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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87화 (8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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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엉...

고철선, 구석복도.

"잘 뒤지면서 가봐."

"잘 뒤지고 있는데 이게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모르겠네."

"아니 그거 말고. 시체들도 뒤져보라고. 좋은게 나올지 뭐 알아?"

뒤쪽, 따라오던 사내의 말에 시체사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잡동사니들을 뒤적거리던 여인이 뒤돌아보며 인상을 팍 썼다.

"뭔 헛소리야. 이놈들 대다수가 난민이나 하급범죄자인거 몰라? 부르탄 망하면서 급하게 올라탄 놈들이 뭐 대단한게 있을거라고. 티끌모아서 집이라고 사게? 귀한걸 찾아야할거 아냐."

"... 너무 화내지 말고. 그렇다고 이 넓은걸 언제 뒤져."

눈앞 복도양쪽위아래, 그야말로 끝도 없이 뻗은 컨테이너벽과 천장들을 보며 사내가 중얼거렸다.

이 거대한 고철선, 아니 거대도시분쇄기의 구성은 크게 세부분.

첫번째, 도시를 갈아부수고 그 안에서 쓸만한 금속과 자재들을 빨아들이는 그라인더부.

두번째, 그렇게 빨아들인 금속과 자재들을 재포장하는 감별섹터.

세번째, 그렇게 재포장해 컨테이너에 담은 것들을 잘 쌓아두는 컨테이너섹터.

도시의 파괴외주비용 외에도 걸러낸 금속과 자재들을 팔아먹는 가격들이 쏠쏠했기에 분쇄기 위의 컨테이너부 용적은 조금씩 커져갔고.

부르탄이 멸망하던날 살아남아야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주변에 있던 컨테이너란 컨테이너들은 모조리 가져다붙여 용접하고 그 안에 올라탔기에 안그래도 거대했던 고철선은 과거 거대분쇄기보다도 두세배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걸 최소 다섯시간, 여덟시간 안에 뒤져서 귀한걸 찾아내야한다고?

그것도 뭐가 있을지 몰라서 조심조심 뒤져야하는 배 안을?

심지어 자신들은 쉘터출신도 아니라 피난민 출신이라 더 사려야한다.

"뭐 이렇게 걷어찬다고 귀한게 나오겠어? 어? 티끌이라도 모아서 한줌 나가는게 낫지. 우리한텐 그런거라도 귀한거 아냐?"

터어어엉!

"야야! 소리내지..."

급발진해서 발로 벽면을 걷어차는 사내의 행동에 여인이 기겁을 한 순간.

끼이이익...

털커덕.

"..."

".... 어?"

덜커덩 분리된 복도, 컨테이너벽면의 일부.

그리고 안에서 드러난 물건들에 두 남녀가 눈을 껌뻑였다.

벽면을 그득 메운 레일건에 기갑투창.

난생 처음보는 금속과 물자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란건...

"저거... 저거 뭐야."

세로로 길쭉하게 박힌 컨테이너 안쪽, 어둠 깊숙한 곳에 있는 높이 4.5m의 기계덩어리들을 보며 사내가 더듬거렸다.

가운데 사람이 탈수있는 형태로 제작된 커다란 외골격.

주변을 두텁게 감싼 방어골격들과 사이사이 보이는 기계섬유.

그 사이사이를 그득 메꾼 정체불명의 푸른빛 문자들.

양팔에 두텁게 무장된,  레일건과는 비교도 안되게 강력해보이는 두개의 화력병기까지.

한눈에 봐도 강력해보이는 엑소-슈트.

그리고 이를 본 두 남녀의 얼굴이 불길함으로 물들었다.

대박을 꿈꿨지만 너무 난데없이 상상 이상의 것들이 등장하면 이상하기 마련이다.

난민선에서, 그것도 아무거나 걷어찼는데 이런 것들이 나온다고?

이럴 경우 자신들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보다 더 현실적인 생각은...

"이거... 그냥 고철선 맞아? 뭐 잘못 건드린거 아냐?"

여인의 말에 사내가 열린 벽면에서 주춤 물러난 순간.

키이이이이익...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아아... 진짜. 소리내지 말라니까!"

철컥.

저 멀리, 아주 멀리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수상한 괴성에 두 남녀가 쌍욕을 내뱉으며 무기를 장전했지만.

녀석들이 나타난게 굳이 남자의 잘못만은 아니라는걸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투타타타타...

콰콰콰콱!

갈라진 복도, 사람들이 흩어져간 사방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고철선, 중앙복도.

투타타타타타타타!

"제기랄! 쏴라! 쏴!"

"으아아아아아! 어쩐지 운수가 좋더니만!"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투타타타타타...

복도너머, 끊임없이 몰려드는 괴물들의 행렬에 모여있던 쉘터의 이들이 쌍욕을 내뱉으며 레일건을 후려갈겼다.

