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64화 (6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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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어엉!

우드드득...

두께가 50cm, 높이만 3m에 달하는 벽면 뒤의 비밀문짝이 대장 사내에 의해 종잇장처럼 뜯겨나간다.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괴력.

그리고 실제로 사내의 피부에는 정체불명의 수상한 검은 타투들이 올올히 타고올라있었다.

터엉...

철문을 내던지자 언제 그랬냐는듯 스륵 옷 밑으로 타고 사라진 문신.

그렇게 앞에 선 사내의 뒤로 여덟명의 남녀와 일백이 넘는 이들이 그러모였다.

대략 열명정도가 줄어든 숫자.

하지만 그들이 이 짧은 시간동안 삼백에 가까운 이들을 처리한걸 감안하면 피해가 없는 것에 가깝다.

과연 각자가 자신감을 가질만한 실력들.

타탁.

터덜터덜 걸어오는 신입과 소녀를 마지막으로 모두가 도착한걸 확인한 대장사내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앞의 여덟을 보며 말했다.

"아직 신호가 가지 않았을거다. 아까 조를 짰던 데로 나눠서 흩어진다. 목표는 가주와 핵심 가솔들. 중간에 거슬리는 고용인들은 부득이할경우 처리해도 좋아."

인정사정볼때가 아니다.

손속에 정을 뒀다가 몇몇이 탈출하고 군대의 지휘권을 확보하면 자신들이 되려 위태로워진다.

사병집단들이 돌아왔을때 상황이 글렀다고 판단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폭풍처럼.

머리를 잃은 이들이 절로 산산히 흩어지고 항복하도록.

그렇게 되면 이 한밤의 혁명은 승리.

쿵쿵...

쿵쿵쿵...

어찌나 사람들이 신나게 떠들어대는지 지하 3층의 진동과 음악들이 이곳까지 미약하게 들려온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모두 인간을 벗어난 감각을 지녔기에 들을수있는, 아주아주 미약하게 계단을 타고 울려퍼지는 소리였지만.

그렇기에 이곳에 모인 볼츠 전원이 그 소리를 들을수 있다.

이곳에 펼쳐진 지옥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

일곱 가문이 공들인만큼 아마 안전지대 대부분의 이들이 모여 즐기고 있을터.

하지만 모인 이들의 침묵은 잠시.

"가자."

타탁.

타타타타탁.

튼튼하게 지어진 복도를 타고 아홉의 남녀와 일백에 가까운 이들이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

포른.

고르그.

아타나엘.

청.

마누트.

아핀.

미로강티엔.

이곳에 공동출자하고 자리잡은 일곱의 가문, 일곱의 주인들.

그중 5위인 여인, 아니타에게 맡겨진 곳은 가문, 아타나엘.

콰아아앙!

금고문처럼 거대한 문짝이 전신이 기계화된 거구의 사내에 의해 뜯겨나간다.

키만 해도 거진 2m 50.

전신에 덕지덕지 붙은 금속섬유들이 온몸을 감싼 사내.

보르그.

기계병기 수준의 외장근육과 내장까지 진행된 기계화로 놀라운 괴력과 생명력을 손에 넣은 이.

볼츠 순위는 대략 50위 내외.

"거기 너 신입. 무슨 보모냐? 이런 자리에까지 애새끼를 데리고 오고. 그리고 뭐 그리 아까부터 계속 쳐먹어."

터엉!

문짝을 바깥, 대리석이 그득한 고풍스런 저택 바닥에 던져버린 보르그의 말에 소녀를 업고 있던 강태석이 으쓱했다.

"온통 개판이라 내 옆이 그나마 제일 안전할거 같아서. 그리고 건강관리는 젊어서부터 해야지. 너도 좀 줄까? 허해보이는데."

그러며 허리춤에 있는 회복제 하나를 보약마냥 들어 흔들어보이는 강태석의 말에 보르그가 기가 찬다는듯 콧김을 킁 뿜었다.

허해보인다니?

지금 이 멸치같은게 자신보고 한말인가.

쿵.

저도 모르게 보르그가 한걸음 다가선 순간 뒤쪽에서 챠르륵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보르그. 지금 거기서 길막고 있을때가 아닌거같은데. 바쁜거 몰라?"

"..."

목소리만 들었는데 마치 뱀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듯하다.

