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키아아아아악!
궤도엘리베이터, 5층 외곽섹터.
쩌어어어어어억!
달려드는 괴물중 하나를 베어낸 아너스빌은 저멀리, 쿵쿵거리며 숨어있는 자신에게로 달려들던 크기 7m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훨씬 더 커다란 크기에 두터운 갑주.
배에서 보았던 특이종 녀석중 하나일터.
힘좀 써야겠다고 생각한 아너스빌이 칼을 빙글 고쳐잡고 녀석의 머리로 뛰어들려던 순간.
키이이잉...
스팟!
굵은 섬괌이 단번에 아너스빌이 있는곳을 스쳐 달려들던 괴물의 척수를 꿰뚫어버렸다.
커다랗고 강한 머리, 그 아래로 보이는 아주 작은 목줄기.
2km도 넘는 곳에서 이를 꿰뚫어버린 것.
'역시. 탐난다.'
키이잉...
어둠속에서 스러지는 빛의 궤도, 그 근원쪽을 바라보며 아너스빌이 입맛을 다셨다.
탐나는 실력, 그에 걸맞는 무장.
아린을 떠올리며 뒤쪽을 바라보던 아너스빌의 뒤에서 다급한 음성이 버럭 터져나왔다.
"아니 진짜! 빨리 좀 해결하고 들어가자고요!"
뒤쪽, 인간사이즈의 배낭에 꽁꽁 묶인채 아너스빌의 뒤에 매달려있던 루한 소속, 금발여인 카스티의 목소리.
투콰콰콰콰...
쉴새없이 쏘아지는 디스트로이어의 화망을 보며 다급히 외치는 카스티의 목소리에도 아너스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이 대답했다.
"네녀석이 잘만 하면 금방 해결하고 돌아갈수 있겠지."
키이잉...
파아아앙!
저 멀리, 중앙부에서 터져나오는 신호탄들의 조합을 읽어내린 아너스빌이 칼을 빙글 휘둘렀다.
두가지 의미를 내포한 신호.
첫째, 여왕은 자신에게 맡긴다는 것.
둘째, 이제부터 서쪽으로 향할테니 처리후 복귀하라는 것.
예상 외의 신호에도 아너스빌은 덤덤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보군.'
아마도 여왕을 담당하기로 한 카트란에게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
하여간 허튼 소리를 할 자는 아니니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걸 해내면 그만이다.
온갖 특이종 녀석들이 있을테니 혼자서는 좀 버겁겠지만 뒤에는 이 녀석이 있으니까.
터어어엉!
"자. 이 칼은 쓸만했다. 이제 다른 거 내놔보아라."
치지지직...
뭔가 심이 다 타버린것처럼 색을 잃으며 회색으로 변한 칼을 내던지는 아너스빌의 말에 카스티가 울상이 되었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하지만 자신이 협력하는 이유.
첫번째, 같이 죽기 싫으니까.
두번째, 협력안하면 그전에 이 여자 손에 죽을것같으니까.
그리고 세번째.
"... 나중에 제값 다 쳐주시는것 맞지요?"
"나를 뭘로 보고. 잡스러운 거짓말따위 안한다."
이에 한숨을 내쉰 카스티가 이내 차갑게 눈을 떴다.
어차피 자신들 대상련의 모토는 이윤 극대화.
이왕 이렇게 된것, 어떻게든 살리고 도착시켜서 모조리, 이자까지 받아내고 말리라.
잠시후.
웨엑...
"허억... 써요. 칼마룬의 거도. 이거 거의 중심가 빌딩 일곱개 값이라는거 잊지 마시고."
"..."
'볼때마다 신기하군.'
입에서 3m짜리 태도를 뱉어낸 카스티를 보며 아너스빌이 이채를 띄었다.
다시 봐도 희한한 기예.
하지만 고민도 잠시.
콰득.