혹시나 해서 열어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처음부터 대박이 나와 환호한 것도 잠시.

그 결과를 즐기기 전부터 왠 수상한 괴물놈들이 온 사방 복도, 전후좌우상하를 그득 메우며 몰려든다!

크기 2m.

날렵한 외양에 단단한 검은빛 외골격.

마치 영화속, 에일리언을 닮은 생김새.

불행인지 다행인지 녹는 산을 뿌려대지도, 교활하게 기습하지도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흉폭하고 수가 많으며... 무엇보다 강하다!

투타타타타타타...

"미치겠네! 대체 뭘로 만들어진거야!"

레일건을 퉁겨내며 밀려드는 짐승들을 보며 앞에 선 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화망을 집중하면 죽긴 죽는데 상식 이상으로 껍데기가 단단하다.

갈기면 갈기는대로 시원하게 녹아내리면 좋겠건만 힘들여 한놈 처리하는 사이 두놈, 세놈이 성큼성큼 밀고들어오는 모양새.

덕분에 포위망은 시시각각으로 좁혀지는중.

심지어 이곳은 배의 밖.

배라면 산처럼 쌓여있을 레일건의 탄자와 넘치는 에너지가 이곳에서는 결코 무한한게 아니다!

"이거... 이거라도."

"미친 새끼야! 이런 좁은 곳에서 그거 쓰면 다 죽어! 휩쓸린다고!"

기갑투창을 들며 망설이는 동료를 보며 누군가가 버럭 소리친 순간.

텅!

텅텅텅텅!

누군가 그들의 뒤에서 그림처럼 바닥과 벽, 천장을 박차며 질주해 나타남과 동시에.

서거거거거걱...

카카카카카카카칵!

순식간에 허공에 만들어진 금빛선이 단번에 그토록 단단하던 검은빛 괴물들을 모조리 토막내어버렸다.

어찌나 갑작스럽고 강렬했는지 뒤에 서있던 이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을 지경.

이어 그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너스빌...!"

"물러서라 뒤로. 화망은 다른 복도쪽으로 집중하고."

허리춤에서 고급진 칼을 뽑아든 아너스빌이 칼끝에 푸른 기운을 두른채 푸 숨을 내쉬었다.

간단히 베어낸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진 않았다.

상징과도 같은 스킬, 검기는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마력을 잡아먹는 기술.

심지어 단단한 것들을 베어내면 그 감소도가 큰 폭으로 성둥성둥 증가한다.

거기다...

"이놈들이 제일 약한 놈들인가본데."

캬아아아악...

저 너머.

기다렸다는듯 촤아악 비켜서는 검은 괴물들 너머, 성큼성큼 달려오는 더 거대한 <무언가>의 모습에 아너스빌이 들고 있던 칼에 더욱 많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

고철선, 상부.

캬아아아아아악!

콰드드드득!

안개를 헤치며 달려드는 검은 괴물들을 베어낸 강태석이 사방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석구석, 컨테이너박스들의 틈과 틈사이.

마치 집구석에서 불개미떼가 기어나오듯 너른 바닥 사방에서 검은 괴물들이 꾸물꾸물 기어나온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이것들이... 나 하나 뜯어먹어봤자 얼마나온다고. 그냥 손해 아니니?"

쩌어어어어억!

벨페른의 칼에 칠채영창의 파편, 거기에 검기까지 휘감아 반경 3m를 단번에 쪼개낸 강태석이 숨을 골랐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건 안다.

자신은 지금 기어나온 녀석들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디바우러-엔츠>

끊임없이 생명체를 삼기고 삼켜 자신들의 군락 크기를 늘려나가는 녀석들.

사실 개체수를 불리고 움직이는데 인육은 딱히 필요없다.

녀석들은 금속과 광석을 먹고 그 숫자를 불려나가니까!

녀석들이 자신을 잡으려는 이유는 하나.

특별하고 강한 개체를 잡아다 여왕에게 먹인다면 유전적으로 더 강하고 활성화된 군락을 만들수 있으니까.

더 진화된 일반병종, 더 강화된 특수개체.

어지간한 구역에 떨어지면 그야말로 재앙이라는 말이 다름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삼키고 삼켜나가며 그 세력을 불려나가는 놈들이다.

"고철선... 아주 안락했겠네. 먹을것들이 천지였을테니."

쩌어어어억!

달려드는 놈들을 베어내며 소량의 경험치가 들어오는 걸 확인한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끊임없이 바다 위를 떠돌며 명령이 입력된 대로 금속과 파편들을 그러모았을 고철선.

그런 금속과 파편들을 먹이삼아 세력을 늘리는 디바우러 엔츠.

녀석들에게 이곳은 세력을 키우기 너무나도 안락하고 달달한 둥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겁도 없이 들어온 자신들은 오랜만에 자신들 군락에 다양성과 활기를 불어넣을 맛좋은 먹이감이었을 것이고!

