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04화 (10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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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아아악!

쿠아아아아아아아악!

온갖 것들이 뒤섞인 지옥의 대지.

어찌나 흉험한지 닻사내는 물론, 적검여인과 어느새 화기 하나를 챙겨든 소녀마저도 껄끄럽다는듯 눈앞의 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천천히 차오르는 은빛 액체에 빠져 압사당할 뿐이니 진퇴양난.

"천장에 군데군데 열린 통로 있지 않았어? 그쪽으로 가도 되잖아."

소녀의 말에 먼저 대답한건 강태석이 아닌 테크니컬 사내였다.

"오면서 살폈습니다. 이미 닫혔더군요. 아마 이 튜브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겠지요."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내려왔던 곳은 콜로니가 낙하하면서 열린, 생존자들을 위한 층간 비상탈출용 통로들.

비록 높이가 50m나 되지만 자신들이라면 뭔가를 던져 걸고 올라가건, 아니면 뜰만한걸 부여잡고 액체가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천장에 닿을때쯤 올라가거나 한다면 어렵지 않게 위로 갈수 있다.

하지만 비상시퀀스가 작동하기 시작한 이상 그 가정은 무의미.

시퀀스가 작동한다는건 콜로니가 특정한 목적을 위한 기동이 가능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이고.

그즉시 플로어간의 비상통로들은 무의미한 변수 및 환경조성에 대한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기 위해 폐쇄된다.

괜히 뻥뚫린 구멍이 있다면 층간 대기조성이나 내부인원유동통제에 어려움만 겪을 뿐이니까.

이제 남은건 눈앞, 기둥의 형태로 자리잡은 정규통로뿐이라는 뜻이다.

"올라가야지. 그나저나 추억의 땅이네. 여긴 다시 안올줄 알았는데."

"..."

"... ...."

중얼거리는 시카른.

이어 주변에 찾아든 침묵에 강태석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정보는 곧 힘.

강태석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게임밸런스상 초월적인 무적의 힘을 가질수 있다면 지식따위는 아무런 상관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난이도 최상을 넘어 흉악을 향해 달리는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그런 힘을 손에 넣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레벨이 100, 1000이 넘는 대괴수들과 레벨 1을 때때로는 같은 세계관에 섞어놓기도 하는 곳이 이 세계.

그렇기에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대한 세계관과 핵심정보는 물론,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과 주변에 대한 정보들 역시 말이다.

어찌보면 더 중요한건 후자.

전자는 강태석 역시, 아니 강태석보다 빠삭하게 아는 이가 없겠지만 후자같은 지나친 세세한 정보마저 모조리 알수는 없는 노릇이며.

심지어 당장 자신의 목을 날릴수도 있는 것들은 레벨 수십, 수백짜리 괴물들이 아닌 레벨 15, 20짜리 근방의 녀석들이다.

그게 지금 강태석이 시카른 일행을 붙잡고 굳이 옛날 일을 끄집어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고.

"... 이게 다야. 그나저나 너 은근히 집요하구나. 그렇게 안보이더니."

그야말로 꼬치꼬치 쏟아진 질문세례에 모두 대답하고 지친듯 바라보는 시카른을 내버려둔 채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듣자하니 이 거대한 콜로니 전체에도 난리가 났었던것 같다.

몰려들던 생존자들.

그렇게 몰려든 수많은 이들이 흩어진 격전의 콜로니.

그런 이들을 모두 통합하고 영광을 재현하려던 어떤 야망넘치던 자.

재능, 야망, 비전 모든게 있었지만 운이 없었다.

<마지막 전쟁>에서 끊임없이 <적세>를 몰아붙이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누군가들의 배신에 의해 군대는 무너지고 세력은 와해.

결국 시카른 등을 비롯한 생존자들은 모든 것이 붕괴되던 그 재앙같던 현장에서 미친듯이 도망쳐야했으며.

눈 앞의 통로는 그런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 이 비루한 지하에 처박힐때까지 내달려올 때 지나왔던 마지막 행로.

그제서야 자신들은 온전히 한숨을 돌리고 이곳, 최하층에서나마 자리를 잡을수 있었으며.

사방, 흩어져 살아남은 섹터들이나 시카른이 완성시킨 마울러는 모두 그때 흩어진 파편들이다.

다들 침묵을 지키며 말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때문.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정보였다.

"아직 근처에 남은거 많지않아? 그정도로 한 끝발 했었으면?"

