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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82화 (8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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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까지 굵게 들어차며 울려퍼지는 장소성.

    구오오오오...

    이에 바깥으로 향하던 강태석이 마주친 상태에서 뭔가를 말하려는듯 입술을 달짝거리는 상대를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스무살정도의 나이, 긴 생머리에 청순한 분위기, 그와는 살짝 안어울리는 날카로운 눈매.

    예전에 한번 봤던 기억이 난다.

    배를 만들고 출발하기전 우르르 비웃으러 몰려왔던 이중 하나.

    '좋은 기억은 아니네.'

    마주친 여인을 보며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거기다 자신을 바라보던 여인이 이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안에서 나오는 두명, 아너스빌과 금발여인을.

    "하나도 아니고... 둘?"

    살짝 놀랐다가 이어 뭔가 혐오스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에 강태석은 상대가 아주아주 쓸데없는 오해를 하고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런 여인을 지나쳤다.

    "바쁘다. 할말 있으면 나중에 하고."

    오해를 하건말건 딱히 상관은 없다.

    지금은 바깥에서 터져나온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는게 우선.

    '할말있으면 나중에 또 하겠지.'

    스윽.

    지나쳐 배앞, 갑판으로 향한 강태석의 뒤에 덩그러니 남은 펠란이 벙찐 눈으로 그 등을 쳐다보다가 이내 울그락불그락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펠란을 지나치는 아너스빌과 금발여인.

    스윽.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표정이라 하는 말인데. 그런거 아니니 입을 조심하도록. 쓸데없는 추문에 날 끌어들이지 말고."

    펠란을 스친 아너스빌의 짧은 한마디.

    이어 업혀있던 금발여인이 펠란을 바라보며 낭랑하게 말했다.

    "참고로 나도 아냐. 내 스타일 아니거든. 내 스타일은... 흐으으으으음."

    그 말과 함께 자신을 위아래, 반짝이는 눈으로 훑는 상대의 모습에 펠란이 왠지 모를 오한을 느끼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대체 더그한테 받은 느낌을 왜 이 여인에게서 받는단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업힌채 멀어지는 금발 여인이 고개를 대롱대롱 쳐든채 외쳤다.

    "이쁜이. 나중에 나한테도 찾아와! 차한잔 하면서 얘기나 하자고!"

    "닥쳐라 이놈. 네놈에게 줄 차따윈 없으니."

    차갑게 대답한 아너스빌과 금발여인이 단번에 복도를 타고 선자리에서 멀어졌다.

    이제 남은건 펠란, 혼자뿐.

    "뭐야 대체..."

    쿠르르릉...

    떨리는 진동속, 덩그러니 남아있던 펠란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귓가에 재차 들려온 거대한 소리때문.

    심지어 아까보다 좀더 가까운 곳에서, 좀더 크게 들려온다.

    쿠오오오오...!

    복도를 그득 메우는 웅혼한 소리.

    잠시후.

    저벅저벅저벅저벅.

    고민하던 펠란은 입술을 앙다문채 강태석과 아너스빌이 사라진 방향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

    갑판.

    쿠오오오오오오...

    대체 뭔 소리야...

    거기! 뭐좀 보여!

    바다가 왜이래 이거?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온 카트란이 갑판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갑판은 안쪽에서 나온 사람들로 웅성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정도로 바다위는 안개로 그득히 들어차있었다.

    당연히 전방, 소리가 나는 방향은 짙은 운무로 인해 확인조차 불가능.

    쿠르르르릉...

    어느새 배는 내달리는 소음을 죽이고 천천히, 아주 조용히 안개속에 녹아든 상태였다.

    하얀 운무의 바다속, 멈춰서듯 느리게 움직이는 배.

    마치 모든것이 정지된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선 느낌.

    저벅.

    <현재 전방 3.7km, 도시 카미라스가 감지됩니다.>

    손목시계에서 떠오르는 오시리스의 감지결과를 확인한 강태석이 갑판을 지나 가장 앞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자욱한 바다, 건너편에는 도시 카미라스가 떠있어야한다.

    카미라스.

    연방시절 거주인구, 17만5000명.

    중앙플랜트가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타르늄금속 위에 지어졌기에 여전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어야할 소도시.