바닥에 떨어져내린 칼의 손잡이를 강하게 쥔 아너스빌이 앞으로 뛰어듬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시퍼런 마력을 휘감은 칼의 폭풍에 달려들던 개미떼들이 그야말로 분쇄되듯 으깨지기 시작했다.
**
궤도 엘리베이터, 4층.
쿠쿠쿠쿵...
들려오는 폭음속, 강태석은 높이 50m쯤 되어보이는 층과 층사이의 광활한 대지를 소리와 다른 방향으로 주파하고 있었다.
좀더 동쪽, 동쪽으로.
직경 4km.
이 거대하고도 광대한 금속첨탑의 대지를 지나.
목적지가 있는 방향으로.
점점 더 뒤쪽에서 울려퍼지는 소음들은 줄어들어갔다.
그들은 서쪽으로, 강태석은 동쪽으로.
차츰차츰 거리를 벌리며 멀어지고 있는 것.
혹은 전투 자체가 소강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고.
어찌 되었건 나쁘지는 않은 일.
강태석은 층층, 기계들의 대지를 내달리며 오랜만의 적막함을 즐겼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르르르륵...
커르르륵...
달리던 거주구 사이, 기묘하게 생긴 3층높이까지 건물과 건물들 사이로 타액에 잔뜩 물든 시체들이 걸어나왔다.
손에 들린 개인화기, 어설프게 챙겨입은 방호구들.
한눈에 봐도 한때는 살아있었던, 바깥 혹은 이곳의 주민들.
키이잉...
손에 유리조각 빛뭉치들을 일렁이던 강태석이 어떤 무기를 만들어낼까 고민했다.
중화기는 무리이지만 단단한 병기를.
아니, 어쩌면 단단하기보다 날카롭고 유연한 무기를.
순간 떠오른건 구련장 여인, 아니타의 연검.
키이이잉...
유리빛뭉치가 마치 수정처럼 삐죽삐죽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기나긴 칼이 쫘아아악 자라나고 자라났다.
마치 실선처럼 얇지만 그렇기에 날카롭기 그지없는 길이 30m의 칼날.
강태석이 이에 마력을 실어 전방으로 쫘악 휘두른 순간.
그어어억...
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30m 안의 존재들이 모조리 토막남과 동시에 사방을 휩쓰는 강렬한 폭발들이 일어났다.
어찌나 폭풍이 강렬했는지 비록 얇지만 금속에 가까운 연검이 마치 연처럼 펄럭이며 허공으로 휩쓸려 치솟을 정도.
전방을 정리하긴 했지만 동시에 빠르게 소모되는 마력을 느끼며 강태석이 긴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저 시체는 살아생전에는 그저 평범한 생존자중 하나였을뿐일 것이다.
한데 저 정체모를 세균, 혹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되살아난 뒤에는 검기조차 미약하게 뒤흔들 정도의 자폭위력을 지닌 무언가로 변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세계.
재료가 인간일뿐, 변이된 결과물이 무엇이 될지는 알수 없다.
디바우러 앤츠도 그렇고, 눈앞의 감염종도 그렇고.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닌 상황.
그어어어어어억...
거어어억!
사방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시체들을 본 강태석은 빠르게 연검을 거둬들였다.
하나하나 검기로 처리하기엔 타산이 안 맞는다.
강태석이 내달리던 속도 그대로 전방측면의 건물에 연검을 휘두른 순간.
쩌저저적...!
대각선으로 잘려나온, 3m 가량의 건물 모퉁이가 쿠구구구 소리를 내며 강태석에게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타르늄은 아니라지만 금속은 금속.
작다지만 건물은 건물.
파편이라지만 그 추정중량은 톤단위.
그 덩어리가 강태석을 통째로 깔아뭉개려던 그때.
터억...
끼그그그그극!
달리던 강태석이 그대로 내리앉던 파편을 움켜쥐어 전신에 힘을 주었다.
발아래, 파고들어 움켜쥐는 전마강갑의 그림자.