콰드드득.

오른 손으로 달려드는 괴물의 허리를, 왼손으로 물어뜯으려는 녀석의 머리통을 으깬 강태석이 숨을 고른후 오른손, 벨페른의 칼에 힘을 주었다.

순간 제법 넓은 범위로 흩어져 마치 무지개같은 뿌연 칼날들을 형성하고 있던 칠채영창들의 파편이 순식간에 그러모여 잘 정련된 유리의 칼날을 형성했다.

길이는 대략 1.5m 정도.

칼의 사정거리는 훨씬 더 짧아졌지만 마력의 소모는 줄고 위력도 증가했다.

쩌엉...

이에 약하게 검기를 두른 강태석은 달려드는 괴물 녀석들을 토막내며 땅을 박차고 저 멀리, 안쪽으로 성큼 도약했다.

쿠우우웅...!

'여왕을 공격해야한다.'

삽시간에 수미터 공중을 부웅 뛰어올라 삼십미터 너머로 포물선을 그리며 떠오른 강태석이 발아래, 턱을 치켜대며 물어뜯으려는 녀석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녀석들 세력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면으로 싸우면 배 전체의 피해가 너무 커진다.

앞으로 네시간 반 가량은 도망칠수도 없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이 고철선 안으로 들어와있는 상황.

일단 어떻게든 녀석들의 시선을 끌어 배 깊숙한 곳으로 불러들이고 사람들의 시간을 번다.

그리고는 오시리스와 고철선 사이에 폭탄을 터트려 일단 밀어내든, 아니면 이 고철선 전체를 폭파시켜버리던가 하여 끝장을 본다!

배 전체 승무원들이 녀석들의 영양간식이 되고 오시리스는 통째로 뜯어먹혀 고철이 되는 꼴을 보기싫다면 말이다.

터엉...

쩌거거거거걱!

착지해 반경 2m, 물어뜯으려는 녀석들을 모조리 토막내버린 강태석이 마력이 떨어지지않게 주의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기어나오는 입구가 있을터.

그리고 중요한 곳에서 나오는 녀석들은 좀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좀더 수상쩍게 움직인다.

그렇게 사방, 달려드는 괴물들의 움직임을 주욱 훑은 찰나의 순간 직후.

'저기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치 채찍처럼 칠채영창의 검날을 쫘악 늘어트려 일직선으로 내리찍은 강태석이 짓이겨지고 토막난 괴물들 너머, 컨테이너들 사이의 틈을 향해 번쩍 몸을 날렸다.

**

오시리스, 상부갑판.

투콰콰콰콰콰콰콰콰!

철판 더 뜯어내! 그래야 안에 사람들 나오지!

미친소리 하지마! 저 개미새끼들이 더 기어나온다고!

갑판, 사방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을 듣던 센티널 안의 아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방은 그야말로 카오스.

사람들이 들어간 입구로, 고철벽면들의 보이지 않던 구멍 구석구석에서.

그야말로 검은색 개미떼들이 우글우글 타고 나오며 갑판 위로 올라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나마 자신의 센티널에 달린 수십정의 레일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산처럼 쌓인 탄약과 핵융합엔진의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버티고 있지만 그뿐.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우아아악! 저건 또 뭔데!

네개의 팔, 훨씬 더큰 크기에 두꺼운 갑각.

갑판에 내려앉은, 크기 10m가 훌쩍 넘는 검은색 괴물을 보며 비명성을 내지르는 사람들을 본 아린이 자신의 모든 팔, 모든 촉수를 틀어 화력을 집중했다.

한눈에 봐도 수상쩍고 강한 녀석!

하지만...

티티티티티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네개의 팔을 들어 막아내고 튕겨내며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을 보며 아린이 콕핏속, 조종간을 꼬옥 움켜쥐었다.

센티널은 이전 세계에서는 무적의 병기.

하지만 어느순간 경계를 넘어선 이곳 세계에선 그저 여러 병기들중 하나일 뿐이었다.

먹히지 않는건 아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건 아닌!

'난... 나는 벽 같은거 못넘는거야? 넘을수 있다며. 대체 어떻게 넘는건데?'

안쪽으로 거침없이 괴물들을 토막내며 들어간 아너스빌을 떠올린 아린이 중얼거렸다.

아너스빌이나 카트란이었다면 눈 앞의 괴물에 조금 고전하긴 했어도 얼마안가 손쉽게 토막냈을 것이다.

자신도 지금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순간.

<아린. 여차하면... 그 두개 부숴봐라. 정말 급하다면.>

들어가기전, 자신의 아빠 카티가 남긴 한마디.

키이이잉...

이를 떠올린 아린이 자신의 센티널, 뒤에 매달려있는 두개의 거대한 기갑창과 거태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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