    크기가 작기에 아마 지상에도 고정되지 못한채 사방으로 둥둥 떠다니는 신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작다고 해도 도시는 도시.

    3.7km 정도면 진즉에 보였어야 할거리.

    하지만 어찌나 운무가 자욱한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km 단위의 자연현상을 꿰뚫어볼수는 없는 법.

    갑판의 가장 앞, 난간에 선 강태석이 눈매를 좁히고 저너머 안개의 바다를 내살피던 순간.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예의 거대한 장소성이 안개너머에서 터져나오며 갑판 위의 사람들 귓가를 쩌렁쩌렁 후려쳤다.

    복도 안에서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적나라한 사운드.

    거기에 이번에는 하나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구오오오오오...

    고오오오오...

    구아아아아아아아아!

    안개너머, 사방팔방에서 동시너머로 울려퍼지는 크고 작은 장소성들.

    거기에 이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진동.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대기가 떨어울리는 진동이 거칠게 울려퍼진다.

    저 멀리서 무언가 육중하게, 파도처럼 다가오는 소리.

    그리고 갑판의 생존자들은 이미 이런 종류의 소리에 익숙한지 오래였다.

    거대한, 아주 거대한 폭발.

    그리고 이로 인해 밀려오는 후폭풍.

    잡아!

    모두 꽉 붙들어라!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던 강태석과 아너스빌 역시 갑판의 난간을 우득 붙들어멘 순간.

    "뭐에요?"

    "너..."

    뒤쪽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펠란의 등장에 강태석의 눈썹이 꺾였다.

    네일은 몰라도 펠란의 신체능력은 거의 평범한 수준.

    후폭풍에 휘말려 날아가면 어디 한군데가 부러져도 부러진다.

    화악.

    "앗! 뭐야!"

    왼손으로 난간을 쥐고있던 강태석이 빠르게 남은 손으로 펠란의 허리를 감아싸고 전방을 등진 순간.

    쿠구구구구구...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장엄한 폭발음과 함께 밀려드는 광풍이 그들이 탄 배를 화아아악 휩쓸고 지나갔다.

    **

    쿠구구구구...

    강렬한 폭음.

    사방을 휩쓸어내는 열기.

    이 먼곳까지 불어닥치는 강렬한 폭풍이 저 멀리서 터져나온 폭발의 사이즈를 실감나게 만든다.

    덕분에 사방을 자욱하게 감싸던 안개마저 훅 밀려나며 그들을 스쳐지나갈 정도.

    "이익... 익..."

    그속, 이를 악물고 버티는 펠란을 안고있던 강태석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전방을 확인했다.

    폭발의 규모가 거대하긴 했지만 배나 생존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후끈한 열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정도.

    지금 중요한건 폭발이 일어난 근원, 그 한가운데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강태석과 사람들의 눈 앞으로 보이는 것은...

    구오오오오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하하. 흐하하하.

    갑판위.

    안개가 밀려난 배의 전방을 살피던 이들의 입에서 모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밀려난 안개.

    드러난 은빛바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열기의 근원으로 보이는 높이 솟은 버섯구름.

    쿠구구구..

    하늘위로 높게 솟아오른 붉은 버섯구름이 사방의 안개를 밀어내며 전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건... 불길에 휩싸인 도시.

    더 나아가 그런 도시들을 짓밟고 있는 거대한 <생물>들.

    구오오오오오오오!

    콰드드드드득!

    콰지지지직!

    오시리스가 작아보일 정도로 거대한 은빛의 바다뱀이 도시의 위와 아래를 넘나들며 땅과 지반을 박살낸다.

    마치 장어가 두부를 뚫고 난동을 부리듯.

    그리고 도시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

    구오오오오오오!

    쩌저저적...

    쩌저저저저저적...

    크기 수백미터가 넘어보이는 은빛 거구의 마인이 땅을 짓밟아쪼개고 손으로 도시를 파내며 내리찍는다.

    그에 뒤지지 않는 크기의 거대한 은빛 생명체가 여섯개의 길게 뻗은 다리로 드러난 기반을 짓이기며 장소성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종말의 광경.