마찬가지로 금속을 파고드는 손가락들.
바닥과 파편을 단단히 움켜쥔 강태석이 그대로 몸을 비틀며 전신 근육을 풀어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당탕탕탕!
콰아아아아아앙!
마치 투포환처럼 쏘아진 몇톤짜리 질량덩어리가 눈앞, 가로막는 시체들을 모조리 우수수 휘감고 질주하며 밀려드는 녀석들 사이로 커다란 대로를 만들어냈다.
이어 뒤엉키고 뒤엉킨 시체들이 만들어낸, 저 멀리서 터져나오는 대폭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백수십미터쯤 멀리서 터져나오는 폭발을 보며 어깨를 으쓱한 강태석이 다시 메워지려는 시체들 사이를 질주했다.
이런 방식이면 마력소모도 얼마 없고 폭발에 휘말릴 위험도 적다.
검기 사용자가 되고나서 가장 좋은건 검기 자체보다는 육신 자체가 무식하게 강해진다는 것.
무인보다는 중전차에 가까운 무언가.
<아벨른-변이세균주(LV. 11)을 처치하셨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1(10.57%).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아벨른-변이세균주(LV. 11)을 처치하셨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1(10.58%).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떠오르는 상태창을 훅 꺼버린 강태석이 어느덧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높이 50m의 층과 층 사이.
길이가 400m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이 우뚝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장벽이 아닌 구역.
예전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성>이라 불리우던, 이 궤도엘리베이터의 비상작동시스템중 하나.
정식명칭은 비상생존대피구역.
저 안에 자신의 <목표>가 있다.
'생존자가 없으면 날로 먹는건데. 없으려나?'
말하자면 무혈입성.
이제는 1km쯤 남은 목적지를 보며 강태석이 입맛을 다시던 그때.
키이이잉...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팡!
"쉽게 가나했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디스트로이어의 그것들로 보이는게 선명한 탄자의 직선들에 강태석이 펄쩍 건축물들 사이로 몸을 굴렸다.
**
스파파파파파팟!
"저놈. 피했는데요."
"미친 놈. 먹고 죽으려고 해도 줏어먹을게 없는데는 왜 들어온거야. 어느 섹터 놈이지?"
키이잉..
쿠웅...
<벽> 안에서 엑소슈트를 입고 빠꼼히 열린 창밖을 바라보던 여인이 마약성 담배를 후욱 들이키며 침을 퉤 뱉었다.
생존구역.
말하자면 사방에 좀비같은 놈들이 영역을 구축하고 개미떼들이 여왕을 쫓아 우글거리는, 지옥같은 이곳에서도 나름 살만한 장소.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몰라도 금속의 대지들 사이에 돋아난 이 <생존구역> 안에서는 에너지가 충전되고 정수시스템과 기타 여러가지들이 작동했으며.
천장까지 두텁게 자라난 성벽들은 안에 있는 이들에게 바깥 괴물들로부터 일정 이상의 방호와 안전을 제공했다.
어찌보면 이 생존구역마저 확보못하고 떠돌고 떠돌다 쫓겨나거나 죽어간 놈들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싶겠지만...
개뿔. 그럴리가 있겠는가.
딱 목숨줄만 이어가고 있을뿐.
이곳에는 먹고 즐길것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호시탐탐 자신들을 물어뜯으려는 사방의 섹터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되며 이끼처럼 자라나는 괴물들 빼고는.
심지어 피고있는 이 담배마저 아끼고 아껴 이틀에 한 개피씩 피고있는 상황.
자신들이 제일 낮은 4층에 살아서 그러나?
높은 층의 녀석들은 좀더 나으려나?
아니면 저 멀리, <운하>의 녀석들은 좀더 낫고?
하긴.
"상관없지."
담배를 후욱 불어제낀 여인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녀석에게서 신경을 끄고 저 너머, 서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어둠속에서도 불을 켜고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운하>쪽을.