"쓸만한건 그때 도망쳤던 녀석들이 다 챙겨갔을거 같은데. 우리만 해도 그랬고."

강태석의 말에 이제는 시카른이 자신의 턱끝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그때.

스륵.

"저..."

손을 드는 테크니컬 사내에게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

폐허, 구석.

부르르릉...

폐허더미 속에 잠겨있던 크기 15m의 두터운 장갑차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기음을 토해냈다.

표면 군데군데가 청염에 눌어붙기는 했지만 폐허 깊숙한 곳에 숨겨져있었던 데다 은빛 나노바다액체에 애초부터 반쯤 잠겨있었던 탓에 피해는 크지 않은 상황.

아니, 애초에 장갑차의 표면 자체가 굉장히 견고했기에 푸른 폭발 대부분을 견뎌낼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갑차 속, 집중된 모든 이들의 시선 속에서 묵묵히 계기판을 매만져 시동을 걸어가던 테크니컬 사내가 짧게 대답했다.

"... 다들 숨겨둔 패 하나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것 뿐입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그냥 비상사태를 대비해 조금씩 준비해둔것 뿐이니."

"와 이놈새끼. 평소 조용조용하더니 아주 그냥 뒤로는 철저하게 준비해놨었네. 이게 조금씩이야? 우릴 얼마나 못믿은 거야."

닻 사내가 장갑차 안을 보며 그야말로 혀를 내둘렀다.

안에는 그야말로 오만 물자들이 그득 들어차있었다.

비상용 축전지에 물과 식량, 기기묘묘한 형태의 무기에 레일건의 탄자들까지.

그냥 언제 날잡아서 도망쳤어도 자기 한몸은 무난히 건사했을 수준.

거기에 이걸 몰래 준비.

이 말은 자신들은 온전히 믿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런 닻 사내를 향한 테크니컬 사내의 퉁명스런 한마디.

"그런 날을 겪고 어떻게 서로를 다 믿겠습니까. 각자 준비는 해둬야지. 당신들을 못 믿어서 해둔게 아니에요. 이 세상 자체를 못믿은거지."

"..."

단번에 사내를 조용하게 만든 테크니컬 사내가 서서히 계기판을 통해 장갑차의 출력을 끌어올리자 장갑차 후미 엔진에서 육중한 소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울러를 연구하며 개발된 포신단련야금기술을 외장에 듬뿍 적용한 녀석.

엔진이야 평범하지만 장갑차 자체의 단단함은 같은 두께의 섹터 외성벽보다도 견고하다.

뭐 그래도 한계야 있겠지만.

"최단거리로 죽 달릴 겁니다. 그동안 당신 둘은 위에서 싸워주세요. 파편을 뚫고 나가면."

일방적으로 두들겨맞기 시작하면 장갑이 문제가 아니라 충격에 구동계 자체가 퍼져버린다.

바깥에서 싸워줄 사람이 필요.

강태석과 닻 사내를 가리키는 테크니컬 사내의 말에 둘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키륵...

캬아아아아악!

서로가 괴성과 괴성을 내뱉으며 배회하고 한곳으로 향하는 괴물들의 대지사이.

그 청염에서 살아남았을 정도니 모두가 한가락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았을 정도니 모두가 정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괴물들조차 서로가 경계하며 날을 세우고 울부짖으며 거리를 유지하고 본능에 따라 저멀리, 위로 향하는 탑을 향하던 그때.

쿠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지하 폐허더미를 박살내며 거칠게 튀어나온 거대한 무언가에 에일리언을 닮은 크기 11m의 괴생명체가 비명성을 내지르며 본능적으로 내달리는 물체를 덮쳤다.

이어진 충돌.

콰아아아아앙!

끄드드드득...

괴생명체의 몸통박치기가 들이닥친 순간 기세좋게 지상으로 뛰쳐나온 장갑차가 그대로 굉음을 토해내며 그자리에서 멈춰섰다.

차체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밀릴 정도이니 괴생명체의 육신과 근력이 어찌나 강한지 짐작할수 있는 상황.

캬아아아악...!

이를 본 주변, 에일리언 괴생명체의 수하 짐승들이 안그래도 배고팠는데 잘됐다는듯 기성을 내지르며 가로막힌 장갑차에게 달려들려던 순간.

붕붕붕붕!

콰아아아아아앙!

장갑차 뒤쪽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온 거대한 쇠사슬닻이 그대로 앞쪽을 향해 날아들며 장갑차를 버텨내던 괴생명체의 머리통을 그대로 터트려버렸다.