저도 모르게 얼굴부위, 유일하게 인간임을 증명하는 부위에서 작게 식은땀을 흘린 보르그가 이내 툴툴거리며 쿵쿵 비켜섰다.

"염병 너무하는거 아냐? 신입한테만 친절하고. 나름 사랑고백까지 했었던 사람두고 말이야."

"자는데 남의 공간 기어들어와서 고추 들이대다가 잘릴뻔한게 사랑고백이야? 다음에 청혼이라도 한번 해보지 그래. 아주 썰어버리게."

"..."

으하하.

보르그와 여인, 통로의 뒤에 줄서있던 이들이 들으며 웃었다.

아직 아니타가 신입으로 들어와 구련장으로 인정받기 이전이고 보르그는 나름 끗발날리던 시절의 이야기.

지금은 아무도 그런 이가 없다.

서열정리중 <실수>로 가장 많이 피를 본게 눈앞의 아니타였으니까.

그들 대장의 내부 동료간 불살원칙이 없었다면 아마 피를 보는 수준에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간.

촤르르륵.

연검을 가볍게 휘두른 아니타가 차갑게 말했다.

"지금 다들 여기 놀러온줄 알아? 조용히 해."

"..."

단번에 눈앞 열일곱을 조용히 시킨 여인, 아니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상한 대저택의 서재로 보이는 고즈넉한 공간.

은은히 비추는 천장의 노란 불빛과 수만권은 되어보이는 책들.

남들은 먹을게 없어 굶어죽는 이 미친 세상에 이딴 사치를 부릴수 있는것만으로도 놀랍기만 하다.

그것도 아마 오늘로 끝이겠지만.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린 아니타가 지시를 내렸다.

"나는 가주실로. 보르그는 중앙계단. 셋은 입구막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담당구역 목표들 확보."

여기까지는 정해진대로.

하지만 이곳에 자신의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이가 있다.

새로 들어온 남자와 소녀.

모이는 사람들의 시선속, 잠깐 고민하던 아니타가 이내 싱긋 웃었다.

"신입은 자율행동. 하고싶은거 해."

"도망가면 어쩌려고?"

"상관없어. 지금부터는."

아니타가 빙글 연검을 돌리며 서재밖을 향하는 출구로 향했다.

이제까지는 자신들 계획을 일러바칠수도 있으니 감시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상관없다.

지금부터는 자신도 집중해야하는만큼 뒤에 불확정요소를 데리고 다닐수 없는 노릇.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지만 오랜기간 함께한 볼츠의 다른 이들만큼 신뢰갈수는 없다.

혹여 다른 생각을 품고있을수 있으니.

'지켜보면 되겠지. 어떻게 하는지를.'

잠시후.

파파파파팟!

파팟!

출구쪽, 아니타를 필두로 맹렬히 내달려 흩어지는 이들의 뒤로.

쿵쿵...

쿵쿵쿵!

"크흐. 신입. 새끼오리처럼 잘돌아다니라고."

육중한 발걸음소리를 내며 비웃고 스쳐지나간 보르그마저 사라진뒤 적막한 서재엔 강태석과 소녀만이 덩그러니 남았고.

그 분위기속, 업혀있던 소녀가 당황하며 강태석의 어깨를 탁탁 쳤다.

"뭐야. 왜 우리만 남겨둬. 노예야. 우린 안가? 우리도 뭔가 보여줘야할거 아냐."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서 제일 할일없는게 쓸데없는 싸움에 끼어드는 것.

아직은 자신의 싸움이 아니다.

무엇보다...

'왜 이리 목덜미가 간질간질하지?'

강태석이 목뒤를 긁적거렸다.

왠지 불쾌하던 느낌이 저택에 들어와 더욱 강해진다.

이에 강태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펴보려던 그때.

우당탕탕.

... 쫓아! 다들 빨리 올라가!

그들이 나온 통로, 깊숙한 곳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분노그득한 외침들이 들려온다.

지하 9층, 남아있던 가문직속 수하들의 추격.

돌파한 것이지 모두 죽이고 온것이 아니다.

급하게 재정비를 마친 상당수의 이들이 치고 치고 올라올 터.

"... 마냥 쉴수는 없겠네. 여기 숨어있어."

강태석이 소녀를 아까전 보르그가 내던진 철문 뒤에 숨겼다.

가문의 비밀통로를 막던 출구이니만큼 레일건에도 뚫리지 않고 안전할것이다.

이윽고.

스윽.

