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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하게 붉은 빛이 빛나는 반지.
키이잉...
마르트가 이를 걱정스레 물은건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자신이 확인한 것만 해도 세번.
자신이라고 해도 모든 마력을 다해 끌어써야할만한 공격을 자그마치 세번이나 썼다.
그 불가해함은 둘째치고서라도 그걸 계속, 아니 더 나아가 아까보다 한층 더 강렬하게 할수있을지가 의문인것.
실제로 자신은 오는 도중의 싸움으로 지쳐 자신의 필살기는 쓸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태였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런 이들을 향해 강태석이 덤덤히 말했다.
"할수 있어. 계획대로 가지요."
그런 강태석의 말에.
후우. 좋아. 가자!
철컥!
"..."
"... ...."
안도하며 움직일 준비를 하는 사람들 속, 적검 여인과 화기 소녀등은 되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
통로, 아래.
콰드드득!
우득!
캬아아아아아악!
미친듯이 몰려드는 괴물들로 인해 탑 아래 입구쪽은 이미 아수라장에 가까운 상태였다.
곤충을 닮은 괴물부터 짐승을 닮은 녀석들.
개미같은 군체에 심지어 감염된 인간숙주들까지 미친듯이 좁은 통로로 모여 발톱을 휘두르고 몸을 우겨넣는다.
통로는 폭과 높이 10m로 엑소슈트가 들어가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대단히 큰 편이었지만 원체 덤벼드는 녀석들의 몸집이 컸기에, 그리고 숫자가 어마어마했기에 이미 터져나가기 일보직전.
쿠드드드득!
꾸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출퇴근시간, 터질듯 혼잡한 지하철 안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처럼.
입구쪽 녀석들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으며 어떻게든 안쪽으로는 들어가고 있었지만 뒤에 계속해서 몰려드는 녀석들로 인해 입구는 여전히 터질듯 붐비는 상황.
“후우.”
그리고 300m 밖, 이를 숨어서 지켜보던 일백명 가량의 사람들 앞에 선 차레스가 심호흡을 하고 손에 든 칼을 뽑아들었다.
이미 칼 끝에는 시퍼런 검기가 줄기줄기 맺힌 상태.
정확히 말하면 검기가 풀어헤쳐진 수천가닥의 얇은 푸른 실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둘레둘레 칼을 휘감고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
이게 정확히 말하면 면검기의 실체.
면검기는 이런 검사들을 날줄씨줄로 엮어 만들어진 파괴의 장벽이다.
키이잉...
"갑니다. 좀있다 보지요."
말을 마친 차레스는 그대로 폐허 바깥으로 훌쩍 몸을 날려 사방, 행군을 이루며 몰려드는 괴물들 사이로 몰려들었다.
이어 터져나오는 화려한 섬광.
키이잉...
파아아아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뛰어든 차레스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마치 폭죽 팡파레마냥 줄기줄기 터져나간 푸른 실들.
반경 수십미터를 단번에 뒤덮은 푸른 줄기들이 닿자마자 피부가 푹푹 패어나가고 갑각이 잘려나간 괴물들이 그야말로 노호성을 내지른다.
서서히 밀려드는 죽음보다도 더욱 거슬리는건 당장의 고통.
심지어 그 존재가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썰어죽일것같은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콰르르륵...
원래는 형편없는 먹이감일뿐인 종이 내뿜는 포식자의 기세.
존재혁명.
나약한 자가 삼키고 이겨내고 강해지길 거듭해 결국 종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이를 마주친 기존의 포식종들이 보일 태도는 하나.
불복.
현실을 믿지 않고 저 거슬리는 존재를 다시 짓밟아 원래의 하찮은 자리로 되돌려놓고 주어진 자신들의 지위를 되찾는것.
잠시후.
캬아아아아아아악!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모여들던 종들중 더욱 호전적이고 오만한 종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저 멀리, 통로에서 멀어지는 차레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건 주춤거리며 당황하는 몇몇종들.
그리고 여전히 들어가기 위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입구의 괴수들과 자리에 남은 시카른과 생존자들.
"... 어마어마하군. 어떻게 못본 사이에 저렇게 강해진거지."
남은 적검 여인, 민트라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저기 멀어지는 흉흉한 기세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비검기 사용자와 검기사용자의 차원이 다르고.
