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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장갑차 안.

장갑차를 멈춰세운 테크니컬사내, 온이 흐릿한 전면카메라 패널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십수대의 엑소슈트.

그리고 그 앞에 선 청년.

한데 청년의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낯이 익다.

'누구지.'

하지만 고민은 잠시.

온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옆, 마찬가지로 화면을 보고 있던 시카른에게서 터져나왔다.

"야. 저거 그녀석 아냐? 그녀석? 옆분대에 천재라던 꼬맹이?"

"어? 그러고보니...?"

콜로니, 1년전.

위쪽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한 대붕괴의 날.

그때 소속되어있던 자신들 분대 옆에서 들려오던 소문.

칼을 잡은지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검명을 넘어 검폭을 뽑아내는 놈이 있다던.

잠시후.

떨꺽.

고민하던 시카른이 장갑차 상부개폐구를 열고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

키이이잉...

털컥.

무기는 작동하지 않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설령 그 사용자가 어떤 생각이 없어보이더라도.

지금 강태석과 닻사내 마르트, 그리고 장갑차의 앞에 서있는 엑소슈트들도 마찬가지.

그 어떤 의도를 지녔는데 알수없는데도 총구가 겨눠진 것만으로도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꿀꺽.

캬아아아악...

다시금 서서히 가까워지는 괴수들의 살벌한 울음속, 침을 꿀꺽 삼킨 마르트가 손에 들린 사슬에 힘을 꾹 주던 그때.

저벅.

"여러분. 옆분대. 옆분대 분들 맞죠? 그때 그날?"

"...?"

걸어온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반갑다는 목소리에 마르트가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왠지 익숙한 생김새, 익숙한 목소리.

잠시후.

"어어? 너 차레스. 차레스구나!"

마르트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기억났다.

앳된 외모에 기가 막히게 칼을 휘두르며 전방에서 싸우던 청년.

옆분대 녀석들은 이녀석이 일년만 더빨리 칼을 잡았어도 자신들이 살아날 확률이 세배는 높아졌을 거라고 탄식하고는 했었다.

소심쟁이, 차레스.

"대체 일년 사이에 뭘 그리 잘먹고 자란거냐. 엄청 컸네."

긴장이 다소 풀린 마르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차레스를 바라보았다.

못알아본 이유가 있었다.

그당시 차레스의 외양은 비쩍 마르고 키도 작았던, 소년같은 외양.

한데 못보던 1년 사이 몸에 근육도 잘 붙고 키도 쭉쭉 커 어느새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마르트의 말에 차레스가 멈칫하다 웃으며 뭐라 말하려던 그때.

캬아아아악...!

아까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괴성에 마르트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반가운 마음에 잊고 있었다.

아직 이곳은 지옥도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거기다 1년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시간.

눈 앞의 차레스가 예전에는 친했다지만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르트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멈칫거리며 차레스와 그 동료들을 바라보던 그때.

덜컹!

"야! 싸울거면 싸우고! 아닐거면 같이 달려! 지금 급해 이 새끼야!"

문을 열고 머리를 내민 시카른의 우렁차게 터져나온 외침에.

"...!"

잠시 멈칫한 청년 차레스가 이내 웃으며 자신의 칼을 빙글 돌려잡았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구어어어어어어!

녹아내린 금속의 대지를 뚫고 두께만 6m에 달하는 거대한 지렁이가 대가리를 치켜들며 괴성을 토해냈다.

뜨끈한 열기에 익어버린 피부.

깊은 곳에 살아가던 녀석이 청염에 통째로 구워진 금속의 대지속에서 놀라 질주하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밖으로 대거리를 내민것.

열기는 버텼지만 자신의 굴로 밀려드는 은빛의 액체는 더이상 버텨낼수가 없다.

이제 탈출구를 찾아 올라가기 전 자신의 몸을 회복하기 위해 먹이감을 찾아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 진동을 느껴 대거리를 치민 지렁이가 그즉시 날카로운 이빨을 치켜세우며 근방, 지나가던 <먹잇감>들을 향해 머리통을 쳐박으려던 그때.

투타타타타타타타타!

콰콰콰콰콰콰콱!

쿠아아아아아아아악!

빗발치듯 날아드는 수천발의 금속폭우를 온몸으로 얻어맞은 지렁이가 괴성을 내질렀다.

