한 말더듬이 사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바깥에서 생존자 몇 명을 잡아와 반 협박하듯 꿀려 놓았을 때 론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 수정에 무엇을 바치면 되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 지옥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꿈은 무엇이었던지.

콰아아아아앙...

"천국! 나는 천국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가치 있는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론이 지금쯤 <제물>을 대가로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을 위쪽의 도시를 떠올리고 달려드는 군파츠에게 흥분하며 외쳤다.

말 그대로.

자신은 이 지옥 속에 <자격 있는 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선하고 나약한 이들이 모여들.

저 바깥의 죽어 마땅한 죄인들 대신, 삶을 영유해야 마땅한 존재들을 위한!

다만 수정은 거래에 그다지 너그럽지는 않았기에 본디대로라면 머릿속에 있던, 영화롭던 시절의 도시를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양의 대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자신이 눈을 뜬 곳은 그런 곳이었다.

수많은 죄인들이 살아 숨 쉬고 여전히 잠들어있는.

이 세계 모든 악인들로부터 굳건할 자신의 <도시>와 <군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키이이이이잉...

자신의 옆, 수정이 내려준 자신의 병종 셋이 소환되기 시작한 걸 보며 만족스럽게 웃은 론이 멀찍이 물러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여인을 보며 웃었다.

"이제 바깥세상도 모조리 휩쓸릴 거다. 차례대로 내 군대가 <선별>할 테니. 너는 첫 타자이니 특별히 선택권을 주지. 스스로의 선함을 인정하고 위의 천국에서 살아갈지, 아니면 이곳 지하에서 운명을 기다릴지."

이번 거사를 위해 피라미드에서 꺼내와 살려둘 수 있을 만큼 잔뜩 쌓아둔 제물들을 가리키며 내뱉은 론의 말에, 지하에 서 있던 군파츠가 목을 우득 풀며 사납게 웃었다.

글쎄, 자신도 세상이 지옥 같다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천국이 하나쯤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것도.

하지만..

<아까부터 천국, 천국 하는데 대체 천국이 어디 있다는 거냐? 내 눈에는 지금 미치광이 정신병자가 만들어낸 지옥밖에 안 보이는데.>

끄으으으으...

아아... 그러지 마..

무언가에 홀린 듯 꿈속을 처절하게 헤매는 수십만의 지하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비웃는 군파츠의 말에.

"... 그래.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차근차근 찾아보면 되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론의 손짓을 시작으로.

캬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앙!

지하공동 사이를 내달려 덤벼든 괴수 셋과 군파츠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

황무지.

쿠구구구구구...

저게 뭐야.

다들 물러서! 대비해라!

갑작스레 뒤틀리는 대기, 이어 등장하기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병종들 때문에, 싸우던 엑소 슈트와 무장병들이 물러서며 크게 사방으로 고함을 쳤다.

이 급격하고 예측 못 한 등장에 대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 속.

"..."

사방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크기 15m의 병종들을 보며 강태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해저드>

어떤 행성, <뮴>이라는 어떤 생체 종족의 중장갑 돌격을 맡은 2티어 병종.

기계 병기들의 하이브에서 생산되는 15레벨의 디스트로이어나 연방 팩토리의 메탈 스파이더 등과 견줄 만하고, 엑소 슈트나 아까 전 기갑화 보병보다 명백히 한 단계 급수가 높은 녀석들.

저 녀석들부터가 진짜 전쟁 병기다.

뮴의 정복 전선 최전방에 서서 적군의 진영을 무너트리고 도시를 박살 내는!

"제대로 찾긴 찾았는데... 파일런은 반칙이지."

"너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거야?"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사태를 지켜보는 시카른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런은 기갑화를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욕망에 맞는 훌륭한 고대 유물이다.

그 옛날, 어떤 개척지에서도 환경을 극복하고 토착 적대 생물들을 이겨낼 유산과 병기들을 소환 낼 수 있게 설계된 어떤 문명의 유산.

이 파일런 하나만 제대로 다룰 수 있었다면 행성에서의 생존이 가능했을 정도니, 손에 넣는다면 강태석에게 훌륭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꼴을 보니 <감염> 된듯 한 게 문제.