검기사용자중에서도 비기너와 익스퍼트는 또 한단계 다르다고 하더니.
물론 전자의 차이정도는 아니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도저히 이길수 없을것같은 차이가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 그리고 이질적인 것 하나 더.
'이 녀석은 더 이상해.'
키이이잉....
천천히 반지에 마력을 그러모으고 있는 옆, 카트란이라 자신을 소개한 녀석을 보며 민트라가 칼의 손잡이를 오락가락 쥐었다 폈다.
차레스 녀석이야 저럴수 있다.
재능이건 뭐건 녀석은 명백히 자신들을 따라잡고 뛰어넘었으니까.
하지만 이 옆의 녀석은 다르다.
명백한 비기너.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약한 수준.
한데 몸에서 새어나오는 마력이 끝이 없다.
마른 수건 쥐어짜서 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한두번이지.
어떻게 자신들도 한번 쓰고 지쳐 나가떨어질 기술을 저렇게 계속해서 쥐어짜 써댄단 말인가.
그렇지만그런, 민트라의 믿기 힘들다는 눈빛 속에서도 강태석의 손 끝에서는 계속해서 작업이 이어졌다.
쩌적...
무량검기가 삼켜지고 삼켜져 손 끝에서 붉은 빛의 장미가 피어난다.
파멸의 빛, 핏빛 장미.
그렇게 피어난 붉은 빛의 장미가 다시한번 강태석의 손 끝에서 쏘아보내진 순간.
투우웅...
온 신경을 집중한 사람들의 시선속, 퉁겨나간 반지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휘리릭 허공을 가로질렀다.
300m 가량, 아까전보단 훨씬 덜하지만 여전히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대지를 지나.
입구를 그득 메운 거대한 지렁이와 늑대 사이, 그 빈틈을 통해.
그 안쪽에서 뒤엉켜 치고박는 수많은 작은 괴물들과 감염숙주들의 사이를 기기묘묘하게 지나.
그렇게 붉은 빛이 입구 너머, 떡처럼 뭉친 괴물들 사이로 완전히 사라진 그순간.
!!!!!!!!!!!!!!!!!!!!!!!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
원형통로 안에서 피어오르는, 아까보다 더욱 강렬하고 거대한 폭음과 붉은 빛.
동시에 마치 믹서기마냥 몰아치는 피바람에 모여있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
콰가가가가가가가각!
!!!!!!!!!!!!!!!!
사방을 가로막은 금속의 벽.
그리고 그 안에서 터져나온 수천개 금속의 칼날.
안쪽에 있던 괴물들이 그야말로 숨도 쉬지 못하고 모조리 갈려나가며 육편이 되었다.
이어 안쪽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걸쭉한 핏물과 체액, 시체파편덩어리들.
"으..."
마치 토사물처럼, 혹은 지옥의 웅덩이마냥 내용물을 왈칵 쏟아내는 안쪽의 광경에 소녀는 물론 마르트마저 인상을 와락 썼지만 이내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바깥에서, 혹은 안에서.
다시 몰려들 괴물 녀석들에 가로막히기 전에.
빠르게 치고 올라가야한다!
"달려!"
시카른의 외침이 떨어짐과 동시에.
촤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앙!
내질러진 마르트의 덫이 후려친 평원들 사이, 준비하고 있던 이들이 모조리 이를 악물고 우르르 입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덩치크고 느린 엑소슈트들은 모조리 버려둔 상태.
어차피 입구가 막히고 다시 갇히면 죽는 지금 화력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단번에 통로의 위쪽, <안전지역>으로 치고 내달리는 것.
"금고! 금고까지 내달려라! 그 녀석이 시간끄는 동안 위로 올라갸아한다!"
터어어어어엉!
칼을 휘두르며 버럭 소리치는, 마찬가지로 검기사용자로 보이는 중년사내의 외침에 시카른이 이채를 띄었다.
남은 생존자들중 차레스를 제외하면 가장 강해보이는, 실질적인 리더로 보이는 이들.
한데 외침이 묘하다.
차레스 덕에 살아남았을걸로 아는데 딱히 안친해보이는 모습.
하지만 의문은 잠시.
휘리리릭...
피잉!
날아든 반지를 잡아채고 슬쩍 지친 표정으로 달리는 강태석을 본 시카른은 심호흡을 한 뒤 이제는 코앞까지 다가온 입구를 바라보았다.