작은 녀석들이 쏘아보내는건 견딜만하지만 큰 녀석들이 쏘아보내는건 금속을 부러삼켜 껍질을 만든 자신으로서도 지나치게 아프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아프긴 하지만 견딜만은 한 수준.

캬아아아악...

고통을 분노로 승화시켜 배고픔을 잊기로 한 지렁이가 고통을 참고 그대로 저너머 벌레무리들을 향해 질주하려던 그때.

콰콰콰콰콰콰콱...!

가로세로 5m의 시퍼런 면이 허공을 질주하며 내리꽃히려던 지렁이의 머리를 덮쳤다.

이어 밀려드는 끔찍한 충격.

!!!!!!!!!!!!!!!!!!!!!!!!!!!!!!!!!!!

콰아아앙!

콰앙!

탄환도 버텨내던 지렁이가 이번에는 숫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방팔방, 되는대로 바닥에 머리를 쾅쾅 내리찍었다.

머리가 모조리 타들어가고 갈려들어가는 느낌.

수천개의 날카로운 강선들이 피부를 파고들어 근육을 잘라내고 살과 신경을 토막토막치는 이 감각!

아니, 단순히 느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단 한번의 일격에 머리와 이빨, 그리고 뇌와 같은 핵심장기들은 모조리 갈려나가고 스매셔에 간 고기반죽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황.

이미 생존은 글렀으며 지금의 날뜀은 척수의 반사에 의해 본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하지만 그속에서도 지렁이는 마지막 자신의 할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끔찍한 고통을 주고 더 나아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녀석들을 함께 데려가는것.

콰드드드득!

!!!!!!!!!!!!!!!!!!!

지하, 70m에 달하는 몸체를 모조리 뽑아낸 지렁이가 자신의 몸안에 자리잡은 체액을 모조리 들끓어올리며 저너머, 탄환이 빗발치는 곳으로 내달리려고 했다.

마지막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의 유독성 체액을 폭발시켜 저너머 있는 녀석들을 모조리 녹여버리기 위해!

이건 원래 군집생활을 하는 자신들 <종>이 마지막에 스스로를 희생해 타개체를 살리고 군집을 방어하는 본능!

하지만 그런 지렁이의 돌격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

키이잉...

살포시 날아온 아주 작은 붉은 빛 한점이 그대로 돌격하던 지렁이의 몸체 한가운데 그대로 내려앉았다.

마치 작은 핏방울에 물든 눈처럼.

빗발치는 강철폭우나 시리도록 푸르고 파괴적이던 정사각형 벽에 비하면 지나치게 작고 나약한 형체.

그리고 그게 마지막.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콱!

터져나온 붉은 강철의 소용돌이가 그대로 직경 40m를 쓸어버리며 그 안에 있던 모든것들을 갈아버리고 집어삼켰다.

디스트로이어의 탄환조차 버텨내던 금속의 갑각도, 그 안에 있던 강건한 근육과 거체도, 끓어오르던 체액도 모두.

잠시후.

키이이잉!

떨그렁!

쿵쿵쿵쿵!

쿠르르르르르르릉!

이제는 시체조차 온전히 남지 못한 지렁이의 파편들 위로 반지를 회수한 강태석과 장갑차, 그리고 십수대의 엑소슈트들과 백명 가량의 무장병들이 차례대로 육중한 소리를 내며 내달려 지났다.

그게 한때는 이근방, 방랑하던 생존자무리 수백을 일거에 몰살시켰던 짐승의 최후.

터어어어엉!

이제는 속도를 맞춰 내달리는 장갑차에서 내려 발로 뛰던 강태석의 옆, 마찬가지로 칼을 들고 내달리던 청년 차레스가 다가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뭐지요? 처음 보는 물건인데."

차레스가 말하는건 방금전 손으로 날아들어온 반지, 알레고리아.

그런 차레스의 눈길에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이 짤막하게 내뱉었다.

"오다 주웠습니다."

틀린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오다 주웠으니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물건이 오고있던 자신에게 날아들어 가슴팍을 후려친 거지만.

"..."

그런 강태석의 말에 머쓱해진 차레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발 물러서 달리는데 집중했다.

이제 목적지는 코앞.

쿠르릉...