순식간에 작렬한 참격, 박살난 머리와 허물어지는 거체.

이어.

콰카카카카카카칵!

가로막는 것이 없어진 장갑차가 그대로 괴생명체의 시체를 깔아뭉개며 녹아내린 금속대지를 내달렸고.

터엉...

터어엉...

그 뒤, 열린 장갑차문을 통해 튀어나온 강태석과 닻사슬사내가 그대로 장갑차의 위에 안착했다.

촤르르르륵...

터어어엉!

"후우. 빌어먹을 놈. 나만 위험한 곳 내보내고."

덜컹!

쇠사슬을 회수한 닻 사내가 내달리기 시작한 장갑차, 그 뒤 닫히기 시작하는 문을 보며 인상을 와락 썼다.

사실 근접전투만 보면 자신보다 적검, 민트라가 더 잘 싸운다.

한데 둘만 내보내다니 밉상일 수밖에 없는 노릇.

그런 닻 사내의 말에.

"글쎄. 원래는 너랑 그 여자 둘이 올라오는 용도같은데."

"뭐? 어떻게 알고?"

이에 강태석이 자신의 발 밑을 가리켰다.

딱 봐도 사슬끝을 묶어두는 용도로 준비된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고리.

그리고 무기를 매달수있어보이는 두개의 금속와이어장치.

이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딱 봐도 한눈에 알수 있었다.

거기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

작은 방호창을 통해 내달리는 장갑차의 사방으로 쏘아보내지는 녹색탄환들을 본 강태석이 닻 사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사이 좋았나봐? 너희랑 같이 갈 준비를 이렇게 잘해놨는데."

"... 염병. 웃기지 말라그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개를 휙 돌려버린 닻 사내는 퉁명스레 한마디를 내뱉은 뒤 자신의 사슬을 잡고 달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미친듯이 닻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말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슬 끝을 준비된 고리에 걸어둔채 말이다.

철그럭.

콰아아아앙!

그야말로 미친듯이 휘둘러지며 사방팔방을 으깨기 시작한 닻을 본 강태석은 심호흡을 하며 그 너머 목적지를 바라보았다.

남은 거리 3.8km.

짧다면 짧지만 멀다면 먼 거리.

주파하면 10분 내에도 도달할수 있지만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갈리가 없다.

쿵쿵쿵쿵!

쿠아아아아아아!

높이만 해도 25m.

사람 비스무리한 다리를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마치 사람의 다리만 열두개를 모아놓은것같은 기괴한 생명체가 내달려오는 것을 본 강태석이 자신의 왼손을 매만졌다.

자리잡은건 적색의 반지.

'한번 새로 써볼까.'

아까전 사태를 겪으며 얻은 수많은 것들.

그중 가장 인상적인 하나.

강태석이 반지를 매만진 순간.

키이이이이잉!

쿵쿵쿵쿵쿵쿵!

달려오는 괴수 앞, 내달리는 장갑차와 긴장하는 닻사내의 곁으로 시뻘건 광채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지옥도 외곽, 3.7km.

쿠르르릉...

쿠릉...

떨어울리는 폐허 사이, 찰박찰박 은빛 액체가 차오르는 지하에 몸을 숨긴채 불안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던 일백 가량의 남녀들이 근심어린 눈길로 사방을 살폈다.

온 사방, 어딜 가나 지옥도.

평소에는 한마리만 등장해도 수백명을 학살할 정도로 강한 <열두발이>같은 놈들이 온사방을 돌아다닌다.

자신들도 급하다는듯, 살아남기 위해 더욱 흉폭하고 거칠게 말이다.

이런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바깥으로 섣불리 나갈수도 없고 환장하겠는 노릇.

목적지가 코앞인데 가로막혀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면 모조리 잠겨죽을 판국이니 모두의 심정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여유있는 이는 하나.

그들의 한가운데서 하품을 하며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청년뿐.

그런 청년의 태도가 답답했는지 한 중년 사내가 참다 못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차레스. 우리 움직여야하지 않을까? 더 시간끌면 위험할거같은데..."

그런 중년 사내의 말에.

"..."

슬쩍 짜증스런 표정을 짓던 청년이 이내 웃으며 다독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좀더 기다리면 좋은 때가 온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

중년 사내가 속터지겠다는듯 울분을 내뱉던 그때.

키이이이이이잉!

"...?"

바깥에서 터져나온 희미한 붉은 빛에 중년사내는 물론, 사람들과 차레스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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