아직까지 녀석들은 살만한가보다.
가끔씩 마실나오듯 이곳에 나와 귀중품 따위를 뒤적여 챙겨가는걸 보고는 얼마나 배가 아팠는가.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
"혁명이다. 이 새끼들아."
쿠르르르릉...
어둠뒤켠.
생존공간의 공터에 해당하는 공간에 자리잡은 거대한 쇳덩어리 <무언가>를 보며 흐뭇하게 웃은 여인은 잠시 고민하다 반쯤 남은 담배를 마저 빨아제끼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으니 오늘은 하나 다펴도 되리라.
잠시 후.
"빈틈을 둘순 없지. 야 내기할까? 아까 그놈 누가 잡나? 티켓 열개걸고.”
이에 여인의 뒤에 서있던 2남 3녀가 시리게 웃었다.
**
그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어어억!
"후우."
어느정도 벗어나자 더이상 쫓아오지 않는 좀비녀석들을 보며 강태석이 벽에 기대 한숨을 돌렸다.
아마 저 구역 안이 세균 녀석들이 살기 제일 이상적인 습도와 온도, 환경을 자랑하듯.
숙주인 녀석들도 더이상 그 구역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듯한 느낌.
이제는 저 성, 300m쯤 남은 생존구역 안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어떻게 들어가냐 이건데.'
강태석이 턱을 곰곰히 쓰다듬으며 강철같은, 아니 강철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한 금속의 성벽을 바라보던 그때.
저벅.
“오케이. 내가 먼저 찾았다.”
“?!”
뒤쪽, 폐허 사이에서 들려온 중얼거림과 동시에.
촤르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쇠사슬 끝에 달린 거대한 닻이 강태석이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추정중량 2t.
콰자자자자자자작!
크기는 2.5m.
커다란 기계병기의 머리통을 뜯어 만든듯한 외양에.
마찬가지로 기계병기들의 척수를 이어붙인 흉흉한 형태의 길다란 쇠사슬.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사슬 닻이 그대로 강태석이 있던 금속의 대지와 구조물을 훑고 지나갔다.
걸리적거리는건 모든걸 부수고 으깨버리면서!
그리고 그 속.
콰드드드득...!
'레벨이... 나보다 높은거같은데.'
전마강갑을 키고 잠깐 막아보다가 밀려드는 역도를 피해 훌쩍 몸을 날린 강태석이 혀를 찼다.
물론 레벨이 높은게 놀랍진 않다.
이런 망할 땅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래 굴러먹었다면 레벨이 높은게 당연한거니까.
문제는 저 병기 자체의 질량.
질량자체가 가볍기 그지없는 칠채영창은 어떤 형태로 바꿔도 저 묵직한 무기에 상성상 불리하다.
레벨이라도 자신이 높다면 모를까, 레벨마저 상대가 높다면 더더욱!
그나마 자신이 지금 버티는건...
"뭐야 너. 왜 이렇게 빨라."
터억.
뛰어내린 강태석을 보며 무기를 휘두른 사내가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레벨도 낮고 무기상성도 자기가 좋다.
한데 기이할 정도로 민첩하고 힘이 강하다.
심지어 몸을 두른 마력은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
'설마 육체변화가 두개 이상 고등급으로 나온거야? 설마 세개?'
기계포식자인 사내가 갸름히 눈을 떴다.
자신의 직업, 기계포식자는 근력 부분에서 특출난 강함을 지닌다.
만약 두개, 예를 들어 근력이나 민첩 부분에서 전직시 추가적인 어드밴티지를 지닌다면 놀랍도록 훌륭한 직업.
한데 세개라고?
"그럴리가 없지."
후우웅!
촤르르르르륵!
다시 사슬을 끌어당긴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애병, 용아추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세개부문에서 어드밴티지라니.
그런 개사기 직업은 들어본적도 없다.