1km도 남지 않은 거리에 커다랗고 굵은 금속의 기둥이 대지와 천장을 이으며 우뚝 서있다.

직경 300m, 높이 50m.

자신들 모두가 타고 오르기에도 충분한 두께.

심지어 안쪽의 지리마저도 잘 안다.

차레스를 비롯한, 주변의 모두들이 1년전 도망쳐 내려와야했던 통로가 이곳이었으니.

하지만 내달리던 차레스를 비롯, 장갑차 위의 마르트와 주변 이들의 표정이 모두 심각해졌다.

이유는 기둥의 밑단에 자리잡은 가로세로 10m 가량의 통로입구때문.

캬아아악!

콰드드드득!

콰직!

입구쪽은 그야말로 난장판.

이제는 50cm가량, 움직임을 방해할 정도로 차오른 은빛금속의 물결을 피해 몰려든 괴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어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덩치만 해도 입구보다 큰 녀석들이 거기다 몸을 구겨넣고 치고 박고 싸우고 있으니 그 참상은 목불인견 그자체.

위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싸우다 죽고 엉겨붙은 괴수덩어리들의 사체가 엉겨붙어 숫제 갑각질의 벽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당장 눈앞의 입구가 저꼴이니 다른 입구들은 물론, 통로 안이 어떻게 되어있을지는 안봐도 뻔한 상황.

콰르르르륵...

"제기랄. 끝내주는구만 상황이."

설상가상, 금속 액체들이 들어찬 장갑차가 더이상 작동을 안하고 그자리에서 멈춰섰다.

이에 욕지기를 내뱉으며 사슬을 풀고 쿵 뛰어내린 마르트의 뒤로 적검을 든 여인과 시카른등이 줄줄이 장갑차 안에서 따라내렸다.

"진짜 믿기 힘들 정도네. 인간 하나때문에 이꼴이 되었다는게."

철퍽.

무릎을 넘어 이제는 허리까지 맹렬하게 차오르고 있는 은빛액체를 보며 마르트가 탄식을 내뱉었다.

4층 전체에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다.

초열에 이은 수해, 불타오른 대지위로 은빛 죽음이 차오르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체들에 의한 지옥이.

광대한 플로어속, 괴수와 인간 모두가 공평하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유일한 동앗줄인 몇개의 기둥들에 매달려 아우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고작 한명의 <인간>이 변덕스레 내던진 한줌 손길때문.

그 일격에 평방 수천키로미터 생명체들이 이 지옥에 이끌려와 발버둥을 친다.

이쯤되면 그걸 인간이라도 불러야할지 의문일 정도.

"..."

아아아악...

통로 근처, 어떻게든 다가가보다가 비명을 내지르는 몇몇의 생존자들을 침묵속에서 바라보던 이들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믿기 힘들지만 이것이 곧 현실.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할거야?"

마르트가 조용히 물었다.

시카른이 아닌 강태석을 바라보며 내던져진 질문.

하지만 대답은 오히려 그옆, 다른 곳에서 나왔다.

"제가 유인하죠. 다른 녀석들을."

"...?"

"그리고 그동안 여기 카트란 씨가 저 통로 아래를 모조리 갈아버리는 겁니다. 거기 있는 그 반지로."

빙글.

칼을 휘두르며 강태석을 가리키는 차레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

차레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새로이 통로로 몰려드는 괴물들의 유입을 우선 차단한다.

그동안 강태석이 최대한 강하게 기를 모아 저 아래, 마치 오래묵은 변기처럼 꽉 막힌 통로에 알레고리아를 터트려 안쪽의 것들을 모조리 갈아버린다.

통로의 직경은 대략 300m지만 높이는 50m.

잘만 하면 단 일격에 저 좁은 입구로부터 천장까지 뻥 뚫리는 커다란 동공을 만들어낼수 있다.

이후 그 사이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남은 괴물들을 밀어내고 해치우며 그 틈이 메워지기전에 치달려 올라가자는 것.

그런 차레스의 말에 모두가 눈매에 지긋히 힘을 주었다.

계획대로만 되면 확실히 올라갈수 있다.

문제 하나만 제외한다면.

"너, 아직도 그거 쓸수 있어?"

키이잉...

미약한 붉은 빛을 깜빡거리는 강태석의 반지를 가리키며 마르트가 걱정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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