찰랑 들어찬 은빛 물결, 그 위로 들어찬 걸쭉하고 시커멓고 새빨간 체액들로 입구는 이미 시궁창같은 상황.
물론 죽기 싫으면 뛰어들어야한다.
후욱.
코를 막고 숨을 들이킨 시카른이 옆의 강태석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입구 안으로 뛰어든 순간.
후우우우우웅....
"진짜... 볼때마다 장관이네."
텅 비어버린 직경 50m의 공간.
그 주변으로 괴성을 내지르는 괴수들.
그리고 그 사이.
후웅..
후우웅..
하늘과 땅 사이에 마치 별처럼 떠있는 반투명한 수천개의 발판들을 보며 시카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천장.
높게 뻗은 검은 금속의 통로 위를 마치 유리처럼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바닥도 마찬가지.
촤아아악!
체액이 떠다니는 은빛벌레들의 물결사이, 거칠게 발을 내젖자 휘저어진 틈새 아래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바닥이 보인다.
역장.
이 통로의 위와 아래를 구분짓는 투명한 벽.
동시에 위와 아래로의 소통을 담당하는 발판이자 계단.
터어엉!
시카른이 발을 내딛은 순간 발이 떨어질 자리에 정확히 가로세로 30cm의 반투명한 발판이 계단마냥 만들어진다.
이는 시카른만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 역시 마찬가지.
터어어어엉!
터엉!
터어어어엉!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뻥 뚫린 공간을 통해 재차 밀려오려는 괴수들의 노호성 속, 생존자들 모두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허공에 실시간으로 생겨나는 반투명한 계단들을 뛰어오른다!
적검여인이나 수인소녀처럼 가볍고 날랜 이들은 테크니컬, 온이나 화기소녀를 들쳐메고서도 각자 한걸음에 8m.
닻사내처럼 육중한 이는 한걸음에 6m.
그리고 자신들처럼 검기를 쓰지 못하는 이들은 한번 도약에 대략 2m에서 3m가량.
각기 차이는 있지만 그에 따라 만들어진 계단을 통해 미친듯이, 그리고 착실하게 위로 치솟아 올라간다.
이어 도달한 곳은 반투명하게 빛나는 천장.
촤아아아아악!
마지막 계단을 밟고 뛰어오른 시카른을 투명한 천장이 마치 없었던 것마냥 포근하게 받아들였다.
아무 거리낌없이 시카른이 치솟았기에 누가 보면 실체없는 홀로그램인줄 알수도 있지만 이는 오산.
터엉!
뛰어올라 내려앉은순간 반투명한 천장은 그 존재감을 굳건히 드러내며 시카른을 받치는 바닥이 되었다.
동시에 아래에서 들려온 육중한 소리.
쿠우우우웅...
꾸어어어어어어어!
"... 후우."
천장에 머리를 들이박고 괴성을 내지르며 아래로 추락해내리는 거대한 지렁이를 보며 시카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바로 이 천장이자 바닥, 역장의 신묘함.
사람이나 허락받은 물자는 위아래로 들락날락거릴수 있고 저런 괴물들은 이 막을 통과할수 없다.
그게 아래 괴물들이 우글거릴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설령 어떤 녀석은 이를 짓밟고 위로 올라와도 윗층으로 올라올수 없는 이유.
일단 이곳으로 올라온 이상 안심이다.
터엉...
터어엉...
"좋아. 좋아..."
강태석을 비롯, 하나둘씩 차례차례 올라오기 시작한 이들을 본 시카른이 작게 웃었다.
모두가 자잘한 상처도 있고 지쳐보이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건 살아 올라오고 있다.
다들 이 지옥속에서 살아남으며 몸 하나는 날래기 그지없는 초인들.
거기에 계단과 발판까지 있으니 올라오는게 어렵지는 않은 법이다.
이제 남은것은 차레스 하나.
후욱... 후욱.
허어어억...
구어어어엉...!
긴장이 풀려 널부러져 앉은 모두가 가쁜 숨을 내쉬며 이제는 다시금 괴물들로 들어차고 있는 바닥 아래를 지켜보던 그때.
쑤우우우우욱!
무언가가 반투명한 바닥 아래서 불쑥 위로 치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