안그래도 세상이 불공평한데 그런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윽고.
"잡혀주라. 이번달 좀... 여유있게 즐기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검기를 듬뿍 머금은 용아추가 굉음을 내며 사내의 손을 떠나 그대로 질주했다.
희귀한 기계병기, 크기 15m 코뿔소 형태의 <그라인더>를 잡고 얻은 두부조형물에 뱀 형태의 기계병기, <아나크>의 척추를 뽑아만든 병기.
부딪치는 모든 것을 진동역장으로 부숴버리는 그라인더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걸리는 모든걸 갈아버린다!
하지만...
스르륵...
"!!!!!!!!!!"
흐릿껌뻑해지며 공격을 흘려버리는 상대의 모습에 사내가 저도 모르게 전투중인걸 잊고 눈을 비빌뻔했다.
뭔가 어둠같은게 스르륵 감싸더니 마치 허공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것처럼 재구성된다.
막거나 피하면 몰라도 저건 또 무슨?
그런 놀람도 잠시.
파아아아아아앙!
촤르르륵...
"... 저새끼가? 지금?"
사슬을 회수하는 틈, 단번에 주변 구조물들을 박차며 자신을 스쳐지나는 상대의 모습에 사내가 기가 막힌다는듯 눈을 껌뻑였다.
지금 저놈이 자신을 지나쳐 내달리는 곳은 자신이 나왔던 입구!
즉 300m 떨어진 성채 안쪽!
촤르르르륵!
터어어어어어엉!
"아나 이런 씨이."
사슬을 회수한 사내가 어느새 순식간에 입구까지 다가간 상대를 보며 인상을 팍 썼다.
이유는 두가지.
첫번째, 감히 이놈이 자신에게 <한방> 먹일수 있는 빈틈을 무시하고 호랑이굴에 가까운 자신들 본진으로 뛰었기때문.
그리고 더 중요한 두번째.
"다른 놈들이 먹게생겼네 아오!"
잠시후.
쿵쿵쿵쿵!
닻을 어깨에 걸친 사내가 쿵쾅거리며 자신이 나왔던 성벽의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
성벽, 아래부분.
높이 4m에 폭은 3m인 네모난 구멍이 금속으로 우뚝 선 철벽 사이에 나있었다.
정문이라기엔 지나치게 작은 크기지만 사람 몇 들락날락거리기엔 충분한 쪽문.
터어어어어엉!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단번에 철벽에 난 구멍으로 뛰어들어 쭉 펼쳐진 복도에 진입한 강태석이 저 뒤쪽, 쿵쾅거리며 쫓아오는 녀석을 흘금 바라본뒤 발치에 가속을 더했다.
솔직히 적의 본진에 가까운 이곳에 그냥 뛰어들고 싶진 않았다.
저런 녀석이 하나만 있을것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니다.
<리틀월드 : 제한시간 7분 45초>
"아니 대체 왜 8분도 안남은거야."
터어엉!
갈래갈래 교차로가 난 복도를 쭉 따라뛰던 강태석이 한탄성을 내쉬었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발동하는 리틀월드 퀘스트가 생겨난건 좋았다.
한데 대체 또 뭔 일이 일어나길래 시간제한이 있단 말인가.
생각같아서는 본대 돌아간 다음에 싹다 끌고와서 공략하면 좋겠다 싶을 정도.
하지만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디스트로이어는 어지간한건 다 종잇장처럼 찢어발기지만 이 성벽을 뚫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화력부족.
우르르 몰려와도 이녀석들이 문걸어잠그고 농성하면 시간낭비일뿐.
어찌보면 문이 살짝 열려있던 이때가 기회다.
'그래. 좋게좋게 생각하자. 중앙에 도착해서 버튼만 누르면...'
그런 강태석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키이이잉...
파파파파파파파팍!
"!!"
저 통로 너머에서 가열차게 날아드는 수상쩍은 녹색 탄환에 강태석이 기겁을 하며 몸을 피함과 동시에.