벨페른의 칼을 뽑아든 강태석이 숨을 고르고 어둠너머,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

촤아아아아아아악!

"커헉..."

"끄아아아악!"

수십미터, 특수금속으로 만들어진 연검이 휘둘러질때마다 저택 로비의 모든것들이 성둥성둥 두동강으로 잘려나갔다.

기둥도, 벽면도, 조각상도.

그리고 그 사이에 선 가문 직속의 무장병들도!

그 속에서 질주하며 내달리던 아니타의 표정이 차츰 밝아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촤아악!

끄아아아악!

가로막는 세 무장군인들을 처리한 아니타가 저멀리, 복도 끝에 보이기 시작한 가주실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미 저택은 온갖 소음들로 가득한 상태.

투타타타...

콰드드득!

우아아아악!

으하하하!

다양한 소리들이 울려퍼졌지만 대부분이 동일했다.

처절한 적들의 비명소리.

그위로 울려퍼지는 자신들의 웃음소리.

이놈들! 허수아비였잖아! 괜히 걱정했네!

콰아아아아아앙!

저 뒤쪽에서 들려오는 보르그의 득의양양한 외침과 파괴음을 듣던 아니타가 거진 다가온 목표물을 향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이놈들이 오히려 지하 9층에서 마주쳤던 녀석들보다 더 쉽다.

무장상태는 좀더 고급지고 충실했지만 그뿐.

숫자는 고작 50도 안되어보였고 무엇보다 평화에 쩌든것이 강하게 느껴졌다.

누가 감히 자신들, 일곱 가문의 저택 안으로 쳐들어와 사병들인 자신들을 공격하랴는 오만과 방심.

이놈들이 그간걸치고 있던건 비밀과 공포, 권위라는 갑옷.

그리고 지금 그 모든것들이 그들의 손에 쪼개져 안쪽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휘리리릭...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가주실의 고풍스런 나무문.

채찍처럼 허공에 길게 휘감겼던 연검이 미소지은 아니타의 손끝에서 폭발하며 강렬하게 뻗어나갔다.

이어지는 굉음.

콰아아아아앙!

쩌저저적!

겉재질은 나무였지만 속은 금속이었던 가주실의 문이 거칠게 토막나며 뒤쪽으로 튕겨나간다.

그 너머,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워보이는 방과 장식들.

그곳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면면이 보인다.

화려하지 않지만 고급스런 느낌을 물씬 풍기는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중년의 여인.

아타나엘.

이 화려한 저택의 주인.

동시에 아타나엘 가문의 가주.

타탁.

문을 부수고 들어간 아니타가 여인을 보며 웃었다.

체크메이트.

"같이 가죠. 아타나엘. 무력도 없는 사람한테 거칠게 나가고 싶지 않으니까. 남은 가족들도 우리가 정중하게 모실겁니다."

이정도 방비라면 저택의 점거도 시간문제.

아타나엘의 남은 식솔들을 잡아오는건 식은죽 먹기보다 쉽다.

하지만 그때.

퍼어엉!

퍼펑!

퍼어어어어엉!

"...?!"

저택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신호탄들의 소음에 아니타의 눈썹이 꺾였다.

위기, 탈출, 실패중 세번째에 해당하는 소리.

목표인 가솔들을 확보하지 못했다는뜻.

저택은 자신들이 점거중이니 가로막혀 실패했을리는 없다.

답은 하나.

미리 가솔들이 어딘가로 도망쳤다는 의미.

그리고 그 말은...

'우리가 올걸 알고 있었다고? 그러면 가주는 대체 왜? 방비는 왜 이정도였고?'

아니타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던 그때.

저벅.

"아타나엘. 소원성취는 하셨습니까. 위험하니까 따로 모신다 했거늘."

가주실 한켠, 무덤덤한 표정의 아타나엘 옆으로 기척도 없이 나타난 한 정장 사내의 등장에 아니타가 경계태세를 취했다.

**

갑작스런 상황은 아니타에게만 벌어진것이 아니었다.

포른.

고르그.

아타나엘.

청.

마누트.

아핀.

미로강티엔.

모든 곳으로 향한 모든 구련장들의 앞, 모든 가주실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들.

그중 고르그 가.

"그래. 고르그. 너희가 우리 <부르탄>을 고른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지."

저벅.

가주실, 가주 고르그의 앞.

그곳에 나타난 적발의 여인이 짓쳐들어온 대장사내를 보며 사납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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