파일런은 개나 소나 다룰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제물>을 받는 등의 사악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즉 어떤 존재가 파일런을 잠식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

'워프 영역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니 사념 존재나 악신들에게 침식당하기도 쉬우니...'

어찌 보면 만능으로 보이는 파일런 최대의 문제.

그렇다면 이제 남은 답은?

간단하다.

가서 지금 파일런을 운용하고 있는 놈을 치우고 자신이 원상태로 복구한 뒤 손에 넣는 것.

"싸우려고 하지 말고 살아남는 데 집중해. 갔다 올 테니까."

"미치겠네. 기껏 바깥에서 도망쳐 왔는데."

단번에 알아들은 시카른이 투덜거렸다.

보아하니 새로 나타난 저놈들도 자신들의 적이란 것 아닌가.

구체 밖은 심부까지 밀고 들어온 위층의 침략자.

구체안은 갑자기 허공을 비틀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수 군대.

하지만 어찌 되었건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후웅.

그런 시카른을 뒤로하고 강태석이 숨을 고른 뒤 단번에 도시까지 주파하려고 한발 내디딘 그때.

터어어어어엉!

"어... 어딜... 가려고... 방... 해하게... 둘... 것... 같습니... 까...?"

병종과 병종 사이, 세기의 기갑 검사를 부려 길을 가로막는 말더듬이 사내의 득의양양한 외침에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은 지금 전세가 단번에 역전되었다고 좋아하는 모양인데...

"살아남으라는 얘기는 너도 포함이야."

"...?"

가로막힌 강태석의 말에 말더듬이 사내가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린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악!

"무... 무... 무무무무무... 무슨!"

날뛰며 자신의 기갑화 보병들을 짓뭉개기 시작한 괴수들의 난동에, 말더듬이 사내가 이제껏 가장 당황하며 크게 외쳤다.

**

구체, 바깥.

5층 심부.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피라미드와 피라미드 사이는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의 상태였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수십 대의 거미형 기갑 중병기, 메탈 스파이더와 그런 이들을 엄호하듯 치고 들어온 수백 수천의 무장병 군대들로 인하여.

거기에 군데군데 섞여있는 검기 사용자들로 인해 5층 심부는 혼돈의 도가니.

콰아아앙!

뭐야 이런 공간이 있었어?

다 깨부숴봐! 귀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혹시 모르니 조심해! 거미를 앞에 둬라!

여러 군데를 통해 침투한 각양각색의 침략자들로 인해 실시간으로 녹색의 피라미드들이 터져 나가고, 자욱한 연기가 뿜어져 나와 5층 전체를 그득 메워갔다.

이미 그 난리 통 속, 구체 입구를 지키던 일천 가량의 생존자들은 기겁하며 부리나케 구체 안으로 도망친 지 오래.

하지만 몇몇만은 구체 입구로 도망치지 않은 채, 녹색의 운무를 틈타 부지런히 사방의 군대들을 피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검기 사용자, 중년 사내와 그를 따르던 생존자.

그리고 여덟 명의 구련장들.

타타타탁...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대장? 아니타는?"

"..."

찝찝한 표정으로 대장 사내를 따르던 소년의 질문에 답한 건 묵묵부답의 대장 사내가 아닌, 그 앞의 중년 사내였다.

"각자가 선택을 한 거지. 시간이 없소이다. 빨리 모조리 휩쓸리기 전에 본대에 합류해야 하니."

쿠궁...

쿠구구궁!

녹색 운무 저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중년 사내가 숨을 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데리고 갈 수 있는 만큼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본대에 합류했을 때의 입지가 높아졌을 테니.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사방에서 각기 다른 세력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 정도만 그러모아 온 상황.

다른 11군세 중 <망월> 같은 미친놈들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끝장날 수도 있다.

'어차피 아래층 놈들은 끝났어. 합류해서 살길을 도모해야지.'

제아무리 카트란이란 놈이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차가운 눈으로 구체 쪽을 뒤돌아보던 중년 사내가 스윽 고개를 돌려 다시 운무를 헤치고 나아가려던 그때.

저벅.

"...?"

운무 너머에서 걸어 나오는 작은 체구의 누군가 때문에, 중년 사내의 눈매가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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