텅텅텅텅!
콰드드드드드드득!
"좋아! 저 힘 바보는 주지말고 우리끼리 먹자!"
"좋지요."
저 뒤쪽, 탄환을 쏘아갈긴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의 외침.
더불어 어느새 통로를 타고 달려들어와 핏빛 칼을 짓누르는 여인의 대화에 강태석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
콰드드드득...
파지지지지지직!
어둠과 전기와 일곱빛깔을 동시에 감은 강태석의 손끝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여인의 핏빛 칼을 밀어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칼을 짓누르던 여인의 눈썹이 꺾일 정도.
이에 왼쪽손톱마저 날을 세운 강태석이 단번에 정면의 여인을 후려쳐버리려던 순간.
투콰콰콰콰콰!
"!!!!!!!!!"
몸을 훅 띄워버리는 여인, 그 너머에서 바닥을 사정없이 긁으며 미친듯이 다가오는 탄착군을 피해 강태석이 다급히 몸을 날렸다.
금속복도인데도 도탄도 없이 날아드는 탄환들이 모조리 쑥쑥쑥쑥 박힌다.
사념탄환.
검기가 일반법칙을 무시하고 강철과 금속을 쪼개버리듯.
벽을 넘은 화기전문가들의 탄환은 법칙을 뒤트는 기묘한 사념을 담고 날아든다.
즉 원래대로라면 <못 뚫는 탄환>이 <뚫는 탄환>으로 변한다는것.
거기에 무기마저 특제품이면 더 말할것도 없고.
거기에 스킬마저 걸렸다면 이렇게 짜증나는 것이 없다.
녹색이면 독? 상태이상? 이동속도 저하?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거 하나.
굳이 추가적인 효과 없어도 저걸 맞으면 뚫린다.
투콰콰콰콰...
아무리 빨라도 총구 까딱이는 속도보다 빠를수는 없는법.
순식간에 바닥을 지나 발치까지 다가오는 총알들.
거기에 이상한 실뱀같은 검기를 휘휘 감고 내던질 준비를 하는 여인.
이대로 가면 정면돌파고 뭐고 좁은 복도에서 모조리 두들겨맞게 생겼다.
이를 악문 강태석이 왼손을 치켜든 순간.
<여의 : 새로운 운영모드 사용가능합니다.>
<샌드 월드,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왼손에서 뿜어져나온 은빛의 모래물결, 아니 나노머신들이 단번에 복도로 그득 뿜어져나와 강태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
콰콰콰콰콰콰콱!
"???!!"
어디선가 순식간에 나타나 단번에 복도를 메운 모래의 물결과 언덕들.
동시에 투타타타탁 삼켜지는 자신의 탄환들을 본 소녀의 표정이 굳었다.
저런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심지어 아벨에서 만들어진 특제돌격소총에 사념, 스킬마저 휘감은 자신의 총알마저 막아낼 위력!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뒤로."
촤아아아아아악!
당황한 소녀를 뒤로 물러서게 한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적검을 치세웠다.
사방에서 복도를 메우며 밀려드는 은빛 물결들은 단순한 모래무지 정도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날, 뾰족한 가시, 발목을 잡는 손.
그야말로 온갖 형태로 변하며 바닥에서 치솟고 정면과 사방에서 밀려든다!
이에 심호흡을 한 여인이 상대를 향해 풀어내려던 가문의 독문무공, <적사>의 검기를 사방으로 휘두른 순간.
촤차차차차차차착!
챠챠챠챠챠챠챡!
실뱀같던 검기들이 낭창낭창하게, 마치 실타래처럼 뻗어나오며 전후좌우에서 몰려들던 은빛 물결들을 차례대로 토막내기 시작했다.
칼날, 가시, 손, 장벽.
소녀와 여인을 노리던 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하지만 잠시후.
"... 놓쳤군."