    수십, 수백마리에 달하는 초거대괴물들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불타오르는 도시를 짓밟으며 노도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아...

    지켜보던 이들의 탄식과 공포속.

    아너스빌의 옆에 매달려있던 카스티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델타... 벌써 이쪽까지 왔다니."

    "델타?"

    "그래. 이번 난리 주범들. 저건 <델타>가 부리는 녀석들이야."

    쿠오오오오...

    카스티가 도시를 뒤으깨는 은빛생명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천공국 룬에서 감지된 순서로 이름붙은 네가지의 재앙들.

    불연듯 땅에서, 혹은 바다에서 솟아난 이 괴물들은 급속도로 가진바 힘과 세력들을 키워나가며 칠국연합 쪽으로 스스로들의 거취를 옮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칠국연합은 초비상상태.

    이전 도시, 아만테오를 스쳐지나간 알파, 흡혈귀왕.

    푸른 번개폭풍과 함께 가장 요란하게 등장했지만 발생직후 홀연히 그 모습을 감춰버린 감마, 뇌공기왕.

    그리고 눈앞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강렬히 드러내고 있는 델타, 은해공왕까지.

    하나하나 인상적인 이름마저 붙여버린 칠국들은 녀석들을 대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있는 상황 .

    쿠오오오오오오...

    쩌저저적...

    콰아아앙...

    터져나온 거대한 화염폭발.

    도시를 짓밟고 있는 은빛 생명체들.

    어찌나 그 파괴행위가 강렬한지 도시가 금가고 으깨지는 소리가 그들이 선곳까지 들려온다.

    이를 무거운 눈으로 바라보던 카스티 옆, 덤덤히 전방을 바라보던 아너스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게 델타라는 존재가 부리는 녀석들이라 이거군. 그나저나 저것들이 말이 되나? 저 사이즈가?"

    아너스빌이 도시너머의 은빛 짐승들을 바라보았다.

    생명조직의 한계가 있기에 일정크기 이상의 존재들은 중력에 내장이 으스러지고 행동에 제약을 받게된다.

    한데 수백미터 크기의 생명체가 육지 위를 돌아다닌다니.

    쉽사리 상상조차 가지 않는 상황.

    그런 아너스빌의 말에 강태석이 짧게 대답했다.

    "살아움직이기는 하는데... 좀 다르지. 저놈들은 이 은빛 바다에서 태어난 놈들이니까."

    바다.

    생명의 근원.

    모든것들이 태어난 원천.

    지금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은빛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저 먼곳에서 도시를 뒤으깨고 있는건 이 요동치는 나노머신의 바다 속에서 태어난 짐승들.

    뒤얽히고 엉키고 의지를 가지며.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 덩치를 키우며 형태를 만들고 종국엔 육지로 올라올 정도로 거대해진 마수들.

    육체가 기계이고 금속이기에 당연히 생명체로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지상을 뒤덮은 기계병기들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바다의 살육자들.

    콰르르르릉...

    콰르릉...

    거칠게 요동치는 은빛바다속, 육중히 자리를 지키는 오시리스의 난간을 붙잡으며 강태석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놈들이 자신이 이런 배를 만든, 어찌보면 가장 근본적인 이유.

    굳이 나노머신들만 거슬리는 상황이었으면 타르늄 좀 두르고 소형 마력엔진 하나 실어서 우두두두 바다를 헤치고 다녔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은빛바다 깊은곳에 우글거리는게 저런 놈들.

    쪽배타고 가다가 저런 놈들 만나면 그대로 배가 뒤집어진다.

    '그래도 일단 휘말리진 않겠군.'

    스르르르르륵...

    정면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시 서서히 밀려드는 안개들.

    폭발에 밀려났다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하얀 구름들이 다시끔 그들을 감싼다.

    일단 녀석들은 도시를 박살내는데 바빠보이니 조용히만 있으면 휩쓸리지 않을터.

    어느새 펠란을 풀어놓은채 작게 숨을 내쉰 강태석이 다시 전방을 주시하려던 그때.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섬이...

    섬이 박살난다!

    "이런...!"

    저멀리.

    기어코 금이 가며 박살나기 시작하는 거대한 도시와 섬들을 보며 강태석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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