스르르르륵...
가라앉아 어디론가, 나타났을때와 같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은빛 모래물결.
이어 소녀와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칼을 수납한 여인이 혀를 찼다.
**
파바바박!
"후."
은빛 물결과 함께 여인과 소녀를 지나친 강태석이 복도를 내달리며 다시끔 은빛 나노머신들을 먹어치우고 있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샌드월드.
이번에 생긴 여의의 새로운 운영모드.
레벨의 상승, 모든 스탯의 강화.
거기에 C+등급에 달하는 마력, 아니 <어둠샘>의 스탯이 이 막대한 양의 나노머신을 다룰수 있는 모드의 사용을 허가했다.
예전 리틀비틀과는 비교도 안되는 볼륨과 활용도.
전직은 특별함에 대한 특화.
예를 들어 자신이 칠채영창지주로의 전직을 포기했다고 하여 칠채영창이 사라진건 아니고.
그 내면에 자리잡은 실마리와 특별함들 또한 사라진건 아니었다.
다만 특화했을 때만큼 모든 것을 사용할수는 없을 뿐.
여의지주를 선택했을 때처럼 나노머신을 200% 활용할수는 없지만 강해진 육체는 여의에 대한 새로운 사용가능성을 열었다.
터어어어엉!
'거의 다 왔다.'
지그재그로 뛰어가던 강태석이 길게 심호흡을 했다.
저 너머, 복도가 끝나가며 조금 다른 느낌의 빛이 새어드는 출구가 보인다.
저길 나가면 광장이 있을 것이고.
그런 광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바로 꺾으면 목적지, <생존구역 중앙접속실>이 있을터.
자신의 목적지가 그곳이다.
<리틀월드 : 제한시간 6분 31초>
시간도 충분.
하지만 거진 다온 복도 끝을 바라보던 강태석의 뒤통수가 왠지 간질간질하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 어쩐지 재수가 없을때의 느낌인데?"
정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왠지 느낌이 쎄하다.
동시에 강태석이 거의 본능적으로 발을 멈춰서려고 했지만 내달리던 속도가 너무 빠른 상황.
끼드드드드득...
강태석이 5m쯤 미끄러지며 멈춰서며 복도 밖, 그 입구 너머로 살짝 나감과 동시에.
후우우우우웅...
"... 하아."
"웰컴. 우리 수석 기술담당이 만든 특제 은폐장이 어때?"
철컥.
철커덕.
입구, 반투명한 장막을 지나침과 동시에 갑자기 변한 풍경.
광장 너머, 자신을 겨눈 수십대의 엑소슈트와 한가운데 득의양양하게 선 담배 여인의 모습에 강태석이 긴 숨을 내쉬었다.
**
광장.
"이거 나랑 우리 수석기술자가 잡은거다? 티켓 내놔."
"나... 나는?"
"안되지. 너는 옆에서 구경만 했잖아."
아릉...
점잖게 선 사내옆, 담배여인의 말에 적검 여인과 닻 사내, 총든 소녀와 늑대 귀를 한 소녀가 서로 인상을 찌푸리고 아릉거렸다.
하지만 내기는 내기.
여기.
하 진짜. 저새끼. 나한테 좀 잡히지.
아아 진짜!
투덜거리면서도 한명의 사내, 한명의 여인, 두명의 소녀가 자신들 주머니를 뒤적거려 무언가 띠들을 꺼냈고.
그런 띠들을 건네받은 담배여인이 희희낙락하며 이를 나눈뒤 반은 자신의 주머니에, 반은 옆에 선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짧은 정산이 끝난 후.
처억.
"순순히 불어. 나는 네가 어디서 왔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
"<운하> 쪽에서 왔지?"
<리틀월드 : 제한시간 3분 17초>
여인의 말에 전신이 수상한 금속상자에 통째로 삼켜져 광장에 포박되어있던 강태석이 눈을 꿈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